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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5iuFUH5cgJA?t=106

 

 

202318일 주일예배

신년 메시지 2

내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다

(출애굽기 31~5)

 

[들어가는 말]

 

세계 역사를 보면, 역사를 바꾼 운명적 만남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가리켜 소위 역사적인 만남이라고 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꼽아보면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고대 로마 때의 클레오파트라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만남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유비와 제갈공명의 만남이 있는데, <삼국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과 소년 빌 클린턴의 만남이 있었고, 그 소년은 후에 대통령이 됩니다. 특히 구소련의 해체를 가져오게 만든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만남은 198912월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만남으로 이어지며 공식적으로 냉전 시대를 끝내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출애굽기 본문 말씀은 많이 아는 말씀이고 성경을 읽은 분들에게는 익숙한 내용인데, 하나님과 모세가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 부분이 특별히 의미가 있는 것은 이때가 하나님과 모세의 첫 번째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도 그랬고, 40년 동안 이집트의 화려한 궁전에서 왕자로 자랄 때도 그랬고, 그 후 실패하고 광야로 도망가 장인의 양을 치던 40년 동안도 그랬고, 이때까지 모세가 하나님을 이렇게 직접적이고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제 이 만남 이후로 모세의 삶이 완전히 바뀝니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모세 개인의 삶이 바뀌는 정도가 아니라, 그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선택받게 되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써 가시는 일이 시작된다는 겁니다. 이것 역시 단지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민족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해 온 인류를 위한 구원하고자 하시는 구원역사를 이루시게 되는 일이 시작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사건은 정말로 놀라운 역사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인 만남의 순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처음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때 모세를 만나셔서 말씀하시고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은 옛날에 있었던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동일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그 하나님을 만나 부르심을 받고, 삶 속에서 그분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변화되어가기 때문에, 모세를 어떻게 부르셨는가가 우리에게도 아주 중요합니다. 특히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신앙인이다.’라고 한다면 아주 중요합니다.

 

지난 주일 신년 메시지에서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하나님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이 예배라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측면에 있어서 예배를 살펴보고, 다음 주일에는 이웃 사랑의 측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특히 예배입니다.

 

 

1.   하나님을 만나는 모세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1)

 

모세는 유대인들에게 거의 신화적인 존재이고,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기억됩니다. 그는 실존인물입니다. 그는 BC 1500년경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고, 그래서 출애굽기는 BC 1500년경에 쓰였다고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120년을 살았는데, 그의 삶은 40-40-40으로 나뉩니다. 40년은 이집트 공주에게 입양되어 이집트 왕자로 살았습니다. 바로 이것을 영화로 만든 것이 오래전 나온 <The Prince of Egypt(이집트 왕자)>였습니다. 만화영화인데, 제가 유일하게 영화관 벽 옆의 계단에 앉아서 본 영화입니다. 그때가 크리스마스 때였는데, 유대인들이 엄청나게 몰려와서 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후 40세에 광야로 도망가서 장인의 양을 치는 무명의 목자로 40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셨을 때는 그가 80세쯤 되었을 때, 즉 광야 40년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2-3)

 

하나님이 처음 모세에게 나타나셨을 때 떨기나무의 불꽃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떨기나무는 광야세 흔히 있는 나무로, 아주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그런 나무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이 불꽃으로 나타나십니다. 사실 그 지역은 워낙 건조해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무엇에 주목합니까?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이 주목한 것이 아닙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도 나무가 타지 않는다는 것을 신기하게 쳐다본 겁니다. 모세가 굉장히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어린이주일학교를 다닐 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떨기나무 가운데 불로 나타나셔서 모세가 놀라며 가보았다고 배웠는데,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불이 붙어 신기해서 가본 게 아니라, 불이 붙었는데도 나무가 타서 없어지지 않는 것이 신기해서 가본 겁니다. ‘왜 나무가 타지 않는가? 신기하다.’ 하며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가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4-5)

 

모세를 만나신 하나님이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은 무슨 위대한 계획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모세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지침을 내려주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만나서 처음 하신 말씀은 의외로 장소 이야기입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다.”

 

물론 그 말씀을 전부 다 보면 하나님이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시는 것과 신을 벗으라고 하시는 이유는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80세가 되도록 기다리셨다가 드디어 그와 만나셔서 그를 부르시는 이 역사적인 만남의 순간에, 다른 어떤 게 아니라 왜 하필 장소 이야기를 먼저 하십니까?

