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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3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37

아히도벨과 후새의 모략 대결

(사무엘하 171~23)

 

[들어가는 말]

 

역사를 보면 종종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특히 전쟁에서 그렇습니다. 누가 봐도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작전 결정이 내려져 전세가 바뀐 적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197310월에 일어난 욤 키푸르 전쟁입니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주축이 된 아랍 연합군과 이스라엘이 치른 전쟁인데,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에 기습 공격을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그날은 이스라엘의 아주 중요한 절기인 욤 키푸르’(대속죄일)이었고, 이스라엘은 거룩한 날이기 때문에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쪽으로는 이집트 군대가 밀고 올라오기 때문에, 시리아 군대는 북쪽에서부터 밀고 내려가면서 조금만 더 공격하면 이스라엘 전체를 금방 점령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갑자기 시리아 군대가 잠시 주춤거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것을 계기로 전열을 정비한 이스라엘 방위군은 반격을 시작하여 3일 후 시리아군을 휴전선 지역까지 몰아낸 후 시리아 중심지를 공격하더니 수도 다마스쿠스에까지 포격을 가했습니다.

 

그때 왜 시리아 군대가 잠시 주춤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쉬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내려갔으면 1967‘6일 전쟁에서 빼앗겼던 골란고원도 되찾고 이스라엘 대부분을 점령할 수도 있었는데, 지금도 미스터리입니다. 아무 저항 없이 너무 일방적으로 이기다 보니까 뭔가 이상하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스라엘에게는 별다른 작전도 없었는데, 너무 저항이 없으니까 오히려 두려움이 생기면서 일단 신중하게 나아갔던 겁니다. 그것이 패착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와 비슷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봅니다. 압살롬의 반역 후 다윗은 예루살렘을 내어주고 피난길에 올랐는데,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들어와 어느 정도 상황을 정리한 다음에 추격할 것으로 예상하고 제사장들로부터 소식이 올 때까지 요단강을 건너지 않고 기다리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모사가 된 아히도벨은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여 지금 바로 다윗을 추격해서 그를 죽이고 백성들을 다 데리고 와야 한다는 기막힌 계략을 내놓습니다.

 

누가 보아도 이것은 완벽한 작전이고 놀라운 지혜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그것을 좋게 여기면서도 후새의 말도 들어보자고 하며 신중하게 대처했고, 결국 후새의 모략을 채택하게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바로 그것이 그의 패착이었고, 결국 그 결정은 압살롬 자신을 죽음으로 이끌게 됩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뛰어난 모략을 제시하는 아히도벨 (1~4)

 

아히도벨은 압살롬이 다윗의 후궁들을 범하게 한 것에 이어 또다시 지혜로운 모략을 베풉니다. 그것은 다윗이 피곤하고 약해져 있는 지금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그만을 죽이고 백성들은 돌아오게 함으로써 온 이스라엘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1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사람 만 이천 명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추적하여 2 그가 곤하고 힘이 빠졌을 때에 기습하여 그를 무섭게 하면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 죽이고 3 모든 백성이 당신께 돌아오게 하리니 모든 사람이 돌아오기는 왕이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 하니” (1-3)

 

아히도벨의 이러한 계획은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합한 좋은 계획이었습니다. 12,000명이면 충분히 다윗을 물리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이 이제는 다윗을 찾아서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간교한 사람에게 간교한 모략을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아히도벨의 이러한 작전은 승리를 보장해주는 군사 전략의 세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수적으로 불리한 적을 단숨에 제압해버릴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입니다. 아히도벨은 자기에게 용사 12,000명을 주면 자기가 가서 다윗을 치겠다고 합니다. 당시 다윗 군대는 2천 명도 안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15:18). 그러니까 자기들이 다섯 배, 여섯 배의 군사력으로 밀어붙이면 다윗 군대는 싸우기도 전에 사기를 잃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둘째, 아히도벨은 적군의 허를 찌르는 기습 공격을 제안합니다. 당시에는 전기가 없었기 때문에 군사 활동을 밝은 낮에만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아히도벨은 오늘 밤”(1) 다윗을 치자고 합니다. 급히 도망가느라 지칠 대로 지쳐 있는 다윗 군대가(16:14) 전열을 재정비하기 전에, 또한 야밤이라 공격해올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에 치자는 것입니다. 아히도벨은 다윗 군대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무서운 사람입니다.

