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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www.youtube.com/live/oh6DVjSO7Jg?si=y1namuK81XIQOCpd&t=185

 

 

 

20231231일 주일예배

영원을 준비하는 인생 4

착하고 충성된 종인가, 악하고 게으른 종인가

(마태복음 2514~30)

 

[들어가는 말]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군대가 프랑스를 바로 점령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프랑스의 뜻 있는 젊은 청년들이 저항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저항하는 사람들을 레지스탕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때 한 청년이 레지스탕스가 아닌데 레지스탕스로 오해를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재판받던 중 자기가 얼마나 억울한지 열심히 자기변호를 했지만 결국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고, 감방에 돌아와서 너무나 억울하다며 같은 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울면서 호소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억울하게도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 감방에는 진짜 레지스탕스 멤버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사랑하는 조국이 지금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는데 너는 아무 일도 안 했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너는 죽어 마땅하다.”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바로 오늘 본문 내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잘못 사용한 것도 꾸중을 들어야 할 일이겠지만,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더욱 심각한 일입니다. 마지막 때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오늘 본문의 소위 달란트 비유의 말씀을 통해 교훈을 얻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가 한 일에 대해 마지막 날 우리와 결산하실 것이다 (14~15)

 

오늘의 비유는 종들에게 소유를 맡기고 길을 떠나는 한 주인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4)

 

예수님 당시에는 이러한 여행을 떠나면 금방 돌아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여행을 떠날 경우, 그것도 오늘 나오는 것처럼 타국으로 가게 되면 최소 몇 달, 심지어 몇 년이 걸릴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집주인은 대개 믿을만한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정말 믿을만 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렇게 맡기겠습니까?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주인은 종들을 정말 신뢰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당시 주인이 길을 떠나면 종들은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매일 아침 주인이 오늘 오실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면서 대비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바로 거기에 착안하여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아주 자세하게 모든 것에 다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사실 큰 하나의 핵심적인 교훈이 있고 나머지 주변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바로 그러한 핵심 교훈 아래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전하십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5)

 

주인은 세 종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고 길을 떠납니다. 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액수로,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당시 보통 일꾼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인데, 이것은 약 20년 정도 일해야 벌 수 있는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요즘 화폐 가치로 환산해서 보면 한 달란트는 대략 100만 달러 정도 된다고 보면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한 달란트만 되어도 어마어마한 액수였습니다. 우리 가운데 지금 100만 달러를 캐쉬로 갖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이것은 굉장한 액수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면서 주인이 왜 이 세 명의 종에게 각각 다른 액수의 달란트를 주었는가? 주인이 불공평하고 차별한 것 아니냐?’라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5절을 보면 주인은 각각 그 재능대로그들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 능력에 맞게 줬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인은 자기 종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종마다 스스로 다룰 수 있을 정도의 액수를 맡겼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차별이 아니라, 오히려 종들에 대해 주인이 잘 파악한 것이며 주인의 자상한 배려입니다.

 

이 주인은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 다르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은사도 다르고, 재능도 다르고, 여러 경제적인 형편이나 자라온 배경이나 교육적인 면도 다 다릅니다.

 

그런데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많이 주시면서 왜 내게는 이렇게 적게 주시나?’라고 불평할 수 있는데, 특히 재물을 다르게 주신 것에 대해 그렇게 말할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차별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것으로 주시는 사랑의 배려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갑자기 돈을 많이 벌어서 타락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맡을 수 있는 정도보다 더 많이 주시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한계를 넘어가면 반드시 타락합니다. 이상할 정도로 타락해 버립니다. 우리는 잘할 것 같이 생각하지만 잘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맡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주시는 것은 사실 재앙입니다. 반면에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적게 주신다면 답답한 일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능력을 아시고 아주 정확하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불평, 불만, 원망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각기 다른 은사와 재능들을 주신 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으십니다. ‘아니, 저 사람은 왜 많이 주시고 나는 적게 주시나?’라고 할 때 하나님이 그래? 그럼 내가 많이 줘 볼게.’ 하시며 주신다면, 저는 재앙의 길, 타락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지금 맞는 것을 주십니다. 지금 안 주신다고 나중에도 안 주시는 게 아닙니다. 때에 따라 맞춰서 주십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있느냐, 무슨 종류가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자원들을 잘 사용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주신 것들을 잘 사용해서 이것을 왜 주셨는지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이 지금 나의 삶에 가장 중요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2.   맡겨주신 일들을 신실하게 감당할 때 상을 받게 될 것이다 (16~17, 19~23)

