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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www.youtube.com/live/9hmqWRvmDVE?feature=share&t=104

 

 

2023312일 주일예배

제자의 삶 산상수훈 1

복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마태복음 51~12)

 

[들어가는 말]

 

오늘부터 새로운 주일설교 시리즈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다윗 이야기가 끝나고 마태복음 5~7장 사이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보기로 정했습니다.

 

이 말씀은 정말 주옥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기에 여러 가지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전() 교훈의 요약이라고도 하고, ‘천국의 대헌장(Magna Carta)’이라고도 부르며, 또한 기독교 대헌장’, ‘도덕 황금률(The golden rule of morality)’, ‘성경 중의 성경’, ‘천국 시민 헌장’, ‘천국의 가신(嘉信: 아름다운 편지)’, ‘천국의 복음등 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

 

AD 4세기 초 어거스틴 이후부터 이 말씀은 산에서 설교하신 말씀이라는 뜻에서 산상설교’(山上說敎)라고 불려 왔습니다. 또 가르쳐서 본받게 한다는 뜻에서 산상교훈’(山上敎訓)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계속해서 가르쳐 후세에 전한다는 뜻으로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고도 합니다. 보배와 같은 말씀이라는 뜻에서 산상보훈’(山上寶訓)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 가운데 산상설교산상수훈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산상수훈을 더 선호해서 제목도 그렇게 잡았습니다. 제 어머니 성함이 수훈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고, 학자들 사이에도 산상수훈이 더 많이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가르쳐 후세에 전한다는 뜻이 수훈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굉장히 아름다운 말씀인 동시에 굉장히 부담스러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윗 이야기가 끝나면 뭘 할까 고민했는데, 사실 산상수훈은 가장 마지막에 살펴보아야 할 만한 말씀이지만 이번에 살펴보는 게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부담스러워서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제 코로나 사태가 거의 마무리되는 이때 새로운 마음으로 나아가야겠다는 마음으로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앞으로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지만, 산상수훈을 함께 살펴보면서 이 훌륭한 내용을 마음에 새기며 , 좋다. 너무 좋고 은혜가 되는 내용이다.’라고 할 뿐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엄청난 영적 성장을 이루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1.   산상수훈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1-2)

 

여기 보면, 먼저 예수님이 자기를 좇아다니는 엄청난 무리가 있었는데 갑자기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그 산에서 말씀을 전하셨다고 하여 산상수훈또는 산상설교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Sermon on the Mount입니다.

 

저번 이스라엘에 갔을 때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선포하셨다고 알려진 산에 가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높은 산이었습니다. 무려 해발 70미터(?)였습니다. 그냥 언덕입니다.

 

마태는 에 오르셨다고 하여 산상수훈이라고 부르고, 누가복음에서 같은 내용을 가르치신 것을 평지에서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누가가 볼 때 그 정도는 평지였고, 마태가 볼 때는 산이었습니다. 사실 마태가 그곳을 으로 표현한 신학적 이유가 있습니다.

 

복잡한 내용을 아주 간단히 말하면, 마태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기록했는데, 유대인들이 가장 추앙하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는 산에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세와 비견되는 인물이고, 또 모세가 이후에 나와 같은 선지자가 나올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 선지자가 바로 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산에서 말씀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도 산에서 말씀을 전한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누가는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평평한 곳에서 전하셨다고 했습니다. 틀린 게 아니라 강조점이 다른 것입니다.

 

