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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21일 주일예배

제자의 삶 산상수훈 9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마태복음 510~12)

 

[들어가는 말]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아들 집을 방문하여 손자가 노는 모습을 보니까, 아이는 공룡을 들고 각자의 이름을 부르며 항상 서로 싸움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왜 공룡들이 서로 싸우니?” “, 공룡들은 예수님을 모르잖아요.”

 

옛날에는 이랬는데 요즘은 공룡들은 교회 다니잖아요.”라고 바뀌었다고 합니다. 웃픈(?) 현실입니다. 교회에서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다 압니다. 예수님이 사랑을 외치신 것을 다 압니다. 그런데 교회를 보면 서로 갈등하고 분열하고 싸우는 경우가 많다 보니까, 요즘에는 그런 말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있으니까 옆에 있는 왜 싸우냐? 여기가 교회인 줄 아느냐?”라고 한다는 식의 말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교회는 그런 데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믿는 자들입니다. 특히 우리는 화평하게 하는 사람들인데, 우리가 아무리 화평하게 살려고 해도 세상은 우리를 그냥 두지 않습니다. 모욕을 주고 핍박하기도 합니다. 화평하게 하려고 하는데도 돌아오는 것은 칭찬이나 인정이 아니라 박해와 비난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고민이 됩니다.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 그러나 그렇게 모욕당하고 고난당할 때 예수님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독일의 허무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한 유명한 말이 신은 죽었다.”입니다. 그러한 그가 신약성경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했을 때 본디오 빌라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경멸하는 인물은 예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빌라도는 권력에 아주 충실한 사람이었고, 예수는 권력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같은 독일 사람으로 순교자인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는 바로 그것이 크리스천의 특별함이다.”라고 했습니다. 박해당해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이 크리스천의 특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크리스천은 세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과의 다름, 즉 거룩함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팔복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가장 앞에 나오는 팔복이 우리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1.   성도의 삶에 따르는 박해와 고난

 

그동안 일곱 가지 복을 살펴보았고 오늘이 마지막 여덟 번째인데, 일곱 가지 복을 죽 보시면서 어떠셨습니까? ‘참 좋다.’라고 하기보다는 불편하다. 이렇게 살기는 힘들 것 같다.’라고 생각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이 세상 관점에서는 복이라 말하기 힘든 게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본성적으로 원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복과 세상이 생각하는 복은 참 다릅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라고 하시는데, 세상은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요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관점으로는 자신의 죄와 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가슴을 치고 애통하는 사람보다는, 어지간한 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잘못을 지적받으면 나는 그런 적 없다.’라고 부인하는 사람, 그냥 넘기는 사람, ‘나만 그러냐? 쟤도 그런다.’라고 하는 사람이 더 복이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또 온유한 사람보다는 강하고 자신만만한 사람이 더 복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보다는 자기 것을 하나라도 더 챙기는 약삭 빠른 자가 더 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돕는 데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사람보다는 자기 일을 먼저 잘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혼탁한 세태 속에서 진실과 정직을 잃지 않기 위해 타협하지 않고 마음의 청결함을 지키는 사람보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적절히 타협도 할 줄 알고 적당히 남을 구슬를 줄도 알고 피할 줄도 아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 세상의 보편적 모습입니다. 사람들을 화평하게 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보다는, 갈등이 생기더라도 자기 것을 꽉 움켜쥐는 사람이 더 복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제 마지막으로 살펴보려고 하는 여덟 번째 복은 세상이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복입니다. 아니, 믿는 사람도 잘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복입니다. 세상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복의 개념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앞서 나오는 일곱 가지 복은 전부 한 줄로 간단히 다루셨습니다. 그런데 이 여덟 번째 복은 사람들이 오해하기 쉽고 중요함을 그냥 넘기기 쉽기 때문에 설명을 덧붙여서 세 절이나 할애하며 다루십니다. 그만큼 복음과 성도의 속성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셨기 때문에 이것을 더 깊이 설명하시고 우리가 주의 깊게 받아들이기를 원하십니다.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0-11)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고, 고난당하고, 욕을 먹고, 거짓으로 거슬러서 나쁜 말을 듣게 되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사실 사람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이렇게 핍박받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성도는 양심을 지키며 살려고 무진 애를 쓰는데도 세상은 박해하고 나쁜 말을 하고 또 작은 근거를 부풀려서 거짓말을 할 때가 많습니다. 성도의 삶에 따르는 박해와 고난과 핍박과 악평과 험담 등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핵심 주제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그런 일들을 당한다고 성경에서 말씀합니다. 신약성경 어디를 읽어도 이런 주제를 만나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성도의 삶에 당연히 따르는 것이 고난이라고 합니다.