 

사람의 생각이나 삶의 모든 부분을 떠받치는 틀이 바로 시간과 공간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는 존재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우리의 인생을 펼쳐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2개의 개념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생을 말할 때 시간이나 공간, 둘 중 하나로 접근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적으로 접근합니다. 내가 주로 어떤 말을 하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무슨 일이 있을 때 지금이 어느 때인 줄 아느냐?’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이냐?’ ‘몇 살이냐?’ ‘올해가 몇년도냐?’ ‘몇 월, 며칠, 몇 시냐?’ 특히 중요한(?) 질문은 예배가 몇 분 남았냐?’ 이런 질문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시간적으로 접근합니다. 시계를 수시로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처음 만나셨을 때는 시간이 아니라 장소 개념으로 접근하십니다. ‘지금은 중요한 시간이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다.”라고 하십니다.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네가 몇 살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이 순간 모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장소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네가 지금 거룩한 장소에 서 있다고 하는 그 깨달음이 없이는, 내가 너를 통해 이제 행하려고 하는 모든 계획을 펼칠 수가 없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깨달음이 없이 나에게 오면 안 된다. 너의 신을 그대로 신고는 거룩한 일을 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2.   어디가 거룩한 땅인가?

 

그렇다면 여기서 거룩한 땅이 도대체 어디입니까? 1절에 보면 여기는 호렙산입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시내산(Mt. Sinai)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계통 병원 중에 Mt. Sinai라고 이름 지은 병원들이 많습니다. 시내산이 그들에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Mt. Horeb이라고 지은 것은 거의 못 봤습니다. 하지만 호렙이나 시내나 같은 산으로, 성지 중의 성지입니다.

 

2015년 여름 안식월을 가지면서 소위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그리스도 잠깐 들렀습니다. 그런데 성지가 뭡니까? 그것은 거룩한 땅(Holy Land)’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땅을 방문하는 것이 성지순례입니다. 그래서 대개는 이스라엘을 가는 것을 성지순례라고 합니다. 물론 이슬람교도들은 메카에 가는 것이 성지순례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중에 성지순례를 아주 여러 차례 다닌 분이 계십니다. 이스라엘, 이집트, 터키(이제는 튀르키예), 그리스, 로마 등등 안 다녀본 성지가 없고, 그것도 20번 이상 가보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성지순례를 다녀오고 나서 그분이 내린 결론은 이겁니다. “그렇게 많이 다녀봤지만, 거룩한 곳(성지)은 없었다.”

 

세상에는 그 자체만으로 거룩한 장소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딘가를 가면 굉장히 엄숙해지고 경건해지는 곳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엄숙한 것이 곧 거룩한 것 아닙니다. ‘거룩이라는 것이 성경적인 의미로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따로 구별된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거룩이라고 하면 엄숙하고 경건한 것을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그곳이 곧 거룩한 장소는 아니라는 겁니다. 사실 그런 데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멋지고 웅장하고 놀라운 의미를 갖고 있더라도 장소는 장소일 뿐이지, 그 자체로서 거룩한 곳은 없다는 겁니다. 이게 그 목사님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보면, 인간은 끊임없이 거룩한 장소를 찾아 헤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든 그럴듯한 모양만 있으면 그곳을 성소로 만들려고 합니다. 뭔가 의미를 주고 거기에 뭔가를 자꾸 세웁니다. 자연이 엄청나게 아름답거나, 깎아내리는 듯한 절벽이거나, 골짜기가 아주 깊거나, 나무가 굉장히 특이하게 비뚤어져 자라서 신기하거나, 뭔가 그럴듯해 보이면 거기를 거룩하다고 하며 성소로 만들려고 합니다.

 

여러 민족의 신화를 보더라도, 자기들의 조상이 하늘로 올라갔거나 땅으로 꺼졌다고 하면, 그렇게 했다는 곳을 성소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런 경향은 특히 종교에 아주 심합니다. 그래서 샤머니즘과 같은 원시종교부터 시작해서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같은 고등 종교까지 성지가 없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성지를 만들어놓고는 여기가 거룩하다고 한 겁니다. 그러다가 권력이 종교와 합하게 되면 어마어마한 신전이나 탑이나 무덤을 만듭니다. 그래서 구약의 다니엘서에 보면, 고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도 엄청나게 큰 자기 신상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거기 절하게 만듭니다.

