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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329일 수요예배

누가 나의 왕인가 12

다윗: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물맷돌을 던지라

(사무엘상 1741~51)

 

[들어가는 말]

 

우리는 종종 일이 잘 풀린다거나 일이 잘 안 풀린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만약 일이 잘 안 풀리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하는 걸까요?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해서 그 뜻을 구하는 겁니까? 아니면 내가 하는 일이 잘 안 풀리니까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까?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과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 중 우리는 무엇을 더 구합니까? 솔직히 자기 뜻을 구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묻는 가운데 내 삶의 주도권을 정말로 누가 쥐고 있는지, 즉 내 삶의 진짜 왕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뜻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뜻이란 우리가 우겨서 얻어지는 결과를 말합니다.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를 들어 싱글 청년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뜻일 때가 많습니다. 이런 기도는 보통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이 하게 됩니다. 어떤 경우 하나님은 떼쓰는 기도라도 들어주시지만,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일부러 악한 길을 가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가기 위해 하나님께 떼를 쓰는 것은 그와 비슷합니다.

 

어느 가정에서 다 자란 딸이 친구가 피아노를 잘 치는 것을 부러워하며 아빠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빠, 어렸을 때 저를 때려서라도 피아노를 가르치지 왜 안 가르쳤어요?” “얘야, 그때는 네가 아무리 하라고 해도 안 하겠다고 하며 엉엉 우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지.” 우리는 종종 비슷한 질문을 하나님께 합니다. “하나님, 저를 쳐서라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시지 왜 그냥 놔두셨어요?” 사실은 우리가 말을 안 들으니까 그냥 놓아두실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분의 뜻이 내 삶에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합니다.

 

이렇듯 순종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뜻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뜻은 순종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파도타기와 같습니다. 파도를 타는 사람은 바다의 흐름에 몸을 맡깁니다. 자기가 직접 파도를 만들 수는 없지만, 만들어진 파도가 몰려올 때 거기에 올라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뜻에 순종하는 것은 내 삶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뜻에 마치 파도를 타듯 올라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은 순탄한 삶을 살게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뜻에 올라타면 기적을 보게 됩니다.

 

진정한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우겨서 힘들고 힘겹게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일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삶은 진정한 믿음에 대해 우리에게 놀라운 깨달음을 줍니다.

 

 

1.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것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는데, 싸우겠다는 것은 그의 의지적인 행동입니다. 그런데 이 의지적인 행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하는 의지적인 행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5)

 

다윗은 골리앗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간다고 말하는데,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끝날 때까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국의 구원파 이단는 왜 이단입니까? 그들이 주장하는 구원론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원파는 사람이 한 번 구원받았으면 이후에는 어떤 행동을 해도 문제가 없고, 그래서 회개할 필요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누군가 계속해서 회개한다면 그것은 곧 구원받지 않은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단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행동과 삶을 하나님의 뜻에 비춰 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한 천국은 죽음 이후의 삶뿐 아니라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 교회사에서 약간 잘못된 것이 1900년대 초반에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천당 가고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천국과 지옥이 죽은 다음에 가는 장소로 머리에 박혔다는 겁니다. 물론 장소도 되지만 단순히 장소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천국은 장소 개념도 있지만 하나님 나라라고 표현하는데,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영역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은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삶을 사는 것이 천국입니다.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생명의 삶> 때도 다루지만, 구원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는 겁니다. ‘받은 구원’, ‘받는 구원’, ‘받을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그것은 영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갈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는 아직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아 가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혼의 구원입니다. 혼은 soul, 즉 지, , 의입니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과 의지적으로 원하는 것에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할 때는 받을 구원’, 즉 몸까지 변화되는 몸의 구원입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하면 칭의, 성화, 영화입니다. 이 셋은 같이 가는 것이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의 삶은 오늘 이곳의 삶과 죽음 너머의 삶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윗의 삶이 그랬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 역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실 때 진정한 예배가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때 우리가 진정한 예배를 드린 것이고, 진정한 믿음의 자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삶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원받았으니까 내 맘대로 살겠다는 것은 진짜 믿는 게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정말로 영의 구원을 받았는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성령을 받아서, 잘못 가면 성령님이 찔러주셔서 돌아오게 되는데, 그렇지 않고 계속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고 한다면 정말 믿은 것인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구원받았기 때문에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46-47)

 

이처럼 다윗의 믿음은 소년 시절부터 놀라웠는데, 사실 그가 역사적으로 위대한 왕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알았을 때 바로 돌이켜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던 모습입니다.

