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특별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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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www.youtube.com/live/57QhXZWGmpE?si=oAEtzZyBVoezeoBA&t=140

 

 

2023823일 수요예배

우리는 왜 일하는가 2

무슨 일이 가장 중요한가?

(마태복음 625~34)

 

[들어가는 말]

 

휴가 후유증이란 말이 있습니다. 여름휴가를 다녀온 뒤에 일에 의욕을 잃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월요병이라는 게 있어서, 금요일 오후에 살아난 몸과 마음이 주일 저녁쯤이면 다시 무거워져서 월요일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주말 이틀을 쉬어도 월요일에 출근하기가 힘든데, 일주일이나 열흘 휴가를 다녀온 뒤에는 얼마나 더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월요병이나 휴가 후유증이 왜 생깁니까? 휴가 기간이 짧아서가 아니고, 휴식이 부족해서도 아니라, 일이 기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하는 일이 재미없고 의미도 없다면, 매일 아침 출근하는 것에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심정이 아니겠습니까?

 

일이 싫어진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일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직접 내게 주신 천직이다. 나는 이 일을 하다가 죽어도 좋다. 이 일로 돈을 별로 못 벌어도 좋다.’라는 마음이 드는 일을 하면 오히려 기쁘고 일에 만족이 있습니다.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또는 과외)에 가기 싫어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좋은 학원에 보내고 비싼 과외를 받게 해도 소용없습니다. 공부하기 싫으면 배우는 것도 없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학원이나 더 유명한 과외교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배움의 즐거움을 찾도록 돕는 일입니다. 비록 즐겁지는 않거나 여전히 공부가 힘들더라도, 왜 공부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깨닫도록 돕는 것이 공부보다 먼저입니다.

 

 

1.   과연 먹고사는 일이 정말 중요한가?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툭 하면 아들에게 공부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대학교에 안 보낼 생각도 했습니다. 하루는 고3인 아들을 불러 대학 4년 학비와 생활비를 계산해서 보여주고는 이 금액의 절반을 줄 테니 대학에 가지 말고 장사를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대학만 마치게 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네가 지금까지 놀기만 했는데 대학에 어떻게 가겠느냐?’ 하며 아들을 몰아붙였습니다.

 

아들은 며칠을 고민하다 혼자 학원을 찾아가 학원비를 반으로 깎아 온 다음 아버지에게 몇 달만 도와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럼 대학 등록금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으니, 1년만 도와주면 나머지 3년은 자기가 아르바이트하며 벌어서 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후 아들은 죽어라 공부하더니 결국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는 겁니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아이가 공부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발견하도록 돕는 것보다 중요한 과외는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사람이 왜 사는지 모른 채 살아갑니다. 일할 때도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일을 시작합니다. 심지어 왜 교회에 다녀야 하는지도 따져 보지 않고, 남들이 가니까 그냥 따라가고, 어릴 때는 부모가 가니까 따라서 갑니다. 그래서 자기 신앙이 아니라 부모님의 신앙이었다가, 대학에 가고 성인이 되면 자기 신앙이 없으니까 교회에 안 나가게 됩니다. 세상의 교육이 그렇고, 가정이 그렇고, 신앙조차 그렇습니다. 왜냐고 물었다가 오히려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교육법은 다릅니다. 끊임없이 를 묻게 합니다. 서구에서는 를 뺀 교육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2세 자녀들과 1세 부모들이 부딪치는 겁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기가 어릴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며 자랐으니까 자기 자녀에게도 이렇게 하라고 시킵니다. 그런데 자녀가 안 해!’라고 하는 겁니다. 부모는 자기가 시키는 대로 자녀가 하면 되는데 건방지게 말이 많다고 생각하고, 자녀는 부모의 말을 들으며 왜 일방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하라고 하는지 불만이 생깁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라는 질문을 자주 던져야겠습니다. 왜 이 일을 시작해야 하는지 묻지 않고 일하다가 후회한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어떤 일에 열심을 내고 있다면 왜 그 일을 열심히 합니까? 중요한 일이라 그렇습니까? 그런데 그 일이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대개 우리는 많은 사람이 하는 일중요한 일로 여깁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많은 사람이 거짓말하면 거짓말이 중요한 일입니까? 많은 사람이 교통법규를 위반하고 불법으로 주차하는데, 다수가 그렇게 하면 중요한 일이니까 나도 교통신호를 위반하고 아무 데나 차를 세워도 된다면 말이 안 됩니다. 그 일이 왜 중요한지를 먼저 따져 보고, 그다음으로는 언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중요한 일은 언제 해야 합니까? 바로 당장 해야 합니다. 정말 중요하다면 왜 지금 그 일을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먹고사는 일이 가장 절박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 기준과 충돌을 일으킵니다. 예수님은 의식주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의식을 흔들어 깨우십니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1-32)