당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엄청난 말씀을 전하시고 기적도 일으키시니까 많은 사람이 따라다니는 겁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좋아서 따라다닌 겁니까, 아니면 병 고치는 기적 때문이겠습니까? 4장 뒷부분을 보면 천국 복음이나 말씀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병 고치는 기적 등 뭔가 유익이 있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많이 따라다닌 겁니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말씀보다는 뭔가 특별한 표적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제사보다는 제삿밥에 더 관심이 많다.”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것들이 많은데 베풀어주신 하나님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에 더 관심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잘 아셨기에 대중의 인기와 환호성에 빠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무리를 떠나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약간 경사가 있고 넓게 펼쳐진 그곳에서 사람들이 앉아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조용히 천국의 진리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때 무리가 많이 따라왔는데 제자들이 나아왔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 산에 올라왔지만, 귀를 기울여 잘 들은 사람들은 아주 많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 즉 다수가 아니라 소수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실 때는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다가, 기적을 베푸실 때는 막 몰려들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정말 귀 기울여 말씀을 들은 사람은 소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무리를 보시고산에 오르셨는데, 많은 무리가 따라왔지만 그 말씀을 들은 사람은 제자들, 즉 소수였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얼마나 꿀과 같은 말씀입니까?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삶의 지침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것보다는 뭔가 신기한 현상이나 분위기에는 많이들 함께하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교회 역사뿐 아니라 성경을 보아도, 절대 다수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길을 갈 때 아주 극소수가 하나님을 따랐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을 봅니다. 교회 역사에서도 항상 소수의 제자들, 소수의 헌신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들이 주님 앞에 이 세계를 돌려드린 것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세계에 전한 게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이 전했는데, 그것이 퍼지고 퍼지며 우리에게까지 온 겁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의 산상수훈또는 산상설교는 사실 성경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본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여덟 가지 복이 나온다고 해서 팔복이라고 하는데, 이 팔복이나 세상의 소금과 빛,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 주기도문, 황금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것, 또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 등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익숙한 내용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잃어버리기 쉽다는 것도 기억해야겠습니다. 널리 알려진 내용이기에 대충 보고 넘어가기도 하는데, 정확히 아는 게 필요합니다. 가끔 보면 알기는 아는데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봅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정확히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세부 항목으로 자세히 들어가기 전에 전체 흐름을 먼저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데, 시험을 잘 이기시고 공생애(public life)를 시작하며 사역을 시작시는데 주님의 첫 설교가 417절에 나옵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4:17)

 

주님께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여 가장 먼저 하신 설교의 내용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4:23)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레위라고도 불리는 세리였습니다. 세리는 동족 유대인들에게 벌레처럼 취급받고 엄청난 죄인으로 취급 받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랬던 마태는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을 때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초창기에 온 갈릴리 회당을 다니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알려줍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천국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런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보통 천국이라고 하면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하신 것은 너희들이 죽을 날이 가까이 왔다.’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영역을 말합니다. 죽어서 가는 장소가 아니고,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면 그곳이 천국입니다. 그러니까 너희의 삶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계속 강조하신 것이 하나님 나라(천국)입니다. 그곳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우리가 경험하는 것입니다.

 

복이 있다고 여덟 번 나오는 팔복의 첫 번째 복을 여기서 뭐라고 합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3)

 

천국을 먼저 이야기하십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팔복의 마지막인 여덟 번째 복이 무엇인지 보십시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0)

 

천국으로 시작해서 천국으로 끝납니다. 그게 팔복입니다. 가끔 보면 교회 이름 중에도 팔복교회가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7장으로 넘어가면 산상수훈 전체를 마무리하며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7:21)

 

주님의 공생애가 시작되는 4장부터 산상수훈의 마지막 7장까지 나오는 내용을 관통하는 주제가 바로 천국 즉 하나님 나라인데, 바로 이것이 산상수훈의 핵심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왜 말씀합니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이렇게 사는 것이다.’라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삶

 

