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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27일 주일예배

제자의 삶 산상수훈 22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것은 염려

(마태복음 625~30)

 

[들어가는 말]

 

질문을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염려를 전혀 하지 않고 살아가는 분이 계십니까? 아무도 안 계실 겁니다. 큰 염려든, 작은 염려든, 우리는 모두 염려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자기 마음을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염려하나?’ 별로 염려하지 않는 것 같아도, 조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많은 순간 염려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한두 번이 아니라 끊임없이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성경에서 유명하고 잘 아는 구절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항상 염려하라, 쉬지 말고 걱정하라, 범사에 근심하라.’라고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분들도 계시지만, 다수는 예수님을 구주와 주인으로 믿고 고백하는 크리스천들입니다. ,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염려하고 걱정하고 근심하고 불안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토록 염려하며 살아갑니까? 염려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까? 왜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렇게 염려하며 살아갑니까? 그럼 믿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몇 년 전 나온 크리스천 서적 중에 <Worry-Free Living>(걱정 없는 삶)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아침 15, 저녁 15분을 염려하는 시간으로 정하여 따로 떼어놓으라. 그 외의 시간에 걱정거리가 떠오른다면 그것에 대하여 몇 자 메모해 놓은 다음, 정해놓은 시간(아침 15, 저녁 15)에만 그 문제들을 처리하겠다고 다짐하라. 우리가 느끼는 자연스러운 염려를 위해 하루 24시간 중 불과 1% 정도의 시간에만 할애하는 것은 걱정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이 결코 우리에게 하루에 시간을 정해놓고 두 번만염려하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전혀염려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일 염려한다면 그것은 성경 말씀을 지키지 않는 불순종이 됩니다. 그런데 상습적으로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태양이 식는다고 걱정합니다. 그것은 아주 오래 걸리니까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뭔가를 놓고 염려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무슨 말씀이신지는 잘 알겠지만, 과연 내가 염려하는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주실 능력이 있으신 것입니까?’

 

결국 염려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불신하는 아주 심각한 영적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염려하게 되면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행복하지 않고 아주 힘든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심각한 이 염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1.   염려에 대해 바른 시각을 가지라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염려를 쫓아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신뢰하고 다른 것도 신뢰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만 신뢰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간단합니까? 그러나 이 간단한 것이 어렵습니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을 때 염려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합니까? 그분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분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까? 그분과 교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기도와 예배로 하나님과 교제하면 하나님을 알게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그분을 알 수가 없고, 그분을 알지 못하니 신뢰할 수가 없고, 신뢰하지 못하니 염려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주님을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삶 공부를 하는 것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셨는지를 알아야 하기에 합니다. 기도도 그분과 교제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고 어떤 약속을 주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다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데, 하지 않으니까 모르는 겁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염려의 문제에 관해 예수님께서 하신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5)

 

31절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이 쓰인 헬라어 원어에서는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 염려를 멈추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가 하나도 염려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는 것을 기대하시는 게 아닙니다. 어려움이 오면 우리가 이거 어떡하지?’라고 염려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여기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염려할 만한 상황이 왔을 때 염려를 멈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31절은 염려를 시작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염려하고 있느냐? 그럼 멈춰라. 아직 염려하고 있지 않으냐? 그럼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

 

사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이 왜 염려할 일인지 우리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이 너무 풍성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대형 마트마다 물건들로 가득합니다. ‘이걸 다 누가 사나?’라고 염려(?)가 될 정도로 너무 많습니다. 너무 풍부하니까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왜 걱정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습니다.

 