 

예수님 당시의 문화 속에서는 주인의 돈을 맡은 종들이 그 돈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자기가 알아서 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주인이 그대로 보관하고 있으라고 돈을 맡기는 게 아니라, 이것으로 열심히 일해보라고 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유 속에서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어떻게 합니까?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6)

 

그는 바로 가서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깁니다. 그러니까 100%의 순수익을 올린 것입니다. 다섯 개를 가지고 다섯 개를 남겨 열 개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주 잘한 것 아니겠습니까?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7)

 

두 번째 종은 두 달란트를 받았는데, 그도 역시 두 달란트를 더 남깁니다. , 똑같이 100% 순수익을 올렸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했다는 것은, 그도 역시 바로 가서 장사해서 이익을 남겼다는 겁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주인이 떠나자마자 바로주인의 뜻을 받들어 행동에 옮겼습니다. 주인이 그렇게 엄청난 캐시를 주고 갔으면 주인이 안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텐데, 주인은 돌아옵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19)

 

여기 보면, 주인이 오랜 후에집으로 돌아와서 그들과 결산을 합니다. 그동안 맡겨준 돈에 대해 잘 관리했는지 못했는지, 다 점검하고 살펴보았다는 말입니다. 주인은 하나님을 가리키니까, 이처럼 우리 인생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결산할 때가 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참 잘못 생각하는 게 뭔가 하면, ‘나는 천국에 가니까 이 세상이 빨리 끝나서 빨리 천국 가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소망을 가질 수는 있는데, 그 소망 때문에 잘못 변질되어서 이 땅에서 아무렇게나 살고 그냥 빨리 천국 가고 싶다고 한다면 잘못된 태도라는 겁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가서 결산할 때가 있기에, 그래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들을 잘 사용하여 하나님이 그것들을 주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고 사명입니다. 그래서 그 사명을 따라 열심히 살 때 결국 하나님 앞에 가서 결산하는 그때 우리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주인은 두 종의 보고를 듣고서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0-21)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종의 보고를 들은 주인은 아주 크게 그를 칭찬합니다. 그렇다면 두 달란트를 받았던 종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23)

 

두 달란트 받았던 종도 똑같이 보고하고 똑같은 칭찬을 듣습니다. 칭찬의 내용이 똑같습니다. 주인은 두 사람에게 각각 너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다.”라고 하면서, “적은 일에 충성했다.” “많은 것을 맡기겠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해라.”라고 세 가지를 말해줍니다.

 

적은 일에 충성했다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영어로는 a few things인데, 몇 가지 일에 충성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적은 일이 무엇을 말합니까? 비유 내용으로 보면 돈을 다루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돈을 다루는 일은 주인에게 몇백만 달러가 아니라 1억 달러, 10억 달러라도 별것 아니고 적은 일이라는 겁니다. 주인 입장에서는 그렇게 엄청난 액수도 대수롭지 않은, 그저 적은 일이라는 겁니다. 그런 적은 일에도 충성했으니까 이제는 진짜로 중요한 일, 큰일을 맡기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몇 가지 일을 시키신 다음에 우리가 잘 감당하면 점점 더 많은 일을 맡기십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일을 맡기신 다음, 최선을 다하나 안 하나를 보십니다.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모든 열정을 바쳐 성실함으로 감당하면, 그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시고 더 많은 일, 더 중요한 일들을 맡기십니다.

