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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www.youtube.com/live/Zl5sXWlEU0o?si=V6ffc8cS7_B6raI3&t=144

 

 

202417일 신년주일예배

신년 메시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신명기 432~40)

 

1.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서 있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

 

새해가 되면 항상 여러 단체나 연구소에서 경제 전망을 내놓습니다. 올해도 여러 군데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에 관심이 많은데, 한국 경제에 대해서 KDB미래전략연구소는 2024년 경제성장률이 2.2% 수준의 완만한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또 산업연구원은 2024년 한국의 경제가 2023년 대비 2.0% 수준의 완만한 성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리고 국가미래연구원은 2024GDP 성장률이 전년 대비 0.69%p 높은 2.06%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한국 사람에게 아주 익숙한 IMF(국제통화기금)2024년 미국 경제성장률을 1.5%로 전망했습니다. 한국보다 낮습니다. 2024년에는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023년보다 낮아지게 된다는 겁니다. 2024년에는 시장금리가 떨어지고 달러 가치도 하락할 전망이라고 말합니다.

 

2023년 미국경제는 고금리와 고물가가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많았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성장세를 지속했지만, 2024년 미국경제는 그간 누적된 것들의 효과가 파급되면서 잠재성장률에 못 미치는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라고 합니다. 제이피 모건(JP Morgan)은 경기침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고,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경기침체 위험이 제한적일 것으로 약간 희망적으로 봅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2024년 경제성장률이 2.8%, 2023년의 3%에 비해 낮아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2024년은 2023년보다 나아질 게 없고 오히려 더 안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올해 우리 대부분은 계속 미국에 살겠지만, 우리 중에 한국으로 돌아갈 분들도 있고, 다른 데로 갈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우리 대부분이 살 이 미국 땅에서든 한국 땅에서든, 어디에서든,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미래가 더 좋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아질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은 직장이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사업하시는 분들은 사업이 잘되면 좋겠지만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2023년을 보내고 2024년 새해를 맞이했어도 희망찬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답답한 이 상황 가운데,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뻔한 이야기를 한다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상황이 힘드니까 하나님 말씀을 붙들자는 것은 당연히 교회에서 할 이야기이고 목사가 할 말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진짜입니다. 이것밖에 없습니다. 다른 무엇을 어떻게 의지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신명기 말씀 속에서 어떻게 이 새해를 살아야 하는지 배우기를 원합니다. 오늘 신명기 본문을 택하여 함께 살펴보려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이, 마치 약 3,500년 전 이집트의 노예로 살다 출애굽하여 이집트를 나와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후 이제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하는데 전쟁을 통해 그 땅을 정복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안한 상황과 아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약속을 주셨지만 당장 보이는 건 없습니다. 그렇게 불안한 상황에 있는 이스라엘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이 아주 비슷합니다.

 

신명기는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들어가기 직전, 지난 40년을 돌아보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고별 설교 내용입니다. 모세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 설교를 한 내용이 바로 이 신명기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이렇게 살라하고 명령하는 것이 신명기입니다.

 

그런데 신명기가 신학적으로나 이스라엘 역사로나 굉장히 중요한 책입니다. 이제 이집트 땅을 나온지 40년이 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모세를 약 BC 1500년경 사람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3,500년 정도 전 사람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서 이집트를 나온 지 40년이 지났고, 하나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이 눈앞에 보이는 그런 지점인 느보산에 와 있습니다. 그곳은 지금의 요르단 땅입니다. 요르단에서 이스라엘이 보이는데, 바로 그곳에 지금 와 있습니다.

 

지금 그 느보산 위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바라보고 있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흥분되었겠습니까? ‘저곳은 이제 우리 땅이다.’ 하며 기뻐했겠습니까? 아니면 감격하고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의심에 사로잡혀 아주 불안한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저 땅을 약속해주셨지만, 당장 그 땅을 가진 게 아니고 전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불안한 상태에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땅이 저절로 자기 땅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 땅에 사는 민족들과 전쟁을 치러서 땅을 정복해야만 합니다. 그러니 걱정이 됩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결코 낭만적인 것이 아니고 너무나 끔찍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굉장히 걱정됩니다.