 

팔복을 보면서 이러이러한 자격을 갖춘 사람은 복이 있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성도는 이러이러한 속성과 특징을 가진 사람인데, 그들은 참으로 복된 사람이다.’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일곱 가지 복과 마찬가지로 오늘 여덟 번째 복도 성도의 속성과 특징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 땅을 사는 성도들은 핍박받고, 욕을 먹고, 악담이나 악평을 듣는 것을 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순서를 보면, 바로 앞에 나오는 일곱 번째 복이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입니다. 그러니까 나쁜 짓을 하거나 성격이 까다롭고 나빠서 핍박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고 평화를 이루고 그들을 살리는 귀한 일을 하는데도, 돌아오는 것은 칭찬이나 격려나 인정이 아니라 박해와 욕인 겁니다.

 

이번에 지진이 났을 때 크리스천들이 가서 도우니까 다들 고마워합니다.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없다가 하나라도 받으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하루 이틀 계속 받다 보니까 어느 날은 왜 조금 줘? 저 사람은 많이 주고 왜 나는 이것밖에 안 줘?’라고 나옵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좋은 일을 해주고 화평을 이루고 사랑해주고 섬기는데도 불평을 듣고 원망을 듣고 욕을 먹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2.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최고의 복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무슨 복이 있습니까? 천국이 자기 것이 되는 복이 있습니다. 팔복의 첫 번째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이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였는데, 마지막 여덟 번째 복인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의 복도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형태의 복이 있지만, 복 중에도 최고의 복은 하나님 나라(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진실한 성도로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자가 최고로 복된 자라는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안 믿는 분들은 몰라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신앙생활에서 자주 실패할 때 그 이유가 있습니다. 늘 잘되는 것은 아니고 가끔 잘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재미도 없고 귀찮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이유가 있습니다. 대개 방심하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성도가 어떻게 생각합니까? ‘예수님을 믿고 천국행 티켓을 이미 따놓았으니, 이제는 이 땅에서 잘사는 것만 남았다.’라고 생각하는데 그 잘사는 것이 뭔지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사는 삶이 되어야 하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잘사는 삶으로 가다 보니까 여러 가지로 꼬이고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어 영생을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매일매일 예수님을 주인으로도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음으로써 받는 구원의 과정, ‘성화의 과정, ‘(인격)의 구원의 과정에서 실패하여 예수님을 닮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땅에 살면서 천국을 맛볼 수 있게 해주셨는데도 전혀 천국을 맛보지 못하고 천국 백성이면서도 오히려 지옥을 맛보고 사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내 맘대로 살면 자유롭게 잘사는 게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살면 지옥이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부부가 같이 살면서 남편은 자기 맘대로 살고 아내도 자기 맘대로 살면 어떻게 됩니까? 각자 따로 원하는 게 다릅니다. 그러면 서로 싸우게 됩니다. 그게 지옥입니다. 그러나 둘 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면 둘 다 똑같은 데로 나아가니까 행복하고 천국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돈을 많이 벌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세상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사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게 복이 아닙니까? 복입니다. 하지만 복은 복인데 그것이 복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직 모르는 겁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천국을 소유하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조금 전 언급한 여러 좋은 것들도 복이 되지만, 그런 것들은 세상에서 다 끝나는 것들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인생이 끝나도 나와 계속 함께해줄 수 있는 것이 진짜 복입니다. 그게 하늘 복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세상에서 다 끝나는 세상의 부귀와 명예와 사람들의 인정만 중요시하고 남들처럼 똑같이 살고 싶어 하면서, 그런 것이 더 많아져야 온전한 복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예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큰 병에 걸리는 것이 복입니까, 저주입니까? 그냥 보면 저주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예수님을 믿고 천국 백성이 되어 올바르게 믿고 신앙생활을 잘하게 되면, 저주스러운 상황이지만 그것이 복이라고 깨닫습니다. 꼭 저주냐 복이냐를 떠나서, 어떤 것도 괜찮은 겁니다.

