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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10일 주일예배

제자의 삶 산상수훈 23

내 삶의 최우선순위를 점검하라

(마태복음 631~34)

 

[들어가는 말]

 

2주 전에 우리는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먹이시고 기르시는 하나님께서 그보다 훨씬 존귀한 우리를 돌봐주시는 것은 당연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고, 주님을 믿는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것이 염려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염려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십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잘못될 때 염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삶의 최우선순위, 즉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뭔가? 다른 건 몰라도 이것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제치고라도 가서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잘못될 때 염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우리 마음에 들어와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에 잘 살펴보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선순위를 올바로 정하는 일은 우리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가장 잘되지 않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최선의 것은 최선의 자리에 놓고, 차선의 것은 차선의 자리에 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실패함으로 인하여 실패한 인생으로 끝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간은 악해서 실패하기보다는, 우선순위가 잘못되어서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오늘 본문은 굉장히 유명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염려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염려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 그 해결책도 분명하게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올바른 우선순위를 정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염려에서 벗어나는 법은 올바른 우선순위를 정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1.   염려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여러분, 지금 걱정되는 게 있으시죠? 작게라도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약간 고민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염려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지금 자신이 걱정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십시오. 뭘 걱정하세요?

 

가만히 보면, 우리가 걱정하는 대부분 문제는 먹고 사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그런 일로 염려하면 우리는 믿음이 작은 자들”(30)이 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런데도 나는 무엇을 먹지? 무엇을 마시지? 무엇을 입지?’ 하고 걱정한다면, 그것은 마치 하늘 아버지가 안 계신 영적 고아처럼 행동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1-32)

 

여기서 예수님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 염려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은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을 때 염려하게 된다는 뜻이 됩니다. 작은 걱정거리 말고 뭔가 큰 염려가 있을 때 내가 지금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닌가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합니까? 그분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분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까? 그분과 교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기도와 예배로 교제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모르는 분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을 신뢰하지 못하니 당연히 염려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과의 교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염려가 생길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해결책을 찾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지혜를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염려는 아주 파괴적입니다. 염려는 특히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관련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나님, 제가 과연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신뢰할 만한 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아주신다고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믿으시죠?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자녀인 우리에게 염려는 불필요한 것이며, 염려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2.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염려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직 뭔가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계속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떡하지?’ ‘그렇게 안 되면 어떡하지?’ 대부분 미래에 대한 염려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34)

 

이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미래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뭘 걱정하나 생각해보십시오. 대부분 미래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이 되면 어떡하지?’ ‘이것이 안 되면 어떡하지?’

 

여기 학생들도 있는데, 어떤 학생이 이 말씀을 읽고 큰 은혜를 받은 후 그래,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해야지.’ 하고는 다음 날 시험인데도 공부를 하나도 안 한다면 맞습니까, 틀립니까?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지, 준비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일을 준비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준비하고 있으면서도 어떡하지?’ 하며 내일을 염려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십니다.

 

준비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염려하면 문제인데, 가장 최악은 준비하지는 않으면서 염려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해야 하는 건 아는데 준비는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떡하지?’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까?

 

가만히 보면 내일 어떻게 될지 몰라서 안절부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늘 일을 오늘 처리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의 기쁨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제자,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오늘 하나님이 나에게 감당하라고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평생의 사명도 있지만, 오늘의 사명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명만 주시는 게 아니라, 오늘 누리라고 주신 복이 있습니다. 오늘 해야 하는 사명도 주시고, 오늘 누리라고 주시는 복과 기쁨도 있습니다.

 

그것을 감당하고 즐기면서 사는 것이 성공한 인생입니다. 오늘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오늘 주신 복을 누리는 것이 성공한 인생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이 오지도 않은 내일을 염려하다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오늘을 낭비하며 살고 있다는 겁니다. 오늘 주신 것은 하지도 않으면서 내일만 염려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깝고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내일 일을 너무 염려하다가 아주 잘못된 예가 많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과거 산아제한 정책입니다. 지금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아서 사회적 문제이고 앞으로 위기입니다. 이것은 과거 잘못된 산아제한 정책의 영향이 있습니다.

