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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92Q0ZA7z62c?t=1561

 

 

2020927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29

행복해야 하는데 상처만 남긴 결혼

(창세기 2915~30)

 

[들어가는 말]

 

이 미국은 원래 스포츠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스포츠 열기가 대단합니다. 그런데 지난봄부터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모든 스포츠가 다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다시 하고 있습니다. 프로농구 NBA도 거의 결승전을 앞두고 있는데, 원래는 5월에 다 끝나야 하는 것이 한 동안 쉬다가 지금이 9월 말인데도 하고 있습니다. 4개월 정도 지체가 된 겁니다.

 

가장 인기가 있는 NFL 풋볼도 하고 있고, 대학 풋볼도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메이저리그 야구도 하고 있고, 축구도 하고 있고, 유럽에서도 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축구나 야구 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관중으로 관중이 없이 하고 있습니다.

 

축구의 경우 가끔 한국 선수들이 유럽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국의 케이리그에서 축구를 하다가 유럽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축국계의 변방이라고 하는 한국 리그에서 뛰었으니까 실력이 검증이 안 되었다고 하여 유럽에 진출할 때 듣지도 못한 팀에 가든지 이름이 조금 알려져 있는 팀이라면 아주 헐값에 팔려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력이 비해 아주 낮은 연봉을 받고 가는 겁니다. 그러다 실력을 인정받고 크게 되는 경우가 좋좋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래 전 한 선수가 있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가 산 속에 살다가 어느 날 하산해서 세상으로 내려와 한 팀에 가서 입단 테스트를 받게 됩니다. 테스트를 하던 감독은 그 선수 안에 잠재되어 있는 엄청난 실력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자기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실력이 어떤지를 잘 모르고 있었고, 그래서 감독은 선수에게 당장 계약을 맺자고 제안을 합니다.

 

이 선수는 조금만 더 기다렸든지, 아니면 다른 팀들에 가서도 테스트를 받았다면 훨씬 더 좋은 조건에 계약을 맺었을 텐데, 그것을 모르고 자기를 써준다니까 고마워서 덜컥 그 팀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감독과 팀 관계자들이 이 친구, 돈을 꽤 줘야 되겠는데.’라고 생각을 하면서 얼마나 원하느냐고 했을 때, 놀랍게도 그 선수는 초년병이 너무 비싸게 부르면 리그에 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최저 연봉을 달라고 했습니다.

 

1-2년만 계약하고 실력을 인정받아 훨씬 더 좋은 조건에 재계약을 하거나 다른 팀으로 이적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리그에 남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7년 다년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것도 요즘 많이 말하는 노예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렇게 아주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한 선수가 누구입니까? 바로 야곱입니다. 야곱이 그런 식으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1.   라헬을 위해 7년을 일하는 야곱 (15~20)

 

벧엘에서 꾼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엄청난 약속을 받은 야곱은, 마침내 먼 여행길을 마치고 무사히 자기 외삼촌인 라반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 후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고(14), 야곱에게 라반은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15)

 

이 말을 언뜻 들으면 라반이 굉장히 관대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서 자기 조카이지만 공짜로 자기 집안일을 시키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보수를 주겠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라반은 아주 교활하고 약삭빠른 사람입니다. 절대 손해 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 머릿속으로 다른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한 달을 데리고 있어 보니까, 야곱이 힘도 세고 일도 잘하고 성실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런 일꾼을 놓치면 안 되니까, 재빨리 보수를 주며 계약을 맺자고 하는 것입니다.

 

지난번 13절에 보면, 라반은 야곱이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자기 형 에서를 피하여 이곳까지 도망 왔고 특별히 갈 데도 없는 야곱을 오랫동안 붙잡아 놓고 종처럼 부려먹을 속셈으로 이런 제안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라반은 자신의 속마음을 숨긴 채, 마치 야곱에게 대단한 선심을 쓰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16-17)

 

라반에게는 레아와 라헬이라는 두 딸이 있습니다. 첫째 딸 레아는 시력이 약하다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은 눈매가 부드럽다는 뜻이 될 수도 있고, 문자 그대로 근시라는 뜻도 될 수 있습니다. 반면 둘째 딸인 라헬은 곱고 아리따웠는데, 몸매가 아름답고 얼굴도 예뻤다는 뜻입니다.

