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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EBdVGWv6uwk?t=2677

 

 

202089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22

예배자에게 임한 브엘세바의 축복

(창세기 2623~33)

 

[들어가는 말]

 

제가 오래 전 애틀랜타에서 신학교를 다닐 때 굉장히 가슴 철렁한 일을 겪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제 동생도 애틀랜타 다운타운 근처에 있는 조지아 공과대학교(Georgia Tech)에 입학했습니다. 1996년 올림픽 이후에는 많이 나아졌지만, 그때는 1990년대 초반이었고 대학교 캠퍼스 근처가 굉장히 위험했습니다.

 

제가 당시 교육전도사로 섬기던 교회에 동생도 같이 다녔는데, 동생은 차가 없어서 제 신학교로부터 동생 학교로 가서 데리고 교회에 갔다가 주일날 교회 예배와 모임이 끝나면 제 차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대도시인 애틀랜타 지역에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길이 익숙하지 않았던 어느 날 교회 모임이 끝나고 동생을 데려다주고 가는데, 하필 날이 어두워져 갈 때 제가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그때는 GPS가 없을 때라 지도를 보고 찾아다닐 때였는데, 여기가 어딘가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까 딱 보기에도 분위기가 아주 험악했습니다.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길가에 있던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차가 서 있을 때 가끔은 갑자기 어떤 사람들이 와서 신문지로 유리창을 닦으며 돈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떨렸고 머리카락이 위로 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래도 무사히 주님의 도우심으로 귀가했습니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잘못 들면 이렇게 상당히 위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길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삭이 마치 길 잃은 사람처럼 된 것을 봅니다. 지난 몇 주에 걸쳐 이삭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데,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야곱에 비하면 확실한 스토리가 있어 보이지 않는 사람이고 별 특징이 없어 보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삭이 참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고, 조용하면서 묵묵하면서도 믿음의 길을 잘 지킨 사람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삭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1.   예배의 회복 (23~25)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이삭은 애굽으로 가려 했지만 하나님이 그 땅에 그냥 머물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랄 땅으로 가서 주저앉았습니다. 그 후 하나님이 거기서 이삭에게 복을 주셔서 이삭이 농사를 지어 100배의 수확을 거두었고, 양과 소와 종들도 아주 많아지는 등 아주 큰 거부가 되었습니다. 큰 성공을 거둔 겁니다.

 

그러자 그랄 사람들의 태도가 변해서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들도 메워버리고 아비멜렉 왕은 이삭에게 우리를 떠나라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랄 골짜기로 갔고, 거기서 우물을 파니까 물이 나왔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내용입니다. 그랬더니 그랄 사람들이 와서 이건 우리 거다!’라고 우겼고, 이삭은 그것을 내어주고 떠났습니다. 다른 데로 가서 다시 파니까 물이 또 나왔고, 그러자 그랄 사람들이 또 다시 와서 이것도 우리 거다!’라고 우기니까 이삭은 또 다시 양보하고 떠났습니다.

 

세 번째로 우물을 파서 물을 얻었을 때 싸움이 그치니까 이삭은 그곳을 장소가 넓음이라는 뜻의 르호봇이라고 짓고는, “우리가 번성하리로다하며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곳도 언제 또 빼앗길지 알 수 없고, 아니면 우물이 언제 말라 버릴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계속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자신이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형편이 되었고, 마치 길 잃은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제 그랄 땅에 정착할 줄 알았는데 그곳 사람들이 자기를 시기하고 미워합니다. 이집트에는 양식이 있어서 그리로 가고 싶었는데 하나님이 거기 가지 말고 여기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곳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그랄 골짜기에 마냥 있을 수도 없습니다. 르호봇이라는 우물을 얻었지만, 이것도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양과 소와 종들이 많아지고 함께 움직이는 가족들도 많이 늘었는데,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때 이삭은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합니까? 몇 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먹을 것이 있고 풍성하며 언제나 흐르는 나일 강이 있는 이집트로 가기를 다시 시도하는 겁니다. 둘째로,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다시 찾아가서 제발 흉년이 지나갈 때까지만 봐달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니면 셋째로, 간신히 얻은 우물 르호봇을 잘 지키고 거기 주저앉아 버티는 것이 있습니다.

 

이때 이삭은 어떤 결정을 내립니까? 아무리 먹을 양식이 풍성하고 마실 물이 많은 애굽이라고 해도, 이삭은 그리로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는 그냥 그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이삭은 참 단순한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참 사랑하십니다.

