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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www.youtube.com/live/HXBOf0zr0lU?feature=share&t=73

 

 

 

2023528일 주일예배

성령강림절 메시지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와 성도

(사도행전 21~4)

 

[들어가는 말]

 

오늘 강대상 보나 목사의 로브(robe)에 걸치는 스톨(stole) 색깔이 빨간색으로 바뀐 것에 대해 왜 이렇게 하는지 의문을 가진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무 관심이 없는 것보다 그렇게 의문을 가지는 것이 신앙의 건강한 자세입니다.

 

색이 바뀌는 것은 교회력에 따른 것이고, 색깔마다 의미가 있습니다. 대강절이 되면 보라색으로 하고, 성탄절과 부활절 때는 흰색, 성령강림절에는 빨간색, 평상시는 녹색입니다. 그래서 녹색이 가장 깁니다.

 

일반 달력에도 여러 절기가 있듯이 교회력에도 여러 절기가 있습니다. 그중 성탄절과 부활절이 우리에게는 가장 익숙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강절과 사순절, 또한 오늘 성령강림절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주현절, 삼위일체 주일, 주님의 세례일, 변형주일 등도 들어보셨습니까? 그러한 절기마다 색깔을 다르게 합니다. 오늘 성령강림절의 색깔은 빨간색인데, 이것은 성령이 불같이 임한 것을 상징합니다. 성령강림절 딱 한 번만 빨간색을 사용합니다.

 

원래 유대인의 절기였던 오순절은, 구약에서는 맥추절 또는 칠칠절이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이후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주시는데, 그날은 이집트에서 나온 지 50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치신 유월절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에서 나오게 인도하셨고, 그로부터 50일째 되는 날 율법을 주심으로써,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이라고 선포하셨고 또한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다.’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오순절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요즘은 교회를 개척할 때 목회자가 있고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들 몇 명이 함께 모여 교회를 개척하자고 해서 시작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1세기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교회를 시작해보자고 해서 한 게 아니라, 모여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님이 오셔서 자연스럽게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날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괜히 그날 오신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후 그로부터 열흘 후 마가의 다락방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을 말합니다. 이날을 성령강림절()이라고 하는데, 교회가 시작된 날이기도 합니다. 성령님이 강림하심으로써 교회가 시작되었기에, 성령님을 교회의 주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1.   바람 같이 불 같이 임하신 성령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또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후에 제자들은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1)

 

오순절(칠칠절, 맥추절)에 사도들과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114절을 보면 거기 모인 사람들은 사도들을 비롯하여 여자들이 있었고,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있어서 오직 기도에 힘썼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후 열흘 동안 계속 함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모여 있던 곳은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소유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따서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부릅니다. 안식월 때 거기 가서 보니까 사실 다락방 정도가 아니라 꽤 사이즈가 큰 홀(hall)이었습니다. 그래서 120명 이상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습니다. 바로 그곳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시며 세족식도 하신 장소입니다.

 

그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사람들은 오순절이 되어 이상한 모습으로 임하시는 성령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바람과 불로 임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들은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전혀 배운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다른 민족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4)

 

오순절에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신 성령은 무엇을 보여주시는 것입니까? 이것은 성령님이 곧 바람이고 불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단어는 루아흐인데 바람과 같은 단어입니다. 신약성경이 쓰인 헬라어로는 프뉴마인데 이것도 바람이나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바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성령님이 곧 바람이라는 게 아닙니다.

 

만약 성령을 바람이나 불같은 분으로만 묘사하려고 했다면,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간단히 성령님이 바람 같이, 불같이 오셨다고만 하면 충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는 당시 일어난 현상을 아주 자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표현한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2)

 

사실 이런 것은 그냥 읽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장면을 상상하며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건을 머릿속에 그리며 읽을 때 더 정확히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때 그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성도들이 모인 곳에 바람이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잔잔한 바람이 아니라 아주 급하고 강한 바람이 돌진해오는 것 같은 거친 소리가 난 겁니다. ‘, , 화악.’ 이런 엄청난 소리가 나면서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2절에서 급하다는 말은 바람의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는 것을 말하고, ‘강하다는 말은 굉장한 힘을 가진 바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잔잔하게 부는 바람이 아니라 마치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와 같이 강력한 바람을 말합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바람이 실제로 분 것이 아니라, 그러한 바람이 부는 것 같이 엄청난 소리가 집에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를 경험해보셨습니까? 제가 토네이도는 만나본 적이 없지만, 오래전 플로리다에 살 때 허리케인이 근처로 지나가는데 그 바람의 세기가 엄청나고 소리도 대단합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는 허리케인이 제가 있던 곳을 쳐서 엄청난 피해를 보았는데, 바다에 있던 보트가 내륙으로 한참 들어오고 나무가 쓰러지고 집도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람이 실제로 분 것이 아니라, 엄청난 바람이 부는 소리가 났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3)

 

성령님은 바람 같이 오셨고, 또 불과 같은 모습으로도 오셨습니다. 여기서 불의 혀라고 하는 것은 불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위에서 하나의 불이 내려오다가 여러 개의 불꽃으로 갈라지면서 거기 모인 모든 사람에게 임한 것입니다.