산상수훈의 가장 앞부분에 나오는 팔복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이 어떻게 사는 것인가를 잘 보여 줍니다. 그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그 같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러니까 팔복은 하나님 나라 백성(예수님의 제자)이 어떠한 속성인가, 본질이 뭔가를 알려주고, 그 뒤부터는 천국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예수님의 제자는 어떻게 사는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산상수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제자이고 그런 제자의 삶이 바로 이것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액기스 중의 액기스가 바로 산상수훈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 천국의 말씀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말씀대로 살아 보려고 하면 얼마나 실천하기 어렵고 고통스러운지를 금방 깨닫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대라.”라는 말씀이 있는데, 오른뺨을 맞으려면 왼손으로 맞든지 아니면 오른손 백핸드로 때려야 합니다. 이것은 당시 고대 이스라엘에서 엄청난 수치였습니다.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왼손으로 때려도 모욕적인데, 손등으로 맞는 것은 더욱 모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맞았는데도 이쪽도 더 때려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았다가는 사회에서 뒤처지고 패배자가 되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말은 얼마나 멋집니까?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대라.”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런 말씀을 듣기는 좋아하는데, 그렇게 살아보라고 하면 그렇게 못한다고 합니다. 듣는 것과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참 좋은데 나는 그렇게 못 살겠다.’라고 합니다. 마치 액자에 써 놓은 좋은 붓글씨처럼 멋지기는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림도 그렇습니다. 멋진 글이나 그림을 보고 즐기려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말씀을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산상설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하나님의 기준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는 이렇게 사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하는 동시에 이게 내 제자의 삶이다.’라는 것을 예수님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들, 지금 병 고침 받고 기적을 체험해서 좋다고 나를 따라오는데, 그것이 제자가 아니다. 이렇게 사는 게 제자다.’라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마태복음 68절에서는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방인즉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뿐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닮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처럼 살지 말고, 잘못된 신앙을 가진 종교 전문가처럼 살지 말고, 오직 너희는 나의 제자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라.’라고 하는 것이 산상수훈의 요약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문제는 우리가 세상과 너무 비슷하다는 겁니다. 안 믿는 사람과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예를 들어, 돈 문제가 걸려 있다면, 내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과 다른 모습이 있습니까? 나의 이득이 걸린 일이 벌어졌다면,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과 다른 행동을 하고 조치를 취합니까? 별로 다른 게 없습니다. 나의 이득이 걸린 일이라면 머리 터지게 싸우는 겁니다.

 

그러니까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똑같은데, 그렇다면 믿는다는 게 뭐냐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가 도대체 뭔가를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왜 똑같이 사느냐? 그건 제자가 아니다.’라는 겁니다. 두껍고 비싸 보이는 성경을 들고 다닌다고 그게 제자의 표시이겠습니까? 아니면 점잖고 거룩하게 목소리도 깔면서 말하는 게 신령한 것이겠습니까? 삶은 전혀 그렇지 않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교회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멋지고 화려하게 꾸민다면 그것이 세상과 구별되는 것이겠습니까? 겉으로 다르게 보인다고 나쁜 것은 아닌데, 삶에서 하나도 다르지 않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백성, 천국 백성, 예수님의 제자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5장부터 7장까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르게 살고 구별되게 살라.’는 것입니다. 이 땅의 사람들과는 구별된,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성도이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이 부분에 많이 실패했기 때문에 한국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많은 비난을 받아오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6장에서는 주님이 그들을 본받지 말라”(8)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도 핵심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본받지 말아야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믿는 것 같지 않게 사는 종교 전문가들, 종교 지도자들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짜 믿는 사람답게, 진짜 천국 백성답게, 진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사람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앞부분을 시작하는 내용이 여덟 가지 복이라고 하여 팔복’(Beatitudes)이라고 합니다. 팔복은 이러이러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 이유는 이러이러한 복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문을 읽을 때 이렇게 살면 복을 받는구나.’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3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는 말씀은 정말 복을 받은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가난하게 하면 복을 받는다.’라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심령이 가난해지는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구원이나 복은 언제나 은혜로 값없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조건과 자격과 행위를 갖추어 하나님께 복을 받거나 구원을 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이렇게 잘했으니까 복 주세요.’라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를 다루는 산상수훈 전체에서, 특히 앞부분의 이 팔복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 즉 예수님의 제자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러니까 이러이러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라는 말이 아니라 복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제자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전혀 알지 못하는데 갑자기 심령이 가난해져서 복을 받아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고, 원래 성도(천국 백성, 예수님의 제자)는 복이 있는(복을 받은) 사람인데 그 특징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 즉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제자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전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정말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특히 앞에 나오는 이 팔복은 제자가 성품 면에서 어떤 특성을 이루고 어떤 본질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해주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 중에 성인(Saint) 수준의 제자가 있고, 일반 수준의 제자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다 성도’(거룩한 무리)라고 또 제자라고 불리는데, 다른 수준이 따로 있다고 구분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팔복은 모든 예수님의 제자를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진짜 제자인 것이지, 이렇게 살지 않고 이런 사람이 아니면 진짜 제자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진실한 제자는 이렇게 여덟 가지로 구분된 특징을 드러내며 살아갑니다. 두세 개는 보이는데 나머지는 안 보이는 게 아니라, 팔복은 전체가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천국 백성이라는 이런 것들이 다 있다는 겁니다.