 

진짜 복, 하늘 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면 이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괜찮습니다. 병에 걸려도 그것은 저주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세상의 경쟁에서 좀 뒤처져도 큰일 나는 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남보다 조금 덜 가졌을 때 조금 불편함이 있을지는 몰라도 괜찮은 겁니다. 가난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되면 그런 세상 욕심이 다 사라지고 거룩해지고 영적인 것만 생각하게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이 땅의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필요한 것을 원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세상 사람과 똑같은 욕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이전에는 욕심이 나를 이끌었습니다. 욕심을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욕심이 이끄는 대로 살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믿지 않았을 때와 믿은 후의 차이입니다. 주인이 누구냐의 문제입니다.

 

내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갈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내가 돈을 벌고 성공하려고 애쓰며 살아가면, 돈이 내 소유가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추구하며 나아가다 보면, 하나님의 종이 되면, 그러한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됩니다. 그것이 차이점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된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나면 나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을 가졌으면 그다음에 아무리 다른 좋은 것이 있어도, 최고의 것을 가졌기에 나머지 것들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다고 되는 겁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의 의미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최고의 존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졌는데, 다른 것이 조금 없다고 나는 불행해.’라고 한다면 말이 안 되는 게 아닙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든 안 믿는 사람이든 세상에 살면서 돈 많이 벌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싶고, 자기 자녀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고,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고, 좋은 데 살고 싶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편안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비록 그런 것을 원하는 마음은 비슷해 보일지라도, 열심히 노력했는데 혹시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차이점입니다. 사실 굉장한 차이점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평안하고, 그렇게 되면 감사합니다. 이것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굉장한 차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것들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성공에 도취하지 않습니다.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며 노력합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데 항상 따라오는 게 있습니다. 뭡니까? 염려와 걱정과 불안과 두려움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해야 하는데 결과를 알 수 없기에 항상 전전긍긍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것들을 이루지 못할까 봐 불안합니다.

 

또 그런 것들을 이루면 어떻게 됩니까? 감사하며 기뻐하면 되는데, ‘이것이 없어지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합니다. 왜 그렇게 걱정하고 염려하고 불안해합니까? 그런 것들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면 안 되기 때문에 늘 불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는 이 땅에서 그렇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진정한 복을 알기 때문에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알고 살아갑니다. 세상에서의 성공도 중요하고 안락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음을 알기에 바로 그 더 중요한 것’,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위해 살아갑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70명의 제자들을 두 명씩 짝 지워 총 35개의 전도팀을 내보내셨습니다. 이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자기들이 주님의 이름을 전하는 곳마다 귀신이 쫓겨나고, 병 걸린 사람에게 기도해주니까 병이 낫고 권능이 나타나는 역사를 직접 경험한 제자들은 너무 놀라고 기뻐하고 감격에 차서 돌아와 주님께 보고합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을 대면, 귀신들까지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 (10:17, 새번역)

 

그때 그들의 보고를 들으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19 보아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세력을 누를 권세를 주었으니, 아무것도 너희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굴복한다고 해서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10:18-20, 새번역)

 

신앙생활에서 일어나는 어떤 영적 현상이나 뭔가를 열심히 해서 엄청난 결과를 이루어낸 것이나 놀라운 기적을 보며 기뻐하기보다, 자신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진짜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하늘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진짜 복은 내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이 확신이 없습니다.

 

믿기는 믿는다고 하는데 자신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는지, 지금이라도 이 세상을 떠나면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습니까?’라고 하면 깊은 한숨과 함께 잘 모르겠다고 답합니다. 자신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확신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분명히 예수님을 믿기는 믿는데 자기 삶을 보면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으면 충분합니다. 하늘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그런데 자기 삶이 자꾸 흔들리고,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살고, 자기가 별로 다른 것 같지도 않다 보니까 헷갈리는 겁니다. ‘하늘에 내 이름이 기록되었나?’

