주일설교방송

HOME > 설교와칼럼 > 주일설교방송

 

설교 동영상: https://youtu.be/3Wxg2N01UcY?t=1805

 

 

20201018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32

복을 주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라

(창세기 3025~43)

 

[들어가는 말]

 

지난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비행기를 타고 LA에 다녀왔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 있었고 비행기 여행을 하는 것을 보았지만, 확실히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는 그 수가 줄어든 것이 느껴졌습니다. 지난 2월 크레도(CREDO) 컨퍼런스에 다녀올 때 애틀랜타 공항에서 갈아탔는데 이번에도 애틀랜타에서 갈아탔습니다. 공항도 같고 시간도 평일 저녁으로 같았는데, 그때보다 훨씬 사람이 적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국내여행만 가능하고 해외여행은 하지 못한 지가 꽤 오래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여행사들이 파산했고, 항공사들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항공사들이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타겟으로 아이디어를 내서 목적지 없이 하늘을 날다가 출발했던 공항으로 되돌아오는 여행 상품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실은 한국이 아니라 호주에서 그 아이디어가 가장 먼저 나와서 비행기 티켓이 단 10분 만에 매진되었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여행에 목말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제 신문 기사를 읽어보니까 실제로 그런 비행을 하고 온 사람이 정말 여행을 한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고 한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대개 여행을 좋아하고, 많은 돈을 투자해서 가족들과 여행을 다닙니다. 이전에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 부러운 점이 많았습니다. 이전 교회 교인 중에 세계의 유명하다는 곳을 안 다녀본 데가 거의 없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좋다는 곳을 다 돌아보고 와서는 하는 말이 역시 집이 최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행을 할 때 즐겁다면 그것은 단지 여행지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에 여행이 즐거운 겁니다. 만약 여행이 끝나고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은, 돌아갈 일만 생각하면 걱정되고 두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에 여행이 즐겁습니다.

 

만약 여행을 막 떠났는데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소식이 오기를 당신 집이 화재가 나서 불에 탔습니다.’라고 한다면, 그래도 즐겁게 유명한 곳들을 다니고 올까요? 혹시 다니더라도 괴로운 마음으로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돌아갈 곳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당장 짐을 싸서 돌아갈 것입니다.

 

돌아갈 고향집이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된 일입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그는 라반의 집에 잠시 머물려고 피신을 왔다가 생각지도 않게 20년 이상 거기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가 피신 올 때 만나 벧엘에서 주신 말씀을 기억하게 됩니다.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해주시겠다고 한 약속을 기억합니다.

 

 

1.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는 야곱 (25~28)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25-26)

 

야곱은 두 아내의 경쟁적인 자녀 출산이 어느 정도 잦아들고 안정되었을 때, 라반에게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야곱의 이 말을 보면, 분명히 아내들과 자녀들이 야곱의 가족이지만, 그들이 정말로 그에게 속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야곱이 진짜 종은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곳에 왔기 때문에 일하는 대가로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라반을 위해 정말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반의 승낙을 얻고 그곳을 떠나야 자기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라반은 어떻게 대답합니까?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27)

 

라반은 야곱을 보내고 싶지가 않은 겁니다. 보내면 안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라반은 자기가 이토록 부자가 된 것이,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자신에게 복을 내리셨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여기서 여호와께서라고 하며 하나님을 언급하니까 라반이 굉장히 믿음의 사람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새번역>으로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네를 보시고 나에게 복을 주신 것을, 내가 점을 쳐 보고서 알았네.”

 

그러니까 라반은 점을 쳐서 깨달았다는 겁니다. 라반은 야곱을 통해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고 스스로 판단하거나 기도해서 안 것이 아니라, 점이나 복술 같은 고대사회의 미신적 방법으로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라반의 재산은 사람이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엄청난 부였습니다. 요즘으로 하면 별 볼 일 없는 어느 중소기업이 갑자기 대기업 반열에 오르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그래서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점을 쳐 보니까 그런 점괘가 나왔다는 겁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라반은 하나님을 이야기는 하지만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겉모습은 하나님의 백성과 관련이 있었지만, 자기 스스로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라반은 딸들이나 손주들의 문제를 가지고 야곱과 다투어 봐야 그를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서 뭐라고 합니까?

 

또 이르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28)

 

라반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론하면서, 이제는 품삯을 줄 테니 남아달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까지는 품삯을 안 주고 부려먹었다는 겁니다. 결혼을 대가로 14년 동안 공짜로 부렸습니다. 물론 먹을 것은 주었을 것입니다.