 

첫 번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것인데, 그다음에는 어떤 일이 생깁니까? 심령이 가난한 제자는 가난한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죄로 인하여 애통해하고 가슴을 찢으며 탄식하는 데로 나아간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온유한 사람이 됩니다.

 

온유함은 타고난 부드럽고 약한 기질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인해서 많은 눈물을 흘려본 사람들, 실패하고 일어나고 또 실패하고 또 일어나고 한 사람들의 눈물 속에 만들어지는 제자 고유의 특징입니다. 또한 온유한 사람은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되어 있습니다. 부드럽고 겸손하고 따뜻한데, 또 의에 대해 강렬한 목마름을 가지고 더욱 나아갑니다.

 

그래서 팔복은 전체적인 단계를 가진다는 겁니다. 심령이 가난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박해를 받는 데로 확 넘어가는 게 아니라, 가난함과 애통함과 온유함을 거쳐 의에 대한 목마름으로 나아갑니다.

 

팔복은 하나의 띠처럼 아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체 여덟 개 중에 앞의 네 개와 뒤의 네 개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앞의 네 개는 예수님의 제자가 주님과의 관계에서 맺는 특징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뒤의 네 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드러내는 특징을 보여 줍니다.

 

흥미롭게도 앞의 네 개와 뒤의 네 개의 복이 각각 서로 대응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태가 아주 기가 막히게 이것을 써서 배열해놓은 것입니다. 세리다운 꼼꼼함으로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을 잘 기록해놓았다가, 자신의 의도를 잘 전달하기 위해 이렇게 배열했습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 복인 심령이 가난한 자’(3), 다섯 번째 복인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7).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3)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7)

 

자신의 심령이 가난한 것을 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불쌍히 여기는 데로 나아간다는 겁니다. 자기도 주님 앞에서 실패하고 넘어지고 연약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나아간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 복인 애통하는 자’(4), 여섯 번째 복인 마음이 청결한 자’(8)로 이어집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4)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8)

 

애통하는 자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된다는 겁니다. 애통하니까 마음이 청결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며 회개하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는 겁니다.

 

세 번째 복인 온유한 자는 일곱 번째 복인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어 사람들 속에 평화를 이루어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5)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9)

 

온유한 사람은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온유, 즉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힘들지만 그 가운데서도 더욱 자기를 단련하여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 되었는데,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네 번째 복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여덟 번째 복인 의를 위해 박해를 받은 자가 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6)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10-12)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데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앞의 네 개와 뒤의 네 개가 서로 연결되는데, 앞의 네 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되니까 그다음에 이웃과의 관계에서 제대로 되는 삶으로 나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확실히 서면 이웃과의 관계가 확실히 선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연결점이 모두 팔복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덟 가지의 복은 서로 각각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단계별로 연결되어 있고, 앞부분과 뒷부분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팔복을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산상수훈의 세 가지 배경

 

또한 산상수훈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배경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성경적인 배경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구약의 메시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인 팔복뿐 아니라, 그 뒤에 나오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구약에서 이랬는데,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시며 새로운 해석을 주십니다.

 

구약이라는 것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내용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아(구세주,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내용이고, 신약은 그 메시아가 오셔서 완성된 내용입니다. 구약에서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받았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바로 이 축복의 산에서 천국 대헌장인 산상수훈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서 바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함이다.”(5:17)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구약의 메시지가 완성되는 내용입니다. 구약은 불완전했는데, 예수님이 완성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정치적인 배경입니다.

구약 시대나 예수 이전의 유대인들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구원해 줄 정치적 메시아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로마의 압제 아래 있는데, 자기들의 메시아가 오셔서 구원해주실 것을 굉장히 기다리고 있던 때입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심지어 수가 성의 한 사마리아 여인도 그러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고, 사마리아 사람들도 모두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 요한복음 6장을 보면 똑같은 사건이라도 요한복음은 약간 다르게 묘사하는데, 오병이어의 기적, 즉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모두 수만 명)을 먹이신 기적을 베푸셨을 때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왕으로 삼으려고 했던 사건이 나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빌라도의 심문을 받으실 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18:36)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상황 아래서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통해 알려주시는 것은, 천국(하나님 나라)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외적인 나라가 아니라, 내적인 것이고 영적인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빵 문제, 인권 문제, 민주화 문제를 해결하는 혁명가처럼 보려는 시각도 있습니다. 물론 아주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리던 것과 비슷한 흐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폭력으로 혁명을 일으키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장 배신감을 느낀 사람 중 하나가 가룟 유다였고, 돈 문제도 있었지만 그런 것이 맞지 않아서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셋째, 종교적 배경입니다.