 

우리가 이 비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적은 일이라고 하시는 게 결코 안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별것 아닌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별것 아니지만 우리가 볼 때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엄청난 일일 수가 있습니다.

 

몇백만 달러씩 되는 엄청난 스케일의 일일 수가 있는데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별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은 더욱더 엄청난 것, 더 많은 것을 맡기신다는 것입니다. , 중요한 일, 하늘의 일, 영원한 가치를 가진 일을 더 많이 맡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조차 우리가 열심히 신실하게 감당하면 정말로 영원한 가치를 가진 일을 더 많이 하는 기회를 주십니다.

 

주인은 두 종이 장사를 잘해서 이익을 많이 남겼기 때문에 좋아서 칭찬하는 것입니까? 그게 아닙니다. 보십시오. 처음에 두 사람이 다섯 개와 두 개니까 세 개 차이였습니다. 그런데 일을 해서 100% 순수익을 남긴 다음에는 열 개와 네 개가 됐습니다. 그러면 원래 차이는 세 개였는데 지금 여섯 개가 되어 두 배로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다섯 달란트 받고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은 두 배로 더 칭찬하고 두 달란트에서 네 달란트 된 사람은 조금 적게 칭찬해야 맞는데, 둘 다 똑같이 칭찬합니다. 그러니까 그 돈 액수 때문에 칭찬한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칭찬한 겁니까? 이 두 종이 자기 뜻을 너무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충성스럽게, 신실하게 일했기 때문에 칭찬한 겁니다. 지금 이 주인의 관심은 돈이 아닙니다. 다섯 달란트(5백만 달러)나 두 달란트(2백만 달러) 같이 엄청난 액수의 돈을 가리켜 적은 일이라고 부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적은 액수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주인의 관심은 돈이 아니고 다른 데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종들의 충성(신실함)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잘 이해하고 순종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얘들이 잘 파악하고 내 뜻을 이루었는가?’ 거기에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종은 그것을 깨닫고 최선을 다해 주인의 뜻을 받들어 일했기 때문에 칭찬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인은 하나님을 가리키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기를 원하셔서 맡겨주신 일에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상을 주실 때 결과가 아니라 얼마나 충성했느냐를 보십니다.

 

<생명의 삶> 공부 때 예를 들어 말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테레사 수녀는 인도의 콜카타에서 사역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아이들을 갖다 버리면 데려다 키운 공으로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떤 기자가 짓궂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인도 콜카타에서 아이들을 200명 정도 데려다 키운 것밖에 없지 않습니까? 큰 기업을 하는 사람은 200명이 아니라 수백 명, 수천 명, 아니 몇백만 명도 먹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겨우 200명 정도를 돌본 것으로 노벨평화상을 받는 데 대해 부끄러운 마음은 없습니까?”

 

그때 테레사 수녀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공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충성하라고 부르셨습니다(God did not call us to be successful but faithful).” 자기는 그냥 신실했다는 겁니다. 몇 명이냐를 신경 쓴 게 아니라, 가난하고 불쌍한 아이들을 그냥 신실하게 돌보며 맡겨진 일을 감당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공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충성하라고 부르셨습니다.

여러분, 혹시라도 어떤 일이 나에게 주어질 때, 특히 교회에서 어떤 사역이 주어지며 같이 사역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할 때 저는 자격이 없어서 안 되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정말 겸손해서 그렇게 하는 거야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런데 잘할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면 그것은 성공을 생각하는 겁니다. ‘해서 뭔가 결과를 내고 성공해야 내가 좀 면이 서고, 실패하면 창피하니까 되겠나? 그러니까 아예 하지 말아야지.’