 

사울도 처음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을 때는 겸손했지만, 잘못했을 때 돌이키며 회개하지 않고 그저 변명하기에 급급했고 오히려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다가 망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 비하면 보잘것없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했기에 하나님의 보호와 통치를 받아 놀라운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중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사울처럼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을 고집하면 회개할 수도 없고 하나님께 돌아갈 수도 없지만,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을 묻고 또 물을 때 우리는 언제든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하나님이 오늘 너를 나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네 목을 베고 네 군대를 쳐서 그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의 밥이 되게 하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향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결코 자기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자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줄 믿고 큰소리치는 것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그야말로 더 이상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참담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기대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세우시며 인도하실 줄로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소망이 없다면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복권 당첨 같은 대박으로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대박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대로 다 이뤄지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의 신념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날 때 우리 삶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2.   맹목적인 믿음을 버리고 실력을 갖추라

 

우리는 흔히 기도를 많이 하면 믿음이 좋은 줄로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는 데살로니가전서 517절 말씀은 오래, 많이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 늘 함께 교제하라는 뜻입니다.

 

매일 새벽기도하고 철야기도하고 금식기도하고 틈만 나면 기도하더라도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종교적 행위를 한 것일 뿐이지 믿음의 성숙을 이룬 것이 아닙니다. 자기 신념에 따라 기도하거나 자기 욕심을 따라 기도하고 있다면, 기도는 많이 하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전혀 살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믿음과 상관없는 기도입니다.

 

다윗은 지금까지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진정한 왕으로 꼽는 사람이며, 많은 크리스천들이 믿음의 모델로 삼는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윗은 언제 어디서든 자기 삶의 자리에서 주 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47) 하고 선포했습니다. 다윗에게 예배당은 믿음의 선포를 한 바로 그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믿음을 가지고 물맷돌을 던졌더니 골리앗이 쓰러져 죽었다는 사실은 그렇게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은 골리앗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4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5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6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삼상 17:4-7)

 

이 말씀을 요즘 사용하는 단위로 환산하면 골리앗은 키가 280~290센티미터 정도나 되고, 그의 몸을 두른 갑옷의 무게는 약 57킬로그램(126파운드)이며, 그가 든 놋 단창의 창날만 7킬로그램(15파운드) 정도가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용사로서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나 더 컸던 사울도 감히 나서지 못할 만큼 골리앗은 엄청난 위압감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골리앗과 맞서 어린 다윗이 믿음으로 싸워 이겼다고 단순히 생각한다면, 그것은 성경을 너무 쉽게 읽는 게 됩니다.

 

다윗은 믿음만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그에 걸맞은 실력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골리앗의 체구가 거대하니까 다윗이 아무 데나 물맷돌을 던져서 맞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골리앗의 온몸은 갑옷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물맷돌을 아무리 기술적으로 세게 던져도 그 두꺼운 쇠갑옷을 뚫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골리앗을 뒤덮은 갑옷이 가리지 못하는 유일한 지점을 주목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얼굴이고 그것도 이마였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실력입니다.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삼상 17:40)

 

“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48-49)

 

다윗은 그냥 가만히 서 있다가 골리앗을 향해 돌을 던진 것이 아닙니다. 그는 골리앗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면서 돌을 던졌습니다. 그런데도 정확히 명중했습니다. 다윗이 물맷돌을 다루는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다윗이 사울 앞에 가서 자기가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다고 하니까 사울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때 다윗이 사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34 임금님의 종인 저는 아버지의 양 떼를 지켜 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양 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 가면, 35 저는 곧바로 뒤쫓아가서 그놈을 쳐 죽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어 살려내곤 하였습니다. 그 짐승이 저에게 덤벼들면, 그 턱수염을 붙잡고 때려죽였습니다. 36 제가 이렇게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으니, 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그 꼴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자를 어찌 그대로 두겠습니까? 37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 주신 주님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 (삼상 17:34-37, 새번역)

 

다윗이 싸울 때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대신 싸워 주시고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청소년 나이에 불과한 다윗이 막대기만 가지고 사자와 곰을 물리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물맷돌을 던져서 맹수의 급소를 정확히 때리고 맞혀서 물리쳤던 것입니다. 급소를 맞춘 후 쓰러지면 가서 칼로 찔러 죽인 겁니다.

 

사사기에도 물맷돌 부대가 등장합니다. 하나도 빗나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베냐민 지파 물맷돌 부대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고대 전쟁에서 물맷돌을 사용하여 싸우는 용사들이 많았는데, 다윗은 그런 군인들처럼 평소에 엄청난 훈련을 했던 겁니다.

 

이 사건 이후에 사울에게 악령이 임해서 수금 타는 사람을 구하려고 할 때 어떤 사람이 이새의 아들 다윗이 있는데 그는 수금을 잘 타며 용사다.’라고 합니다.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가 활과 창을 잘 다루는 용사라기보다 물맷돌 용사였다는 겁니다.

 

곰이나 사자 같은 짐승은 움직임이 얼마나 불규칙합니까? 사람처럼 그냥 오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오고 또 워낙 빠르기에 상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런 짐승을 상대로 평소에 싸우며 훈련했으니까, 골리앗은 큰 사람이 오기 때문에 이마를 맞추는 것이 우연하게 된 것이 아니라 평소에 단련된 실력으로 맞춘 겁니다. 사람은 직선으로 오니까 짐승보다 맞추기에 더 나았을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이 같은 실력이 있었기에 골리앗 앞에 나갈 때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믿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쌓은 물맷돌 실력이 있는데, 제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이 실력으로 나가서 싸우겠습니다. 저를 이끌어주십시오.” 그러니까 다윗은 아무 실력도 없으면서 전쟁은 주님께 속한 것이니 무엇을 어떻게 하든 무조건 내가 이길 것이다.’라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나아간 게 아닙니다. 허풍을 떤 게 아닙니다.