이 미국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최고 상위권에 속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차가 한 대 있으면 상당히 상위권이고, 두 대 있으면 정말 상위권이고, 세 대 있으면 최상위권입니다. 집이 있으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지역에서 산다는 것은 염려할 문제가 많다는 뜻입니다. 산에 눈이 와야 하는데 오지 않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녹을 눈이 없으니까 시냇물이 마릅니다. 때때로 메뚜기 떼가 몰려와 곡식들을 먹어 치우고 그로 인해 온 땅에 기근이 듭니다. 기근이 들면 수입이 없고, 수입이 없으면 옷이나 기타 생활필수품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이 말씀은 그 당시의 상황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혁명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라고 물으십니다. 물론 음식이나 의복이 우리 목숨이나 몸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은 단순히 육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생명을 담고 있는 몸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목숨이나 몸이나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음식과 옷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샤핑몰에 가면 옷가게가 가장 많습니다. 몸을 치장하고, 몸매를 가꾸고, 화려한 옷을 수시로 사서 갈아입고(그러면서도 옷장을 열면 입을 옷이 없다고 하고, 신을 신발이 없다고 하고), 좋은 차를 타고, 멋진 집에서 살고, 배가 터지도록 먹고, 안락한 침대에서 자고, 보석을 많이 걸치고 다니고, 여러 가지 운동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런 것들을 남들에게도 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외적인 것들만 하면서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 것들을 아무리 많이 해도 진정한 만족이 없습니다. 인생의 참 의미를 못 느낍니다. 만약 그런 것들이 우리 마음에 만족과 기쁨을 줄 수 있다면 오직 부자들과 부자 나라들만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가난한 나라는 항상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은 항상 불행하며, 부자는 항상 행복해야 맞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히려 부자들이 더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봅니다. 소위 부자 나라, 잘사는 나라라고 하는 데서 자살률이 훨씬 높습니다. 수면제는 제3세계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미국처럼 잘사는 나라에서 훨씬 더 많이 팔립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만족하고 행복하게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풍족하다고 만족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또 가진 게 별로 없다고 꼭 불행한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만족은 오직 생명을 주신 하나님으로부터만 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마음에 진정한 만족과 기쁨과 행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이것을 죽 설명해주는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2.   공중의 새를 보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삶에 대해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말씀해주십니다. 재정과 삶의 기본적인 것들, 즉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것을 염려하는 것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를 생각할 때 정말로 불필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제목처럼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것은 염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면,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것이 염려라고 하십니다.

 

자녀는 오늘 아침은 먹었는데 점심에는 뭘 먹어야 하지? 저녁에는 뭘 먹지? 내일은 무슨 옷을 입지? 뭘 마시지?’ 하는 걱정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그런 것들을 제공해준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빠 엄마가 자기를 위해 그런 것들을 항상 준비해서 제공해준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 염려를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아이들이 그런 끼니 걱정을 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아이들이 걱정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못 놀게 할까 봐 걱정합니다. 갖고 싶은 것을 안 사주면 어떡하나 걱정합니다. 친구들은 다 있는데 자기는 없어서 따돌림을 받을까 봐 걱정합니다. 주로 이런 것들을 걱정합니다.

 

가끔 보면 소년 소녀 가장이라고 해서, 어린 나이에 동생들을 돌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불쌍하고 안 됐는지 모릅니다. 부모가 없기에, 그 또래의 아이들이 걱정할 필요도 없고 걱정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런 불쌍하고 안타까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부모님이 계시는데도 자기가 소년 소녀 가장처럼 걱정하고 있으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그런데 하늘 아버지가 계시는데도 마치 자기가 소년 소녀 가장인 것처럼 계속 걱정하며 사는 크리스천들이 많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자기에게 아버지가 안 계신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제대로 서 있고, 그분을 제대로 알고, 그분이 나의 삶의 주인이자 공급자인 것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사랑이 풍성한 아버지로 알고 있다면, 무엇을 염려하겠습니까? 왜 염려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으므로 안심하라고 하시면서, 자연의 예를 들어 그것을 증명하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6)

 

바로 이 장면이 예수님에 대해 오해하게 만든 영화의 장면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나온 영화 <Jesus of Nazareth>(나사렛 예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키가 크고 백인인데, 머리가 길고 얼굴이 갸름하고 수염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굉장히 엄숙하고, 조용하고, 웃을 줄 모르고, 아주 심각한 분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주 쾌활하고 잘 웃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영화가 예수님의 이미지를 잘못 심어주었습니다.

 

그 영화에서 새가 날아가니까 예수님이 굉장히 천천히 움직이시면서 고개도 천천히 드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 ........ ........ ........” 이러니까 예수님이 무슨 심각한 분인 줄로 잘못된 이미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하시는 게 예수님과 더 가깝습니다. “, 저기, 저기, ! ! ! 저 새 좀 봐!!!”

 

갈릴리 호수는 새들이 이동하는 길목으로 유명했는데, 이 말씀을 하실 때 날아가는 새들의 무리를 보시면서 말씀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새들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하십니다. 새들은 뭔가를 심거나 거두거나 모으지도 않고, ‘당장 먹고살 방도를 마련해야 하는데.’라고 고민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찾는 본능을 그들 안에 심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생명을 창조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을 돌보는 분이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돌보신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게으름을 피우며 놀기만 해도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입만 벌리고 있으면 벌레가 저절로 입 안에 떨어지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먹이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아는 본능을 통해 새들이 움직이게 하시고 그것을 통해 그들을 먹이십니다.

 

새들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항상 먹이를 찾아다니고, 작은 곤충이나 벌레들을 낚아채고, 둥지를 마련하고, 새끼들을 돌보고, 그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고, 때가 되면 둥지 밖으로 내보내고, 계절에 따라 이동하며 바쁘게 살아갑니다.

