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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614일 수요예배

나는 믿는다 사도신경 9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

(데살로니가전서 413~18)

 

[들어가는 말]

 

사도신경, 즉 사도들의 신앙 고백을 따라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전에도 살펴보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성도의 아름다운 연합을 위해서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둘째, 미혹하는 자들, 즉 이단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에는 언제나 이 두 가지 목적이 분명히 담겨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고 균형을 이루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이단과 영적으로 악한 세력과 싸워 이겨야 한다고 해서 항상 날카롭게만 대응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진리를 지키고 대적들과 싸워 이겨야겠다는 생각에 공동체 안에서 서로 판단하고 야단치고 정죄하면서 성도 됨의 아름다움과 신앙생활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을 잘 보여 주는 것이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한 주님의 말씀 가운데 가장 먼저 언급되는 에베소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2:2-3)

 

에베소교회가 이단을 용납하지 않고 마귀의 세력과 싸운 것은 칭찬받을 만했습니다. 속이는 것들의 실체를 드러내고, 그것들과 싸우고, 그 세력들을 용납하지 않고, 싸움이 힘들어도 잘 견디는 등 그 모든 일에 열심을 가지고 부지런했던 신앙인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에베소 교회를 향해 주님께서 책망하신 것이 있습니다.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2:4-5)

 

주님은 에베소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신앙의 감격과 은혜를 잊어버리고, 성도들과 함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는 사랑을 잃어버린 사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무섭게 또 안타깝게 책망하십니다.

 

성도의 아름다운 연합, 그리고 악한 세력과의 치열한 싸움이라는 두 가지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신앙 고백의 이유입니다. 이 두 가지가 우리 신앙에 밸런스를 유지하게 해줍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봐야 할 중요한 고백이 사도신경의 일곱 번째 고백이면서 성자 예수님에 대한 여섯 가지 고백 중 마지막 고백입니다.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이 고백은 주님의 다시 오심, 즉 우리의 신앙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인 재림 신앙에 대한 말씀입니다.

 

 

1.   재림 신앙에 대한 세상의 공격

 

그런데 사도신경의 이 일곱 번째 신앙 고백은 대적의 공격을 비롯해서 이단들이 가장 많이 나온 가장 골치 아픈 내용입니다. 교회의 대적들은 재림 신앙에 대하여 크게 세 가지 면에서 교회를 공격해 왔습니다.

 

1)  재림은 없다는 주장

 

재림이라는 게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재림이 있다면 왜 아직도 예수가 오지 않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속히 온다고 하셨고(3:11),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재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도 하셨으며(24:34), 심지어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볼 자들도 있다고 했는데(16:28), 이렇게 재림이 늦어지고 있으니 결국 재림은 없는 것이 아니냐는 공격들이 초대 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의 신앙 전체를 뒤흔드는 공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재림을 지나치게 강조함

 

많은 이단들이 재림을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하고 현혹합니다. 그 시간과 방법에 대해 잘못된 계시를 가지고 사람들을 속이거나 협박합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이단들 가운데 약 70퍼센트 이상이 이 재림을 왜곡하는 이단이었습니다. 재림에 대한 왜곡은 지난 이천 년 동안 한결같이 먹히는 이단들의 단골 메뉴였습니다.

 

 

3)  재림 예수라고 사칭함

 

재림을 왜곡할 뿐 아니라 심지어 자기가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이단들이 너무 많습니다. 마귀의 능력으로 조그마한 기적이나 신기한 일을 행하고는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하면서 스스로 재림 예수라고 하는 이단 교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짜임이 밝혀지고 또 밝혀져도 계속 재림 예수라고 사칭하는 이들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이것이 사람들에게 계속 먹힌다는 뜻입니다. 영적인 미혹 앞에 인간은 정말 무기력하고 어리석습니다.