 

* 1960년대: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

* 1970년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 1980년대: “둘도 많다. 하나 낳고 알뜰살뜰.”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 1990년대: “사랑으로 낳은 자식, 아들딸로 판단 말자.” “아들 바람 부모 세대, 짝꿍 없는 우리 세대.”

* 2004(이때부터 변화):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자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동생입니다.”

* 2009: “두 자녀는 행복, 세 자녀는 희망

 

그런데 한국도 한국이지만, 그런 문구들이 중국에서 발표한 표어들에 비하면 아주 부드러운 표현입니다. 중국은 아주 살벌한 가족계획 표어들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것들입니다. “한 집이라도 아이 수를 초과해서 낳으면, 그 마을 남자는 모두 불임수술 대상자!” “수술을 거부하는 불임수술 대상자의 집은 헐어버린다.” 나라에서 만든 표어가 이러니 얼마나 무시무시합니까? ‘대국이라 그런지 표어도 스케일(?)이 다릅니다.

 

인구 폭발을 너무 염려해서 하나만 낳으라고 저출산을 장려하던 한국 정부의 가족계획 정책은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한국이 지금 위기 상황입니다. 지금 한국은 사람들이 아이를 너무 낳지 않아서 위기입니다. 그렇게 염려가 되어서 구호들까지 만들었는데 완전히 잘못 내다보고 실패한 겁니다. 내일 일을 그토록 염려했는데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위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일어나지도 않은 내일 일에 너무 신경을 쓰고 염려하다가 오늘 주어진 기쁨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뿐입니다. 하나님은 내일이 오늘이 되기 전까지는 내일을 살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미래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점을 치러 갑니다. 재미로 한다고 하면서도 타로점을 보러 갑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일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탄도 내일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 미리부터 염려하지 말고, 미래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붙들라고 하십니다. 미래는 아무도 붙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하나님이 미래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미래를 붙들고 계신 분을 우리가 붙들면 미래를 붙드는 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왜 내일을 염려하며 삽니까? 그것은 우리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이것인데 정작 나는 다른 것을 원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에게 그날 필요한 것만 구한다면 내일 일로 염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자꾸 필요한 게 아니라 원하는 것을 구하다 보니까 자꾸 염려하게 되는 겁니다. 욕심이 과하면 염려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할 일은 염려가 아니라 감사입니다. 오늘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 지금까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것은 과거지향적으로 살라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베풀어주신 선물과 복들을 볼 때 하나님은 미래에도 잘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제대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미래도 제대로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감사할 줄 모르면 염려만 하게 되는 겁니다. 과거에 베풀어주신 은혜가 있는데 미래에 갑자기 , 안 해.’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십니다.

 

 

3.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면 염려하지 않게 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염려를 극복하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셨는데, 그게 바로 우선순위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3)

 

이 구절은 아주 유명한 말씀이고 이 내용으로 된 복음성가도 있습니다. 이 말씀은 염려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인생에서 올바른 우선순위를 세우는 것입니다.

 

여기 33절에서 이 모든 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모든 생활의 염려를 말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걱정하시는 그것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겪는 모든 문제, 먹고 사는 모든 문제를 포함합니다. 그러니까 우선순위만 제대로 세워놓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땅에서 먹고 사는 문제는 다 해결해주겠다고 하시는 약속입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약속입니까?

 

그런데 여기 32절에서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모르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주된 관심은 주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입니다. ‘어디 갔더니 음식을 참 잘하더라. 회는 저 집이 잘하더라. 떡집이 새로 열었는데 맛있더라.’라고 전부 먹는 얘기입니다. 또한 저기 가니까 $500짜리를 $50에 세일 하더라.’ ‘코트는 저기가 싸더라.’ 전부 입는 얘기입니다. 정말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이런 것들이 주님을 안 믿는 사람들의 관심사입니다.

