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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nMQG9pORUwk?t=129

 

 

20221225일 성탄주일 연합예배

성탄절 메시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누가복음 28~20)

 

1.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들 (8~10)

 

보통 왕궁에서 왕위를 이을 왕자나 공주가 태어나면 모두가 기뻐하고 그 준비를 위해 다들 애를 씁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탄생입니까. 그러나 왕으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영광과는 전혀 거리가 먼 모습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왕으로 오셨지만, 전혀 왕으로 대접받지 못한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말씀을 천사로부터 전달받은 사람들이 본문에 나오는데 누구입니까? 목자들입니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8)

 

밤에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이 엄청난 소식이 전해진 것은 사실 좀 의외입니다. 그 당시 유대 땅에서 목자들은 낮고 천한 사람들로 취급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게 더럽고 비천하다 하여 다른 사람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무시당하던 목자들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구세주의 탄생에 대해 알려줍니다.

 

목자들은 양 치는 일을 위해서 성전이 있는 곳으로부터 여러 날 동안 멀리 떨어진 곳에 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스스로 정결하게 하는 유대교 종교 예식을 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의하여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낮고 천한 사람들, 종교적으로 부정하다고 여겨지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가장 먼저 전해졌다는 것은 찬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이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구세주 탄생 소식이 전해진 겁니까? 성경에 그 이유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주목해볼 것은, 천사들이 그들에게 온 때가 언제인가 하는 점입니다. 천사가 나타난 시간은 목자들이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고 있을 때였습니다(8). 사실 밤에 얼마나 피곤하고 힘듭니까? 그런데 그 목자들이 자기들의 할 일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계속 살펴보고 있는 다윗 왕도 십대 소년 시절에 목자였습니다. 그의 형들은 전쟁터에 가서 군인으로 싸우거나 다른 일을 할 때, 아버지 이새는 막내인 다윗에게 가장 더럽고 하찮은 일인 양 떼를 돌보는 일을 맡긴 겁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양 떼를 쳤습니다. 심지어 맹수들이 공격해오는 상황 속에서도 맹수들과 맞붙어 싸워 이기는 가운데 점점 용사로서 성장해갔던 것입니다.

 

동시에 들에서 양을 치며 수많은 시편을 지어서 주님을 찬양하는 시인이자 음악가이자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영성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나중에 사울 왕이 그를 궁중 악사로 불렀는데 그가 하프를 켜면 악한 영이 떠날 정도로 그의 찬양은 엄청나게 영적인 찬양이었다는 겁니다. 그는 음악치료사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는 참 놀라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릴 때부터 양을 치면서 그런 것이 길러졌다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당시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무시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밤중에도 열심히 자기들이 맡은 양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7년 전 안식월 때 이스라엘을 갔을 때 베들레헴도 방문했는데, 그 근처에 넓은 들이 있었습니다. 이 목자들은 2천 년 전 거기 어딘가에서 양을 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잠든 밤 추위가 느껴지는 들에서 양을 지키던 그들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별로 즐겁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남들은 다 잠을 자고 있는데 자기들은 일해야 하고, 그것도 자기들에게 이런 고된 일을 시키고 편안히 잠들어 있는 사람들 특히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원망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에 대한 불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혹시 그들도 다윗을 생각하며 양을 지키고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진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곳이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 근처였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처량한 처지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향해 간절한 마음을 품고 있었을 텐데, 그 시간에 어쩌면 자기들의 목자 대선배인 다윗의 시편을 읊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위대한 왕 다윗도 소년 시절에는 자기들과 똑같이 비천한 목자였다고 생각하면서, 그가 지어 불렀던 시편들을 읊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 놀라운 소식을 전해줍니다.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9-10)

 

여러분,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누구에게 전해졌습니까? 그것은 결코 왕궁에서 호화롭게 살던 권력자들에게 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의 학식과 경건을 자랑하던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들에게 전해진 것도 아닙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의 말씀은 낮고 비천한 목자들, 멸시당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자기들의 일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감당하고 있던 목자들에게 임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목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는데, 무조건 그들을 미화하면서 최고의 영성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힘든 상황에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며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이 목자들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 일하고 있는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계십니까? 윗사람이 안 볼 때는 대충 하거나, 심지어 일하는 시간에 한국 드라마를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까? 또 가정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교회에서도 자신이 맡은 사역에 최선을 다해 섬기고 계십니까? 아니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거나 게으르게 하고 있습니까?

