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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he3mxp1QNJ0?t=1752

 

 

20221/19/21(수요예배)

인생의 목적이신 하나님 5

우리를 그리스도의 지체로 삼으심

(에베소서 411~16)

 

1.   교회를 세우심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아담의 몸을 만드시고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아담은 육체와 영혼이 결합한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2:7). 그 후에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때 아담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23)

 

하나님은 또 다른 흙이 아니라 굳이 남자의 몸의 일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들이 원래 한 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인류는 남자와 여자의 결합으로 생겨납니다. 그러니까 결국 온 인류는 한 몸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 요즘 여러 견해가 있기는 합니다.

 

만약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모든 인류는 아담이 하와에게 고백한 것처럼 서로를 향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사랑의 고백을 나누는 거대한 가족 공동체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왔고 인간은 타락했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창조세계와의 관계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과의 언약을 깨뜨린 인간을 즉각적으로 심판하여 멸망시키시는 대신, 육체의 죽음을 유예하시고 여자의 후손을 보낼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3:15)

 

아담과 하와는 처음 낳은 아이의 이름을 얻음이라는 뜻의 가인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4:1)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는 하와의 고백으로 볼 때, 자신들에게서 태어난 이 아이가 죄에서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 여자의 후손일 것이라고 오해했는데, 사실 이것은 구원의 열망을 보여줍니다.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5:29)

 

노아의 이름의 뜻은 또는 위로입니다. 이 이름에도 메시아 대망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아이가 그 여자의 후손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이의 이름을 구원으로 말미암은 안식 또는 위로라고 지었던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에 대한 이러한 소망은 계속해서 인류에게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때가 차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4:4).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아버지 없이 여자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남자와 여자의 후손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3:15에서 여자의 후손이라고 하신 표현은 정말 놀라운 말씀입니다. 남자 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여자에게서 나신 진짜 여자의 후손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인류를 재창조하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재창조된 인류를 통하여 인간의 죄와 타락으로 말미암아 잠시 멈춘 것 같았던 당신의 위대한 창조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런데 새로운 인류의 완성을 위한 기초로서 놀랍게도 교회를 택하셨습니다. 교회는 머리와 지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십니다(1:22, 1:18).

 

그런데 이 교회는 눈에 보이는 교회가 아닙니다. 시간적으로는 태초부터 시작해서 종말까지 이르게 될 모든 성도들의 연합이며, 장소적으로는 모든 구원받은 무리의 연합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보편교회(the universal, catholic Church)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우주적인 보편교회를 바라보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개별적인 지역교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이 수많은 지역교회들 중 한 교회에 모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도 한 지역교회를 이루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이 교회가 모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적인 보편교회에 우리도 포함되어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고, 그 한 몸의 머리가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는 눈에 보이는 지역교회를 보면서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에 당신이 구원하고자 하시는 백성들을 선택하셨고, 교회를 통해 이루실 큰 그림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지금, 시간과 공간을 통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이 모든 과정이 우연인 것 같지만, 사실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작정을 성취해 가는 위대한 그림의 한 조각입니다.

 

 

2.   교회의 머리: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교회를 당신의 몸으로 삼으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1:22, 1:18). 예수님이 공식적으로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은 부활 사건 이후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2:9-11)

 

그렇다면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을 세 가지 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받은 신자들의 생명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그분 안에서 삼위 하나님의 교제는 곧 생명이며 사랑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삼위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하나님의 생명이 그리스도에게 부어지고, 그것이 다시 그분의 몸인 교회 즉 성도들에게 부어짐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생명은 죽음을 이기는 힘입니다. 다시 말해, 수시로 우리의 마음과 삶에 파고들어 오는 죽음의 기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놓으려 하고 모든 생명으로부터 멀어져 죽게 하는 그것들을 모두 이기게 하고 우리의 삶을 다시 살게 하는 위대하고 놀라운 힘입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받은 신자들의 섬김의 머리가 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이 그 은혜로 세상을 아름답게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교제를 누릴 때, 그는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훌륭한 일꾼이 됩니다. 세상에서 섬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지체가 되면 예수님의 생명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더라면 하셨을 만한 일들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행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서로를 사랑하여 섬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께 접붙여진 사람들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크리스천은 주어진 은사와 재능과 열정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원받은 신자들의 통치의 머리가 되십니다.

 

몸 전체가 머리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교회는 예수님의 통치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교회를 다스리실 때 그 통치에 복종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하나님이 누구이시고, 인간이 누구이며, 이 세계가 무엇인지를 탐구해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자신의 인생을 그리스도 안에서 제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뭔지 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하는 힘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과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는 것은 곧 그분을 머리로 하는 몸에 접붙여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참 사람답게 살게 하는 자원을 하늘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는 영적인 통로가 열렸고,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이 우리에게까지 스며들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두 가지 연합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모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남과 칭의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고, 또한 그 후로는 실제적으로 성화의 과정을 통해 그분과의 연합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거듭남과 칭의를 통해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여짐으로써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공급받아 믿는 자로서 새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그 연합이 언제나 풍성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그분과 연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떨 때는 그 연합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생명과 사랑의 부족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실제적인 연합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실제적인 연합, 즉 성화를 통해서 우리는 온전한 인간이 되어 갑니다. 구원받은 후 이 땅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이 성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성화의 과정을 통해 예수님과 실제적인 연합을 이루며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죄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이 실제적인 연합이 깊어지고 예수님을 더욱 닮아가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누릴 때 이것은 내가 순종해서 얻은 것이다.’라고 하거나, ‘이것은 내가 기도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 생명과 사랑은 우리의 어떠한 행위에 대한 대가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의 죄, 나태함, 게으름, 싫증, 불순종이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데, 그것을 꺾으면 꺾을수록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충만히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행위가 생명과 사랑을 가져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는 은혜로 주어진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누리게 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3.   교회와 함께 완성되는 구원

