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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일 수요예배

누가 나의 왕인가? 2

솔로몬: 세상에 보험 들지 말라

(열왕기상 111~11)

 

[들어가는 말]

 

솔로몬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이 있다면 신앙생활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것입니다. 잘 아는 대로 솔로몬에게서는 배울 점이 참 많습니다. 솔로몬은 왕에 오른 뒤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소원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나라와 백성을 잘 다스리는 지혜를 달라고 간구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러던 솔로몬이 어느 순간부터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9a)

 

유진 피터슨이 번역한 <메시지> 성경에는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버렸으므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사실을 배웁니다. 솔로몬뿐 아니라 우리도 얼마든지 마음을 돌려 하나님을 버리고 떠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1.   인생의 보험을 드는 이유

 

솔로몬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이 이제껏 가져 보지 못한 부와 권력을 가졌습니다. 넘쳐 나는 부와 권력을 손에 쥔 솔로몬에게 어느 순간 이 엄청난 복과 은혜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사람들은 불투명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하여 보험을 듭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의료보험이고 또 생명보험, 화재보험, 홍수보험 등 많습니다. 실제 보험을 드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 때문에 세상에 보험을 들어놓는 식이라면 문제입니다. 솔로몬은 엄청난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보험을 들었습니다. 주변 왕국들과 맺은 정략적인 혼인 관계가 그가 들어놓은 보험이었습니다.

 

“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2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1-3)

 

솔로몬이 이렇게 보험을 든 것은 아무래도 하나님 한 분만 믿는 것으로는 불안하고 뭔가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이방 여인들과 정략결혼을 한 것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그런데 더 큰 잘못은 그가 영적으로 양다리를 걸쳤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솔로몬은 결코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여러 다른 민족들과 통혼해서 그들의 힘도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주변 나라인 그들과 정략결혼을 통해 좋은 관계를 맺으면 자기와 이스라엘에게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미래를 잘 준비해야 하고 계획도 세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으로는 불안하며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데에 보험을 들어놓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길로 가는 겁니다. 보험은 우리 삶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그것이 우상이 되면서 이미 하나님을 떠난 것이 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여 지키려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7년 동안 짓고(왕상 6), 똑같은 양식으로 자기를 위한 궁과 애굽에서 온 바로의 딸을 위한 궁도 지었습니다.

 

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은 그 주랑 뒤 다른 뜰에 있으니 그 양식이 동일하며 솔로몬이 또 그가 장가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이 주랑과 같더라” (왕상 7:8)

 

하나님은 다윗에게도 허락하지 않으셨던 성전을 솔로몬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러니까 성전을 짓는 일은 솔로몬에게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만한 재력과 권력이 뒷받침되었기에 성전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 영광스러운 일을 하면서 또 다른 일도 합니다. 자기와 왕비인 바로의 딸을 위하여도 건축을 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다른 뜰에 왕궁을 짓고, 바로의 딸을 위해서도 같은 궁전을 지어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왕궁을 주랑(재판정) 뒤에 있는 다른 뜰에 짓고, 또 눈에 잘 띄지 않는 왕궁 깊숙한 곳에 바로의 딸을 위한 궁을 지어서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을 완공한 솔로몬을 칭찬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다른 뜰에 또 다른 왕궁을 세운 솔로몬의 변질된 모습을 보셨습니다. 왕궁은 보였겠지만 바로의 딸의 궁은 잘 안 보이는 데 지었으니 사람들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솔로몬이 잘 보이는 성전을 지었다고 칭찬했겠지만, 하나님은 그의 변질된 마음을 보셨습니다.