 

게다가 가나안 사람들은 거인들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거인인 가나안 족속들과 싸워 그들을 물리치고 그 땅에 정착할 수 있을지, 굉장히 앞이 캄캄하기만 한 상황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이미 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믿기가 힘듭니다. 의심이 생깁니다.

 

약속의 말씀의 문제가 뭔가 하면, 약속은 주셨는데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간격이 있습니다. 약속은 주셨는데 현실에는 아무것도 된 게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 생활의 어려움입니다.

 

모세는 또 어떻습니까? 이제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 차지할 가나안 땅이지만, 자기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못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땅을 산 위에서 바라보는 모세의 마음도 정말 괴롭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때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운 것은, 단지 자기가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모세가 괴로운 것은, 과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저 땅을 잘 정복하고 정착하여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수 있을 것인가, 이스라엘의 미래가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데도 그렇지만 신명기에서도 너희가 저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고 잘될 것이지만,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온갖 재앙이 임할 것이다.’라고 하며 미리 경고합니다.

 

모세는 지난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며 그들이 어떤 인간들인지를 너무나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도대체 믿을 수 있는 인간들이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불렀는지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는데, 모세는 그들을 가리켜 여러 군데에서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9:6)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너무 뻣뻣하고 굽힐 줄 모르고 고집이 세고 강퍅한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생활 동안 체험한 하나님의 기적들은 정말 놀라운 것들입니다. 가장 먼저 이집트를 나온 후 바다가 갈라져서 그 마른 땅으로 건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런 엄청난 기적을 처음부터 체험했습니다. 사실 그전에 이미 이집트에서 열 가지 재앙이 내려서 그 나라가 초토화되는 엄청난 기적들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엄청난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그들이 체험했더라도 그때뿐이었습니다. 기적을 베풀어 주실 때는 좋다고 하고 감사도 했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상황이 어려워지니까 곧바로 하나님을 원망하며 또 그들의 리더인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불만을 퍼부었습니다. ‘이집트로 돌아가자!’ 하며 이상한 소리를 해댔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불신앙적이고 불순종을 일삼는 자들인지를 너무나 생생하게 체험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러한 그들이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며 잘 살 수 있을지가 걱정스러운 겁니다.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말씀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벡성이 모두 불안하고 캄캄한 미래를 앞둔 상황에서, 모세는 죽기 직전 마지막 유언과 같은 설교를 전합니다. 바로 그 고별 설교가 신명기 내용입니다. 이 신명기 말씀 속에서 우리는 지금도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2.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러분, 2023년이 막 지났는데 어떠셨습니까? 뭐든지 잘되고 좋으셨습니까? 아니면 힘드셨습니까? 2023년에 다른 데로 이사 간 분들도 계시고, 한국에서 와서 돌아간 분들도 계시고, 세상을 떠나신 분들도 계시고, 또 계속 아픈 분들도 계십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나라적으로 볼 때 미국도 힘들고 한국도 힘들고 세계가 다 힘들었습니다. 또 각 개인도 힘들고 가정도 힘들고 교회도 여전히 힘들었던 한 해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 제목들을 보면, 해결이 힘든 문제들도 많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더 힘든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새해가 되었어도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과 증거가 있으면 희망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데, 새해가 되었지많 좋아질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 얼마나 힘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한 해를 허락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우리가 이 땅에서 할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우리 하나님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새해를 맞은 후 첫 주일인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그것을 잘 찾아서 듣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은혜받았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서에서도 말씀합니다. 정말로 말씀을 받았으면, 깨달았으면, 은혜받았으면,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고 알려줍니다. 무엇보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이 세상 시간의 흐름 속에 푹 파묻혀서 헤매기를 중단하고, 하나님의 시간의 흐름을 깨달아 그것을 붙잡으라고 알려줍니다.