 

115절을 보면 그곳에 모인 사람의 수는 약 120명 정도였다고 되어 있는데, 불이 각 사람 위에임했다고 되어 있으니까 하나로 오다가 120개의 불꽃으로 갈라졌다는 말입니다. 만약 실제로 불이 내렸다면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다 불에 타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불이 아니라 불꽃이 각 사람에게 임하는 모습으로 성령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바람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불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은 사실 바람도 아니고 불도 아닙니다. 여기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2)불의 혀처럼’(3)에서 같은처럼이 중요합니다. 진짜 바람과 불로 오신 게 아니라 바람 같이 또 불처럼 오셨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임하신 것입니까?

 

몇 달 전에도 토네이도가 미국 남부를 휩쓸어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엄청난 재산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런 바람이 요즘 자주 부는 것을 봅니다. 바로 며칠 전 괌에 초강력 태풍 마와르가 덮쳐서 수많은 관광객이 고립되었고 한국 사람들도 다수 묶여 있습니다. 비행기가 다 결항하고 전기도 나가서 지금까지 곤란을 당하고 있는데, 언제 떠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은 필리핀 옆을 지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바람의 특징은 한 군데 머물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급하고 강한 바람도 지나가는 바람이지 머무는 바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나오는 바람이라는 표현은 그 강한 파워에 초점이 있는 게 아니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방향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한편 성령님이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게 임하신 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바람 소리가 계속 움직이며 온 집에 가득했던 것과는 달리, 불은 각 사람 위에 임한 뒤 거기 머물러 있었습니다. 바람은 쉭쉭 소리가 나고 어디로 움직이는지 모르는데, 불은 보이게 각 사람 위에 머물러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3절의 불의 혀처럼 임한 것은 4절의 성령 충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2.   성령의 능력과 방향성

 

그렇다면 왜 성령께서는 오순절에 바람이 부는 것 같이 또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 같이 임하셨던 것입니까?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사도행전 1장과 214절 이후의 내용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성경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18절에서는 성령님이 오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해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8)

 

바로 이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는 목적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목적을 이루는 방법이 여기 두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권능을 받는 것이고, 둘째는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끝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이 교회 공동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갈 권능을 주실 뿐 아니라, 그분이 원하시는 방향대로 인도해주실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니까 교회에게 능력을 주시고 또 방향성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예수님의 이 예언이 성취된 사건입니다.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으로 각 사람에게 임하셨다는 것은 성령의 권능을 말합니다. 불처럼 임하셔서 권능을 받은 겁니다.

 

보통 성령 하면 불을 생각합니다. 색깔도 빨간색입니다. 불의 혀처럼 임하신 성령님은 교회의 능력이며 또 생명력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이 임하지 않으시면 교회는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데, 그래서 우리가 능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강풍처럼 거친 바람 소리가 집 안에 가득했다는 것은 성령님이 당신의 목적에 따라 교회를 인도해주실 것을 말해 줍니다. 성령님에게 이끌림을 받지 않는다면 교회는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대로 나아갈 수 없고 자기 마음대로 가다가 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14~28절에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 내용을 보면, 성령님이 그 두 가지 요소가 어떻게 초대 교회를 이끌어가는지, 또한 그런 일들을 이룰 수 있도록 어떻게 능력을 공급해주셨는지가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구약시대에 요엘 선지자나 다윗 같은 사람을 통해 말씀하신 것들이, 이날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다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계속 읽어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로 나아가고, 마침내 땅끝으로 펴져 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의 순서가 바로 그렇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로 나가고, 자기들이 원수처럼 지내던 사마리아로 나가고, 계속해서 세계로 나갑니다. 에디오피아, 안디옥, 소아시아, 그리스, 그리고 마침내 로마로 복음이 전파됩니다. 이런 과정을 지나는 동안 필요할 때마다 성령의 능력과 은사가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나면서부터 다리를 못 쓰던 사람이 구걸하는 것을 봅니다. 베드로는 그를 보며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3:6) 하면서 그를 일으켜 세웁니다.

 

7장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7명의 집사 중 하나였던 스데반은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다가 분노한 유대인들에 의해 돌에 맞아 순교합니다.

 

8장에 보면 우상과 미신으로 가득했던 사마리아에 일곱 집사 중 하나인 빌립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그곳에는 새로운 기쁨이 솟아나기 시작합니다. 또 빌립은 가르치는 은사를 받아, 에디오피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내시가 예배하러 왔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나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풉니다.