 

지금 이때는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최소한 14년을 일한 다음의 시점입니다. 이 기간 동안 야곱은 뼈 빠지게 일만 했지, 하란에서 신앙생활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주야로 하나님을 묵상한 게 아니라 오직 라헬만 묵상했고, 그렇게 7년 동안 연애하며 지내다가 결혼했더니 레아여서 그 다음 7년을 또 일했는데, 복잡한 집안 문제로 바람 잘 날이 없는 괴로운 나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을 잘 보니까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푹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잘 몰랐는데, 이제는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것이 여기서 보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많은 자손을 약속해주셨는데, 지금 실제로 많은 자녀들을 낳지 않았습니까? 자기 아버지 이삭은 기껏해야 에서와 야곱 쌍둥이 밖에 못 낳았는데, 자기는 지금 아주 많이 낳았습니다. 현재까지 아들이 열한 명에 딸이 한 명입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 약속이 이루어져야 할 텐데, 바로 그것이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생각하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야곱을 주저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돈 문제입니다. 이 많은 가족들을 데리고 어떻게 아무 돈도 없이 떠납니까? 그리고 고향 땅에 돌아가도 무슨 면목으로 돌아갑니까?

 

라반의 집에 계속 머물게 되면 이제 품삯도 받게 될 것이고,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됩니다. 지난 세월 동안 돈은 못 벌었지만 밥은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네 명의 아내와 열두 명의 자녀들을 데리고 별 대책 없이 그냥 그 험한 길, 누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굉장히 위험한 먼 길을 떠나게 되면, 강도의 위협도 있지만 가다가 중간에 먹을 게 없어서 다 굶어죽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고향집에 잘 도착하더라도, 빈털터리 신세로 아버지 집에 들어가면 그게 뭐겠습니까? 그 많은 식구들을 데리고 가서 아버지에게 얻어만 먹으며 눈치만 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니까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인데 방법이 별로 없는 겁니다.

 

이제는 정말 야곱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제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가 그를 붙들고 있습니다. 돌아가기는 해야겠는데 돈이 없습니다. 또 돈을 벌자니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온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고민하며 힘들어 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겁니다. 우리도 정말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싶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싶고,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나 현실을 생각하면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 우리 같은 이민자나 유학생은 남의 나라에서 먹고 사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남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도 요즘은 외국인들이 많아져서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사는 게 쉽지 않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타협을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정말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지만, 직장이나 사업이나 가정이나 어떤 문제가 걸리면 정말 주님의 뜻대로 선택하며 나아가기가 힘이 듭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계속 타협만 하며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며 살겠습니까?

 

만일 내가 야곱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아무 돈도 없이 어쨌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현실적으로 돈이 없으니까 일단 떠나지 못해도 돈을 벌어야 하는가? 지금 라반의 제안을 거절하고 가진 것 하나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으로 가겠습니까, 아니면 좀 더 머물며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겠습니까?

 

1970년대~80년대에 크게 부흥하던 한국 교회가 1990년대부터 정체되기 시작하더니, 21세기 들어서 눈에 보이게 쇠퇴하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대다수 크리스천들의 교회에서의 모습과 가정이나 생업에서의 모습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교회에서 예배드리거나 집에서 말씀을 읽고 기도할 때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겠다고 하며 아멘, 아멘, 할렐루야합니다. 하지만 막상 사회에 나오면 가정, 직장, 사업체에서 말씀은 말씀이고, 현실은 현실이지.’라고 하면서 말씀과 상관이 없는 삶을 산다는 겁니다. 교회에 있을 때는 정말 거룩하고 신실한데 사회에 나오면 전혀 딴 판인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삶 속에서 말씀이 적용되지 않는 신앙생활은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교회에서만 크리스천이고 사회에서는 안 믿는 사람과 똑같다면 그것이 어떻게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겠습니까? 믿음은 실천이 되어야 믿음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모여서 하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이렇게 예배하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사실은 신앙생활을 위한 훈련과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 목장에서 함께 하는 것, 삶 공부 등이 다 신앙의 훈련입니다. 특히 목장에서 어쨌든 사랑을 실천해보자는 것, 문자나 전화로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연습이고, 진짜 신앙생활은 매일의 삶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가정에서 또 생업에서.