 

새들은 먹고살기 위해 그 모든 일들을 해야 하지만 결코 새들 중 과로로 쓰러지는 새는 없습니다. 그들은 결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더 큰 둥지를 지어야지. 벌레들을 더 많이 모아 두어야지. 그런 다음 먹고 마시고 파티 해야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새들은 하나님의 틀 안에서 일하는 것이지, 결코 제멋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새들이 살이 찔 때는 새장에 갇혀 있을 때라는 사실입니다. 자연 속에 살면 살이 찌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하에 자연 속에서 살 때는 살이 찌지 않습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하에 살 때는 괜찮지만, 자기 틀 안에서 살면 잘못됩니다.

 

새들은 어디에 가서 먹이를 찾을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먹이를 찾을 때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계속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새들은 염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새들보다 훨씬 귀한 존재인 우리는 왜 그렇게 염려하며 살아갑니까?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10:29-31, 새번역)

 

우리 각자는 새 한 마리보다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그 어떤 새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도록 지음 받은 새는 없습니다. 그 어떤 새도 하늘 아버지의 집에 거하도록 처소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잘것없는 새의 생명도 이토록 지켜주시고 보호하시고 먹여주시는데, 가장 귀한 존재로 지으신 나를 돌보아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새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땀을 흘려 양식을 얻도록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냥 놀고먹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일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노동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 벌 받아서 일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에덴동산 안에서 아담에게 일을 맡기셨습니다. 동물들의 이름을 짓도록 맡기신 게 일입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우리가 땀 흘려 열심히 일하도록, 그래서 양식을 얻도록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새들의 본능을 통해 그들에게 먹이를 제공하시는 것처럼, 사람의 노력을 통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십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하여 쫓겨났을 때의 저주는 일을 하는 저주가 아니라, 일을 해도 양식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 없는 저주였습니다.

 

그러므로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에 대해 염려가 되기 시작할 때마다 공중의 새들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저렇게 별것 아닌 새들도 다 먹이시는데, 나처럼 중요한 존재를 안 먹이시겠나?’ 이렇게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3.   염려함으로 키를 더할 수 없음을 기억하라

 

그다음으로 예수님은 염려가 어리석은 것이며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것임을 보여주는 또 한 가지의 실질적인 예를 드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7)

 

여기에 대한 다른 사본들도 많기 때문에, 이 구절이 <새번역>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을 해서, 자기 수명을 한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염려하면 수명이 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상식입니다. 유명한 병원 중 하나인 Mayo Clinic의 공동 설립자 찰스 메이요(Charles Mayo), 이미 오래 전 염려가 순환기계와 심장, 내분비계 및 전체 신경계통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20세기 초반에 이미 <아메리칸 머큐리(American Mercury)> 의학 저널에서 메이요는, 과로로 인해 죽은 사람은 본 적이 없지만 염려로 인해서 죽은 사람은 많이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염려로 인하여 죽음에 이를 수는 있어도, 수명을 늘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을까 하는 일에 몰두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드시는 비타민이나 건강식품으로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하나도 안 드시는 분이 계십니까? 저도 몇 년 전부터는 먹습니다.

 

제가 아는 분이 있는데, 가끔 만날 때마다 좋다는 약이 바뀝니다. “지난번에는 그게 좋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이게 좋다는 겁니까?” “글쎄 그때는 이걸 몰라서 그랬지. 이게 정말 좋은 거야.” 그런데 다음에 가보면 또 종류가 바뀌어 있습니다.

 

이렇게 좋다는 것은 너무 많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온갖 종류의 비타민을 섭취하고, 다이어트와 운동에 관심이 지나칠 정도입니다. 그런 데에 미국 사람들이 쏟아붓는 돈이 일 년에 수십억 달러가 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수명과 한계를 미리 정해놓으셨다고 성경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노력해도 200년이나 300년을 살겠습니까? 인류 역사에 비하면 그것도 짧은 기간이지만 우리는 그보다 훨씬 짧게 삽니다. 오래 살아야 100년입니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오래 살아봐야 몇십 년 사는 겁니다. 그런데도 왜 그토록 관심을 쏟으며 삽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음식이나 운동이나 건강에 관한 적절한 조언을 무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삶의 질을 높여줄 수는 있지만, 얼마나 살게 될지 그 길이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적절하게 운동하고 바른 식생활 습관을 가지면 우리 몸과 뇌가 활성화되어 모든 면에서 더 나아지는 것은 분명한 과학적 사실입니다. 하지만 매일 동네를 몇 바퀴씩 걷거나 뛰고, 건강 보조식품을 부지런히 찾아 먹으며,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관광지를 모두 방문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더라도, 그런 것 때문에 하나님이 나의 수명을 더 길게 해주실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더구나 그런 것들은 이 땅에서의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에는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딱 이 세상에서 사는 몇십 년 정도만 영향을 끼칠 뿐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길어야 100년 정도이지만, 천국에서의 삶은 영원입니다. 그런데 영원이라는 것은, 우리의 머리로는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이 도대체 몇 년입니까? 계산이 안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영원에 대해서 준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몇십 년만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이것저것을 모으고 대비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염려로 충만하여 살아갑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앙인들, 하나님의 자녀들도 그 삶의 모습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살 것인가, 내 인생에 몇 년이나 더할 수 있을까 염려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드리고 순종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십니다. 매일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사랑을 풍성히 누릴 뿐 아니라 그것을 주변에 나누어주는 아름다운 삶을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충만한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과학 연구에 의하면, 남을 섬기며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산다는 결과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얼마나 길게 사느냐 짧게 사느냐와 상관없이, 그것이야말로 멋진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기도가 중요하고, 말씀 묵상이 중요하고, 예배가 중요하고, 목장과 교회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며 섬기는 것이 중요하고, 또 우리가 한 팀이 되어 주님을 모르는 분들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복음을 전함으로써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이 땅에서 끝나는 것들이 아니라 영원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이야말로 영원을 준비하는 사후대책이 됩니다.