 

우리가 이 세상 시간의 흐름에 갇히고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세상의 리듬에 사로잡히게 되면, 우리는 그 속에서 어떤 희망이나 해답도 찾을 수가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당장 주어진 일만 하느라고 다른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그 속에 파묻혀 살게 되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이 무슨 역사를 이루고 계신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세상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가지 않기 위해서는 이 세상 시간의 흐름을 의식적으로 멈추고,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고 계시는가를 볼 수 있는 눈, 즉 태초부터 영원까지 흘러가는 하나님의 시간을 붙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불안해하며 걱정하는 우리나 옛날 이스라엘이나 아주 비슷합니다. 바로 그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가 선포합니다.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32)

 

바로 이 말씀이 혼탁하게 흘러가는 세상의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영원한 하나님의 시간, 즉 이 세상을 창조하신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시간의 흐름을 깨달으며 붙들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거기 푹 파묻혀서 뭘 하고 사는지도 모르게 그냥 헤매지 말고, 거기에서 벗어나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하나님이 지금 뭘 하고 계신가를 보는 눈을 키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신없이 흘러가는 이 세상 시간에 그저 휩쓸리고 거기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아예 질식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드라마를 좋아하실 텐데, 드라마 보는 데 시간을 얼마나 사용하십니까? 보통 드라마 한 편만 봐도 대개 한 시간 가까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만 보고 끝납니까? 계속 봅니다. 그럼 도대체 일주일이면 몇 시간을 드라마에 투자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과 대화하는 데는 지금 얼마나 지금 투자하고 계십니까? 기도하고 말씀 읽고 묵상하는 데에는 몇 분도 투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영적으로 잘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운동선수가 훈련을 하나도 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다른 것만 하면서 시합에 나가서 이기기를 원하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도 하는 게 없으면서 영적으로 잘되기를 바라고, 하나님이 나를 형통한 길로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안 해주시는 게 아닙니다. 내가 그것을 못 보는 겁니다. 내 영적인 눈이 가려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게 안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 주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사실은 인도해 주고 계십니다. 내가 보는 눈이 없을 뿐입니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이나 드라마가 어떻게 전개되는 것은 기가 막히게 압니다. 이다음에 이렇게 되고 그다음에는 저렇게 되고 다 압니다. 왜냐하면 거기 투자를 많이 했으니까 흐름을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간의 흐름은 하나도 알지 못합니다. 완전히 무지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것도 안 믿는 사람이 그런 게 아닙니다. 믿는다고 하는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세상을 보십시오. 얼마나 급하게 돌아갑니까? 여러 기업들이 혁신적인 제품들을 만들어 내는데, 또 그런 물건들의 후속 작품을 만들어 내는 순환 주기가 매년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팔려는 기업들의 전략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온갖 광고들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아마도 앞으로 절대 망하지 않을 직종 중 하나가 광고가 아닌가 합니다. 광고는 끊임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자기네 제품을 구입해서 가지지 않으면, 자기네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마치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비참한 사람이 될 것처럼 속삭이며 우리를 설득하려고 듭니다.

 

그뿐 아닙니다. 매일 정신없는 스케줄 속에서 마치 거대한 배큠머신(진공청소기)처럼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빨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런 드라마나 영화를 그저 보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취미 생활을 적당하게 하는 건 괜찮은데, 거기에 푹 빠져서 열심히 보다 보면 작가나 연출자가 의도하는 것에 내 영혼을 빼앗겨 버리고 거기에 세뇌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잘 생각하면서 봐야 합니다. ‘, 아무리 저기서 저렇게 나와도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는 거기서 잘못됐다고 나오는데, 아니다. 저건 잘된 것이다.’라고 우리가 판단하는 눈을 가지고 봐야지, 그냥 좋다고 가만히 보고 있으면 거기에 세뇌당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의 주장에 내가 넘어가서 그리로 따라가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 영혼을 빨아들이는 것들이 지금 너무 많습니다. 무조건 보지 말라는 게 아니라, 경각심을 가지고 잘 판단하며 봐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것들이 지금 점점 더 많아지기 때문에 새해가 작년보다 더 바쁘고 정신없는 한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믿음을 지키며 살기 위해서는 이 세상 시간의 흐름을 끊고, 즉 무방비하게 그냥 나를 내어주는 것을 끊고,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보는, 즉 하나님의 시간의 흐름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이 세상의 역사를 이끌며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 내가 지금 보내는 시간의 의미를 점검하고 평가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시간의 흐름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의 눈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자기 시간을 하나님 시간의 기준으로 점검하지 않으면, 이 역사의 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이 세상에 대해, 세상의 시간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낭비했던 세상에서의 시간들을 심판하실 때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 심판이 있기 전에 먼저 스스로 내가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의 의미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평가하고 심판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기도이고 큐티(말씀 묵상)이고 예배입니다.