 

또한 자기를 싫어해서 내쫓은 아비멜렉에게 다시 가서 제발 봐달라고 애원하며 매달리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상황 속에 유일한 소망처럼 보이던 르호봇에 가만히 주저앉아서 거기 계속 있지도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3)

 

이삭이 르호봇에서 브엘세바로 올라가는데, 브엘세바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일곱 개의 우물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곳은 오래 전에 우물이 있던 곳이며, 그랄 골짜기로부터 약간 동쪽에 위치한 곳입니다. 이곳은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조약을 맺은 곳이기도 합니다(21).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땅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가장 남쪽에 위치한 곳입니다. 더 남쪽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이 브엘세바로 올라갔다는 것은 사실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그를 도와줄 사람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땅입니다. 게다가 브엘세바로 간다는 말은 애써서 얻은 우물인 르호봇을 포기한다는 말도 됩니다. 그런데도 그는 왜 그리로 갑니까?

 

본문에는 정확한 설명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삭은 이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옮긴다는 것은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르호봇에서 먹을 게 없는 것도 아니고 물이 없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옮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삭의 입장에서는 내키는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잘 살고 있는데 하나님이 갑자기 떠나라고 하시면 이해가 안 갈 수 있습니다. 다 편안한데 왜 갑자기 옮기라고 하십니까?

 

우리도 하나님이 말씀을 주실 때가 있는데, 그것이 이해가 안 가고 그 이유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르지만, 하나님께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어떤 일이 내 삶에 벌어지면, 특히 내가 안 좋아하는 일이 벌어지면, 나는 알 수가 없지만, 하나님께는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만일 이삭이 르호봇에 계속 머물러 있었으면, 당장은 별일이 없고 물도 있으니까 괜찮을지 몰라도, 결국은 또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공격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빼앗기게 되어 있습니다. 르호봇도 언제든지 그들이 와서 칠 수 있는, 그들의 영향권 아래 있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지금 편할 뿐이지, 계속 편하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끝까지 편한 곳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르호봇은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입니다. 르호봇은 잠시 거쳐 가는 곳이지, 계속 머물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위험한 상황인데도 사실 지금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모를 수가 있습니다. 그게 우리 인간의 한계가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우리가 못 보는 것을 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분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에게 르호봇에서 브엘세바로 옮기라고 하신 것이고, 이삭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그 좋은 르호봇을 놓아두고 척박한 브엘세바로 갑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4)

 

이삭이 브엘세바로 옮기니까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탁 나타나십니다. 그러니까 이 말이 바로 그겁니다. 이삭이 이곳으로 옮긴 이유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서 그랬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아버지 집과 고향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길을 떠나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이 탁 나타나셔서 바로 여기다.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라고 하신 것과도 굉장히 비슷합니다. 이삭이 옮겼더니 나타나셔서 바로 여기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2절에서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이 땅에 머물러 있으면 복을 주겠다고 하셨는데, 또 두 번째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특히 여기서 뭐라고 하십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니까 하나님은 지금 이삭이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지금 이삭의 가장 문제가 바로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어떤 두려움입니까? 우리와 똑같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물도 양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앞으로가 막막합니다. 이 많은 식구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지, 그 두려움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합니다. 사실 밑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못 느끼지만, 가장 위에 있는 사람은 피가 마르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때 이삭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핵심을 찌르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지만 이 상황에서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삭이 두려워하지 않을 만한 이유를 알려주십니다. 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준 하나님이다. 내가 너와도 함께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너의 아버지를 생각해보아라. 혈혈단신 이 땅에 와서 얼마나 성공하고 거부가 되고 복을 받아 살았느냐? 그게 다 내가 해준 것이다. 너에게도 똑같이 해주겠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 말씀에 이삭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25)

 

이삭은 이전에 아내가 아기를 갖지 못할 때 기도해서 쌍둥이 형제를 얻었습니다. 흉년이 들어 생존에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순종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보호를 경험했습니다. 심지어 그랄에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며 실수를 했을 때도 하나님은 지켜주셨습니다. 농사를 지었을 때는 100배나 거두게 하셨고, 우물을 팔 때마다 물이 나오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보통 기적이 아닙니다. 특히 흉년이 든 상황에서 그랬다는 것은 놀랍습니다. 그러니까 다 기적인 겁니다. 이삭은 그것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 그렇지, 지금까지 나에게 해주신 것만 보아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구나.’ 상식적으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자기와 함께 하시면서 하나하나 모두 인도해주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구하며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이 상황에서도 다른 짓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브엘세바는 이전에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드렸던 믿음의 장소입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이 브엘세바에서 자기에게도 임하여 주시기를 사모하면서, 주님께 앞으로의 상황을 아뢰며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도 이삭처럼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이면 어떻게 반응해야 되겠습니까? 몇 가지 반응의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소위 계산 형입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생각해보고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좋게 이야기해서 계산 형이고, 안 좋게 이야기하면 머리 굴리기입니다. 만약 이삭이 머리를 막 굴리며 계산했다면, 그는 애굽으로 갔을 것입니다.