 

여자인데도 아버지의 양을 치던 라헬은 성격도 활달하고, 운동신경도 좋고, 양을 치면서 단련된 아주 건강하고 날씬한 몸매를 가졌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게다가 얼굴까지 예쁩니다. 이렇게 라헬이 아름답게 묘사된 데 비해, 레아는 그저 시력이 약하다고 나오는 것으로 볼 때, 레아는 몸매나 얼굴이 동생 라헬보다 한참 떨어졌고, 잘 봐줘서 눈매만 순하게 생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야곱은 그러한 두 자매 중에서 당연히 라헬에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집안에만 파묻혀 있으면서 인물도 그저 그렇고 게다가 이야기할 때 눈을 찡그리면서 자기 코앞까지 와서 말하는 여자가 좋겠습니까, 아니면 활달한 성격에 날씬한 몸매로 들판에서 사슴과 같이 뛰며 양을 치는 피트니스 모델 같이 생긴 여자가 좋겠습니까?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18)

 

그 당시 고대사회에서 고용계약 기간은 보통 1년 정도였고, 중간에 사정이 생기면 그만둘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상식적으로 봐도 너무 길고, 게다가 중간에 취소할 수 없는 7년의 기간 동안 일하겠다고 자청한 것입니다. 이러한 야곱의 제안에 라반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19)

 

라반은 너무 좋아서 옳다구나 하며 야곱의 제안을 당장 받아들입니다. 왜 야곱은 이렇게 불리한 계약을 맺었습니까? 라헬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습니다(9-10). 하란 근처의 우물가에 있을 때 목자들이 저기 라반의 딸 라헬이 양을 몰고 온다.’라고 했을 때 첫눈에 보고 반한 것입니다.

 

몇 년 전(2005) 세상을 떠난 유명한 심리학자인 스캇 펙(M. Scott Peck)이 그의 유명한 저서 <아직도 가야할 길>(The Road Less Traveled)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눈에 반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성욕이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겉모습만 보고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진정한 사랑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야곱은 자기 눈앞에 있는 라헬이 예쁘고 건강하기 때문에 거기에 반해서 좋아합니다. 그 아리따운 라헬과 같이 들판을 뛰어다니며 데이트를 할 생각만 해도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야곱은 이때 라헬을 좋아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라헬과 결혼하는 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뜻일까?’라고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며 주님께 기도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순간 야곱에게는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보다, 지금 눈앞에 당장 주어진 이 여인이 아주 매력적이고 좋아 보인 겁니다.

 

야곱이 라헬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 마음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장자의 축복을 받고 믿음의 계보를 이어갈 사람으로서, 라헬이 그 약속을 함께 이루어나갈 인생의 동반자인가를 점검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싱글 청년들도 있는데, 앞으로 배우자를 찾을 때 첫 눈에 반하지 말고 조건을 봐야 합니다. 물론 세상에서 따지는 물질적인 조건을 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먼저는 성품을 봐야 하고, 또한 함께 믿음의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인지를 봐야 합니다. 같은 방향을 가진 사람인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방향이 다르면, 지금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반드시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겉으로 보이는 라헬의 성적 매력에만 끌려서 그저 앞뒤 생각 안 하고 육신의 정욕대로 조급하게 라반과 계약을 해버리고 맙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은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제부터 7년 동안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오직 라헬만 바라보며 라헬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살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올 때, 그것이 전부 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는 그것이 사탄의 유혹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업 직종을 바꾸어 새 사업을 시작할 때, 그것이 주님의 뜻인지 어떻게 압니까? 또는 직장을 옮길 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지 아니면 사탄의 유혹인지 어떻게 압니까?

 

사실 답을 아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자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와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습니다. “장사를 잘하는 사람은 물건을 팔지 않고 관계를 판다.”

 

어떤 기회가 주어질 때, 그것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이웃을 더 섬기며 가까워진다면, 그것은 주님의 인도하심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방향의 특징이 뭔가 하면, 하나님과의 교제에 소홀해지도록 만들고,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도 제대로 못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인지, 이웃과의 관계에 덕을 세우는지를 생각하며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나 중심이고 내 만족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것은 잘못된 방향입니다. 모든 기준이 내게 이익이 되는가?’이고, 주님을 위해 또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은 채 눈앞의 이익만을 보고 그것을 조급하게 붙잡게 된다면, 그것이 당장은 좋아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내가 그것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를 붙잡게 됩니다. 내가 그것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를 지배해버립니다. 바로 그런 게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가장 미워하십니다. 왜 우상 숭배를 그토록 미워하십니까? 진정한 신앙의 반대가 우상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외아들의 생명을 내어주실 정도로 사랑하시는데, 우상을 섬기면 우리 인생이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랑하시는 우리 인생이 망가지고 무너지는 것을 그냥 보고 계실 수가 없습니다.