 

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지만, 갑자기 일어난 지진으로 옥문이 열리면서 그곳의 간수와 그의 가족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빌립보에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27-28장을 보면 바울이 로마로 가고 있었는데, 타고 가던 배가 풍랑에 침몰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며 사람들을 구해냅니다.

 

이처럼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던 사람들은 성령의 다양한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후의 역사를 보면, 예수님의 복음은 로마에서 유럽으로, 또 유럽에서 미국과 중남미와 아프리카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복음은 아시아로 와서 한국 땅까지 전해집니다. 지금도 복음은 중앙아시아와 중동 등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으로 활발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도 성령님은 교회를 어딘가로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오순절에 이 땅에 내려오신 성령님은 그리스도인들의 인격과 삶을 변화시키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해주십니다. 교회 공동체와 개개인의 삶에 역사하셔서 목적을 가지고 인도하시며, 당신께 철저히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능력과 지혜와 은사를 주셔서 섬기게 해주십니다.

 

 

3.   성령님의 이끄심을 받는 교회

 

비행기를 타보지 않은 분은 안 계실 것입니다. 비행기가 땅에서 하늘로 이륙할 때 연료의 반 이상이 소비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륙하는 것에는 굉장한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힘은 하늘을 날 때 필요한 것이지 땅에 서 있을 때나 갈 때는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움직이지 않는 비행기 안에 그런 힘이 가해진다면 아주 위험합니다. 그렇게 되면 비행기는 폭발해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행기가 날아가려면 먼저 어디로 갈 것인지가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을 날 수 있는 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며 동시에 방향성이 같이 필요합니다. 둘 다 항상 필요합니다. 능력도 필요하고, 방향성도 필요합니다. 먼저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야겠습니다.

 

우리가 협력하는 선교사님들이 계시는데, 선교를 할 때도 돈이 필요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돈이 필요하지만 그러나 선교는 결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데에도 우리의 시간을 들여야 하고 돈을 들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떠한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사역을 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돈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역에 들어갈 예산만 계산하고 있다면, 그것은 성령 없이 인간의 힘으로 하겠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는 돈이 아니라 성령님이 공급해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는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엄청난 능력을 받았는데 엉뚱한 데로 가면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세계에서 제일 빨리 달리는데 절벽을 향해 달려서 제일 먼저 떨어져 죽는다면 무슨 소용입니까?

 

역사를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 것을 보게 됩니다. 1929년 로즈보울(Rose Bowl) 풋볼 경기에서 로이 리걸스(Roy Regals)라는 선수가 엄청난 스피드로 65야드를 질주했습니다. 100야드 중 65야드를 질주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런데 자기편 골대를 향해 달린 겁니다. 그래서 터치다운을 하고 점수를 내서 좋아하는 대신 동료에 의해 태클을 받아 쓰러졌습니다. 참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1964년 미국프로풋볼(NFL) 미네소타 바이킹스(Minnesota Vikings) 소속의 짐 마샬(Jim Marshall)이라는 선수는 샌프란시스코 포xl나이너스(San Francisco 49ners)와 경기를 하다가 67야드를 막 질주하여 상대팀에게 점수를 내주었습니다. 자기편 골대를 향해 뛰었기 때문입니다.

 

1938년 덕 코리컨(Doug Corrigan)이라는 사람이 동부 뉴욕에서 서부 캘리포니아의 롱비치(Long Beach, CA)를 향해 경비행기를 타고 떠났습니다. 짙은 안개 속에서 비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도착한 곳은 반대편에 있는 유럽의 아일랜드(Ireland)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뛰어서 점수를 낼 수 있고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은 있었으나 방향이 잘못되어 엉뚱한 결과를 내고 수치까지 당하게 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교회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능력을 가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능력을 받고서 엉뚱한 데다가 능력을 사용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4)

 

여기서 사용된 충만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어로 보면 배에 사람이 가득 찬 상태또는 욕조에 물이 가득 찬 상태를 말하는 동사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가 뜻하는 것처럼, 성령 충만은 성령님이 어떤 사람이나 공동체를 가득 채운 상태, 완전히 다스리고 지배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보통 성령 충만이라고 하면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뭔가 뜨겁거나 뜨거운 불을 받거나, 열정을 가지고 뭔가를 열심히 하거나,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성령 충만의 결과로 그렇게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령 충만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뜨거워지고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게 핵심이 아니고, 성령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우리를 지배하시고 통치하시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그 상태가 성령 충만입니다. 아무리 뜨겁고 신비로운 기적을 일으키더라도,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이 한다면 그것은 성령 충만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겸손히 마음을 비우고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하며 성령을 기다렸을 때 성령께서 임하셨고 또 충만하게 역사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때는 정말 특별한 사건입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때는 성령님이 왔다 갔다 하셨습니다. 다윗이나 이전 사람들도 그랬고, 사울 같은 악한 왕도 성령님이 임하셔서 예언을 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왔다 떠나시고 왔다 떠나시고 그러셨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는 이제 예수님을 믿는 신자에게 성령님이 들어오셔서 영원히 함께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스려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성령님에게 완전히 지배받고 그분의 능력과 인도함에 따라 이끌림을 받는 교회입니까? 아니면 사람의 뜻에 의해 운영되는 교회입니까?