 

그래서 신자, 크리스천, 하나님의 자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으로 해야 할 것이 주일예배입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하나님 앞에 시간을 구별하여 예배드리는 것인데, 그래서 굉장히 지금 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그 시각으로 세상을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일환이 됩니다.

 

그런데 그냥 일주일에 한 번 잠깐 왔다 가고 끝이 아니라, 말씀을 붙들고 일주일 동안 살아보자는 겁니다. 한 가지를 잡고 그대로 살아보는 겁니다. 그리고 나아가 더 할 수 있는 사람은 주중에 예배도 오고, 새벽 기도도 하고, 또 개인적으로 집에서도 기도하고, 특히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스스로 하기가 힘들다면, 요즘 좋은 영상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드라마나 예능 같은 것만 보지 마시고, 그런 좋은 영상들을 찾아서 보는 겁니다. 특히 말씀 묵상에 대한 영상들도 굉장히 많고, 심지어 제가 하는 것도 있으니까, 그런 것을 보시면서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억지로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시각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지금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지를 우리가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시간이야말로 매일 주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돌아보며 점검하고 평가하는 시간입니다. 그 최소한이 주일예배입니다.

 

내가 이 세상의 시간의 흐름에 빨려 들어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하나님께서 과연 기뻐하실 만한 일인가?’ 그것을 점검하고 평가하고 심판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세상의 시간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주님의 진리 안에서 참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가 즐기는 오락이나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에만 아니라 우리 각자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내가 하는 일에 접근하지 않으면 신앙 따로, 일 따로가 되어서,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나나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그러한 직장생활이나 사업이나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부이든, 직장이든, 사업이든, 또는 집안 일이든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것인가?’ 하고 계속 질문하면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들이 바로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역사이고, 그 속에서도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입니다. 그 역사가 구약성경에서는 출애굽 사건으로 나타나고,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 두 사건 속에서 우리는 오늘 자기가 그냥 흘려보내는 이 세상 시간의 가치와 의미를 판단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성경의 눈으로 판단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한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근거와 목적이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구원해 가고 계신다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 사건입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셨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증거입니다. 지금 느보산 정상에서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가 떠올리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 하나님의 구원 사건입니다.

 