 

 

2.   재림 신앙에 관한 다양한 견해

 

외부로부터 온 대적들의 공격 외에도 주님의 재림에 대한 내부적 신학 논쟁 또한 아주 복잡합니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서로 갈등하고 분리되기도 합니다. 주님의 재림, 즉 종말에 대한 신학적인 입장들이 다양한데,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몇 가지 요소들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1)  천년왕국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천 년 동안 왕 노릇할 것이라는 말씀에서 나온 것으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 천년왕국과 어떻게 연관되는가에 따라 다시 세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a) 전천년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전에 있다는 설입니다. 역사적 전천년설, 세대주의 전천년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성도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세대주의 전천년설인데, 이것은 성경적으로 바르지 않습니다.

 

   b) 후천년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후에 있다는 설입니다. 이것은 낙관주의적 관점으로서 현실적으로 볼 때 타당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c) 무천년설: 천년왕국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설입니다. 천년왕국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상이 아닌 영적 세계에서 주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으로서, 개혁주의 신앙에서 가장 많이 지지하는 가설입니다.

 

 

2)  7년 대환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근거로 주님이 재림하실 때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주장입니다.

 

 

3)  휴거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근거한 것으로서, 주님이 재림하실 때 이 땅의 성도들이 공중으로 들림을 받는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을 한자로 휴거’(携擧)라고 부르는데, 성경에 이 단어는 없지만 사람들이 많이 아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7)

 

그런데 ‘7년 대환난휴거도 몇 가지 설로 나누어집니다. 환난 전 휴거설, 환난 후 휴거설, 환난 중간 휴거설, 부분 휴거설, 무 휴거설 등이 있습니다. 그냥 이런 것들이 있다는 정도만 알면 되고, 너무 여기에 심취하거나 한 가지망 주장하려고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논쟁들이기 때문입니다.

 

 

3.   재림 신앙을 고백할 때 주어지는 은혜

 

너무나 중요하면서도 이렇게 골치 아픈 것이 주님의 재림에 대한 신앙 고백인데,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10-11)

 

사도들은 예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시다가 그 자리에서 승천하시는 것을 보았는데, 그때 두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은 가신 그대로 오실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하고 고백하는 가운데 주님의 재림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자들, 또한 주님의 재림을 왜곡하면서 마치 자기들이 어떤 계시를 받은 것처럼 협박하고 미혹하는 자들에 단호하게 맞서 싸웠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사도들과 동일한 고백을 하는 가운데 바로 그런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 고백은 이단이나 대적 마귀와 싸우기 위해서만 고백하는 신앙 고백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은혜이고 우리가 서로 나누어야 할 놀라운 하늘의 축복입니다.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살전 4:16-18)

 

그렇습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주님의 재림을 고백하는 신앙은 성도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최고의 위로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험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믿음의 사람이기에 편한 길이나 안락한 길로 가지 않고 주님을 따라 좁은 길을 걸어가면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로 갑니다. 그것이 주님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우리이기에 주님께서 때가 되면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은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이 감사와 감격의 순간이 됩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가 주님을 뵙고 그분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정말 눈물 나는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찬송가 92<위에 계신 나의 친구>에서 4절 가사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날이 와 황금 길에 그의 영광 바라보며

     그의 팔로 날 안을 때 만나 보리 나의 친구

     사랑하는 나의 친구 늘 가까이 계시도다

     그의 사랑 놀랍도다 변함없는 나의 친구

 

주님을 만나 뵙는 날 주님의 은혜의 품에 안기며 그동안 이 땅에서 믿음으로 견뎌 온 시간들을 위로받을 때 서러움이 함께 터져 나오는 것을 고백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매주 예배 때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라고 하는 신앙 고백이 담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은혜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을 다른 말로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그렇게 고백할 때 몇 가지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1)  영적으로 늘 깨어 있게 된다

 

주님이 곧 오셔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기에 우리는 늘 깨어 있게 됩니다. 세상일에 파묻혀 믿음이나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채 정신없이 살다가 주님을 만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세상에서 부끄러운 모습으로 있다가 주님을 뵐 수는 더더욱 없는 일입니다.

 

<생명의 삶> 공부 때도 나누는 이 도령과 성춘향예화가 있습니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서로 사랑하지만, 이 도령의 아버지가 한양으로 가게 되어 이 도령도 따라가느라 춘향이와 헤어집니다. 그 후 변학도라는 사또가 부임했는데, 춘향이에게 수청을 들라고 요구하고, 춘향이는 거부하다가 옥에 갇힙니다.