 

예수님은 이 점에 대해 뭐라고 하십니까? ‘얘들아, 그런 것들은 다 쓸데없다. 중요하지 않다. 그런 데 신경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오직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만을 구해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놀랍게도 그렇지가 않습니다. 32절을 잘 보십시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이 말씀이 저는 개인적으로 가장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인데,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것은 전부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이런 것들은 다 쓸데없으니까 하나님 나라만 구해.’라고 하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겁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어느 학교에 가야 하나, 어떤 직장을 잡나, 어떤 사업을 하나, 누구와 결혼하나,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하나, 내 아이의 장래를 어떻게 준비해주나, 집은 어디에 구하나, 몰기지(mortgage)는 어떻게 내나, 자동차는 무엇을 타나, 노후대책은 어떻게 하나? 이처럼 우리 삶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 즉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들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이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필요한 줄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런 것들로 결코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단들은 뭐라고 합니까? ‘자기 소유는 다 쓸데없는 것이니 다 팔고 와서 바친 후 같이 살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다 팔고 와서 바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이 다 아시니까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그러니까 염려하지 말라는 겁니다. 무턱대고 염려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하늘 아버지가 다 아시니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려 대신 무엇을 해야 합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도 중요하지만,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먼저라는 단어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것은 우선순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다 필요한데 가장 먼저 뭘 할 것이냐를 정하라는 겁니다.

 

주님은 우리가 다른 것을 다 관두고, 다 갖다 바치고 나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만 구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구하라, 즉 최우선순위에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염려할 만한 그 모든 일들, 모든 먹고 사는 문제를 다 책임져주겠다고 하십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며 살면, 먹고 사는 문제를 다 해결해주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먼저 하면서 살면 나머지는 다 해결해주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거꾸로 합니다. ‘하나님, 먼저 채워주십시오. 그러면 그다음에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오는 게 뭡니까? 염려입니다. 그렇게 살면 평생 염려하며 삽니다.

 

먼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나중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일단 돈 좀 벌어놓고 나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나중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나중이 올지 않을지 우리는 모릅니다. 나중이 온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합니까? 그러나 그 시간은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지금해야 합니다. 오늘 할 일은 오늘 해야지, 나중으로 미루면 안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먹고 사는 문제에 먼저 신경을 쓰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 즉 주님이 원하시는 삶은 나중에 살겠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다고 다 망하는 건 아닙니다. 망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세상일을 열심히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나중에 하겠다. 일단 바쁜 것부터 먼저 하겠다.’라고 한다고 해서 잘못되거나 저주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살면 어떻게 됩니까?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영원한 일, 주님을 섬길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또한 염려에서 해방되지 못합니다. 평생 염려만 하다가 끝납니다. 평생 염려에서 자유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안타까운 인생입니까?

 

여러분, 이것을 분명히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삶에서 무엇을 먼저구하느냐에 따라 내가 염려하며 사느냐, 평안하게 사느냐가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것을 하게 되면 우리는 평생 염려에서 해방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이 필요함을 다 아십니다.

 

이 필요한 것들,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을 보면서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얘야, 내가 다 안다. 그것들이 너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다 안다.”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32절 말씀입니다. 뭐라고 하십니까?

 

네 아이가 공부 잘해서 좋은 학교에 가기를 바라지? 학군이 좋은 동네에서 안전하게 살고 싶지? 이 미국까지 와서 사는데 어느 정도 성공해서 풍요롭게 살고 싶지? 좋은 차를 타고 싶지? 직장에서 승진하기를 원하지? 유명한 여행지에 가보고 싶지? 노후대책을 세워 은퇴하고 편안히 지내고 싶지? 그래, 그 모든 것을 내가 다 안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동시에 또 뭐라고 하십니까? “그러나 거기에 집착하지 말아라.” 하십니다. “내가 다 줄 테니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나에게 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하나님도 아시고 사탄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염려하지 말라. 내가 다 해줄 테니 염려하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탄은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끊임없이 염려하라.”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사탄의 음성입니다.