 

셋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다윗을 타겟으로 정하고 그만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자고 합니다. 요즘 식으로 하면 소위 한 놈만 패라작전입니다. 왕인 다윗만 죽이면 모든 상황이 종료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살생을 하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감을 사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게다가 일단 다윗이 죽으면 압살롬은 왕이 되어 지금 다윗과 함께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도 모두 포용해서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자는 겁니다. 정말 현명하고 대단한 계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히도벨은 정말 무서운 책략가입니다. 압살롬이 제거해야 할 사람은 다윗을 따르는 백성들이 아니라 다윗 한 사람이며, 다윗만 죽으면 모든 백성이 압살롬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 있게 이야기합니다(2-3). 아히도벨은 군사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아주 치밀한 전략가였습니다. 군사 작전으로 우두머리인 다윗을 죽이면서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까지 돌아오도록, 소규모 정예 군사 작전과 정치적 계산을 동시에 제안하는 겁니다.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그 말을 옳게 여기더라” (4)

 

압살롬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장로들도 모두 아히도벨의 모략이 좋다고 합니다. 압살롬은 몇 년 전 이미 자기 이복형제인 암논을 죽인 사람으로서, 이제는 아버지인 다윗도 죽이지 못할 것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입니다. 완전히 악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는 이 반역이 이제는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그건 자기 생각일 뿐입니다. 그는 그다음에 올 참혹한 결과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악한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이라고 하면서 자기 손으로 사울을 죽이지 않은 다윗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압살롬에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지혜를 믿는 자를 심판하십니다. 세상에서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는 자들을 심판하시며, 그러함에 있어서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성경에서 미련한 자라고 한다고 정말 머리가 나쁘거나 공부를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고지식하고 우직하고 미련하게 보이지만, 편법이나 불법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나아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2.   파하여지는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 (5~14)

 

이제 다윗은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계략대로 움직이면 모든 것이 끝장입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다윗에게 도움의 손길이 임합니다. 그것은 다른 데가 아니라, 놀랍게도 반역자 압살롬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5 압살롬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도 부르라 우리가 이제 그의 말도 듣자 하니라 6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매 압살롬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히도벨이 이러이러하게 말하니 우리가 그 말대로 행하랴 그렇지 아니하거든 너는 말하라 하니” (5-6)

 

무슨 생각에서인지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모략을 듣고 모든 사람이 거기에 찬성하는 순간 잠시 멈칫하면서, 다윗의 친구인 아렉 사람 후새의 말도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후새가 먼저 나서며 자기 말을 들어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압살롬이 스스로 판단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압살롬이 왜 그렇게 한다는 말입니까?

 

사실 아히도벨의 계략은 너무나 뛰어난 것이었고 완벽합니다. 압살롬은 그것이 좋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충족시켜주지 못한 겁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아히도벨은 자기에게 만 이천 명을 주면 빨리 쫓아가서 다윗을 죽이겠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성공하면 어떻게 됩니까? 아히도벨이 영광을 받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좋은 계략이고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마음에는 와닿지 않습니다. 압살롬은 자기가 영광을 받아야 하는 허영심으로 가득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더 주목을 받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히도벨의 계략이 너무 좋지만 마음으로는 만족이 안 되어 후새를 부른 겁니다. 후새는 자기에게 나오면서 자기 마음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보듬어준 사람입니다. 그래서 또 그렇게 해주기를 기대하며 그를 부릅니다.