 

옥에 갇혀서 목에 칼을 쓰고 매도 맞으며 고초를 겪는데, 어느 날 암행어사가 출두하여 변 사또를 처벌하고 그 앞에 춘향이가 끌려갑니다. 암행어사가 죄인은 고개를 들라.” 해서 보니까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얼굴을 쓱 보여주니 그동안 그토록 기다리던 이 도령이 바로 그 암행어사였습니다.

 

만약 춘향이가 이 도령이 언제 올지 기약도 없으니 일단 변 사또 말을 듣고 같이 즐기자고 하며 술판을 벌이고 신나게 놀아났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암행어사 출두야!” 했을 때 그 앞에 가서 얼마나 창피했겠습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이 도령을 향한 자신의 절개를 지키고 변 사또의 요구를 거부하느라 고초를 당하고 몸도 상했지만, 그랬기에 암행어사로 온 이 도령과 다시 만났을 때 엄청난 감격이 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라고 하는 이 신앙 고백은 깨어 있는 영성의 고백이며, 결코 세상에서의 삶에 파묻히지 않는 참된 신앙의 고백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겠다고 하여 예배만 살짝 갔다 와서 자기 마음대로 쾌락을 추구하며 살다가 갑자기 주님이 오시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서 멸망했는데, 거기 있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하고 있던 모양대로 용암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참 부끄러운 모습으로 죽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음란한 모습으로 죽은 사람도 있고, 마지막 순간이 언제 올지 모르고 쾌락을 즐기다가 마지막을 맞이한 겁니다.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오실 텐데, 마지막을 부끄러운 모습으로 있다고 맞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라는 고백만 제대로 하고 살아도 부끄럽게 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 수 있게 됩니다.

 

 

2)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받게 된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신다는 것은 위로입니다. 우리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는 하늘의 위로입니다. 그리고 능력입니다. 잘못 가려고 할 때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기억하면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해주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수차례에 걸쳐 자신이 다시 올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단지 깨어 있으라고 하시거나 조심하라고 경계하시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더 강력한 이유는 내가 다시 오니까 힘을 내라. 포기하지 말고 감당해라. 너의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를 알아줄 것이다.’라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짜 이유입니다. 그렇기에 종말론적인 신앙은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며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해줍니다.

 

 

3)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것을 결단하게 된다

 

찬양사역자이자 부흥한국대표를 맡고 있는 고형원 전도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유명한 곡들을 많이 만드신 분입니다. <비전>, <부흥>, <부흥 2000>, <마라나타>, <물이 바다 덮음같이>, <모든 열방 주 볼 때까지>,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등 아주 많습니다. 수년 전 아르헨티나에서 열렸던 남미 코스타 집회 때 같이 참석했던 목사님에게 그분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제 마음의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땅끝에서 주님을 뵙는 것입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는데, 편한 곳, 안락한 곳에서 다시 오신 주님을 뵙는 것이 아니라 정말 땅끝에서 주님을 뵙고 싶습니다. 이곳이 남미 아르헨티나이고 한국의 정 반대쪽이어서 더욱 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땅끝에서 주님을 뵙되 그냥 빈손이 아니라, 주님께 드릴 열매를 가득 안고 주님을 뵙고 싶습니다.”

 

여러분, 그분의 이런 고백이 바로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고백을 할 때마다 믿음의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저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면서, 빈손이 아니라 열매를 가지고 주님을 뵙겠습니다. 편한 곳, 안락한 곳이 아니라 정말 땅끝에서 주님을 뵙겠습니다. 이상한 짓,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다가 주님을 뵙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다가 주님을 뵙겠습니다.’ 하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시 한번 결단하고, 다시 한번 힘을 얻는 것이 진짜 종말론적인 신앙입니다. 재림 신앙은 바로 종말론적인 신앙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치열하게 싸워 이기는 신앙인 동시에,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생생하게 누리고 나누는 신앙입니다.

 

우리 모두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라는 고백을 드릴 때마다 그렇게 강력하고 아름다운 은혜를 체험하며 믿음의 결단을 선포하고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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