 

하나님은 성공하라고 우리를 부르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성공해 봐야 얼마나 성공하겠습니까? 모든 걸 가지신, 우주 만물을 다 갖고 계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조금 가진 그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성공해 봐야 뭐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공하라고 부르신 게 아니라, 그 크신 하나님,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 이것 좀 해보지 않겠니?’ 하실 때, 사실은 우리가 맡을 수도 없는 것인데 , 이것이 웬 은혜입니까? 저 같은 사람을 들어 쓰시고 맡겨주시다니요! 감사합니다.’ 하고 그냥 신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기만 하면 됩니다. 신실하게 살면 됩니다.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성공에 메일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것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다른 교회와 비교할 것 없습니다. 맡겨주신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충성하는 사람, 신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맡겨주신 일에만 최선을 다하며, 충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교회도 그런 마음으로 하게 된 것인데, 주님을 모르는 분들을 주님께로 인도해 보자고 나름대로 노력해 왔고, 실제로 그동안 우리 교회를 통해서 꽤 많은 분들이 주님을 만나는 역사가 일어나서 참 감사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 중에 한국에서 교회를 정말로 한 번도 다녀 본 적이 없다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요즘 그런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교인 숫자가 줄고 있기 때문에, 정말로 요즘에는 한 번도 교회를 안 나가 봤다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왔다가 우리와 연결되어 목장에 초대받아서 갔더니, 밥을 먹고 뭔가 이야기해 보라고 해서 자기 얘기를 하니까 들어주고, 또 자기를 위해 기도해 줍니다. 그러면서 점점 조금씩 마음이 열리다가 교회에도 한 번 나와 보지 않겠냐?’라고 하니까 나와 보고, 나오니까 ‘<생명의 삶>이란 게 있는데, 한 번 들어보지 않겠느냐?’라고 합니다. 옆에서 전에 들은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며 들으라고 하니까 들어보겠다고 결심하고 듣게 됩니다. 그러다가 , 이게 정말 그런 것이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제가 예수님을 믿고 세례받겠습니다.’라고 하게 된 경우가 그동안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그냥 자동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거기에는 엄청난 눈물의 기도가 있고 섬김이 있습니다. 그래서 참 감사한 일이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지금 우리를 통해 무슨 엄청난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하나님이 바라시는 게 아닙니다. 그걸 요구하시는 게 아닙니다. 숫자를 늘리라고 요구하시는 게 아닙니다. 그냥 충성하라고 하십니다. 교회의 사명을 다하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충성하고 있습니까? 어떻게든 한 영혼을 주님께 돌리기 위해 지금 애쓰고 있느냐는 겁니다. 나는 지금 한 영혼을 주님께 돌리는 일에 뭘 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우리 가정, 우리 목장, 우리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우리가 정말 힘을 모아서 애쓰고 있다면, 그럼 됐습니다. 그 충성, 그 신실함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 됩니다. 안 하고 있으면 안 되지만, 하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면, 충성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주님이 맡겨주셨는데 하고 있지 않다면, 두려워하면서 빨리 충성하는 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3.   충성하지 않는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듣게 될 것이다 (18, 24~30)

 

앞의 두 종과는 달리,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무엇을 했습니까?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8)

 

다른 두 종은 왜 즉시 나가서 장사한 겁니까? 그들은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분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왜 자기들에게 엄청난 돈을 맡겨주는지 그 뜻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번째 종은 일단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주인의 뜻은 더더구나 모릅니다. 그가 주인에게 뭐라고 변명합니까?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4-25)

 

이 사람은 자기 주인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의 문제의 핵심입니다.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는 주인의 종이면서도 자기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 당시 종들은 자기 주인을 잘 아는 게 정상입니다. 모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벌어지는 상황을 가지고 이런 비유의 말씀을 전하신 것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신 게 아닙니다. 이 이야기를 하시면 사람들은 그것을 다 알아듣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데 세 번째 종이 이 말을 했다고 예수님이 가르치실 때 그 말을 들은 청중은 다들 고개를 꺄우뚱했을 것입니다. ‘저런 종이 있나? 종이 저래도 되나? 아니, 종이 어떻게 그렇게 주인을 모르나?’ 하며 이해를 못 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종들은 자기 주인을 잘 아는 게 당연한 것이고, 주인의 성향이 어떤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다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종입니다.