 

아히도벨이 모략을 베푸는 전략회의 때 후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압살롬은 아마도 하나보다는 둘이 모략을 베풀면 두 배로 좋을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더 의지할 구석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적인 마음이었고, 결국 이것 때문에 멸망을 자초하게 됩니다.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번에는 아히도벨이 베푼 계략이 좋지 아니하니이다 하고” (7)

 

압살롬의 부름으로 전략회의장으로 들어온 후새는 압살롬으로부터 아히도벨의 모략을 들은 후 속으로 깜짝 놀라며 식은땀이 흘렀을 것이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며 아히도벨의 계략이 선하지 못하다고 비난합니다. 무조건 비난만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왜 좋지 못한지 근거를 제시합니다.

 

“8 또 후새가 말하되 왕도 아시거니와 왕의 아버지와 그의 추종자들은 용사라 그들은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 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부친은 전쟁에 익숙한 사람인즉 백성과 함께 자지 아니하고 9 지금 그가 어느 굴에나 어느 곳에 숨어 있으리니 혹 무리 중에 몇이 먼저 엎드러지면 그 소문을 듣는 자가 말하기를 압살롬을 따르는 자 가운데에서 패함을 당하였다 할지라 10 비록 그가 사자 같은 마음을 가진 용사의 아들일지라도 낙심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무리가 왕의 아버지는 영웅이요 그의 추종자들도 용사인 줄 앎이니이다” (8-10)

 

첫째, 아히도벨은 다윗 왕의 용사 됨과 그의 지혜, 그리고 그 신하 장수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예루살렘을 빼앗기고 도피 생활에 들어간 다윗과 그 일행들은 새끼를 빼앗긴 곰처럼 굉장히 분노한 상태일 텐데, 그런 다윗을 당장 뒤쫓아 공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겁니다.

 

둘째, 다윗은 아주 뛰어난 장수이며 군사 전략가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수많은 전쟁을 치러 온 다윗은 백성들과 함께 머물지 않고 숨어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를 죽이러 군사를 보내도 숨은 다윗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셋째, 만약 다윗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도리어 그의 역습으로 압살롬 군대의 몇 사람이 죽임을 당하면 압살롬 진영의 사기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특히 고대 전쟁에서는 군대의 사기가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에, 다윗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모든 책임을 누가 지겠냐는 겁니다.

 

이러한 후새의 말을 잘 보면, 아히도벨의 모략을 비난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윗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다윗은 위대한 군인으로서 용맹스러운 장군이고, 전술에서 가장 뛰어난 전략가라는 겁니다. 그렇게 말한 후새는 이제 아히도벨의 계략을 대신할 묘책을 제시합니다.

 

“11 나는 이렇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 같이 당신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 12 우리가 그 만날 만한 곳에서 그를 기습하기를 이슬이 땅에 내림 같이 우리가 그의 위에 덮여 그와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아니할 것이요 13 또 만일 그가 어느 성에 들었으면 온 이스라엘이 밧줄을 가져다가 그 성을 강으로 끌어들여서 그 곳에 작은 돌 하나도 보이지 아니하게 할 것이니이다 하매” (11-13)

 

첫째, 시간을 두고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를 모으라고 제안합니다(11). ‘단부터 브엘세바까지’(11)는 우리 식으로 하면 백두에서 한라까지와 같습니다.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이스라엘 전체를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이렇게 넓은 지역에서 군사를 모으려면 떻겠습니까? 당연히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후새는 아히도벨의 말처럼 전사 12,000명만 보낼 것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 군사를 모아 압살롬이 친히 그들을 이끌고 다윗을 멸하라는 내용을 제안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다윗 일행이 안전하게 숨어서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 왕이 된 압살롬에게 이제 왕답게 직접 나가서 싸우라고 제안합니다. 당시 왕들은 모두 백성을 이끌고 나가서 싸우는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히도벨이 만 이천 명 군대를 이끌고 가서 승리하면 그에게 모든 영광이 갈 텐데, 압살롬이 대군을 이끌고 나가 승리하면 모든 영광이 그에게 돌아온다는 겁니다.

 

이것은 압살롬의 자만심과 영웅심을 자극하는 말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아히도벨의 기가 막힌 모략이 마음에 잘 와닿지 않았는데, 후새가 바로 그 점을 시원하게 만져줍니다. 그때 압살롬으로 하여금 자신이 군대 장관으로 군대를 이끌고 나가 싸우는 멋진 장면을 상상하게 한 겁니다.