 

역사를 보면 모든 종교가 다 이렇게 성지를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유일하게 성지를 만들지 않은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고대 근동을 조금만 공부해보거나 책을 보면 온통 다 무덤이고 신전입니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했다는 곳을 보면 다 신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만 그런 게 없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예배의 장소도 텐트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성막’(거룩한 장막)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텐트는 움직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여기만 거룩한 장소가 아니라 거룩한 장소가 움직여 다닙니다. 그 정도로 거룩한 장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하는 신앙이 이스라엘의 신앙이었습니다.

 

나중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을 때도 그가 성전을 지어 바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곳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와서 기도하고 예배하는 곳인데, 우리가 이곳에 와서 기도하고 예배하면 들어주시고 받아주십시오.’라는 정도로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응답해주시는 여러 장소 중 한 곳으로 성전을 지어 바쳤습니다. 세상에 거룩한 장소는 따로 없다는 신앙이 원래 이스라엘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변질이 된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자꾸 종교화되면서 점차 장소를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를 보아도, 예루살렘은 거룩하고 성전은 거룩하다고 하며 그런 거룩한 장소를 강조하는 것으로 변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 유다가 망하기 직전에도 우리에겐 성전이 있으니까 괜찮다.”라고 하다가 망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거룩한 장소를 강조하면 그것은 종교이지, 참 신앙이 아닙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건물이 거룩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하면 신앙이 아니라 종교가 되는 겁니다.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건물을 건축할 때 성전 건축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교회도 거룩한 건물이니까 성전이라고 하면 괜찮은데, 예루살렘 성전을 생각하며 성전 건축이라고 하면 잘못된 겁니다.

 

어떤 큰 교회들은 대성전소성전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는데, 대성전은 거룩하고 소성전은 덜 거룩한 겁니까? 예배당에도 대개 매주 앉는 자리에만 앉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익숙해서 그런 것도 있는데, 은근히 마음속에 여기 앉아야 뭔가가 잘된다는 생각이 혹시라도 있다면, 이 자리가 거룩한 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종교화가 된 겁니다. 신앙이 아닙니다.

 

또 편의상 이곳을 본당이라고 부르지만, 그럼 다른 건물들은 주변당입니까? 유스 채플이나 어린이 채플이나 친교실은 덜 중요하고 여기는 중요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절대 아이들이 뛰어서는 안 되고 저기서는 맘대로 뛰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종교화가 된 겁니다. 신앙이 아닙니다. 다 똑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당은 거룩하니까 조심해야 하고 여기를 나가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라고 하시는 것은 어느 땅을 말씀하십니까? 실제로 모세가 그때 서 있던 호렙산 어느 특정한 지점을 가리키시는 것입니까? 그게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곳을 거룩한 땅이라고 하십니까? “네가 선 곳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이든지, 바로 그곳이 거룩한 땅이다.’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어떤 특정한 장소가 거룩한 땅으로 구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났던 곳이 거룩한 땅이 아니라,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자리, 나의 삶의 자리, 나의 삶의 현장, 바로 거기가 거룩한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굉장히 여러 곳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모세는 이집트 왕자로서 얼마나 많은 곳을 다녔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거룩한 곳에 서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 속에 거룩의 역사가 펼쳐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거룩한 곳에 서 있지 않으면 거룩의 역사는 펼쳐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곳에 서지 않으면 거룩의 능력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거룩한 땅에 서야 거룩한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거룩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지난 인생 80년 동안의 실패와 허무와 절망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전에 야망도 있었고 꿈도 있었고 열심도 있었고 가능성도 있었고 또 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거룩한 땅에 서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고, 도망가서 지금은 결국 그의 삶에 실패와 절망과 허무 밖에는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2023년에 우리가 거룩한 시간과 더불어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이 거룩한 장소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시간을 가질 뿐 아니라 거룩한 땅에 서야 합니다. 거룩한 장소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를 거룩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우리가 서 있는 그곳이 거룩한 곳이라는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가 있는 곳이 거룩하다는 것을 머리로 깨달아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머리로는 거룩해야지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삶을 바꿔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든지 거룩한 곳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그런데 이게 중요합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거룩한데, 거기가 왜 거룩하다는 겁니까? 내가 서 있는 곳이 왜 거룩합니까? 바로 거기서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거기 계셔서 내가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에 그곳이 거룩한 땅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께 나의 믿음의 고백으로 나아가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여기 교회당에 와서 한 시간 정도 주일 아침에 하고 가는 게 예배의 전부가 아닙니다. 이것은 공 예배이고, 우리의 예배는 삶 속에 계속됩니다. 하나님이 여기만 계시고 여기서 나가면 안 계십니까?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다고 우리가 믿지 않습니까? 어려운 말로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즉 안 계신 곳이 없으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도 나가면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내 맘대로 삽니다. 그것은 거룩이 아니라는 겁니다. ‘거룩은 내가 있는 그곳에도 하나님이 계시며 그 하나님과 만나기 때문에 이곳이 거룩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예배의 삶입니다.