 

저를 포함해서 우리 가운데에는 모태 신앙인, 즉 어머니 태 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닌 사람들도 있고, 어릴 때부터 아주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참 귀한 일입니다. 최근에 믿은 분들도 있지만, 예수님을 믿었다는 자체가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오래 믿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제대로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래 믿은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성경에서 믿으라고 하는 대로 믿는 게 중요한 겁니다. 오래 믿었건 짧게 믿었건, 제대로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제대로 알고 계십니까? 자신의 믿음을 꼭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것은 생명이 걸린 일이며, 그러므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다른 것을 다 가져도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오래전 한국에서 엄청난 신유의 은사를 받고 많은 사역을 했던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천국에 갔다고 합니다. 너무 기뻐서 예수님을 보고 주님!” 하고 가니까 네가 누구냐?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것은 개인의 꿈이니까 절대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초대형 교회 목사님도 천국에 갔더니 네가 누구냐?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엄청난 일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믿고 있느냐고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나중에 보면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21)

 

제대로 믿어야 들어가는 것이지, 입으로 주여, 주여만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로만 주여가 아니라 실제로 내 삶에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실 때 그것이 진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가졌는데 생명을 잃어버리면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여러분, 가끔 그런 뉴스를 듣지 않습니까? 어떤 분이 미국에 100달러를 가지고 왔는데 열심히 해서 자수성가하여 큰 기업을 이룬 경우가 있습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세탁소에서 열심히 일하여 아주 성공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옆구리가 결리는 겁니다. 병원에 갔더니 암이라고 하며 얼마 안 남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동안 그렇게 애쓰고 돈 벌어놓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겁니까? 아무리 성공해도 자기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육신의 생명도 그런데,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그 얼마나 허무한 인생입니까?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내가 가진 소유를 어떤 눈으로 보는지 모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부유함과 안락함과 성공은 천국 백성으로 살 때 상대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있으면 좋고 감사하며, 없어도 괜찮은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제 아이가 지금 스무 살인데, 2살쯤 되었을 때 1불짜리 돈이 떨어진 것을 주운 적이 있습니다. 그게 돈인 줄은 아니까 그걸 꽉 손에 쥐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아빠가 떨어뜨린 것이니 달라고 하니까 “No!”라고 매몰차게 말하며 숨깁니다. 달라고 하니까 꽉 붙들고 안 빼앗기려고 애를 씁니다.

 

그때 방문을 오셨던 손님이 귀엽다고 하시며 뭐 사 먹으라고 10불짜리를 저에게 주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10불짜리를 들고 , 그건 아빠 돈이니까 주고, 이건 저 손님이 주고 가신 네 돈이야. 이것을 가져.” 그래도 “No!” 합니다. 아니, 10불짜리를 받을 것이지 1불짜리를 안 빼앗기려고 붙듭니다. 자기에게는 1불짜리가 최고입니다. 자기에게는 그것이 생명을 걸고 사수해야 할 아주 귀중한 것입니다. 10불짜리가 열 배는 더 좋은 것인데 그걸 모릅니다.

 

이것이 우리 모습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10불짜리도 아니고 엄청난 것, 억만금 이상 되는 선물을 주시면서 이거, 가져.”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No!”라고 합니다. 형편없는 것을 붙들고 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천국 백성이 되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그런 1불짜리보다 훨씬 가치가 있는 10불짜리 정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복 중에서 최고의 복입니다. 가장 큰 것을 가진 사람에게는 다른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시시해 보입니다. 최고의 것을 가졌는데 다른 아무리 좋은 게 있어도 그게 무슨 대수입니까?

 

천국을 소유한 성도는 세상에서 아무리 좋아 보이는 것이라도 천국보다 좋을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천국 외의 것이 무엇이든 거기에 따라 휘둘리지 않고 전전긍긍하지 않습니다. 이루게 되면 감사하고, 이루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 가장 큰 것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이 받는 복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은 의를 위해 박해를 받고 고난을 겪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한국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사회에서 지탄받을 만한 일을 많이 해서 박해를 자초합니다. 그러한 것은 예수님이 여기서 말씀하시는 박해가 아닙니다. 자기가 잘못해놓고는 그것을 가지고 이건 내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야.”라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냥 자기가 잘못한 겁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단순히 박해를 받은 사람이 복이 있는 게 아니라,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11, 새번역)

 