 

예수님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다 이방인들이 사는 방식이라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이방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자녀의 의식주 문제 하나 해결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의식주(먹고 사는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5)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와 관련하여 두 가지를 비교해서 말씀하십니다.

 

“26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을 해서, 자기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28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하였다.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26-30, 새번역)

 

예수님은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이 적은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면 누구나 믿게 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믿는 것처럼 믿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아버지도 자녀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아버지가 하늘 자녀들을 모른 체하시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11:11-13)

 

예수님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의식주, 즉 먹고사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먹고사는 문제보다 영적인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부터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악한 아버지라도 자녀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하찮은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것을 주시는데 바로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주셔서 우리 인생을 인도하도록 하십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절대 만족하지 못합니다. 세상 전부를 가진다 해도 마음이 절대 채워지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려고 만드신 하나님의 처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그곳에 계시지 않으면 절대로 채워지지 않고 만족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계시면 평안이고, 계시지 않으면 불안입니다.

 

아기는 엄마 품에 있어야 평안합니다. 가득 채워진 젖병이 줄지어 있고, 기저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장난감이 온 방에 가득해도 엄마가 옆에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엄마가 있어야 울음을 그칩니다. 엄마만 있으면 아기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본능적으로 생존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엄마부터 찾는 것입니다. 아이는 엄마가 주는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먹고 마십니다. 아이는 엄마가 정한 우선순위를 거부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이런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인생에서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인생의 가장 분명한 사용 설명서이기 때문입니다. 정신없이 세상에 끌려가게 되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우선순위와는 반대로 살게 됩니다. 사람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해놓으셨는데, 그것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습니다.

 

올바른 신앙은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선순위를 따르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을 먼저 하지 않고 미루다가 결국 죽음 앞에서 허둥대며 후회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에 가장 흔한 일입니다. 주님은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을 언제나 먼저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장 중요한 일들을 먼저 하지 않고 급한 일부터 먼저 합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중요하고 급한 일이 있는데, 그런 일을 결코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선순위에 대한 혼란은 인생 전체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두 가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왜 내가 더 사랑하지 않았을까?’입니다. 둘째는 왜 내가 다 용서하지 않았나.’입니다. 왜 죽을 때 이런 후회를 하겠습니까? 되돌아보니 인생 전체를 통틀어 그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을 살아 있을 때, 시간 있을 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결단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사랑하고 먼저 용서하고 먼저 화해해야 합니다. 이것이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일보다 더 중요합니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 눈이 잘 보여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 줄 수 있을 것이다.” (7:5, 새번역)

 