 

얼마 전 유행하던 말 중 이게 최선입니까?”라는 게 있었습니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내가 무엇을 하든지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이게 최선인가?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누구나 인생에서 고민이 있고 괴로움이 있고 슬픔이 있고 답답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불평, 불만, 비난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혹시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별 볼 일 없는 인생인 것 같아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삶을 살기 위해 애쓰며 나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중요한 일을 한다고 해도, 20~30년 후나 우리가 죽은 후에 우리가 역사책에 기록되겠습니까? 내 이름이 역사책에 기록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한 분이 계십니까? 우리를 누가 알아줍니까? 우리가 여기 사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런데 위대하신 왕, 온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고, 우리를 보고 계시고, 인도해주시고, 도와주시고, 보살펴주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 속에서 힘들더라도 불평하고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또 어디에서든,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까? 신앙생활이 재미가 없습니까? 하나님께 문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은 나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귀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비가 아무리 억수로 내려도 컵을 거꾸로 놓으면 거기에 물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들어오도록 위를 향해야 비가 오면 물이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선포되고 아무리 나에게 주어져도, 뒤집어놓고 있으면 어떻게 말씀이 들이겠습니까?

 

하나님은 나를 사용하고 싶어 하십니다. 놀랍게도 저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나를 사용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주님이 말씀하실 때 듣지 못하든지, 아니면 말씀을 들어도 변명하거나 핑계를 대느라고 쓰임 받지를 못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든 사람은 핑계 부자이고 핑계 전문가입니다.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한다는 핑계가 정말 많습니다. 환경이 나빠서 못하고, 돈이 없어서 못하고, 지위가 낮아서 못하고, 다른 사람 때문에 못하고, 너무 바빠서 못하고, 너무 한가해서 못하고, 피곤해서 못하고, 운동해야 해서 못하고, 놀러 가느라 못하고, 드라마 보느라 못하고, 아이들 돌보느라 못하고, 나이가 많아서 못하고, 나이가 어려서 못 하고, 영어를 못해서 못하고, 한국어를 못해서 못하고 등등, 너무 핑계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입니까? 가만히 보면, 주님이 원하시는 일은 이런저런 이유로 못하겠다고 하면서, 자기가 뭔가를 해야 하거나 아이들에게 뭔가가 생기면 어떻게든 해냅니다. 못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하고, 이게 안 좋아서 못하고, 저 사람이 걸려서 못하고, 그러다 보면 할 수 있는 때가 없습니다. 삶에는 문제가 끊이지 않고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옵니다. 문제를 다 해결하고 나서 하겠다고 하면 못합니다. 해야 할 것을 다 하고 나서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하면 할 수가 없습니다. 어려운 상황은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사역도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가 갑자기 찾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상황도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습니까? 벌써 3년이 되어 갑니다. 교회 예배는 매주 항상 있으니까 아무 때나 가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가 터지니까 교회에 올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은 우리 삶에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음에 하면 돼.’라고 했는데 그 다음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그래도 우리 상황은 본문에 나오는 목자들보다 훨씬 낫지 않습니까? 우리 각자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말씀대로 살아갈 때,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지, 상황이 어떻든지, 주님의 놀라운 역사가 바로 나를 통해서 일어날 수 있다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2.   천사의 메시지 (11~14)

 

오늘 본문에서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해준 소식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10). 그런데 그것이 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까?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1-12)

 

이것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은, 우리를 위해 구주가 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소식’, 즉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지난 주일(1218)에 월드컵 축구대회 결승전이 벌어졌습니다. 아르헨티나가 프랑스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프랑스 선수 중 2명이 실축하는 바람에 24로 패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수들이 흑인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선수들을 향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며 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사실 그 선수들의 활약 덕분에 결승전까지 온 것인데, 잘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실수하니까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한 겁니다.

 

사람은 이렇게 차별합니다. 피부 색깔이 다르다고 차별하고, 출신 배경, 혈통, 학벌, 재산의 많고 적음, 심지어 요즘은 성별에 따라 차별하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무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온 백성을 위한 소식입니다. 잘하든 못하든 차별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려주기를 원하시고, 누구나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3)

 

그 천사가 처음에 혼자 와서 이 소식을 전해주는데, 갑자기 그 천사 옆에 천군즉 수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알려주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4)

 

예수님의 탄생은 먼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와 인간의 타락 이후 구원 계획을 이미 세워놓으셨습니다. 그렇게 구원을 준비하시다가 때가 꽉 찼을 때 예수님을 이 땅에 구주(Savior)로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히 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때가 딱 맞는 때였기 때문에 그때 보내셨습니다. 수천 년 동안에 걸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드디어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천군 천사가 바로 그 구원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또한 이 땅에 하나님의 평화를 주는 사건입니다(14b). 평화는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샬롬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누리는 행복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전에도 서로를 향해 샬롬하고 인사했고 지금도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후 이 평화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의 관계가 회복된 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또 거기서 나오는 마음의 안정과 평안, 그리고 실생활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번영과 기쁨과 행복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개념의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평화(샬롬)는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사람에게 주어집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에게만 주어집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들이 이 평화를 누리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주셔서 못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들은, 컵을 바로 놓는 것처럼 하나님이 평화를 쏟아부어 주실 때 탁 받아서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안 좋아하시는 사람들은 실제로 안 좋아하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컵을 거꾸로 놓아서 하나도 담기지 않는 것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누구나 사랑하십니다. 거기에는 더하거나 뺄 게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완벽합니다. 하나님은 누구나 완전한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다 기뻐하지는 않으신다는 겁니다.