 

한국 교회는 오랫동안 성령의 역사라고 하면 방언, 치유, 예언 같은 면만 지나치게 강조해 왔습니다. 물론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당연히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니까 한계가 없으시고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측면만 강조한 결과 사람들은 성령님의 인격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그분을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분 정도로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예수님이라고는 하는데 성령이라고는 많이 안 하고 그냥 성령이라고 합니다. ‘성령을 받아라.’ ‘성령 충만을 받아라.’라고 합니다. 성령이 무슨 자기 종인 것처럼 이리 가라고 하면 가고 저리 가라고 하면 가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대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오래전 미국의 어느 신학교 총장이 한국 교회를 방문하고 내린 평가가 충격적입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한국 교회가 아주 부흥하고 성장할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성령을 매우 강조합니다.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정작 성령과 동행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은 대부분 하나님보다 앞서서 달려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약간은 농담 비슷하게 한 말이지만 뼈가 있는 말입니다.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었는데, 제대로 안 들었는지 그 후 한국 교회는 급격히 무너졌거나 무너지고 있습니다.

 

우리 개인의 삶은 어떻습니까? 나는 성령님의 통치를 받아 그분의 능력과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마음대로 살아가며 내 마음대로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누가 결정을 내립니까? 물론 내 문제는 내가 결정합니다. 하지만 주님께 여쭤보며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뭔지 구하고 찾고 아뢰며 결정합니까? 여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수년 전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 중에 레너드 스위트(Leonard Sweet)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신학교 교수도 하시고 수많은 책을 저술한 분입니다. 이 시대에는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성인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에 빗대어 이분은 이 시대의 교회가 예수 결핍 장애(JDD: Jesus Deficit Disorder)’라는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진단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왜 예수의 교회에 예수가 없는가? 하나님도 뭔가를 하시지만 악한 영들도 뭔가를 한다. 기독교는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성장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아주 존경받는 일이었다. 그런데 교회는 점점 예수님 대신 성공 그 자체를 예배하기 시작했다. 어느 세대나 축복이 있고 저주가 있다. 우리 세대가 겪고 있는 저주는 바로 예수 결핍 장애. 성령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말라.”

 

예수님을 믿는데 믿는 사람 안에 예수님이 안 계신다는 겁니다. 또 교회 안에 예수님이 안 계신다는 겁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안티기독교 세력이 교회를 비꼬고 비난하면서 기독교를 가리켜 개독교라고 욕합니다. 아니면 기득권만 챙긴다고 해서 기득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한국 역사를 보면 교회는 위대한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는 크리스천이 아주 소수였지만 사회에서 지도자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양적으로 커지면서 성장 위주의 목회를 자랑하고 물질과 프로그램을 우상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생명력을 잃어가고 사회로부터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계속해서 교회를 사용하기를 원하시지만,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용하기를 원하시지만, 이대로는 안 됩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안일하게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지나면서 제가 보기에 가장 안 좋은 것이 무엇이었는가 하면, 신자들의 신앙에 있어서 교회는 오고 예배도 드리지만 신앙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졌습니다. 다른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관심이 온통 그런 데에만 가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성도들과의 교제에는 관심이 뚝 떨어졌습니다. 이전에는 비판하고 서로 다투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오히려 괜찮은 거였습니다. 관심이 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관심이 없으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이 없어 합니다. 이것은 무서운 현상입니다.

 

지금은 변화가 필요할 때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안일하게 살아서는 곤란합니다. 안일하고 편안하게 안주하고 있다가 갑자기 예수님을 만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까?

 

불같은 성령이 임하시기도 기도해야겠지만, 무엇보다 내 안에서 내가 차지하고 있는 성령님의 자리를 내어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도 그래야 하고 우리 각자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매년 교회에서 공천위원회를 통하여 직분자를 선출하는데, 교회의 중직자는 기도하는 분들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의 일들을 막 결정하겠습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왜 새벽기도를 해야 하고 왜 평소에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야 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자기 마음대로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읽으며 또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하면서 애쓰며 나아갈 때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깨닫게 되고 배우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도 받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영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갈 때 성령 충만하여서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 살아갈 수 있고 또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를 사용하셔서 당신께서 이루고자 하는 일을 우리를 통해 분명히 이루어 나가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께 쓰임 받는 존귀한 성도가 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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