33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느냐 34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33-34)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또 그 과정에서 당신을 나타내신 그 권능과 영광을 잊지 말고 계속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해주신 그 일을 계속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 기억을 가지고 불확실한 미래를 넘어 하나님이 함께하실 미래로 나아가라는 말입니다. ‘과거에 그렇게 엄청난 일을 해주신 하나님이 미래에 너희를 버리시겠느냐?’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희망찬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세상의 관점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관점을 생각하며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영원한 하나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친히 내려오신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상징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계속 눈에 보이게 두면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출애굽 사건으로부터 신약시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무엇보다 그 속에서 바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의 눈에 바로 그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분명하게 보이고 마음에 새겨질 때 비로소 불확실한 미래는 사라지고 새로운 미래가 열리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불안해지지 않을 수 있는 근거, 내가 염려하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근거는 바로 예수님을 통해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붙들면 됩니다. 그것이 확실하면 불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나를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셨다는 그 사실을 확실히 깨닫기만 하면, 아무리 지금 미래가 어둡고 불확실해 보여도 상관이 없습니다. 가장 귀한 외아들의 생명을 내어주면서까지 나를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서 미래에 나를 인도해 주지 않으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자라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이라도 세상을 떠난다면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습니까?’라고 할 때 모르겠는데요.’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모를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다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정말 믿는다면 당연히 천국으로 갈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그저 예수 믿고 지옥에 안 가고 천국에 가게 해주는 것뿐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도 천국을 이 땅에서 맛보는 풍성함을 누리게 해주기 때문에 이 구원 역사를 붙들고 기억하면서 사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매일 구원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할 수만 있다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순간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아무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미래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논리적으로도 생각해 보십시오. 가장 귀한 외아들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것보다 더 귀한 게 또 뭐가 있겠습니까? 나머지는 다 외아들보다 덜 귀한 것들인데, 가장 귀한 것을 주신 분이 덜 귀한 것을 안 주시겠습니까? 구원을 생각할 때 , 나를 구원해 주셨구나.’라는 이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갈 때 우리는 어떤 상황이 와도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3.   세상의 거친 흐름 속에 우리를 집어넣으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렇게 세상의 거친 흐름 속에 우리를 집어 넣으신 그 뜻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좀 편안하게 살게 해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어렵게 살지 않고 그냥 편안하게 살게 해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대부분은 올해에도 작년에 했던 것과 비슷한 일들이 이어질 것입니다. 이사 간다든지, 직장을 바꾸거나 새로 잡는다든지, 사업을 새로 시작한다든지, 그런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는 아마도 작년에 했던 일들을 계속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학생은 졸업하지 않는 한 작년이나 올해나 비슷하게 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전 세계적인 관점을 놓고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내가 여기 학생인데 열심히 공부하고 있더라도, 세계적인 관점으로 볼 때 그것이 전 세계 역사에 무슨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지금 내가 여기서 사업을 하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이것이 전 세계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지금 제가 목회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에 무슨 영향을 미칩니까? 여기서 열심히 한다고 누가 알아주기를 합니까? 심지어 우리 교회가 열심히 주님 뜻대로 해보자고 해도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이 세상은 우리가 하는 일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이 알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알아주지 않을지 몰라도 온 우주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 알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세상 기준으로 보면 하찮은 일일 수도 있고 보잘것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렇지 않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세상의 흐름 속에 있으면서 거기에 휩쓸려서 그냥 파묻힌 채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흐름으로 그것을 바꾸어 놓을 것인지, 아주 큰 관심을 가지고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매일매일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나 큰 관심을 가지고서 보고 계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식료품점에 가서 콜라를 하나 사도, 이 콜라를 살까, 저 콜라를 살까에도 하나님이 관심을 갖고 이렇게 보신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사실입니다. 그게 뭐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나의 삶에 관심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험하고 요동치는 이 세상 흐름 속에 우리를 집어넣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역사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시려고, 또한 우리를 정금 같이 단련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2024년의 세상 속으로 보내십니다. 2024년은 불안한 마음, 걱정스러운 마음, 낙심한 마음으로 바라볼 미래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겠습니다.

 

2024년은 하나님께서 한 해 동안 나를 어떻게 단련하실지, 얼마나 더 성장하게 하실지, 얼마나 성숙하게 해주실지, 또 어떤 복을 베풀어 주실지, 특히 어떤 만남의 축복을 허락해주실지에 대해 기대감을 가지고 힘차게 나아가야 할 미래입니다. 기대감을 품고 살아가 보십시오.

 

35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36 여호와께서 너를 교훈하시려고 하늘에서부터 그의 음성을 네게 듣게 하시며 땅에서는 그의 큰 불을 네게 보이시고 네가 불 가운데서 나오는 그의 말씀을 듣게 하셨느니라” (35-36)

 

이것은 시내산 위에서 번개가 치고 구름이 가득한 가운데 말씀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험한 삶을 살도록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정금 같이 단련하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삶이 평탄하기만 하면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평탄하고 모든 게 잘 풀리면 인간은 반드시 타락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일이 잘되고 돈 잘 벌고 그러면 하나님을 떠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줄 압니다. 그리고 이상한 데로 나갑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로 어려움을 주셔서 우리를 단련시키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정신없이 거칠게 흘러가는 이 세상의 흐름 속으로 보내시고 여전히 어려움이 있게 하시는 이유는, 그 가운데에서 거기에 삼켜지지 않고 보호해 주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교훈’(36)하기 위해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배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교훈하시며 가르치시는 과정은 그렇게 편안하지만은 않습니다. 훈련의 과정이 어떻게 편하겠습니까? 그래서 2024년도 그렇게 편안하지만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편안하지 않을지 모르는 1년을 우리에게 다시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렇게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배우고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37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38 너보다 강대한 여러 민족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너를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네게 기업으로 주려 하심이 오늘과 같으니라” (37-38)