 

사실 어떤 사람은 기뻐하고 어떤 사람은 안 기뻐하고, 어떤 사람은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안 좋아하고 그러시는 게 아닙니다. 그러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도 어떤 때는 하나님이 좋아하실 만한 모습으로 살다가 어떤 때는 하나님이 안 좋아하실 만한 모습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자기 능력, 지위, 재산, 학벌, 배경, 연줄을 의지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 연약한 사람, 비천한 사람, 가난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러나 무조건 연약하고 비천하다고 해서 전부 다 좋아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비천하기 때문에, 능력이 없기 때문에,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 ‘저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고 매달리는 사람,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사람, 하나님만 꼭 붙드는 사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아주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평화(샬롬)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 안에 바로 이런 주님의 참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까? 나는 지금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입니까? 혹시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만 전심으로 의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지금 의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니면 누구입니까?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참 평화(샬롬)를 누리게 됩니다. 행복해집니다. 하나님만 바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이 됩니다.

 

 

3.   목자들의 반응 (15~20)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5-17)

 

천사로부터 이처럼 놀라운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목자들은 구주로 나신 아기를 보기 위해서 다윗의 동네’(11)인 베들레헴으로 달려갑니다. 그것도 빨리’(급히) 갔다고 되어 있습니다(16). 그리고 거기서 마침내 그들은 구주로 태어나신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12절에서 천사는 그들에게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가 표적이라고 했지만, 사실 마구간 같은 데서 아기를 낳아 구유에 아기를 누이는 것은 대단한 표적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마치 서울에 가서 김 씨를 찾으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목자들은 왜 베들레헴으로 빨리 달려가서 아기를 찾았습니까? 15절에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라고 한 것을 잘 보십시오. 목자들은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라고 했지, '저게 정말인가? 정말 그렇게 됐는지 한번 가서 보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믿고 이루어진 일을 가서 보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 엄청난 말씀을 들었을 때 의심하지 않았고, 그것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으며, 그 말씀대로 이미 이루어진 일을 보기 위해, 즉 구주로 나신 분을 직접 만나기 위해 그리로 달려간 것입니다. 가면 분명히 만날 수 있으리라 믿고서 갔습니다.

 

그런데 목자들이 이런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가게 되는 게 아닙니다. 엄청난 것을 보고 나서 천사가 사라진 다음에 '우리가 무슨 귀신에게 홀린 것은 아닌가? 이거 진짜인가? 우리가 헛것을 본 것이 아닌가?'라고 하며 안 갈 수도 있고, 아니면 '아이고 무서워'하면서 다른 데로 도망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곧장 베들레헴으로 달려갔습니다. 거기서 드디어 아기를 찾은 다음에는 그 모든 일을 마리아와 요셉과 거기 있던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17). 그 후에 그들은 또 어떻게 했습니까?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20)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해준 그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자기들이 듣고 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습니다.

 

마태복음 1장을 보면, 마리아의 남편 요셉도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가 잉태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다.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구주(메시야/그리스도).’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이게 말이 돼?’라고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왔고, 아기를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모가 되는 영광과 축복을 받고 누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데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자격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도 주십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 말씀을 믿음으로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대할 때마다 감격이 있습니다.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강한 열정이 일어나게 됩니다.

 

순수하게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순종하며 사는 사람은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기적이라는 것은 무엇에 닿지도 않았는데 깨지거나,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 같은 게 아닙니다. 평범하지 않은데 일어나는 일이 기적입니다.

 

그런 것으로 무엇이 있습니까? 내가 너무도 싫어하던 사람이 이상하게 불쌍히 여겨지는 겁니다. 이런 게 기적입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기도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관계가 회복되는 것, 이런 것이 기적입니다. 그러한 기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구주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행하는 우리 모두의 삶에 바로 이런 놀라운 평화와 기적이 넘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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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삼하 19:1-15) -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39 (11/27/2022) admin_p 2022.11.27 610
394 최악의 상황에서 드리는 최고의 감사 (시 57:1-11) - 추수감사절 메시지 (11/20/2022) admin_p 2022.11.21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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