 

둘째는, ‘비비기 형입니다. 유력한 사람에게 빌붙어서 비비며 좀 도와주세요하고 도움을 청하는 유형입니다. 이삭이 이것을 택했다면, 아비멜렉에게 가서 비비며 봐 달라고 애원했을 것입니다.

 

셋째는, ‘방어 형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절대로 빼앗길 수 없다.’라고 하는 유형입니다. 이삭이 이것을 택했다면, 르호봇에서 방어막을 치고 그랄 사람들이 또 올 것에 대비해서 군사훈련을 하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들 두고 보자!’

 

조금 전 우리가 부른 찬양곡 가사가 고단한 인생길, 힘겨운 오늘도 예수 내 마음 아시네...”인데 정말 고단한 인생길이고 힘겨운 오늘입니다. 앞길이 막막할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무엇보다 그때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다른 것을 할 때가 아닙니다. 예배를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대개 사람은 어려움이 생길 경우에 염려하고 두려워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찾는 겁니다. 그게 믿음의 사람 아닙니까?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이렇게 공 예배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하면서도 막상 어려움이 생기면 세 가지 유형처럼 요리조리 방법만 찾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바쁘다고 하며 예배를 빠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자꾸 다른 데만 찾아다닙니다. 머리를 굴리면서 가장 유익이 된다고 생각되는 길로 갑니다. 계산 형입니다. 아니면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면서 자기를 좀 봐달라고 애원하며 간청합니다. 비비기 형입니다. 또는 그 자리에 떡 버티고 하나도 손해를 볼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방어 형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는 어려울 때가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길이 막혔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믿음이 회복될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말씀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겁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그렇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방법을 찾지 말고,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방법을 찾고 사람을 의지해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잘됐습니까? 어느 정도는 될 수도 있지만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어려운 상황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하시고 복을 주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인생의 고통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무리 흉년이 들고 길이 막혀도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오히려 흉년을 통해 하나님을 찾고 예배를 회복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결정하고 하나님을 찾으며 나아갔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고 복을 주겠다는 약속을 다시 확인받았습니다. 그때 이삭이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가운데 기쁨이 회복되고 감동이 살아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다시금 체험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어려울수록 우리가 해야 될 것이 바로 하나님을 찾으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어려우니까 뒤로 가고, 어려우니까 밖으로 나가고, 바쁘니까 빠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바쁠수록 더 기도하는 겁니다. 그럴수록 더욱 예배에 힘쓰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십니다.

 

모든 삶의 변화의 기초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이러한 공 예배만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뜨거운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배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심장이고 또 교회의 심장입니다. 심장이 힘차게 박동하면서 온 몸에 필요한 피를 공급해주어야 사람이 건강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살아 있고 감동이 있는 예배,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는 예배가 우리를 아름답고 건강하게 해주며, 또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하게 해줍니다.

 

그렇다고 주일예배에 살짝 참석했다 해서 온전한 예배를 꼭 드렸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이러한 예배 모임에 참석하여 하나님께 같이 예배드리는 게 중요합니다. 또 개인적으로도 드리는 겁니다. 기계적인 예배가 아니라, 회개의 눈물과 회복의 기쁨이 있는, 그러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사모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우리가 떨어져서 예배드리며,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드리시는 분들은 집중해서 예배하는 것이 쉽지 않으실 겁니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분들은 왔다 갔다 하니까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오히려 우리 신앙을 점검하고 돌아볼 수 있는 귀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예배드릴 때 다들 예배를 드리고 계시는지 아닌지 어떻게 압니까? 자기들은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러니까 마냥 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귀한 도전이고 또 기회입니다. 토저(A. W. Tozer)라는 유명한 영성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실패는 예배의 영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분, ‘예배하면 뭐가 생각나십니까? ‘지겹다’? ‘한 시간 꾹 참아주는 것이다’? 그럼 아직 예배의 영광을 체험하지 못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삶이 실패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는 예배가 될 때 우리 삶이 질서를 잡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일단 이렇게 공 예배 참석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주일예배를 꼭 지키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개인적으로도 매일 기도하면서 말씀을 묵상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벽기도도 하고 수요예배도 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회복될 때 우리가 살아납니다. 예배가 회복되지 않으면 마치 기계가 기름이 없이 돌아가서 삐걱거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하나님이 나머지를 다 인도해주십니다.

 

 

2.   이웃과의 관계 회복 (26~31)

 

하나님을 찾으며 예배가 회복되니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6)

 

이 순서를 우리가 잘 봐야 합니다. 이삭을 미워해서 내쫓았던 그랄 왕 아비멜렉이 자기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과 함께 이삭을 일부러 찾아옵니다. 그러자 이삭이 뭐라고 합니까?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27)

 

이삭은 그들에게 자기를 미워해서 쫓아내놓고는 왜 찾아왔느냐고 묻습니다. 그들이 왜 왔다고 이야기합니까?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28-29)

 

아비멜렉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도 이런 식으로 찾아와서 화해를 청한 적이 있습니다(21). 그런데 그때는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쫓아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 아비멜렉은 동일인물이 아니라 그랄 왕의 호칭입니다. 아브라함 때 아비멜렉이 있었고 지금은 다른 아비멜렉이 있습니다.