 

그러나 이 종은 자기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몰랐고, 따라서 주인의 의도를 오해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오해에서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잘 모르니까 오해하고, 오해하니까 두렵고, 두려우니까 뭘 합니까? 돈을 땅에 묻었습니다. 감추었습니다. 결국 주인이 이 종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6-27)

 

여기서 우리가 조금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이 종은 왜 주인의 돈을 땅속에 묻어둔 것인가? 주인이 종들에게 돈을 맡긴 것은 무슨 뜻이었겠습니까? 당연히 그것으로 열심히 일하고 사업해서 이윤을 남겨보라는 뜻이었습니다. 주인은 그런 엄청난 돈을 적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종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액수이지만, 주인에게는 적은 액수이고 별것 아닙니다.

 

그러니까 가서 내 뜻을 따라 한 번 해보고, 그랬는데 조금 잃어버리더라도 상관없다.’라는 겁니다. 가서 이것으로 해보라는 겁니다. 사실 그들을 훈련하는 목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해보라고 돈을 맡긴 주인의 뜻을 오해했던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한 달란트를 들고 나가서 최선을 다해서 장사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주인이 돌아와 마구 야단을 쳤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어도 받은 돈을 다 날렸더라도 결코 꾸중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인을 위해 열심히 일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결과가 나빴을 뿐이지, 주인의 뜻을 받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 종이 나가서 허랑방탕하게 살고, 매일 술 취하고, 술집이나 도박하러 다녔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가 허랑방탕한 삶을 산 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진짜 문제는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것입니다. 주인의 뜻에 따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닙니다. 분명히 뭔가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뜻에 따라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교회에 오면 항상 듣는 말 중 하나가 우리는 죄인입니다. 죄인인 우리를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들은 나는 죄인이 아닌데 왜 자꾸 죄인이라고 그러나? 당신들이나 죄인이지 나는 죄인이 아니다.’ 하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내가 남을 해코지한 것도 아니고, 사기 친 것도 아니고, 남을 다치게 한 것도 아니고, 때린 것도 아니고, 살인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도덕적으로 꽤 괜찮게 살았는데 왜 죄인이냐?’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 게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그때 죄는 범죄를 말하는데, 그런 Crime을 생각해서 나는 범죄자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인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보통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만 생각합니다. , 살인하지 말아야 하고, 간음하지 말아야 하고, 거짓말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것을 한 것도 죄이지만, 하라는 것을 하지 않은 것도 죄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하라고 하셨는데 안 했다면, 그것도 죄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바로 여기에 걸립니다. 우리 수많은 크리스천들도 바로 여기에 걸립니다.

 