내게 큰 단점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작은 허물을 찾는 데 열심이라면 이것 역시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라는 말씀대로 한다면, ‘내로남불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시대, 음란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무나 바쁘게들 살아갑니다. 왜 이런 세상이 되었습니까? 우선순위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만 아니라 옛날에도 우선순위가 바뀐 사람들은 모두 타락하고 음란했습니다. 헤롯 집안(헤롯 대왕, 헤롯 안티파스, 아그립바 2, 버니게, 드루실라) 사람들이 모두 타락했으며 음란했고, 드루실라와 결혼한 벨릭스도 타락하고 음란한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우선순위를 뒤집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세상 뒤집기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바꾸는 단순한 혁명이 아닙니다. 사실 하나님의 눈에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모두 탐욕을 가진 죄인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가치관과 세계관의 우선순위를 뒤집으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우리를 불러내셔서 완전히 다른 세계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세상은 진정한 믿음으로 새로워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돈으로만, 물질로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힘입어야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물질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이며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말씀하십니다. 물질은 그다음이라고 계속 말씀하셨고, 그래서 본문의 결론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3)

 

영원한 것,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추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영원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영원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 눈앞에 보이는 것을 버리는 것은 절대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게 믿음입니다. 믿음은 신념이나 자기 확신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인이라도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싫어하거나 혼란스러워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오히려 삶을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내면에서 세상 질서와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한 고통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라고 탄식했습니다.

 

 

2.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잘 아시는 주님

 

예수님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먼저 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고 해서 세상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이 정한 우선순위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일단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중요합니다. 십자가는 내가 죽어야만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인생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길입니다.

 

정말 중요한 일을 시작하면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겪고, 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버림받기도 합니다. 어쩌면 홀로 남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길을 갈 것인지 우리는 날마다 결단하며 나아가야 하는데,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이 부르셔서 따라나선 길인데, 갈수록 험하고 가파른 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 도저히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지점을 만납니다. 어떻게 해야 계속해서 예수님의 길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날마다 죽어야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9:23)

 

어제 잘했다고 오늘은 적당히 해도 되는 게 아닙니다. ‘날마다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성취를 위해 살아갑니다. 요즘에는 집사, 권사, 장로가 되는 것도 자기 성취로 여기곤 합니다. 심지어 목사로서 자기 성취의 길을 가기 위해 신학교에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성취가 아니라 자기 부인이 제자도의 본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 먼저 가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일찍 출발했다고 해서 먼저 도착하는 곳이 아닙니다. 뒤늦게 출발해도 자기를 부인한 사람이 먼저 들어가는 곳입니다. 자기 부인은 단순히 시간이 지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훈련받는다고 되는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10:31)

 

바른 영성이 곧 능력입니다. 그리고 능력 중의 능력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할 줄 아는 힘이고, 먼저 해야 할 일은 먼저 하고 나중에 할 일은 나중에 할 줄 아는 것입니다. 또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 안 해도 되는 일에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들을 깨우쳐서 참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보십시오. 길에서 강도를 만나 피 흘리며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도 제사장이 피하여 지나가고 레위인도 그냥 지나쳤는데, 결국 사마리아인이 구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악독한 비신자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고도 다 예배드리러 가느라 지나치는데, 교회도 안 다니는 사람이 그를 구한 셈입니다. 이 비유 후에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누가 그 사람의 이웃이냐?”

 

예수님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물으십니다. “너는 누구의 이웃이냐?” 신앙은 자기에게 유리한 선한 이웃을 찾는 일이 아니라, 자기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의 선한 이웃이 되는 삶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결국 무엇이 중요한가? 왜 해야 하는가? 우리 인생은 정말 중요한 일만 하기에도 턱없이 짧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평생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른 채 살다가 끝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하는 까닭은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긴 것 같지만 금방입니다. 게다가 온 순서대로 가지도 않습니다. 누가 먼저 떠나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젊든 나이가 있든, 항상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준비는 가장 중요한 일을 먼저 하며 사는 것입니다. 먼저 용서하고, 먼저 사랑하고, 먼저 화해하고, 먼저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이 일을 먼저 하지 않으면 세상을 떠나면서 눈을 감을 때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최우선순위에 둠으로써 가장 중요한 일을 먼저 하며 살아감으로써 이 땅에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인생, 하나님께 인정받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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