 

여러분, 내 가정을, 내가 사는 집을 거룩한 곳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러십니다. “네가 서 있는 네 가정, 네 집은 거룩한 땅이다. 네가 사용하는 화장실은 거룩한 땅이다. 네가 자는 침대는 거룩한 땅이다. 네가 있는 거실은 거룩한 땅이다. 네가 있는 부엌은 거룩한 땅이다.” 왜 그러시겠습니까? 거기 하나님이 계시니까, 거기서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니까.

 

특히 여러분이 일하시는 곳을 거룩한 곳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하는 곳에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속이고 정직하지 못하게 일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신데?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바로 그곳이 바로 예배의 자리입니다.

 

내가 일하는 곳은 거룩한 곳이 아니니까 대충 하면 된다.’라고 하고 교회에 와서 여기가 거룩하지.’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진짜 거룩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일하는 곳이 거룩한 땅이다.’라고 외치며 일하시기 바랍니다. 일하는 게 달라집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일, 세상에서 별로 알아주지 않는 일, 별것 아닌 일, 단순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에서 피곤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네가 있는 바로 이곳은 거룩한 땅이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지금 함께 하시니까.

 

더 나아가서 여가생활과 취미 생활도 거룩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거룩해야지.’ 하고, 가정에서 거룩해야지.’ 하고, 일터에서도 거룩하게 해야지. 하나님이 계신데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야지. 하나님의 예배자가 되어야지.’라고 하는데, 취미 생활은 안 거룩한 분들이 많습니다. 거기서 문제가 터지는 겁니다.

 

골프를 좋아해서 골프장에 자주 가십니까? 그렇다면 네가 있는 이 골프장은 거룩한 땅이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골프를 치다가 다른 사람과 스코어 놓고 싸우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신 땅인데? 노래방에 간다면 네가 있는 노래방은 거룩한 땅이다.”라는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래서 나는 주님을 섬깁니다. 역시 주님이 계셔야 해.’라고 하면서 술()을 마십니다.

 

그러나 그런 게 거룩한 것이겠습니까? 그런 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겠습니까?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지, 심지어 취미 생활까지도 거룩한 땅으로 만들 수 있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기도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3.   어떻게 할 때 우리가 서 있는 곳이 거룩한 땅이 되는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곳이 거룩한 곳이란 말입니까? 어떻게 해야 우리가 서 있는 곳이 거룩한 땅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1)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바로 그곳은 거룩한 땅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을 때, 그것을 깨달을 때, 그곳이 거룩한 땅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떠나 도망가서 피할 수 있는 곳, 하나님 앞이 아닌 곳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 세상에 공기가 없는 곳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공기도 어디나 우리와 항상 함께 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디에나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다윗도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139:7)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에게서 피할 수 있는 데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주님이 나를 따라다니시면서 감시하시는 차원이 아니라, 항상 함께하시면서 나를 붙잡아 주시고 보호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있는 모든 곳은 하나님 앞입니다. 심지어 내가 죄를 짓는 곳도 하나님 앞입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겁니다. 하나님 앞이 아닌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우리가 자주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잠깐 잊어버리는 순간 죄에 빠지게 됩니다. 머리로는 하는데 실제로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안 계신 곳이라면 거기서 좀 나쁜 짓을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하나님 앞에 있으면서도 하나님 앞인 줄 모르고 죄를 지으며 나쁜 짓을 하고 있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요즘 한국에 보니까 CCTV(감시카메라)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범죄자를 찾는 데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몰래카메라라는 프로그램도 있어서, 사람들이 카메라가 있는 줄 모르고 엉뚱한 행동을 해서 그걸 보며 함께 웃습니다. 웃을 수 있는 정도라 다행이지, 카메라가 있는 것도 모르고 거기서 진짜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으면 얼마나 창피한 일입니까? 아주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 다 찍히고 있는데 그걸 모르면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그렇게 할 때가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함부로 느낀 대로 말하고 행동할 때도 많고, 수군거리고, 험담하고, 아닌 척하고, 시치미 뚝 떼고 그럽니다. 하나님 앞에 있다는 걸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이 아닌 곳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우리 삶이 거룩한 곳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삶의 어느 순간에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될 때, ‘, 이 자리가 하나님 앞이구나. 나는 여기가 나 혼자 고민하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이 자리가 하나님 앞이구나!’ 하고 깨달을 때, 그곳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땅이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나를 붙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교회에만 계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장 인간적으로 서 있는 자리도 하나님 앞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바로 그 순간 그곳은 거룩한 땅이 되는 겁니다.