 

참된 신앙은 관계 신앙입니다. 그런데 우상은 관계가 필요 없고 가질 수도 없습니다. 우상의 특징은, 섬김과 교제는 필요 없고 그저 내게 기계적으로 복만 주면 되는 것입니다. 우상은 내 삶에 간섭하지도 않고, 나의 변화를 기대하지도 않고, 오직 내게 일방적으로 복만 주며 지켜주기만 하면 됩니다.

 

사실 우상은 나를 위해 존재합니다. 내가 우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우상으로 전락시키게 되면, 내가 하나님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 있어야 한다는 식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이 우상이 되면 교회당에 나와서만 하나님으로 섬기고, 밖으로 나가면 나머지는 전부 자기 맘대로 하려고 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어서도 안 되지만, 우상을 하나님처럼 섬겨도 안 됩니다. 야곱에게는 라헬이 우상이 되었기 때문에 문제였습니다. 7년 동안 일한 것도 라헬과의 관계나 라헬을 위한 희생이라기보다는, 자기만족을 위해, 자기 외로운 마음을 채우기 위해 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20)

 

야곱은 자기를 위해서 라헬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7년을 며칠 같이 느끼며 견뎠습니다. 자기는 라헬을 사랑해서 그랬다고 하겠지만, 라헬만 바라보다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렇다고 라헬과의 관계가 깊어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오직 라헬을 차지하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움직인 것뿐입니다. 나중에 라헬에게서 나은 요셉이나 베냐민에게 집착하는 것을 보면, 이것은 건강한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자기만족과 자기 욕심을 위한 집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붙들려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붙잡힌 삶을 사느냐, 헛된 우상에게 붙들려서 사느냐,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붙들 때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가 살아납니다. 그러나 우상을 붙든다면 당장 좋아보일지는 몰라도 결국 관계들이 깨어집니다. 우상을 붙든다는 것이 곧 자기 욕심과 자기만족을 위한 집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2.   속아서 결혼하는 야곱 (21~26)

 

라헬을 얻기 위해 7년 동안 열심히 일한 야곱은, 그 동안 힘들었어도 라헬과 결혼할 수 있다는 소망과 기쁨 때문에 너끈히 견뎠습니다(20). 그리고 7년이 되자 야곱은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요구합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21)

 

여기서 내 기한이 찼으니라는 그의 말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지난 7년 동안 야곱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매일 날짜를 계산하며 살아왔음을 보여줍니다. 1년이 지난 다음에는 이제 1년이 끝나고 6년 남았다.’ 그러면서 계속 5, 4, 3, 2, 1.... ‘드디어 한 달 남았다.’ ‘이제 일주일 남았다.’ 이러면서 카운트다운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장면을 각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더 이해가 됩니다.

 

1)  라반의 입장

 

라반은 지난 7년 동안 큰 딸 레아를 먼저 결혼시키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라반은 아버지로서 언니인 레아를 놔두고 동생 라헬을 먼저 시집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22-24)

 

라반은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라헬 대신 레아를 장막에 들여보냅니다. 라헬과 결혼하고 싶지만 돈이 없는 야곱을 통해 레아까지 다 처리하려는 꾀를 낸 겁니다. 다음날 아침 야곱은 라반이 자기를 속인 것에 대해 분노하며 격렬하게 항의합니다.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25)

 

라반도 야곱이 이렇게 나올 줄 예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라반이 야곱에게 준비된 대답을 합니다.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6)

 

자기 지방에서는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진작 말하지 않았습니까? 결혼하기 전에 야곱에게 먼저 말을 했어야 마땅합니다. 아무리 이유가 정당하다고 해도, 그것은 자기 입장에서 옳은 것이지, 지금 야곱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말도 되지 않는 사기극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식으로 할 때가 요즘 많지 않습니까? 내 입장에서 보면 다 옳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 안 되는 억지일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요즘 미국이든 한국이든, 정치인들을 볼 때 내 마음이 어떤가를 점검해보십시오. 그러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다 지지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지지하는 쪽이 뭐라고 하면 전부 다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똑같은 사건을 놓고 내가 반대하는 쪽이 뭐라고 하면 왜 저런 이야기를 하느냐? 말도 안 된다.’ 하면서 화가 나고 미워집니다.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진영논리에 빠진 겁니다. 요즘 이 진영논리가 문제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100% 잘하는 사람도 없고 100% 잘못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만 보니까 내 편은 무조건 맞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다 옳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상대편은 무슨 말을 해도 다 틀리게 느껴집니다.