 

, , 저거 없으면 죽어. 그러니까 빨리 모아야지, 교회 갈 시간이 어디 있어? 성경 볼 시간이 어디 있어? 빨리 저거 해야지. , 네 아이가 사회에서 뒤처지면 어떻게 하려고 지금 시간을 여기에 쓰고 그래? 빨리 가서 해야지. 이건 좀 나중에 해도 돼. 그래, 좋은 일이야. 해도 돼. 하지만 나중에 하고 빨리 네 아이부터 챙겨야지. , , 사업이 잘 안 되어서 굶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너 직장에서 잘리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러니까 이것들을 먼저 처리해야 해! 먼저 이 모든 것을 구하라. 그리고 나중에 하나님의 일을 하라.”

 

이것이 사탄의 음성입니다. 여기에 속는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탄은 결코 우리에게 해로워 보이는 것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 우리가 살면서 꼭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유혹합니다. 거기에 먼저 헌신하게 만듭니다. 거기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그것을 먼저 구하게 만듭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 안에 드는 마음이 무엇입니까? ‘이게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 염려, 두려움입니다. ‘내가 이걸 제대로 안 했다가 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내가 이것을 해야 하는데 이 시간에 교회 가서 봉사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안 믿는 사람을 찾아가서 섬겨야 하는데 이 시간에 이것을 안 했다가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내가(또는 우리 아이가) 원하는 학교에 떨어지면 어떡하지? 사업이 망하면 어떡하지? 직장에서 밀려나면 어떡하지? 암에 걸리면 어떡하지?’

 

사탄은 우리가 그렇게 다른 것을 먼저구하게 부추깁니다. 그런 생각들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일단 나에게 급한 일부터 먼저 하고 나중에 해야지. 언젠가는 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푹 빠짐으로 우리의 고귀한 인생을 낭비하게 만듭니다.

 

그러한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내가 주인인 삶입니다. 사실 다른 모든 종교는 너 스스로 너의 삶의 주인이 되어라.’ 하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내 인생을 한번 멋지게 이끌어보겠다.’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모든 불행의 시작입니다. 내 삶이 왜 이렇게 고달프고 힘듭니까? 그것은 내가 내 삶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된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갑니다. 교인들 중에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그렇습니다. 소위 믿음이 좋다는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 때가 더 많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거기서 툭 떨어져 자기가 주인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자기가 주인이면 어떻게 합니까? 용서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내가 용서하고 싶으면 하고, 용서하기 싫으면 안 합니다. 내가 용서해주고 싶은 사람은 용서하고, 용서하기 싫은 사람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내가 돕고 싶으면 돕고, 돕기 싫으면 안 돕습니다. 내가 교회 가고 싶은 기분이 들면 교회 가고, 교회 가기 싫은 기분이 들면 안 갑니다. 내가 섬기고 싶으면 섬기고, 섬기기 싫으면 안 섬깁니다.

 

물론 좋은 일을 할 때도 있기에 잘하는 것 같지만, 이것은 철저히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는 삶입니다. 그런 식으로 전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는 것, 그것이 내가 주인인 삶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지도 않고, 그저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야 하는데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아갑니다.

 

그래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니까 나는 가기 싫어도 가고, 나는 정말 하고 싶은데 주님이 원하지 않으시니까 안 하는, 그런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 훈련을 교회에 함께 모여 말씀 공부를 통해, 목장에서의 섬김 실천을 통해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과 관련하여 꼭 불러야 할 찬양곡이 두 곡 있습니다. ‘새로운 삶주제곡들이기도 합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 되신 주 앞에 나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이것은 매일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습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나의 가고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 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임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 주님 나를 이끄소서.”