 

사업상 거래를 할 때 슬쩍 감추고 속이며 거래하려 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여기 계신데. 여기가 거룩한 땅인데.’라고 깨닫는 순간, 그곳이 하나님 앞이기에 정직하게 할 수밖에 없고 솔직하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나를 거룩하게 하시고, 그곳을 거룩하게 하시고, 내 삶을 거룩하게 하셔서 놀라운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머리로 아는데 실제로는 다르다고 해서는 안 되고,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렇게 행동해야겠습니다.

 

 

2)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깨달아질 때

 

많은 경우 혼자 힘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자수성가를 하신 분들은 신앙을 갖기가 힘듭니다. 다 자기 힘으로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 중에도 솔직한 사람들은 자기가 노력은 했지만 다 자기가 잘해서 된 게 아니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순간순간 정말 될 수 없는 일이 우연하지 않게 일어나는 등의 고리 고리가 연결되어 자기가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 내 힘으로 했다. 전부 내가 한 거다.’라고 합니다. 어떻게 자기가 전부 할 수 있습니까? 세계 경제를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뭔가가 탁탁 맞아떨어지면서 자기가 잘된 것이지, 절대 자기 힘으로 다 된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얼마나 피곤합니까? 혼자 다 해야 하니까 정말 피곤합니다. 피곤하고 앞으로 갈 길도 막막해서 늘 불안과 염려 속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우연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잘될 수도 있고 우연히 안 될 수도 있고, 재수가 좋아 잘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가 서 있는 삶의 자리는 굉장히 불안한 자리가 됩니다. 앞으로 우연히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지금까지는 우연히 잘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우연히 잘 산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어떻게 될지를 모르니까 불안해지는 겁니다. 삶의 자리는 불확실성의 자리입니다.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확실한 게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깨달음이 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이,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된 것이, 내 힘으로 된 것도 아니구나. 우연히 된 것도 아니구나. 재수가 좋아서 된 것도 아니구나. , 이것은 정말 하나님이 인도해주신 것이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그 자리가 바로 거룩한 땅, 하나님을 만나는 곳, 예배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여기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가정을 이루었고,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오며 그래도 어려움을 버티고 이때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30여 년 지금까지 왔습니다.

 

내가 한순간도 버려진 적이 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아는데, 어떻게 그런 자리를 내던지겠습니까? 내가 있는 그곳이 거룩한 땅입니다. 나의 가정도, 나의 일터도, 나의 학교도, 모든 곳이 다 거룩한 땅이 됩니다.

 

 