 

사실 내가 진영논리에 빠졌나 안 빠졌나를 보려면 이렇게 하면 됩니다. 내가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하는 말 중에서도 저 말은 틀렸다. 저건 잘못됐다.’ 하고 찾아낼 수 있으면 진영논리에 안 빠졌다고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쪽에서 무슨 말을 했을 때 저 말은 맞는다.’ 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나는 진영논리에 빠진 게 아닙니다. 그러나 대개 내가 좋아하는 쪽은 무조건 마음에 들고 내가 싫어하는 쪽은 무조건 마음에 안 듭니다. 바로 그것이 진영논리에 빠진 증거입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내 입장만 주장하면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더 커지기만 합니다. 지금 참 안타까운 게, 한국이 그런 식으로 너무 나뉘어 있어서 걱정입니다. 우리가 조국을 위해서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해결은 언제 됩니까? 자기가 희생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문제가 해결됩니다.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 잘 해결이 안 된다면 왜 그렇습니까? 내 입장에서만 보기 때문입니다. 내 입장에서 생각하면 나는 다 옳고 나는 피해자이며, 저 사람은 다 틀렸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십시오. 자기 입장만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희생하셨습니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 문제가 해결되고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로마 군인들과 유대종교지도자들을 다 때려눕히고 십자가에 달리셨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구원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구원이 이루어지지 안 되지 않습니까? 그게 진영논리에 빠지는 건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까지도 품으셨습니다. 내 입장만 주장하고 나만 옳다고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는 자기희생이 있을 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2)  라헬의 입장

 

이 일을 라헬의 입장에서 보면 분통이 터질 일입니다. 아마 울고불고 난리쳤을 것입니다. 야곱은 분명히 자기와 결혼하기 위해서 7년을 일한 것인데, 아버지가 자기 대신 언니를 들여보내겠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겠습니까? 아마도 소리 지르고 울며 대들었을 겁니다. 하도 난리를 쳐서 아버지 라반이 사람들을 시켜 라헬을 가두어 놓으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랬다면 분하고 억울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날 이후로 라헬이 레아를 볼 때 너무 미웠을 겁니다. 이제 더 이상 언니, 동생이 아닙니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원수이고 경쟁자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면 완전히 경쟁하는 관계가 되어 버립니다. 아주 불행한 관계가 시작된 것입니다.

 

또 아버지 라반도 어떻습니까?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닙니다. 배신자입니다. 나를 속인 사람이기에 더 이상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3)  레아의 입장

 

한편 레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것은 정말 비참한 상황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못났어도 어떤 여자가 이처럼 ‘Buy One Get One Free’로 팔려가는 걸 좋아하겠습니까? 게다가 야곱이 자기가 아니라 동생을 사랑해서 7년 동안 꾹 참고 열심히 일한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와서 네가 언니이니까 라헬 대신 네가 먼저 들어가라.’ 했을 때 아유, 나 시집가네. 좋네.’라고 했겠습니까?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이때부터 레아는 라헬을 볼 때 정말 불편하고, 미안하고, 시기도 나고,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너무 비참한 마음이 들었을 겁니다. 라헬을 볼 때마다 이전보다 훨씬 더 비참한 마음이 들었을 겁니다. ‘왜 나는 이것 밖에 안 되는가? 동생이 시집가는 데 끼여 팔기 정도밖에 안 되는가? 나는 왜 괜히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꼴을 당하나?’ 죽고 싶었을 겁니다.

 

그날 밤 야곱에게 들어가긴 했지만, 야곱이 쿨쿨 잘 때 한 숨도 못 잤을 겁니다. 야곱이 아침에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 걱정했을 텐데, 예상대로 다음날 아침에 라헬이 아니라 레아인 것을 발견한 야곱이 놀라며 분노할 때, 레아가 어떤 기분이 들었겠습니까? 얼마나 자신에 대해 수치스럽고 참담한 기분이었겠습니까? 이때의 일이 두고두고 상처가 되고 마음에 쌓였을 것입니다.

 

라반의 계략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두 딸과 사위 모두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이 상처만 남긴 결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딸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사위의 반발을 삽니다.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은 실패한 아버지가 되고 맙니다.