 

이것은 상상만 해도 정말 멋지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일입니다. 수십만 명의 군사를 앞세우고 왕의 갑옷과 군장과 방패로 무장한 후 가장 좋은 말을 타고 투구 밑으로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전쟁에 나가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짜릿합니다. 후새는 압살롬의 그런 허영심을 너무나 잘 알고 그것을 자극합니다.

 

사실 후새의 의도는 압살롬이 직접 전쟁에 나가게 함으로써 그가 위험에 처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그것을 전혀 모른 채 그저 자기가 멋지게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셋째, 후새는 다윗과 함께하는 자들도 모두 죽여야 한다고 제안합니다(12-13). 그들은 압살롬에게 동조하지 않은 반역자들이고, 살려주더라도 나중에 반드시 골치 아픈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번에 모조리 처단하라는 제안입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앞으로 압살롬을 거역할 마음을 품지 못하게 하는 경고가 된다는 겁니다.

 

앞에서는 압살롬의 교만과 허영심을 자극했다면, 이 제안은 그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자기를 따라주기를 바라는데 그렇지 않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그들을 생각하니 괘씸하고 분노가 올라옵니다. 후새는 그것을 부추깁니다. 그러자 결국 결론이 어떻게 납니까?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14)

 

압살롬은 자기 심정을 잘 이해해주는 말을 해준 후새가 고마웠을 겁니다. 사람들 앞에 멋지게 보이고도 싶고, 또 자기를 서운하게 하고 분노하게 만든 자들을 모조리 처단할 수 있는 묘책을 그가 제시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실제로 압살롬은 이성을 잃어가고 있고,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지금 정치적인 판단보다 자기 개인의 감정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우리도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최대한 객관적으로 살펴보며 머리로 잘 판단해야지, 감정으로 판단하면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후새의 모략은 압살롬과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의 마음에 자신들이 다윗을 너무 얕보았다는 사실과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후새의 것이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하나님의 다윗을 항한 은혜와 자비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고 아히도벨의 모략을 파하게 하셨습니다(14). 하나님 때문에 아히도벨의 좋은계략이 파하여집니다.

 

결국 다윗이 15:31에서 주님, 부디, 아히도벨의 계획이 어리석은 것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던 내용이 14절에서 응답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다윗을 향해 사랑과 은혜를 계속 베푸시는 이유는, 그와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7:16).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에 맞는 자에게 승리를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다윗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끝까지 그에게 복을 내리신 것입니다.

 

역사는 인간이 쓰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십니다. 그런데 역사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그냥 조종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참으로 신기한 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의 결정과 하는 일들 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이 불가능한 미스터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로마서 8장 말씀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해주십니다. 문제는 과연 내가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는가입니다.

 

압살롬이 예상하지 못한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윗을 모든 위험과 죽음에서 건지신 하나님이 여전히 다윗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압살롬의 전략회의에서 후새의 입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에게 실패와 죽음을 가져올 결정을 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낮아진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다시 한번 구원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당대의 가장 뛰어난 전략가였던 아히도벨도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전략가라도 하나님과 그분의 사람들을 대적하여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배후에서 역사하여 악인들이 의인을 치려는 계획을 무산시키십니다. 또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피할 길을 주시며, 최악의 상황에서 보호해 주십니다. 다윗은 이런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압살롬을 피해 피난하면서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3:6)라는 시를 써서 노래했습니다.