3)  하나님의 약속과 부르심을 발견할 때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과 부르심을 발견하는 순간 그곳은 거룩한 땅이 됩니다.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포함해서, 세상의 모든 사람 가운데 부르심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은 부르고 계십니다. 거기에 응답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 부르심이 있는 줄도 모르거나, 알아도 헌신하지 않고 따르지 않기 때문에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뿐이지, 부르심(소명, calling)이 없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내실 때부터 이미 부르심은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겠습니까? 물론 부모님을 통해 태어났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우연히 태어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실수로 태어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부르심에 대한 깨달음은 사실 하나님 좋으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뭐가 좋으시겠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깨닫고 헌신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큰 도움이 안 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것이 중요합니다. 부르심의 깨달음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이전에 부끄러움이나 고통의 삶을 이전에 살았더라도,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구나.’ 하고 깨닫는 그 순간부터가 중요한 겁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지 못하니까 지금 있는 곳을 자기가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선택한 자리라고 생각하니까, 아니면 어떤 다른 사람 때문에 여기 왔다고 생각하니까 불만스럽게 되고, 불평과 원망이 생기고, 후회스러운 겁니다. 잘못되었다고 생각되고 짜증이 나는 겁니다.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그 사람은 왜 나를 이리로 이끌었을까?’ 스스로도 후회가 될 수 있고, 그 사람을 생각하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분노하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니까 어쩌다 보니까, 우연하게, 재수가 나빠서, 운이 나빠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깨달음이 없으니까 내가 죄를 지어서 여기 왔구나.’라고 죄 값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일이 잘 풀리면 운이 좋아서, 내가 운수대통해서 이렇게 됐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하면 무슨 거룩한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그게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 하나님이 나를 통해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려고 나를 부르셨구나. 그래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와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가 있는 이 자리는 그냥 온 자리가 아닙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다가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미국도 넓은데 이 콜럼버스에 와서 몇십 년 사시는 분도 계시고 금방 오신 분도 계십니다. 여러 이유 때문에 왔습니다. 그런데 후회하십니까? ‘괜히 여기 와서 썩는구나.’라고 후회하는 분도 가끔 있고 자꾸 눈을 다른 데로 돌리기도 합니다. 또는 그 인간이 나를 여기로 끌어서 내가 요 모양 요꼴이 됐다.’라고 원망만 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혹시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거나 어떤 사람이 영향을 미쳐서 내가 여기 와 있다 할지라도, 결코 실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뭔가 뜻이 있으셔서 지금 이 자리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순간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바로 Holy Place, Holy Land, 거룩한 땅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가 이제 펼쳐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 가정이든 교회이든 일터이든 학교이든, 또 친구나 사람을 만나는 곳 어디든지 그곳이 거룩한 땅이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됩니다. 그래서 예배의 자리가 됩니다. 그곳이 좋은 곳만이 아니라 너무 힘들다 할지라도,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그러한 곳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이고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분명히 일어나게 됩니다.

 

 

[나가는 말]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다.” 이 말씀은 모세에게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삶을 통해 아름다운 일을 하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아는 모든 자녀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과 저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입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가정은 거룩한 땅이니. 네 일터는 거룩한 땅이니. 네 학교는 거룩한 땅이니.”

 

여러분, 내가 서 있는 곳이 거룩한 곳이라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80년 동안 헤맸던 모세 같은 이야기가 우리 삶에도 일어나는 겁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실패하고 무너진 이야기, ‘나는 억울하게 당했다.’라고 하면서 절망하고 헤매는 허무의 스토리, 이런 것이 이집트 왕궁에서 모세의 40년이고 광야에서의 40년이었습니다.

 

일이 너무 잘 풀리고 돈도 잘 벌리고 모든 것이 잘되고 아주 달콤한 순간에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선 이곳이 거룩한 땅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다.’ 그렇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잘되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허무한 땅이 되고 맙니다. 허무밖에 남는 게 없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다 때려치우고 싶다. 다 팽개치고 싶다. 도망가고 싶다. 부숴 버리고 싶다.’라고 할 때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외로울 때나 패배했다고 생각될 때, 그때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선 이 자리가 거룩한 땅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금 내가 서 있는 그곳이 거룩한 땅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단순합니다. 신을 벗으면 됩니다. 신을 벗으라고 하시니까 벗으면 됩니다. 어떤 신입니까? 나의 감정, 나의 생각, 나의 판단, 나의 지식, 나의 느낌이라는 익숙한 신을 벗는 것입니다.

 

또 내 자존심을 벗어버리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자존심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에게는 중요할지 몰라도, 남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또 뭔가를 자꾸 기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기대치도 벗어버리는 겁니다.

 

다 벗고 맨발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겁니다. 아무 선입견이나 판단 없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냥 하나님을 예배하는 겁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제가 하는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나아가는 것이 거룩한 땅에서 예배하는 자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제 내 삶에서 어떻게 일하실지, 그때 펼쳐지는 것이 거룩한 땅의 역사가 됩니다. 2023년 새해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이 한 해 동안 우리 모두 거룩한 시간을 보낼 뿐만 아니라, 매일매일 거룩한 땅에 서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의 신을 벗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며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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