 

 

4.   들의 백합화를 보라

 

예수님은 우리가 왜 염려하면 안 되는지, 자연에서 또 다른 예를 드십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8)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정말로 입을 게 없어서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살았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에게는 겉옷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낮에는 따가운 햇볕으로부터 보호해주고 밤에는 한기에서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그런 걱정과는 다른 걱정을 하며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가 옷장인 사람들의 경우입니다. 옷의 노예가 된 그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이 입을 옷이 없다는 염려를 하지는 않지만, 그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최고의 모습으로 보이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게 걱정입니다. 유명한 사람들이 비싼 값을 치르며 옷에 강한 욕심을 내는 것은 아주 흔한 현상입니다. 그래서 명품이라는 것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로스엔젤레스(Los Angeles)에서 그 유명한 베벌리힐즈(Beverly Hills)에 가보면, 명품 상점들로 가득합니다. 북쪽에 있는 파사데나(Pasadena) 같은 곳을 비롯해서 LA 지역의 수많은 도시들의 다운타운에는 상점들로 가득한 거리가 있습니다. 뉴욕은 더합니다. 맨해튼에 가보시면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유럽의 도시들도 그렇습니다. 그런 거리를 가보거나 근처의 샤핑몰만 가봐도, 매장에 걸려 있는 그 수많은 옷을 보며 질려 버립니다. 정말 걱정되지 않습니까? ‘도대체 저것을 다 누가 사나?’

 

이 시대는 패션(fashion)을 하나의 신(god)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인격적인 아름다움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몸에 두르고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옷 가게 대부분은 또 여자 옷들입니다. 남자들도 멋을 내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여자들이 더 옷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그 어떤 최고의 것도 들의 백합화에 비교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들의 백합화는 아네모네(Anemone), 글라디올러스(Gladiolus), 수선화, 양귀비처럼 갈릴리 언덕에 가득하게 핀 온갖 들꽃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입니다. 그것들은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한다고 하십니다. 교회 뒤 야드나 공원에 가서 들꽃들을 한 번 보십시오. 자유가 있고 아름다움과 편안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들꽃을 솔로몬의 옷과 비교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29)

 

솔로몬 같은 엄청난 왕을 위해 얼마나 옷을 찬란하고 화려하고 아름답게 만들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옷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어떻겠습니까? 고대의 화려한 옷이라도 어설프게 엮은 옷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꽃잎을 현미경으로 관찰해보십시오.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그런 사진들을 보면 정말 놀라운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들꽃이지만, 거기에는 아무리 창조적인 사람이라도 따라갈 수 없는 짜임새와 모양과 디자인과 재질과 색상이 들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솜씨가 놀랍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0)

 

들의 백합화들은 수명이 아주 짧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말라붙은 풀들은 다발로 묶여서 이동식 요리 화로에 들어가는 값싼 연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렇게 금방 시들어져서 땔감으로나 사용되고 말 들풀도 하나님이 그렇게 돌보신다면, 당신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실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계속 염려한다면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믿음이 적은 자들아!”

 

 

[나가는 말]

 

어떤 시인이 오늘 본문의 교훈을 간단히 표현한 것을 이전에 읽은 적이 있습니다.

 

들꽃이 참새에게 말했다.

염려 많은 이 인간들은 왜 조급하게 굴면서 그렇게 염려하는 것일까?”

참새가 들꽃에게 대답했다.

친구여, 그건 분명히 너와 나를 돌봐주시는 하늘 아버지가 그들에겐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여러분, 신앙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것이 염려입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늘 우리와 함께하시며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며 힘차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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