 

우리는 혼자서만 예수 그리스도께 연합된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거대한 몸의 일부가 되어 그리스도께 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이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에 충분히 부어지고, 우리가 교회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 그 생명과 사랑을 누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입체적으로 말하면서 최소한 세 가지 측면을 제시합니다. <생명의 삶>에서 배우는 내용처럼, ‘받은 구원’, ‘받는 구원’, ‘받을 구원이 있습니다.

 

1)  과거적 측면: 받은 구원, 영의 구원, 칭의(Justification)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 (5:24, 새번역)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고,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적 통로가 열렸습니다. 이것이 받은 구원이고 영의 구원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바뀌지 않고 영원불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실행에는 후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2)  현재적 측면: 받는 구원, (인격)의 구원, 성화(Sanctification)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2:20, 새번역)

 

바울은 과거의 구원에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기 안에 이루어진 구원의 상태를 풍성하게 누리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그 결과 예수님께서 지금 자신 안에 충만하게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그의 마음에서 모든 주권을 행사하시고 그는 예수님께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참된 행복을 누리는 상태임을 감격하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재적 구원은 과거에 이루어진 구원에 기초하고 있지만 과거의 구원이 자동으로 현재적인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 현재적인 구원은 끊임없이 성화의 삶을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려고 애쓰는 가운데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온전히 살아나는 영적인 부흥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2:12-13, 새번역)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고 하는 것은, 영생을 얻은 구원을 못 받아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이후에도 계속 이 땅에 살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 받는 구원’(혼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영적 긴장을 잘 보여줍니다.

 

매일매일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려는 몸부림, 그분이 기뻐하시는 대로 살고자 하는 순종하는 삶, 하나님의 뜻을 더 온전히 깨달아 그분께 더 가까이 가고 싶어 하는 마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그분을 더 사랑하고자 분투하며 살아가는 모든 삶을 통해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충만히 사시는 현재적 구원, 예수님을 닮아가는 받는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인 현재적 구원을 온전히 이루며 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목적을 이루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신도 행복한 삶이 됩니다.

 

 

3)  미래적 측면: 받을 구원, 몸의 구원, 영화(Glorification)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13:11, 새번역)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압니다.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을 덧입기를 갈망하면서, 이 장막집에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고후 5:1-2, 새번역)

 

사도 바울은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을 현재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로부터 썩지 않는 몸을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성화의 노력을 통해 쟁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화된 만큼 미래의 구원에 대한 열망은 더욱 불타오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을 덧입게 될 때 모든 죄의 요소는 우리 안에서 완전히 제거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최고의 복을 누리는 완전한 구원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의 구원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모두 과정 중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충만히 살아 계셔서 현재적 구원의 감격을 누리는 것, 또한 하늘로부터 썩지 아니할 몸을 덧입게 될 미래적 구원에 대한 소망까지가 다 교회라는 주님의 몸의 지체로서 신자가 누리는 구원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함께 가는 구원이며, 교회와 함께 완성되어 가는 구원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혼자 구원받아 하나님의 사랑을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나, 이 사랑을 세상에서의 번영의 기회로 삼으려는 것은 결코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단지 그분의 생명과 은혜를 공급받는 수동적인 몸의 일부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15-16)

 

그 생명과 사랑을 충만히 공급받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봉사하게 하려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3-14)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어 가기를 바라시는데,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타락과 죄는 우리로 하여금 그 목적에서 벗어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여 생명과 사랑을 주심으로써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이렇게 우리 각자가 온전한 사람이 되어 갈 때 교회는 완성되어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완성과 성도의 온전하게 됨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2)

 

부족하고 허약한 인간을 예수님의 몸의 지체로 삼아주신 것도 놀라운데,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온전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처럼 하나님의 속만 썩여 드리고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는 비천한 인간들을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 섬길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이든 주님을 섬기면 그것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고 여겨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인생을 사용하셔서 궁극적으로 거룩한 교회를 만드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진 거룩한 교회를 통해 이 세상을 거룩하게 함으로써 당신의 창조의 목적을 온전히 회복하며 당신의 영광이 온 땅과 하늘에 가득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죄에 쓰러질 때가 있더라도, 우리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 주셨습니다. 비록 우리의 섬김이 어설프고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작은 섬김을 통해 큰 영광을 받으시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완성하심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완성해 가십니다.

 

이 구원의 도리를 올바로 깨닫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지체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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