 

바람 난 사람은 자기 배우자에게 평소보다 더 잘한다고 합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다리를 걸치는 사람들은 참 피곤하게 삽니다. 한 사람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으니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하지만 신앙이 순전한 사람은 삶도 단순합니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어느 때부터 삶이 복잡해졌다면, 나의 신앙이 변질된 게 아닌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위대한 왕궁을 무너뜨리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부패인 경우가 많습니다. 고대 전쟁 때 성이 함락되는 것도, 외부 공격에 의한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스파이가 잠입해서 성 내부의 군인을 매수하여 성문을 열게 해서 함락시킨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무너지는 것도 외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에 의해 무너질 때가 많습니다.

 

솔로몬도 처음에는 아무도 모르게 슬쩍 양다리를 걸친 것으로 끝날 줄 알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솔로몬의 노년의 모습이 어땠는지 알려 줍니다.

 

“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8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7-8)

 

처음에는 바로의 딸을 위해서만 집을 짓더니 이제는 그의 모든 후궁을 위해서도 산당을 지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둘러싸고 수백에서 수천 개에 이르는 산당을 건축한 것입니다. 참 무섭습니다. 처음에 양다리였던 것이 문어발도 모자란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타락한 것입니까?

 

그것은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자기가 현실적으로 주변 나라들의 공주들과 결혼해서 그들이 자기들의 우상을 들여오기는 하지만, 자기는 결코 그런 우상에게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늙어도 자기는 늙지 않는 줄 착각한 겁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늙으면 치매가 오거나 약해지지만, 자기는 좋은 것 먹고 운동하며 잘 준비했으니까 늙어도 건강하고 괜찮을 거라고 자신만만했던 겁니다. 그토록 지혜로운 사람이 그토록 어리석은 짓을 했습니다.

 

“4 솔로몬이 늙으니, 그 아내들이 솔로몬을 꾀어서,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다. 그래서 솔로몬은, 자기의 주 하나님께 그의 아버지 다윗만큼은 완전하지 못하였다. 5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암몬 사람의 우상 밀곰을 따라가서, 6 주님 앞에서 악행을 하였다. 그의 아버지 다윗은 주님께 충성을 다하였으나, 솔로몬은 그러하지 못하였다.” (4-6, 새번역)

 

, 젊었을 때는 컨트롤 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여인들이 아무리 졸라도 어느 선에서 막고 못하게 하며 컨트롤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늙으니까 마음이 약해졌고 여인들을 못 당해냈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솔로몬이 자기의 주 하나님께 그의 아버지 다윗만큼은 완전하지 못하였다.”(4)라는 말씀을 보면, 그는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아버지 다윗 정도로 신실한 믿음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그의 외국인 아내들이 하자는 대로, 그들의 신들에게 향을 피우며, 제사를 지냈다.” (8, 새번역)

 

이것 보십시오. 처음에는 이방 여인들이 하겠다는 것을 허락해주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아예 그들과 함께 가서 우상숭배에 참여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는 일도 잘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체에서, 학교에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양다리를 걸치고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삶의 주인임을 인정하며 하는 일이 되어야 잘못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2.   외롭지 말고 고독하라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의 공통점은 통일 이스라엘 왕국 시대의 왕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왕국이 분열되고 맙니다.

 

“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9-10)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솔로몬에게 나타나 명령하고 경고하셨으나 솔로몬은 듣지 않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에게서 중요한 교훈을 배웁니다. 믿음의 시작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끝이 좋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결과만 좋으면 다 되는 게 아니라, 크리스천의 신앙생활은 시작도 좋고 과정도 좋고 끝도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 끝이 좋으려면 마무리를 잘해야 합니다.

 

크리스천 리더십 권위자인 스티브 파라(Steve Farrar)의 책 <하나님 사람>에는 1945년 미국 기독교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세 젊은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빌리 그래앰(Billy Graham), 척 템플턴(Chuck Templeton), 브론 클리포드(Bron Clifford)입니다. 이중 우리 귀에 가장 익숙한 사람은 빌리 그래앰이겠지만, 1945년에 세 사람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빌리 그래앰은 셋 중에서 가장 주목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척 템플턴이 설교하는 것을 본 한 신학교 총장은 그를 가리켜 오늘날 미국 전역에서 가장 뛰어난 은사를 가진 설교자다.”라고 극찬했습니다. 템플턴은 빌리 그래앰의 친구로 ‘Youth for Christ’라는 단체를 함께 섬겼으며, 차세대 복음주의의 지도자로 일찌감치 주목받았습니다.