 

내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좋은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가정에서 또 생업에서 하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과 이웃에게 더 가까이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과 또 이웃과 단절되어 별 관계가 없이 살고 있는가? 이것을 점검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관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2.   야곱의 결정과 라반의 반응 (29~36)

 

이제 야곱은 어떤 결정을 내립니까?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가축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29-30)

 

야곱은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래서 아내를 얻기 위한 14년 동안의 의무 노동이 끝난 이 시점에 라반과 새로운 고용관계를 맺어서 일하며 돈을 벌기로 결정합니다. 마치 노조와 사측이 노사협약을 새로 맺는 것과 비슷합니다. 운동선수도 신인일 때는 돈을 적게 받으면서 계약을 맺었다가, 실력이 검증을 받은 다음 좋은 조건으로 새 계약을 맺는 것과 비슷합니다.

 

, 이 새로운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몇 가지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라반의 재산이 이렇게 많이 늘어난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인데, 야곱 자신이 하는 수고를 보시고서 그렇게 해주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자기도 자기 몫을 챙겨 집안을 세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30). 그러자 라반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31)

 

라반이 야곱에게 무엇을 주면 좋겠느냐고 하자, 야곱은 한 가지 일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사실 라반이 줘봐야 얼마나 주겠습니까? 야곱은 이제 라반을 간파했습니다. 라반이 어떤 사람인지를 압니다.

 

그 동안 야곱이 열심히 일했던 이유는 단지 결혼과 관련하여 기간을 채우기만 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억지로 기간을 채우기 위해서만 일했다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일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럼 야곱은 무엇 때문에 라반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일을 한 겁니까?

 

그는 자기가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라반의 재산을 늘려주게 되면 일정한 월급을 풍족하게 주는 것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기 때문에 엄청나게 불어난 재산 중에서 일부라도 자기에게 주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감으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그때까지는 아직 라반을 잘 몰랐습니다. 라반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라반에게는 야곱의 수고에 감사하거나 그를 인정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라반이 입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언급했지만, 실제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야곱이 14년의 기간을 다 채우고 나서도 양 한 마리 주지 않았습니다. 뭐 하러 주겠습니까? 자기 재산을 축내며 왜 주겠습니까? 부자인데도 욕심이 대단합니다.

 

사업을 하면서 종업원을 두신 분들은 그들에게 잘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는 정당한 보수를 지불해야 할 것이고, 아무리 돈을 주고 고용한 사람이지만 이익이 남을 경우에는 함께 나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실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무슨 큰 것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열심히 일하는데 Thanksgiving이나 성탄절이나 연말이 되어 전혀 생각을 안 했는데 10불짜리나 20불짜리 Starbucks giftcard 하나라도 주면, 얼마 되지도 않는 액수이지만 사람의 기분이 달라집니다. 그렇게 나누어주는 회사가 있다면 일을 하려는 사람이 줄을 설 겁니다.

 

조금 전 스타벅스(Starbucks)를 언급했지만, 그 회사가 바로 그런 회사입니다. 스타벅스가 우리 복음적인 크리스천들에게는 리버럴한 회사라고 비난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그들보다 못할 때가 많습니다.

 

회사에서 보통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물을 때 많은 사람들은 손님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스타벅스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하면, ‘손님이 아니 바로 당신들(직원들)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스타벅스는 파트타임 직원들에게도 의료보험과 주식 옵션을 제공하며, 종업원을 배려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몇 년 전 미국의 어느 신문사에서 설문 조사를 했는데, 회사 직원들이 회사에 바라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그때 이 세 가지가 1, 2, 3위를 차지했습니다. 첫째, 일을 잘했을 때 잘했다는 칭찬을 듣고 싶다. 둘째, 일을 할 때 소속감을 느끼고 싶다. 셋째,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 윗사람들이 자기를 이해해주면 좋겠다. 굉장히 소박한 바람들 아닙니까? 그런데 많은 회사들의 경영진은 직원들이 가장 중요하게 꼽은 이 세 가지에 대해 10개 항목 중에서 8, 9, 10번째로 평가했습니다. 그러니까 경영진과 직원들의 생각이 너무 다른 겁니다.

 

사람들은 일할 때 신이 나지 않고 자기 일에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직을 고려합니다. 그런데 그 설문조사는 그에 대한 주요 원인이 직원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리더들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직장을 옮기는 이유는 일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인간관계 때문이 더 많다는 겁니다.