그런데 이 종이 변명한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주인을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은근히 주인의 잘못이라고 하며 주인에게 돌리는 것을 봅니다(24). ‘당신이 안 좋은 사람이라 내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숨겨놓을 수밖에 없었다. 원금을 가만히 놓아두었다가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라고 은근히 자기를 합리화하며 주인을 비난합니다. 혹시라도 주인의 돈을 투자했다가 손해 보면 , 다 물어놓아라!’라고 하는 주인인 줄 알고 땅에 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27절을 보면 그 당시 얼마든지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었습니다. 돈을 취리하는 자들즉 은행 같은 것이 당시 있었다는 것인데, 은행에 넣어 놓았더라면 이자라도 받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이 종은 한마디로 주인의 돈을 관리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인이 원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사회에서 종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종이 어떻게 주인의 일에 관심이 없습니까? 완전히 잘못된 종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 문제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주인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은 것입니다. 종으로서 종답게 행동하지 않은 것입니다. 종이면서도 주인의 뜻을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종이면서도 마치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산 것입니다.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주인이 떠나 있을 때 이 종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까? 그냥 놀고먹으며 허랑방탕하게 지내고 술집에 다니거나 도박하러 다닌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분명히 뭔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먹고 놀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뭔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했을 수가 있습니다. 또 그 일이 나쁜 일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는 좋은 일을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한 겁니까? 주인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주인이 맡겨준 일보다도 더 중요한 다른 뭔가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고, 거기에만 정신이 팔려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준 돈에는 관심도 없고, 땅에 묻어둔 채 자기가 원하는 일만 하며 그 오랜 시간을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 종이 아무 이익도 내지 않은 채 자기가 준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지고 왔기 때문에 주인이 그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외치며 분노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종은 주인이 어떤 사람이고, 주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왜 몰랐습니까? 종이면서도 그의 관심은 주인의 일이 아니라 다른 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며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하실 때 듣고 있던 모든 사람이 당연하지라고 여겼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 세 번째 종은 주인에게도, 주인이 원하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관심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겁니까? 오직 자기 일, 자기가 원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종이면서도 주인의 일보다 자기의 일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종의 본분을 망각했습니다. 주인을 잊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주인을 잘 몰랐기 때문에 오해했고, 오해하니까 두려움이 생겼고, 따라서 주인의 돈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준 돈은 땅에 묻어 버리고, 가서 자기 일만 하며 지냈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 일만 했지, 주인이 주고 간 돈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고, 바로 그것을 가리켜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책망한 것입니다.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28-30)

 

이 사람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할 뿐 아니라 무익한 종’, 즉 하나도 이익이 되지 않는 종이라고까지 부릅니다. 당시 고대사회에서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만 해야지, 자기 것을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주인과 종의 관계가 좋은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경우에는 종이 주인에게 주인님,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할 수는 있지만, 주인이 이렇게 해라.’라고 할 때 싫은데요.’라고 하는 종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종은 주인이 원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아무리 일을 열심히 했더라도 그는 주인으로부터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두 종이 주인을 기쁘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종으로서 주인의 뜻을 최고의 우선순위에 두고 거기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주인에게 유익을 끼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더 중요해 보이는 일들도 있었겠지만, 또 주인이 보고 있지 않으니까 얼마든지 대충대충 할 수도 있었지만, 언젠가 주인이 반드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주인이 맡겨주신 일에 집중했고,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들은 것입니다. 돈을 많이 남겨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의 돈은 땅에 묻고 가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는 주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관심이 없고,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주인의 뜻에는 상관없이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크고 중요한 일을 했을 수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일, 남들이 모두 ~’ 할 만한 일, 아주 아름다운 일, 아름다운 선행 같은 것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인이 원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종으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두 사람은 큰 상을 받았지만, 이 종은 내쫓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에 주인이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30)라고 하는데, ‘바깥 어두운 데가 어디입니까? 이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가리킵니까? 이것은 해석하기가 참 어려운 구절인데, 분명한 것은 이 바깥 어두운 데라는 곳은 이 주인이 계시지 않은 곳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종으로서 주인을 아예 배제해 버리고 주인이 없는 것처럼 살았기 때문에, 이제 주인이 없는 데로 내보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잘 이해해야 합니다. 나쁜 짓만 골라 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악하게 살고, 허랑방탕하고 그러는 사람이 여기 누가 있습니까? 여기 어떤 분이 그렇게 살겠습니까? 우리가 다 열심히 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그렇게 열심히 사는 게 문제일 수가 있다는 겁니다. 누구를 위해서 열심히 사느냐는 겁니다.

 

지금 우리 주인이신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에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좋은 대로 사는 것인지? 주인이 맡겨주신 것은 버리거나 묻어두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그것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꾸 설득하려고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거룩한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충고합니다. ‘하나님, 사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이것보다 저것이 더 중요해요. 그래서 제가 그것을 했습니다.’ 이렇게 변명하고 하나님을 설득하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 무익한 종이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엄청난 일을 이 땅에서 했더라도, 아무리 대단한 일이고 사람들이 존경하는 일을 했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신 것이 아니라면, 맡겨주신 것이 아니라면, 자기가 좋아서 그냥 한 것이라면 소용이 없습니다.