 

브론 클리포드 역시 수 세기에 걸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가장 유능하고 훌륭한 설교자란 평을 받았고,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는 수천 명의 청중이 끝없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사역자였습니다. 심지어 클리포드가 베일러 대학교에서 설교할 때 그곳 총장은 설교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당시 수업 종을 치지 말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5년 후 척 템플턴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해설가와 신문 논설위원으로 직업을 옮기더니, 결국 신앙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브론 클리포드도 탐욕스럽게 술을 좋아하고 돈을 탐하다가 가족을 남겨 둔 채 서른다섯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결국 1945년에 혜성처럼 등장한 세 명의 젊은이 중 빌리 그래앰 한 사람만 끝까지 그리스도를 위한 사역의 길을 걷다가 201829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사역했음에도 아무 스캔들 없이 끝냈다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20대에 사역을 시작한 사람 중에 60대까지 그 길을 가는 사람은 불과 1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도 몇 년 더 버티면(?) 10% 안에 들어가게 되니까 그렇게 잘되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어떻게 시작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끝마치는가는 더욱 중요합니다. 비록 지금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 해도 마지막에 떠나버린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역도 처음에는 잘하다가 얼마 안 되어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정말 두려운 마음으로 이 교훈을 마음에 새겨야겠습니다.

 

세상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그 성공을 지키기 위해 애쓰면서 외로움과 싸웁니다. 솔로몬 역시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으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세상적인 방법에 의지하다 보니까 그로 인해 외로움이 찾아왔습니다.

 

천주교 사제이자 영성가였던 헨리 나우웬(Henri Nouwen, 1932-1996)외로움이란 불안한 감정이고, 고독함이란 평안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외로움(loneliness)과 고독(solitude)은 분명히 다릅니다. ‘경건의 삶에서 바로 이 고독의 훈련을 합니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다면 미성숙하기 때문이고, 고독을 즐길 수 있다면 성숙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성장하면 삶의 고독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다가 외로움을 느낀다면, 그래서 그 외로움을 세상적 방법으로 해소해보려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는 표시임을 알아야 합니다. 삶의 위기 가운데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독하게 설 수 있어야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된 이후 새벽기도를 오래 해오고 있는데, 다른 교회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이전에는 새벽기도가 주로 예배였습니다. 그래서 이름은 새벽기도인데 실제로는 새벽예배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5, 10분이면 직장이나 사업체로 교인들이 다 떠나가 버립니다. 그런데 다른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들처럼 우리도 주중에는 새벽에 예배 없이 개인 기도의 시간을 갖게 하고, 토요일에만 새벽예배를 하는 것으로 바꾼 지 오래됐습니다.

 

저는 보통 6시쯤 나와서 2시간 정도 새벽기도를 하는데, 솔직히 피곤할 때도 있고 졸릴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가만히 두 시간 동안 있는 그 시간이 참 귀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특별한 기도 내용이 없더라도 그냥 주님 앞에서 아버지~” 하면서 홀로 가만히 있는 그 시간이 참 좋습니다. 그것은 분주하게 사역하는 동안 절대 맛볼 수 없는 고독한 기쁨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지켜 주는 것은, 하나님의 일로 분주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일상을 잠시 떠나 하나님 앞에서 고독한 시간을 갖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타인의 강요 때문에 독방에 들어가면 그곳은 감옥이 되고, 내가 선택해서 독방에 들어가면 그곳은 수도원이 된다.” 강요로 들어간 독방은 외로움이고, 내가 선택해서 들어간 독방은 고독입니다. 그러므로 고독은 복된 시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독하게, 사실은 홀로 서 있는 그 시간이 복입니다. 그러니까 이 복되고 좋은 영적 고독의 시간을 별로 안 하고 그저 5, 10분 만에 그냥 나가버리지 마시고, 최소 1시간 새벽기도를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기쁨을 경험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했다면 부와 권력을 누리는 가운데에도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함을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누린 부와 권력으로 오히려 불안과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고독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이 없으면 외로움을 느끼며 불순종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사랑의 경고를 들으라