 

그때는 아브라함을 쫓아낸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삭에 대해서는 이미 쫓아냈고, 이삭은 그랄에 살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쫓아내고 괴롭힌 사람을 왜 굳이 찾아와서 화해를 청하고 용서를 구하며 계약을 맺자고 요청합니까? 본문에 직접적인 이유가 나오지는 않지만, 여기서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아비멜렉이 이삭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아비멜렉이 이삭을 쫓아낸 다음에 그랄 땅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파이를 보내어 알아보니까, 이삭은 황량한 골짜기와 또 저쪽 브엘세바에서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잘되나?’ 이해가 안 가는 겁니다. 그걸 보면서 , 정말 저 사람이 섬기는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갔을 때 하나님이 복을 주셨습니다. 그랄에서 억울하게 쫓겨날 때에도, 우물을 팠는데 강탈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맞서 싸우지 않고 양보하며 나아간 이삭을 하나님은 굉장히 귀하게 보셨습니다. 분명히 이삭의 상황이면 망하는 게 정상입니다. 우물을 팔 때마다 싹 빼앗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이삭의 기세가 더 올라갑니다. 그의 집안이 더 왕성해집니다. 그것을 아비멜렉이 다 지켜본 것입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의 여유를 가지고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주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찾아와 화해를 요청할 정도가 되도록 해주셨습니다. 권위를 회복해주신 것입니다.

 

29절에서 아비멜렉이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라고 하는데, 이게 거짓말 아닙니까? 나가라고 쫓아냈고, 우물을 팠더니 가서 빼앗았는데, 그래놓고는 선한 일만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상은 진실과 거짓말을 슬쩍 섞어서 말합니다.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지만, 적당히 거짓말을 섞어서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이삭은 믿음으로 나아갔고, 하나님이 그를 보호해주셨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주변 사람이 나를 괴롭힐 때, 특히 안 믿는 사람일 때, 맞서 싸우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른 길을 또 주실 것이라고 믿고 양보해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나중에 나를 놀랍도록 높여주시는 일이 일어날 겁니다. 나를 괴롭힌 그 사람에게서 존경을 얻게 해주십니다.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30-31)

 

이때 그들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이삭이 어떻게 해도 되겠습니까? 소위 갑질을 해도 되는 겁니다. 옛날에는 자기가 을이었는데 이제는 자기가 갑입니다. 그러니까 니들이 이전에 나 한테 이렇게 했지? 그러니까 이거 내놓고, 저거 내놓고, 내게 빼앗아간 우물도 내놓고...’라는 식으로 해도 되는데, 놀랍게도 이삭은 그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서 잘해주고 보냅니다.

 

참 놀라운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마치 예수님이 네 원수도 사랑하라.” 하신 말씀을 실천한 것과도 같습니다. 또 로마서 12장에서 사도 바울이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갚아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라.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라.’ 하신 말씀을 실천한 것과도 같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도 정말 미운 사람이지만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이 변화시키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3.   관계 회복 후에 받은 복 (32~33)

 

하나님을 찾으며 예배했더니, 불편했던 아비멜렉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32-33)

 

이 물은 보통 물이 아닙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주신 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갔을 때 그의 믿음의 결단이 옳았다고 확인해주시는 표시로 물을 주셨습니다. 물이 이렇게 쉽게 나오는 게 아닙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주셨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쁨이 회복되었고, 아비멜렉이 찾아옴으로 불편했던 마음의 상처도 치유가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물이었는데, 하나님은 물도 주셨습니다. 신실하게 자기를 찾으며 구하는 자에게 물을 주셨습니다. 갑자기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이삭은 하나님을 찾으면서 계속 물도 찾았다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가운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신앙은 절대로 이론이나 구름 잡는 게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저 마음의 위로를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신앙은 체험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입니다.

 

우리가 이 순서를 잘 봐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부터 주신 게 아니라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이삭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물부터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삭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물 이전에 말씀과 예배의 회복,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었고, 이웃과의 관계의 회복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그것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웃과의 관계도 회복되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회복되지 않았는데 물이 펑펑 나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타락하고 맙니다. 아무리 많은 물질을 가지고 아무리 성공을 해도,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세워지지 않으면 같은 문제에 계속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삭을 통해 우리는 큰 교훈을 얻습니다. 이삭처럼 오늘 우리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하나님을 찾으며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이웃과의 관계도 풀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토록 찾던 내 인생의 물도 콸콸 나오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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