 

올해도 여러 어려움이 닥쳐오겠지만, 하나님께서 다 물리쳐 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믿음을 가지고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감당할 때, 비록 세상 사람들은 하찮게 여기고 보잘것없다고 하며 놀릴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나를 인정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성실하게 나아갈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것을 보십니다. 그리고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39 그런즉 너는 오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40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 (39-40)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잘된다는 것입니다. 너무 간단합니다. “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라!” 그런데 순종하지 않는 것, 이게 문제입니다. 순종만 하면 되는데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라.”라고 합니다. 그 당시는 여러 신들을 섬기는 다신교 사회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식이 아니지만, 사실 하나님을 대체할 만큼 우리 삶에 중요한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만큼 중요하다고 여기거나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어떤 것들이 우리 삶에 있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말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하는 사역도 그렇고, 가정에서 직장이나 사업체에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볼 때는 보잘것없게 생각될 수 있습니다. 타락한 세상, 모두가 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내가 그리스도인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다른 모든 사람이 살짝 속이는 세상에서 나만 정직하게 살고 법대로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모두가 다 타락의 길을 걷는 상황에서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며 고지식하게 행동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시골에 가면 강에 크고 멋진 다리도 있지만 징검다리도 있습니다. 멋진 다리를 보면서 누가 설계했느냐고 묻고 참 멋지다고 하며 감탄하는 경우는 많지만, 작은 징검다리를 보면서 놀라고 감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개울을 건너가려는 사람들에게 징검다리는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면 정말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사람들은 화려하고 멋진 다리만 보지만 사실 실제적으로 필요한 건 그런 징검다리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징검다리가 되어 주겠다고 물속으로 들어갔지만, 생각보다 물이 깊어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만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아 버릴 때, 물로 뛰어든 내 헌신과 희생과 노력은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겠습니까? 물 밖으로 나와서 다른 사람들이 건너가며 나에게 감사하다고 하고 칭찬을 들으면 참 기쁘고 감사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헌신과 희생이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아 버리고, 내 섬김과 희생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그냥 무의미하게 넘어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 헌신과 희생의 가치의 의미를 알아주고 결정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내 희생의 의미와 가치를 결정해 주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보다 한 걸음 먼저 달려가시고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가는 길은 하나님이 그 가치와 의미를 인정해 주십니다.

 

심지어 교회 내에서도 우리가 어떤 사역을 감당하고 봉사할 때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서 다른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참 훌륭하다. 참 잘한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시기하고 질투할 수도 있고 또 뒤에서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하나?’라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그런 사람들의 의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어떤가가 제일 중요한 것이지,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칭찬해도 사실은 그게 별로 중요한 게 아니고, 뭐라고 비난해도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나,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징검다리를 만들 때 물이 깊어서 나 하나는 물속에 가라앉아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 혼자가 아니라 또 다른 돌이 쌓이고 또 쌓이고 하면 물 밖으로 나와 징검다리가 되어서 사람들이 건너가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먼저 뛰어들고, 그다음 사람이 또 뛰어들고, 그러면서 함께 쌓이고 또 쌓여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감당하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할 일이고 바로 이런 것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한두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다 같이 거기에 동참하여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감당하여 이 세상에 유익을 끼치고 복음을 전하는 것,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럴 때 언젠가 주님께서 우리의 섬김의 가치와 의미를 인정해 주실 날이 반드시 옵니다. 혹시라도 이 세상에서 우리가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반드시 하늘에서 우리의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직분자들이 임직하셨는데, 바로 그런 마음으로 섬기며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직분자들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헌신과 수고와 섬김을 통해 이 험한 세상의 흐름을 하나님의 흐름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하나님께 인정받는 고귀한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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