나 때문에”, 즉 예수님 때문에 모욕과 박해를 받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를 위하여라는 말은 예수님으로 인하여와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길을 따라가는 제자로서 합당하게 살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그분 앞에서 참되게 살려고 애쓰다가 욕을 먹고 비난을 당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성격이 까다롭거나, 광신도 같은 종교적 열심을 가졌거나, 지혜가 부족하거나, 특이한 성격 때문에 핍박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의와 주님을 위해 핍박을 받는 사람입니다. 모든 박해가 의를 위해서 받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종종 주님의 뜻을 잘못 해석하여 세상에서 비난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가끔 그런 뉴스를 접합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 여행을 갔다가 많은 불상을 본 한 크리스천이 밤에 몰래 나와 우상들아, 물러가라!”라고 외치며 불상을 깨버렸다가 잡혀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박해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받은 것이 아닙니다.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에 가서 시위하듯 신앙을 표현하다가 낭패를 본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우상들아, 물러가라!” 하고 다 깨버렸을 때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주여, 용서해주십시오.’ 하며 회개하고 눈물로 나올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저거, 잡아 죽여라!’라고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기독교가 무례하고 호전적인 종교로 인식되어 반감을 삼으로써 복음이 전파되는 길을 막아버리게 됩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잘못되었다고 무조건 폄훼해서도 안 됩니다.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다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단지 자기 열심과 자기 의에 불과합니다. 주님 때문에 자기가 박해받고 있다는 자의식이 하나님보다 더 크다면, 그것은 이미 자기 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요즘은 좀 덜하지만 옛날에는 아침부터 교회에 가서 하루 종일 교회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여신도들 중에 많았습니다. 아침 일찍 교회에 가서 밤이 늦도록 들어오지 않는 여성도가 있는데, 아이들도 배우자도 살피지 않고 오직 교회 일과 전도에만 힘씁니다. 참다못한 비싡자 남편이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냅니다. 그러니까 , 내가 주님 때문에 핍박을 받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핍박이 아닙니다. 그것은 광신입니다. 그래서 여덟 번째 복은 잘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비둘기처럼 순결하면서도 뱀처럼 지혜로우라고도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잘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잘 분별하지 못하면 자기가 잘못해서 욕먹는 것을 두고도 주님을 위해 핍박받는다고 잘못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도를 핍박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교회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과 비신자들이 그렇게 할 것 같은데, 사실 성경이나 교회 역사를 보면 놀랍게도 교회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많이 박해하고 괴롭힌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리새인, 사두개인, 제사장 등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교회를 누가 제일 많이 핍박합니까? 교회 안에 있으면서 제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주일에 딱 한 번 교회에 와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인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에 오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이고, 6일 동안, 아니 교회당을 떠나는 순간부터 그다음 주에 올 때까지 마치 하나님이 세상에 안 계신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어떤 미국 목사님이 만들어낸 용어가 있습니다. ‘Christian atheist’(그리스도인 무신론자)입니다. 아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무신론자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마치 일주일 동안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교회에 오는 것만 다릅니다. 나머지는 안 믿는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크리스천인데 무신론자처럼 삽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사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제대로 믿는 사람들을 핍박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면 자기에게도 해가 되고 남에게도 해가 됩니다. 여러분 혹시 신앙생활은 좀 적당히 해야 돼.’라는 마음을 품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신앙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이 되어 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적당히 믿으면 안 됩니다. 핍박과 박해는 교회 밖에만 있는 게 아니라 교회 안에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지금 나에게 대하여 험담하고 거짓으로 나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같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있는 형식적인 신자들입니다. 신앙생활을 얼마나 오래 했느냐와는 상관없습니다.

 

교회 안에 문제가 일어나는 이유는 나서지 말아야 할 사람이 나서고, 나서서 일을 해야 할 사람은 나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섬겨야 하는 사람이 바르게 섬길 수 있도록 일꾼을 세우고 직분자를 세우는 것이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공천위원회가 중요합니다. 위해서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나서기를 좋아하고 일 벌이기만 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일하면 교회는 망가집니다. 직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고, 성도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자기의 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희생하는 사람들이 일꾼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를 섬기고 자원해서 일할 때 교회가 건강해집니다. 적당히 형식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교회의 중직자가 되면 교회는 상당한 어려움에 빠집니다.