 

야곱이 일하던 환경이 바로 그런 경우와 비슷했습니다. 신나게 일할 만한 환경이 아닙니다. 사실 야곱은 라반이 어떤 사람인지를 이제는 잘 알게 되었습니다. 겪어보니까 기대할 게 없는 사람입니다. 그 대신 품삯을 받을 때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 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32-33)

 

라반이 워낙 악랄한 고용주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장인이고 외삼촌이지만 합리적인 거래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이익이 생기면 몇 퍼센트를 나눈다.’라는 식으로 해석이 다를 수 있는 식의 기준을 말하지 않습니다. 73으로 할 때 그 기준이 뭔가 할 때 라반은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양의 무늬와 색깔이라는 아주 분명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아무리 인정머리라곤 조금도 없는 라반이라도, 점이 있는데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확실한 기준으로 합니다. 원래는 양을 치면 그 양이 낳은 새끼 중에서 몇 마리라고 하는 식으로 품삯을 정하는 것이 당시 사회에서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혹시라도 라반이 나중에 자기 양을 훔쳤다고 뒤집어씌울 것 같으니까, 야곱은 아예 얼룩이 있거나 점이 있거나 검은 것만 자기가 가지고 흰 것은 다 외삼촌에게 가지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흰 양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를 보십시오. 이게 얼마나 불행한 관계입니까? 지금 장인과 사위, 그리고 외삼촌과 조카의 관계인데, 그 사이에 거래가 이루어지고 그것도 서로 믿지 못해서 이러헥 하니까 얼마나 불행합니까? 확실히 하는 건 좋지만 믿지 못해서 이렇게 한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 모든 것은 라반의 지독함 때문입니다. 그는 철저히 이익을 계산하고 자기 것을 챙겨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사람을 잃었습니다. 나중에 보면 두 딸들도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자기들을 이용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행합니까?

 

라반은 정말 지독한 사람이고 돈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당시 양이나 염소에게 점이나 얼룩이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습니다. 흰 양과 흰 염소가 대부분이지, 얼룩이 있거나 점이 있거나 검은 것은 훨씬 적었습니다.

 

만일 라반이 조금이라도 인정이 남아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러한 야곱의 제안을 듣고서 그럼 안 되지. 그럼 네가 너무 적게 갖지 않느냐? 다른 기준으로 하자.’라고 했을 것입니다. 사실 그가 지난 14년 동안 야곱의 덕을 얼마나 보았습니까? 그런데도 라반이 어떻게 나옵니까?

 

라반이 이르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34)

 

야곱에게 계속 일을 시키려면 자기 재산에서 얼마를 주어야 하니까 큰 돈이 나가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다른 집으로 가서 일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야곱이 뜻밖의 제안을 하니까 옳다구나 하면서 그러자하고 곧장 받아들입니다. 이처럼 라반은 인정이나 배려나 관용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 보십시오.

 

그 날에 그가 숫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양 중의 검은 것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 떼를 치니라” (35-36)

 

라반은 자기 양 떼와 염소 떼를 자세히 살펴서 조금이라도 얼룩이 있거나 점이 있는 것을 한 마리도 빠짐없이 골라내어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이 갖습니다. 그것도 수컷과 암컷을 자기와 아들들이 나누어서 절대 얼룩 있고 점 있고 검은 것이 나오지 않도록 차단을 시킵니다.

 

그뿐 아니라 얼마나 지독한 사람인지, 야곱이 있는 곳으로부터 사흘 길이나 떨어진 곳으로 갑니다. 그러니까 자기와 야곱 사이에 양과 염소가 전혀 섞일 일이 없도록 합니다. 얼마나 지독한 사람입니까? 정말 철저한 사람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한 마리도 안 주겠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품삯을 주겠다는 사람의 태도입니까? 철저히 이기적이고 악랄한 태도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래도 몇 마리 정도는 남겨 놓고서 이것들로라도 잘 교배시켜서 살아보도록 하게.’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라반은 조금이라도 그런 양들이 섞여서 야곱의 소유가 될까 봐, 암컷과 수컷을 나누고 또 사흘길이나 떨어지게 하는 걸 보십시오. 정말 양심도 없는 사람입니다. 아주 지독한 인간입니다. 완전히 도둑심보 아닙니까?

 

그런데 이렇게 하면 정말 자기에게 유익입니까? 그럴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이익 위주로 사람들을 대하면, 돈은 얻을지 몰라도 가장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일 잃습니다.