 

 

3. 후새의 계략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다윗 (15~23)

 

“15 이에 후새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이르되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고 나도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으니 16 이제 너희는 빨리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전하기를 오늘밤에 광야 나루터에서 자지 말고 아무쪼록 건너가소서 하라 혹시 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몰사할까 하노라 하니라” (15-16)

 

하나님의 은혜로 아히도벨의 모략을 저지한 후새는 즉시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압살롬의 계략을 알려주어 다윗에게 광야 나루터에 머물지 말 것과 속히 그곳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피할 것을 말합니다. 비록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후새의 모략을 더 좋아해서 채택했지만, 언제 어떻게 압살롬의 마음이 바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 때에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사람이 볼까 두려워하여 감히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에느로겔 가에 머물고 어떤 여종은 그들에게 나와서 말하고 그들은 가서 다윗 왕에게 알리더니” (17)

 

후새로부터 놀라운 정보를 전해 들은 사독과 아비아달은 각각 자신들의 아들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다윗에게로 보내어 피할 길을 알려주기로 한다. 그 두 사람의 전령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예루살렘 시와 동남쪽에 위치한 에느로겔에 머물다가 그 아비들이 보낸 한 여종으로부터 정보를 전달받은 후 다윗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알리려 합니다.

 

“18 한 청년이 그들을 보고 압살롬에게 알린지라 그 두 사람이 빨리 달려서 바후림 어떤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의 뜰에 있는 우물 속으로 내려가니 19 그 집 여인이 덮을 것을 가져다가 우물 아귀를 덮고 찧은 곡식을 그 위에 널매 전혀 알지 못하더라 20 압살롬의 종들이 그 집에 와서 여인에게 묻되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어디 있느냐 하니 여인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시내를 건너가더라 하니 그들이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18-20)

 

압살롬 편에 선 한 소년에 의해 이와 같은 움직임이 발각되었지만, 바후림 사람 집의 한 여인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합니다. 그런데 바후림이 어떤 곳입니까? 지난 16장에서 베냐민 사람 시므이가 다윗에게 나와 저주를 퍼부은 곳입니다. 그러니까 사울 세력이 강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다윗을 돕는 손길이 있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에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 신실한 자들을 숨겨놓고 계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위기에 처할 때 순간순간 피할 길들을 마련하셔서 도움을 입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기대해야 한다.

 

“21 그들이 간 후에 두 사람이 우물에서 올라와서 다윗 왕에게 가서 다윗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일어나 빨리 물을 건너가소서 아히도벨이 당신들을 해하려고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22 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새 새벽까지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 (21-22)

 

요단강 나루터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피곤에 지친 몸을 쉬게 하고 있던 다윗에게 예루살렘으로부터 전해져온 소식은 큰 놀라움과 두려움을 가져다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임박한 위험을 피하라는 소식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신뢰하고 그 일행과 함께 밤중에 일어나 속히 요단을 건넙니다.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되니라” (23)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과는 대조적으로 아히도벨은 자신의 모략이 채택되지 못함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 신변을 정리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아히도벨이 자살을 택한 것은 결국 교만함 때문입니다. 자기의 모략이 후새의 것으로 인해 무시당하고 예루살렘의 주인이 된 압살롬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와 절망의 결과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인생의 목표가 세상으로부터의 높임을 받는 것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속한 자였으며 한 때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바로 곁에서 돕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 속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안에 없는 자는 자신이 신뢰하던 게 사라지면 절망하게 됩니다. 이것은 교회의 교인이거나 교회를 오래 다닌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대로 살면서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어려움이 다가와도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을 신뢰하며 나아가 승리를 체험하게 됩니다.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것이 없지만, '만약'이라는 말로 상황들을 가정해 보면 하나님이 순간순간 다윗을 보호하고 압살롬을 패배시키기 위해 얼마나 세밀하게 일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압살롬이 평생 다윗의 친구이자 충신이었던 후새를 믿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만약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계략대로 바로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만약 후새의 계략을 사람들이 반대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만약 아히도벨이 자신의 계략을 끝까지 밀어붙여서 압살롬을 설득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만약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지혜로운 여인을 만나지 못해 압살롬의 군대에게 붙잡혔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압살롬의 마음이 나중에 바뀌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만약'의 상황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상황에 계속 개입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 또한 수많은 '만약'으로 가득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어떤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인생은 우연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런 우연은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현재와 같이 살고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인생의 '만약'이라는 상황 가운데 숨어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믿는 사람만이 힘들고 혼란스러운 상황 가운데서도 요동하지 않고 견고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바로 그러한 믿음의 사람들로 승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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