 

관리 능력이 뛰어난 청지기는 주어진 임무와 부르심을 100% 충실하게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어디에 관심을 두고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온통 자기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정말 큰 일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여서 교회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고 할 때,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입니까? 그것을 우리가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족하지만 최대한 하나님이 원하신 것을 하자고 하며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는 길]

 

오래전 시골에서 주인이 머슴들에게 새끼줄을 가늘게 꼬라고 하고 길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종들 중에서 눈치가 빠른 머슴은 주인이 있을 때는 짚의 털을 뽑고 침도 뱉어가면서 아주 가늘게 꼬았습니다. 그러다 주인이 떠나고 난 뒤에는 에라 모르겠다하며 아무렇게나 꼬니까 굵어졌습니다.

 

주인이 돌아와 큰 포대에서 구멍 뚫린 동전들을 잔뜩 쏟아 놓으며 지금껏 꼰 새끼줄에 자기 재주껏 동전들을 꿰어 넣고 집으로 가져가도 좋다.”라고 했습니다. 눈치가 빠른 머슴은 그가 꼰 새끼줄이 워낙 마구 꼬아져서 두꺼웠기 때문에 동전을 꿰어 넣으려 해도 동전이 하나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성실한 머슴은 그 눈치 빠르고 머리 좋은 머슴에게 뭐 그렇게 열심히 하냐?’라고 구박을 받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성실하게 새끼줄을 꼬았기 때문에 거기에 동전들을 많이 꿰어서 집으로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최근에 어떤 데서 통계조사를 했는데, 인간의 사망률이 100%라고 합니다. 사실 조사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 세상에서 죽지 않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도 언젠가 다 죽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바로 그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고, 그러면 주님 앞에 서게 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서서 결산해야 할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 저를 포함해서 그렇지 않을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내 삶에 대해 결산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 뿐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자기가 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사람, 그래서 죽음 이후를 준비하며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내 일생에...’라고 하는데 사실 우리의 인생은 일생이 아닙니다. ‘삼생입니다. 일단 어머니 뱃속에서 잘 자라줘야 하는데 그것이 1생이고, 태어나서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게 2생이며, 이 세상을 떠나면 3생입니다. 1생 때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야 2생에서 잘 지낼 수 있듯, 2생에서 제대로 살아야 3생에서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1생에서 2생을 준비하는 것처럼, 2생에서 3생을 잘 준비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잘 준비한다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대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다음 세계, 영원한 세계로 가는 관문입니다. 진짜 주님을 믿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 늘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죽음을 통과하여 어디로 갑니까? 하나님이 계신 곳,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시는 게 아닙니다. 그 무서운 지옥으로 자기가 선택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곳은 어두운 곳, 하나님이 안 계신 곳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없이 살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죽음을 통과하여 하나님이 안 계시는 곳으로 가는 것뿐입니다. 그것을 지옥이라고 표현합니다. 그것이 여기 나오는 바깥 어두운 데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은 정말 이 땅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곳입니다. 전에 그런 책 제목도 있었는데, <재미없는 천국, 재미 있는 지옥>이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오해한 겁니다. 지옥은 재미없습니다. 완전히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천국은 재미가 아니라 늘 행복하고 늘 기쁨이 가득한 곳입니다. 이 땅과 비교도 되지 않는 그곳, 사랑하는 주님이 계신 그곳에서 영원히 같이 사는 것인데,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걱정되겠습니까?

 

바로 이런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 매일매일 사는 사람은 이 땅에 그렇게 미련을 가질 필요도 없고, 오히려 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해 감당하며 살게 됩니다. 기쁨과 소망 가운데 주님 앞에 서는 그날을 기다리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날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 주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바로 그것을 이루는 삶을 살아서, 주님 앞에서는 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고 칭찬받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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