 

가끔 보면 이런 라반과 같은 태도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실 조금만 인정을 베풀어도 굉장히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데 왜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해서 사람을 잃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3.   기적적인 야곱의 재산 증식 (37-43)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을 라반의 양과 서로 마주보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37-40)

 

비록 흰 염소와 흰 양만 맡았지만, 야곱에게는 특이한 지식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양을 치면서 관찰한 결과 두 가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양은 풀을 뜯을 때가 아니라 물을 마실 때 교미한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교미할 때 양들이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 새끼에게 영향이 간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것은 하루 이틀 양을 쳐서 아는 게 아닙니다. 14년 동안 헛되이 일한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 경험에서 그가 배웠습니다.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41-42)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나무껍질을 벗긴 흰 무늬 가지들을 양 앞에 놓아서 보여주었다고 하여 얼룩이 있거나 점이 있는 새끼가 나오겠습니까? 흰 염소와 흰 양인데 어떻게 얼룩이 있고 점이 있고 검은 것이 나오겠습니까? 그래서 이 내용은 해석이 분분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과학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동물의 시신경을 자극하거나 음악을 들려주면 생체 리듬에 변화가 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서, 닭을 기르는 양계장에 밤새 불을 켜놓으면 닭의 시신경이 자극되어 달걀을 1.5배 더 낳는다고 합니다. 또 스트레스를 받을 때와 스트레스가 없을 때 동물들이 새끼를 낳는 확률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나 양이나 돼지 등 동물들에게 모차르트의 음악을 틀어준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사실 사람의 태교도 비슷한 영향이 있습니다. 임신한 여성들은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음식만 먹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하고 하는 노력을 왜 합니까? 좋은 아이를 낳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닙니까?

 

분명히 어느 정도 영향은 있지만, 그렇게 가지를 보여주었다고 점이 있는 것이 나옵니까? 성경은 결코 여기서 과학적으로 어떻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과학이 아닙니다. 본문의 초점은, 지금 이렇게 하니까 이렇게 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원래 이것이 있을 수가 없는 일인데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43)

 

야곱은 이제 엄청난 거부가 되어, 양 떼만 아니라 종들과 낙타와 나귀도 많아졌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야곱이 무슨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무슨 가지를 보았다고 그런 새끼를 낳겠습니까?

 

야곱 자신이 라반 앞에서 고백한 것과 같이(30),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나뭇가지가 아니라 요즘 21세기의 최신 과학기술을 모두 다 동원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라반의 재산이 야곱을 부유하게 해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가 아닙니까? 라반은 하나도 안 주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착각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 삶에 일이 잘 풀릴 때, 그것은 내가 잘났거나 내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무슨 연줄이나 인맥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연줄이나 인맥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내가 잘나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리 이 좋아도 안 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연줄 때문에 지금 잘 풀리는 것 같아도, 그 사람의 줄이 끊어지면 나도 끊어지는 겁니다. 왜 그걸 모릅니까? 결국 하나님이 해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나아가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면서 나아가는 겁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최선을 다해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일이 잘 이루어지면, 내가 했다고 하는 게 아니라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겁니다. 그것이 신앙인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사는 사람은 정말 아름답고 복된 삶, 정말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나가는 말]

 

이제 야곱은 굉장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내들도 많고 자식들도 많고 돈도 많습니다. 고생고생 끝에 드디어 성공했습니다. 빈털터리로 와서 성공했습니다. 라반의 악랄한 수법과 갖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어땠습니까? 결코 풍성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미래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고, 아내들은 아직 서로 갈등 가운데 있고, 재산이 늘어났지만 라반이 언제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제 야곱이 참으로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라반의 집을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라반의 밑에서 아무리 많은 재물을 모은다고 해도 결코 풍성한 삶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지금의 생활을 청산하고 떠나야 합니다. 더 이상 다른 핑계를 대지 말고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냥 떠나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떠났지만 엉뚱한 데로 가면 뭐합니까? 떠나긴 떠났는데 아브라함의 조카 롯처럼 떠나서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으로 들어가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떠난 다음에는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예배자의 삶입니다. 예배란, 언제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깨달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고, 자기 삶의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그 자리가 예배 처소라는 것, 내 가정, 내 생업, 또 교회, 길거리 등 어디든 예배 처소이며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는 것을 깨달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러한 예배의 삶이 어떻게 표현되느냐 하면, 바른 관계로 표현되어 나옵니다. 사람과의 관계로 나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른 인간관계를 가질 때 우리는 진정으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야곱이 이제 참으로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라반과의 관계가 잘 정리가 되어야 하고, 아내들과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하고, 고향에 있는 가족들 특히 자기가 였던 에서와 또 아버지 이삭과 바른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희생하면서 얻은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서로 원수가 되면서 돈을 얻었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랑의 관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줍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때문에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을 줍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이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라반은 바로 이 점에서 실패했습니다.