 

이게 바로 내가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주인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이 가사들처럼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야 하는데 여전히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살고, 그래서 철저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내가 내 삶의 주인이니까 내가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합니다. 책임을 지면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염려입니다. 그래서 평생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면 안 되는 두 가지 실제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내가 사는 모습을 보면 내가 주인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예를 들어, 방에 있다가 거실로 나왔는데 내가 왜 나왔지?’라고 한 경험이 한 번도 없는 분이 혹시 계십니까? 그런 분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을 주인으로 모시고 싶으십니까?

 

둘째로, 내 몸을 보아도 나 자신을 주인으로 모시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서 고민이 됩니다. 그것은 내 머리카락이고 내가 주인이니까 내가 명령합니다. “, 머리카락, 빠지지 마!” 그런데 제 말을 안 듣습니다. “, 머리카락, 하얘지지 마!”라고 하는데 제 말을 안 듣습니다. 내 머리카락이 내 말을 안 듣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기 몸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주인으로 모시고 신뢰하며 살겠습니까?

 

하나님이 내 필요를 다 아신다는 사실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내 인생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위해 먼저 드리고 나면, 정말 하나님이 다 책임져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순종하며 살면,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행복하게 삽니다.

 

 

4.   사명자로 사는 인생은 행복하다

 

여러분, 내 삶의 실제 주인은 과연 누구입니까?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내 삶의 최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최우선순위를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켜 사명자라고 합니다. ‘소명은 부르심(calling)을 말하고, 부르신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 사명’(mission)입니다.

 

여러분, 혹시 천국 가는 것이 우리가 구원받은 목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목적이 천국 가는 겁니까? 옛날에는 예수 천당!” 하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만일 그것이 믿는 목적이라면,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자마자 즉시 죽어서 천국에 갔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천국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 즉시 죽지 않고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아직 우리에게 이 땅에서 하라고 시키실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역할이고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라고 주신 그 목적대로 살면 이 땅에서 가치 있는 인생이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우리가 죽는 순간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영원히 천국에 쌓여 있게 됩니다.

 

그러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는 나머지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삶이 늘 흥미진진하고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대하며 살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물론 힘들고 불안할 때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약속을 주신 분을 믿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힘든 일이 오면 먼저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 재미(?)를 아는 사람들이 사명자이고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일상생활의 일들을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입니다. 이 두 가지를 다시 각각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급한 일과 급하지 않은 일입니다.

 

이것을 종합하면 우리 삶에 벌어지는 일들을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중요하고도 급한 일

(2)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

(3) 중요하지는 않지만 급한 일

(4)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일

 

이중 보통 어디에 시간을 가장 많이 쓰고 계십니까? 우리가 대개 가장 많이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일은 중요하지는 않지만 급한 일입니다. ‘중요하고도 급한 일은 사실 거의 없습니다.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일은 주로 취미생활이나 오락 같은 것입니다. 인터넷 서핑, 드라마, 영화, 골프 등이 그렇습니다.

 

그런 일에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은 우선순위가 잘못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선순위가 제일 잘못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중요하지는 않지만 급한 일에만 매달리는 사람입니다. 중요하지는 않지만 급한 일은 대개 요란합니다.

 

그런데 진짜로 중요한 일은 조용합니다. 별로 티가 안 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삶에서 중요한 일은 조용하니까 안 해도 되는 줄 알고서 다음으로 미루어버리고, 급한 일은 요란하니까 그것이 정말 중요한 줄 알고 거기에 전념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엉뚱한 데에 시간과 에너지를 보내게 되면 우선순위가 완전히 뒤바뀐 것입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예배하는 것은 급한 일은 아닙니다. 또 요란하지 않고 조용합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넘겨버릴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성경을 안 읽는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여러분, 내 인생의 최우선순위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해, 지금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면서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 일이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나라와 의입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인생을 살아서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풍성한 역사를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풍성함을 받고 나 혼자만 누리는 데서 끝나지 않고 주변에 나누어줌으로써,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한 인생,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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