 

어떻게 다윗이 골리앗 같은 엄청난 장수를 이기는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이 갑자기 내려오셔서 대신 싸워주셔서가 아니라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믿음과 함께 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뭔가를 하면 하나님이 갑자기 내려오셔서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실력을 갖춘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사무엘상 17장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어린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이긴 기적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실력을 쌓기 위해 평소에 열심히 훈련한 다윗의 믿음의 실력입니다. 이 싸움이 있기 훨씬 전부터 하나님은 벌판에서 양을 치던 다윗을 훈련하셨습니다. 맹수들을 보내시면서 실력을 갖추게 하신 겁니다. 오늘의 싸움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미리 다윗을 준비하셨고, 마침내 때가 되어 다윗은 쓰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준비된 사람에게 강력한 믿음이 더해질 때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우리의 믿음 위에다 믿음대로 살아가는 삶이 더해질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대부분의 교회와 크리스천에게 이 같은 믿음의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윗은 맹목적인 믿음만을 외치며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 아래 살아오면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뛰어난 실력으로 무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아감으로써 승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 하나님의 역사를 펼칠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 삶에서 펼쳐지도록 우리는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실력으로 무장한 믿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믿음 위에 실력이 더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에게 요행을 가르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믿음을 가르치며 믿음대로 살아가는 실력을 갖추도록 가르쳐야겠습니다. 믿음대로 살려면 힘들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실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렇게 준비될 때 하나님의 계획이 그들의 삶 가운데 펼쳐질 것입니다.

 

이전에 교회 청년들을 보면 정말 믿음이 신실하고 순종 잘하고 봉사도 잘하는 청년들은 믿음이 좋은데 세상적으로 실력이 떨어집니다. 또 어떤 청년들은 실력은 너무 좋고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는데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 위에 실력을 갖춘 사람이 필요한 때입니다.

 

 

3.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물맷돌

 

물맷돌은 골리앗이 갖고 있던 창과 검과 방패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물맷돌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자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골리앗은 엄청난 칼과 창을 들고 다윗 앞에 나왔지만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전쟁은 무기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50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51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50-51)

 

전쟁을 준비하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 전쟁에서 우리를 승리로 이끌 도구를 준비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기도하고 믿음의 실력을 쌓되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물맷돌이 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가진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찮은 물맷돌이라도 하나님이 사용하시기만 하면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지금 세상이 너무 악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썩었다고 불평만 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썩은 것을 거룩하게 만들 책임이 있습니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그 속으로 들어가 부패하고 더러워진 것을 거룩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용하신 물맷돌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하고, 특히 우리 자녀가 실력을 갖춘 물맷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 가운데서 부패한 세상을 바꿀 정치인이 나와야 하고, 바른 경제를 세우는 경제인이 나와야 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일으킬 일꾼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믿음 안에서 실력을 갖춘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세상을 거룩하게 바꿔 가야 합니다.

 

다윗은 살면서 치명적인 실수도 저질렀고 돌이킬 수 없는 죄도 지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중에도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첫 마음을 잊어버리고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지 않았기에 버림을 받았으나, 다윗은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준비시키신 나의 물맷돌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보잘것없다고 무시하지 말고, 하나님이 준비시키신 물맷돌로 실력을 키우시기를 바랍니다. 준비된 사람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세상을 향해 던져져서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물맷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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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 예후: 위선적인 신앙을 버리라 (왕하 10:28-31) - 누가 나의 왕인가 6 (2/15/23) admin_p 2023.02.16 302
363 아합: 하나님 앞에서 머리 굴리지 말라 (왕상 21:17-29) admin_p 2023.02.09 206
362 아사: 하나님을 놓고 대신 붙잡을 것은 없다 (대하 16:1-14) - 누가 나의 왕인가 4 (2/1/23) admin_p 2023.02.02 237
361 여로보암: 자기 마음대로 하는 열심ㅁ을 버리라 (왕상 12:25-33) - 누가 나의 왕인가 3 (1/25/23) admin_p 2023.01.26 205
360 솔로몬: 세상에 보험 들지 말라 (왕상 11:1-11) - <누가 나의 왕인가> 2 (1/11/23) admin_p 2023.01.12 387
359 사울: 자기를 위한 기념비를 무너뜨려라 (삼상 15:7-23) - 누가 나의 왕인가? 1 (1/4/23) admin_p 2023.01.05 548
358 어린양의 혼인 잔치 (계 19:1-10) - 송년 메시지/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27 (12/31/22) admin_p 2023.01.01 249
357 거짓 교사를 분별하라 (유 1:1-10)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26 (12/14/22) admin_p 2022.12.15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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