 

왜 이 땅에서 성도가 핍박과 고난을 받습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붙드는 가치와 의미와 기준과 삶의 목적이 안 믿는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회를 다니면서도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진짜 제대로 믿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세상에서 고난받는 것인 이해되지만, 교회 내에서 고난받는다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칭찬과 인정을 받는 삶이 성도에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칭찬받을 때도 있고 인정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화평을 추구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온유한 성품대로 사는데도 다른 가치관 때문에 핍박과 고난과 악담과 악평을 들으며 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나를 박해하고, 나를 거슬러 나쁜 말을 할 것이다. 율법을 해하는 자다, 유대교를 허무는 자다, 귀신 들린 자다, 온갖 나쁜 말로 악평하며 박해할 것이다. 그처럼 너희도 박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는 고난받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 천국의 복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4.   주님으로 인하여 고난당한 사람에게 약속된 상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감으로 박해와 고난이 찾아올 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12)

 

괴로움이 오는데 마구 기뻐하며 좋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상을 생각하며 견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본문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의 삶인 팔복을 보면서 정말 예수 믿기가 쉽지 않구나.’ 하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것은 그래도 견딜 수 있는데 예수님을 위해 박해를 받은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고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핍박받고, 고난당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 반대로 우리는 핍박이나 순교 당하는 것을 미화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나는 못하지만 남들에게는 하라고 강요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그분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은 주님이 가신 길과 세상의 길 중에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랬다가 뜻하지 않게 핍박받더라도 견디어냅니다.

 

가장 사랑하는 것을 만나면 그것 외에 다른 것으로는 행복해지지 않는 법입니다. 내가 최고의 것을 갖고 있는데 시시한 것으로 만족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을 넉넉하게 받아들이고 인내하다가 마침내 승리하는 것입니다.

 

처음 믿은 분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면 주님이 나를 기특하게 여기셔서 고난을 제거해주시고 고난이 없는 삶을 살게 해주시겠지? 앞에 있는 어려움을 없애주시고, 목적지에 순탄하게 이르도록 해주실 거야.’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도 고난은 그대로 있습니다. 오히려 주님 뜻대로 살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셨기 때문에 배를 타고 가다가 광풍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순종하지 않아서 배를 안 탔으면 광풍의 위험을 만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다가 위험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생생히 보게 되는 교훈을 얻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기는 힘을 주시고, 그런 고난의 과정을 통해 주님을 더 알게 해주십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가운데 괜히 교회에 나왔네. 괜히 믿었네.’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안 믿은 분들은 이제 그만둘까?’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믿은 분들은 돌이킬 수도 없고 큰일 났네.’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관건은 사랑입니다. 나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주님을 생각하고 그 주님을 사랑하면 닮고 싶어집니다. 따라가고 싶고, 같이 있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다가 거기서 고난받는 것보다 더 큰 특권과 행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만나면 주님, 제가 주님 때문에 이렇게 상처가 있습니다. 여기 보십시오.’라고 해야 자랑스럽지, 뺀질뺀질하며 고난을 피하고 다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주님 때문에 고난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 일이고 성도의 큰 특권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십시오. 사도들이 그것을 본 겁니다. 그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핍박받을 때 자기들이 예수의 이름 때문에 이제 핍박받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고 하며 기뻐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나 부족하고 연약하며 어떻게든 고난을 피하고 싶어 하는데, 조금만 잘해도 잘했다고 하시며 상을 주신다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아주 포악한 왕이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큰 가마솥에 넣은 다음 물을 붓고 불을 떼우기 시작했습니다. 산 채로 끓는 물에 삶아 죽이는 잔혹한 방법이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왕은 마지막으로 성도들을 회유했습니다. “만약 너희가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이제라도 말하기만 하면 살려주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저 끓는 물 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형을 집행하던 군인 중 한 사람이 갑자기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천사들이 가마솥에서 죽어 가는 성도들에게 순교자의 면류관을 씌워 주려고 내려오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마솥에 있던 한 사람이 뜨거움을 견디다 못해 왕이시여, 나는 이제부터 예수를 믿지 않겠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말을 하자마자 내려오던 천사들 중 하나가 실망한 표정으로 자기가 들고 있던 면류관을 그대로 들고 다시 올라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본 군인은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을 재빨리 물에서 꺼내고 자기가 대신 그곳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것을 볼 수 있는 사람, 생명의 면류관을 천사가 들고 오는 것을 보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히브리서를 보십시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그것을 보았습니다. 보았기 때문에 끝까지 견디며 신실하게 믿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길이나 지름길이 아니라, 주님의 길, 주님이 옳다고 하시는 길, 비록 좁은 길이라도 생명의 길을 가면서, 그리로 가는 동안 고난과 핍박이 오더라도 우리 삶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이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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