 

 

4)  야곱의 입장

 

무엇보다 이 사건을 야곱의 입장에서 보면, 완전히 마른하늘에 벼락이 친 꼴입니다. 드디어 라헬과 결혼하고 너무 기뻐서 첫날밤을 보낸 뒤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라헬이 아니라 레아인 겁니다. 이때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겠습니까? 레아와 라반 둘 다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아니, 이 여자가 어떻게 내 앞에 이렇게 버젓이 있지?’ 하며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또 그렇게 만든 라반에게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레아가 라헬인 것처럼 변장해서 들어왔고, 또 자기 앞에서 아마도 목소리나 행동이 라헬인 것처럼 했을 것입니다. 이게 어디서 많이 보던 것이 아닙니까? 자기가 눈이 잘 안 보이는 아버지에게 들어갈 때 형 에서인 것처럼 옷도 그렇게 입고 털도 붙이고 목소리도 비슷하게 흉내 내면서 아버지를 속여서 축복받은 방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당한 겁니다. 야곱은 자기가 속인 그대로 당했습니다. 그래도 막상 자기가 속은 것을 안 다음에 야곱은 불같이 화를 냅니다.

 

사람은 대개 똑같은 실수라도 자기가 저지른 실수는 생각하지 않고, 남이 한 실수만 생각하며 화를 냅니다. 자기가 남에게 상처를 준 것은 금방 잊어버리지만, 자기가 받은 상처는 평생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남들에게는 당신이 나 한테 이번에 잘못한 게 세 번째야, 세 번째! 다음에 또 한 번 그러면 없어.’라고 하는데, 남에게 잘못을 하고는 이번에 제가 당신에게 잘못한 게 세 번째입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세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걸 요즘 전문용어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합니다. 거의 무슨 사자성어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오랜 전에 이것을 경고하셨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7:1-2)

 

만약 우리가 각자 자기에게는 아주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관대할 수만 있다면, 그런 가정, 그런 공동체는 아주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우리 가정, 우리 교회가 바로 그런 곳이 되면 좋겠습니다.

 

 

3.   일주일 사이에 두 아내를 맞이하는 야곱 (27~30)

 

이처럼 분노하는 야곱에게, 라반은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27)

 

레아와 일주일의 기간을 채우면 라헬도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는데 또 7년을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헬과 결혼할 수 있는 방법은 다시 7년을 봉사하는 것밖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진 돈이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라반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이유가 또 한 가지 있다고 보입니다. 16절에는 레아와 라헬을 묘사할 때 언니아우라고 했는데, 문자적으로 더 큰 자더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라반이 26절에서 말한 언니아우는 히브리 원어가 16절에 나온 언니아우와는 다른 단어들입니다.

 

그러니까 라반은 여기서 단순히 언니와 아우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25장에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3)라고 리브가에게 주님이 주신 말씀에서, 에서에게 쓰인 큰 자즉 장자라는 의미의 단어와 야곱에게 쓰인 어린 자에 해당하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으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다 들어서 알기 때문에, 야곱이 어린 자로서 큰 자인 에서를 속이고 여기 왔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면서 일부러 그런 단어를 쓰는 겁니다. ‘너도 그랬는데 나도 그러면 안 되냐?’라며 은근히 지적을 하는 겁니다. 야곱의 약점을 파고들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잘못을 들추어내면서, 그것을 통해 라반 자신이 하는 일을 정당화하려는 아주 치사하고 치졸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야곱은 라반이 사용한 이 비열한 방법을 통해 처음으로 자기가 한 일을 심각하게 돌아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길입니다. 놀랍게도 이것을 통해 자기를 돌아보게 되고 내가 바로 똑같은 짓을 했구나.’ 하고 생각하며 라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일주일에 두 번 결혼한 사상 초유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가는 말]

 

오늘 본문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정욕과 속임수와 상처와 수치와 분노와 미움과 질투와 갈등 같은 것으로만 가득합니다. 등장인물들도 보십시오. 서로 경쟁하는 두 명의 자매가 서로 원수가 되고, 그 둘 사이에 낀 한 남편이 있고, 또 철저히 자기 이익만 챙기며 남을 속이는 장인이자 아버지인 한 인간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어떻게 믿음의 사건이겠습니까? 이런 것이 어떻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여기에 하나님이 전혀 등장하지 않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복잡한 관계와 미움과 속임수와 이기적인 욕심과 행동에도 불구하고, 마치 하나님이 전혀 안 계신 것 같이 보였어도, 하나님의 계획은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모습이라곤 전혀 없는 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일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지금 우리 삶에 벌어지는 일들을 볼 때 절망하거나 괴로울 때가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을 볼 때 답답하고 왜 저 사람은 저럴까?’ 하며 실망과 분노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러한 때조차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선한신 뜻을 이루고야 마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간의 실수와 잘못과 죄 때문에 복잡한 일들과 상처를 주고받는 일들이 일어날 때에도, 하나님은 그곳에 계시며 반드시 선을 이루고야 마십니다.

 

바로 이러한 신실하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며,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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