특별히 그 당시는 종교적인 암흑시대였고,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았는데 세례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니까 그러면 누구냐고 사람들이 막 기다리며 갈망하던 때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당시에는 크게 두 개의 종파가 있었는데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입니다. 그 변두리에 에세네파가 있었고, 또 정치적인 파이지만 열심당원도 있었습니다.

 

바리새파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했던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사두개파는 그와 반대로 율법은 적당히 믿고 해석하면서 오히려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이해관계로 모인 종교 세력이었습니다. 놀랍게도 부활도 영도 믿지 않는 사두개파에서 제사장들이 나왔습니다.

 

에세네파는 현실도피주의자들인데, 메시아만 기다리면서 은둔 생활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열심당원들은 칼을 차고 다니면서 민족주의적 혁명을 추구했던 사람들입니다. 열심당원 중에서도 가장 과격한 암살 자객단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을 시카리라고 부릅니다. 식칼을 품고 다녀서(?) 시카리가 아니라 이름(Sicarii, 단검을 품고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진짜 칼을 품고 다녔습니다.

 

이러한 종교적인 배경 속에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 각각 해답을 주셨습니다. 바리새파에게는 참신앙이 외적인 형식과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적이고 영적인 데에 있다는 것, 삶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두개파에게는 신앙이란 사람의 방법, 정치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에세네파에게는 신앙이라는 것이 금식하고 육체를 절제하는 연단이나 금욕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또 열심당원에게는 혁명의 문제가 아니라 예배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나가는 말]

 

우리가 앞으로 산상수훈을 살펴보며 나아갈 때 어떻게 배울 것인가를 생각하며 나아가야겠습니다. 산상수훈의 내용을 보면 실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렇게 살아보겠습니다.’ 하고 결단하며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하늘의 복이 내린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나의 이득을 추구하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보겠다. 세상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살아보겠다.’라고 하면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놀라운 새것을 주십니다. 땅의 것을 포기하면 하늘의 것을 주십니다. 이 세상의 생명을 버리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속에 정말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살겠다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냥 죽 읽고서 좋은 말씀이네. 참 좋다.’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이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라고 결단하며 실천하는 기간이 되어야겠습니다.

 

여기 젊은 분들도 있고 연세가 드신 분들도 있지만, 우리 삶이 몇 년 남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정말 아무도 모릅니다. 요즘 100세 시대라고 하니까 길어야 100년인데, 거꾸로 계산해보면 내가 100년을 산다고 해도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젊은 분들은 더 많이 남았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금방 지나갑니다.

 

30년이라고 하면 굉장히 긴 것 같아도, 미국 오신지 30년이 넘는 분들은 생각해보십시오. ‘언제 이렇게 세월이 지났나?’ 하실 겁니다. 30년 전을 생각해보십시오. 40년 전도 좋습니다. 저도 그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어느새 30년이 지났습니다. 40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다닌 것이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3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세월이 너무 빠릅니다. 이 짧은 인생 동안 무엇을 위해 살겠는가?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해서 살겠는가, 아니면 정말 영원한 것을 위해서 살겠는가를 결단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성품이 변화되고, 가치관이 변화되고, 목표가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에서 고생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산상수훈의 삶을 살 때 고생을 할 수도 있지만, 이 땅에서 소위 성공을 거두고 잘될 때 그게 목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다하는 삶, 주님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삶을 이 세상에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모르는 분들에게 주님 안에서의 삶, 예수님을 믿는다는 게 뭔가를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의 핵심이 사랑인데, 사랑을 보여 주는 삶을 우리에게 오늘 맡겨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것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바람이 우리 각 개인에게 불고, 우리 가정에 불고, 또 우리 교회에 불어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살아 우리가 변화되고 주변이 변화되고 세상이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를 우리가 볼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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