 

이번에 비행기를 타면서 오는데 요즘은 다 자리에 스크린이 있어서 영화를 골라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도 영화를 본 지가 오래 되어서 요즘에는 무슨 영화가 있나 보았더니, 작년에 나온 영화 중에 <Little Women>(작은 아씨들)이라고, 고전을 영화화한 것이 있었습니다. 벌써 몇 번씩이나 영화로 만들어진 내용입니다.

 

따뜻한 가정의 이야기인데, 딸만 넷인 가정이고, 가난하지만 시끌벅적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입니다. 그런데 그 옆에 아주 부잣집이 있습니다. 그 집 아들과 네 딸들이 다 친구로 지내는데, 그 남자의 부모는 다 죽고 할아버지와 엄청나게 큰 집에서 둘이 삽니다. 그 집은 부잣집이지만 썰렁하고 무거운 분위기인 반면, 다른 집은 가난하지만 항상 밝고 명랑하고 사랑과 정이 넘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다 무슨 일이 있어서 그들이 우르르 부잣집으로 몰려오게 되었습니다. 와서도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다투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모습을 본 할아버지와 손자는 그것을 굉장히 부러워합니다. 돈이 행복을 주지 못하는 겁니다. 비록 가난해도 거기에 행복이 있는 겁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관계에서 실패하면 결코 성공한 인생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관계에 성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행복을 누리는 성도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53 "과로운 상황에도 감사하는 사람들 " (고전 1:4-9) - 추수감사주일 메세지 (11/22/2020) kpccoh 2020.11.22 20
452 "막혔던 관계가 풀리고 새로운 관계로" (창 31:43-55)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36 (11/15/2020) kpccoh 2020.11.15 66
451 "함께 하시며 모두 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 (창 31:33-42)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35 (11/08/2020) kpccoh 2020.11.08 56
450 "도망가는 자와 추격하는 자" (창 31:17-32)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34 (11/01/2020) kpccoh 2020.11.01 74
449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시간" (창 31:1-16)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33 (10/25/20) kpccoh 2020.10.25 94
» "복을 주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라" (창 30:25-43)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32 (10/18/2020) kpccoh 2020.10.18 114
447 "출산 경쟁에서 최후의 승자는 누구인가" (창 30:9-24)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31 (10/11/2020) kpccoh 2020.10.11 64
446 "불꽃 튀는 경쟁이 되어 버린 자녀 출산" (창 29:31-30;8)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30 (10/04/2020) kpccoh 2020.10.04 81
445 "행복해야 하는데 상처만 남긴 결혼" (창 29:15-30)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29 (9/27/2020) kpccoh 2020.09.27 96
444 "하나님의 훈련소에 도착하다" (창 29:1-14)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28 (9/20/2020) kpccoh 2020.09.20 140
443 "인생의 위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다" (창 28:10-22)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27 (9/13/2020) kpccoh 2020.09.13 155
442 "믿음의 가정에 계속되는 불행의 의미" (창 27:41-46)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26 (9/06/2020) kpccoh 2020.09.06 138
441 "에서가 믿음의 조상이 되지 못한 이유" (창 27:30-40)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25 (8/30/2020) kpccoh 2020.08.30 108
440 "속이고 받은 축복" (창 27:1-14)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24 (8/23/2020) kpccoh 2020.08.23 135
439 "망가져버린 믿음의 가정" (창 27:1-14)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23 (8/16/2020) kpccoh 2020.08.16 130
438 "예배자에게 임한 브엘세바의 축복" (창 26:23-33)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22 (8/09/2020) kpccoh 2020.08.09 201
437 "믿음의 인내 끝에 주어진 르호봇의 은혜" (창 26:12-22)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21 (8/02/2020) kpccoh 2020.08.02 203
436 "실수하는 것도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창 26:1-11)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20 (7/26/2020) kpccoh 2020.07.26 141
435 "소중한 것을 내버린 어리석은 자" (창 25:27-34)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19 (7/19/2020) kpccoh 2020.07.19 187
434 "마침내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다" (창 25:19-26)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18 (7/12/2020) kpccoh 2020.07.12 156


9480 S. Old State Rd, Lewis Center, OH 43035 / Tel: (614) 433-7155 / E-mail: kpcco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