 

“9 이와 같이, 솔로몬의 마음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떠났으므로,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진노하셨다. 주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10 다른 신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솔로몬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9-10, 새번역)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너는 다른 신을 따르면 안 된다.’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나만 의지해라. 내가 너를 책임져 주겠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고독하게 마주하지 않으니까 솔로몬은 외로워졌고 불안해졌습니다.

 

미래에 대해 두려움이 있으십니까? 불안하고 걱정되십니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올 때 다른 것에 세상의 보험을 들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고독하게 서 보시기 바랍니다. 새벽기도를 하는 겁니다. 말씀 묵상을 하는 겁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붙드는 겁니다.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서 미래의 삶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사실 가난할 때는 별로 두려움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먹고살 만해졌을 때, 어느 정도 쌓아놓았을 때, 어느 정도 사회에서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 자녀가 잘될 때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갑자기 이 모든 것이 없어지면 어떡하지? 갑자기 내 자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과 불안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바라보며 의지하게 되면 불순종하게 되고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솔로몬에게 나타나 두 번씩이나 경고하신 하나님은 우리 삶에도 나타나 경고하십니다. 솔로몬이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리며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의 경고가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11)

 

하나님의 이러한 경고는 사실 솔로몬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그는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 사실을 잊어버릴 때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것을 잃어버리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흔드십니다. 그래서 결국 돌이키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고 우상숭배의 길로 가니까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있던 나라들이 독립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솔로몬이 신임하던 장군 여로보암이 그를 대적하게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때 솔로몬이 돌이켰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불순종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그러한 경고는 협박이 아니라 또 다른 은혜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경고하실 때 잘 듣고 돌이키며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결국 나중에 그 은혜를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1:1-3)

 

가장 찬란한 인생을 살았으나 말년에 하나님을 떠났던 솔로몬의 마지막 고백입니다. 인생의 성공을 놓치지 않으려고 걸쳤던 양다리가 그의 인생을 허무하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보니까 결론은 허무였다는 겁니다.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허무함은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할 때 찾아옵니다.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가장 확실한 보험인 하나님을 끝까지 붙잡지 않고 더 시시한 보험을 붙잡는 것입니다. 최고의 혜택을 제공하는 보험이 있는데, 그것을 버리고 훨씬 시시한 보험을 산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솔로몬이 한 일이 바로 그런 것이었고, 우리도 그럴 때가 많습니다.

 

이 땅에 심어 놓은 수많은 인생의 보험이 우리를 붙잡아 주지 못합니다. 그것들이 오히려 우리 삶을 무너뜨리고 황폐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붙들 오직 한 가지는 하나님입니다. 양다리를 걸치고 살다가 결국 그것을 깨달은 솔로몬의 마지막 고백과 권면을 보십시오.

 

“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12:1-2)

 

곤고한 날이 오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 삶의 은혜입니다. 그 경고가 지나면 곤고한 날이 오게 되는데,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한 지금의 경고는 하나님의 가장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할 말은 다 하였다. 결론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의무다.” (12:13, 새번역)

 

인생의 황금기는 우리가 복을 누릴 때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을 끝까지 바라보는 때임을 기억하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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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 (요이 1:1-13)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24 (11/30/22) admin_p 2022.12.01 140
354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같다 (요일 4:16-21)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23 (11/23/22) admin_p 2022.11.24 180
353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 (벧후 1:1-11)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11/16/22) admin_p 2022.11.17 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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