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8일 주일예배

21세기를 위한 고대사회의 교훈 4

하나님의 명령과 노아의 순종

(창세기 613~22)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자신의 인생에 몇 명이나 거쳐간 것 같으십니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정말 많은 사람들과 지나치며 살아갑니다. <새로운 삶> 교재에 보면 어떤 사회학자가 말하기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보통 세 가지 눈으로 본다고 합니다.

 

첫째로는 우리가 풍경 같은 사람으로 봅니다. 풍경과 같이 지나치는 사람, 나와 아무 관계가 없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운전하다가 옆 차에 있는 사람은 나와 아무 관계가 없이 지나칩니다. 뉴욕이나 서울 같은 대도시에 시내를 걸을 때 수많은 군중 속에서 걸어갑니다. 거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나와 별 관계 없습니다. 그냥 풍경 같이 스쳐 지나갑니다.

 

둘째는 기계 같은 사람입니다. 기계가 나를 위해 쓰이듯이 나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그로서리 샤핑을 갔을 때 도와주는 직원이나 레스토랑에서 나를 서브(serve)해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과 친밀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나를 도와주는 정도입니다.

 

셋째는 정말로 사람 같은 사람입니다. 정말 친밀한 관계,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세 가지로 사람들을 분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아무리 사람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 ‘좋지도 싫지도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개 어떤 사람을 좋아합니까?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십니까? 보통 우리가 다른 사람을 좋아할 때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아주 오래 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몇 십 년 전 이야기입니다. 어떤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았지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방법을 생각하다가 매일 전보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40일 동안이나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내용의 전보를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보냈습니다. 그리하여 매일 사랑한다는 전보를 받은 그 아가씨와 40일이 된 날 드디어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우편배달부가. 전보를 보낸 남자가 아니라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들고 가져다 준 우편배달부가 아가씨와 결혼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40일 동안 매일 봤으니까 그렇습니다.

 

자주 보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의 첫 번째는 자주 만나는 사람입니다. 관계와 시간은 비례합니다. 자주 안 만나는데 관계가 깊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자주 직접 얼굴을 보며 만날 때 친해지고 관계가 깊어집니다. 매주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매주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게 중요하고 매주 목장에 나가 서로를 직접 보고 교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우리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대부분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지만 그 중에도 특별히 말이 더 잘 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그 사람에게 마음이 많이 가게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세 번째, 우리는 자신의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내 말을 믿어주는 사람을 당연히 좋아합니다. 내 속마음과 사정을 말했을 때 잘 들어주고 인정해주고 받아주고 공감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과는 대화가 잘되고 그 사람이 좋아집니다.

 

네 번째, 우리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어서 약속을 다 지키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 그 사람이 좋아집니다. 나와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손해를 보고 오해를 받으면서도 약속을 했기 때문에 끝까지 지켜주며 애쓰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 역시 바로 그런 사람을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주 만나는 사람, 대화가 통하는 사람, 자신의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을 하나님도 좋아하신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노아가 하나님이 보실 때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그런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좋아하시는 사람이 있고 보실 때 슬퍼하시는 사람도 있고 답답해하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하나님이 좋아하실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나는 하나님이 좋아하실만한 사람인가를 돌아보며 오늘 말씀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

 

1)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심각한 문제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9). 이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어떻게 그가 의인이고 당대에 완전한 자였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봐주셨다는 것입니다. ?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노아는 하나님과 직접 자주 만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었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당신의 속마음까지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보게 됩니다.

 

바로 그렇게 사는 것을 가리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한 것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13-14)

 

하나님께서 이런 속마음까지 나누신 사람이 노아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고페르 나무라는 것이 어떤 나무였는지 100% 정확하지는 않지만, 개역한글이나 새번역에는 잣나무로 되어 있고 NIV에는 “cypress wood”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나무가 어떤 나무였는가가 아니라, 노아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그 심판을 준비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도 마지막 때에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이 노아를 언급하십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마침내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17:27, )

 

사실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는 것은 인생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들입니다. 먹고 마셔야 살지 않습니까?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일상적인 일만 하느라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를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멸망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왜 죽음이 다가오는데도 전혀 모르고 그렇게 어리석은 삶을 산 것입니까? 그들이 그냥 보기에는 전혀 심판의 기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위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위험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남의 이야기이지,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즘 허리케인이나 지진 등 얼마나 많은 자연재해가 있습니까? 또 지난주에 라스베이거스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나는 등 엄청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런 일에 대해서 들을 때 가슴이 철렁하긴 하지만 나와는 상관이 없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며 그냥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 당시 사람들도 홍수가 난다고 하며 아무리 배를 지어봐야 자기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홍수로 세상이 멸망한다는 것은 당시로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삶을 이 한 번의 심판을 준비하는 일에 바쳤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즐기면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일상적으로 살아가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놀랍게도 그런 식의 삶을 살던 세상에는 부패와 포악함이 가득했습니다. 너무 악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살았다는 것이 일상적인 삶인 동시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었고, ‘하나님은 필요 없다. 내가 하나님이다.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한다.’라고 하나님 노릇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 결과 나온 것은 부패였고 포악함이었습니다.

 

그 당시 다른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며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와중에 노아는 놀랍게도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을 준비하기 위한 배 한 척을 만드는 일에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다 쏟아 부었습니다. 그 결과 그와 그 가족들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게 뭐 그리 악한 일입니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삶의 중심에 뭐가 있습니까? 삶의 중심에는 결국 나 자신이 있습니다. 내가 주인입니다.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극히 일상적인데 하나님을 배제해버리고 내가 주인으로 삽니다. ‘하나님은 필요 없다. 내가 알아서 한다.’라고 하며 살고 있습니다. 자기가 알아서 자기 인생을 즐기며 삽니다. 그런데 그 끝은 무엇입니까? 결국 멸망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강력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2)  방주를 만들라는 명령

 

하나님은 심판을 대비하기 위해 노아에게 아주 큰 네모난 배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방주라는 말 자체가 네모난 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 곡물을 나르는 배로 네모난 배를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네모난 배에는 뚜껑이 있었고, 내부가 3층으로 되어 있었으며, 칸막이도 있었습니다.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15-16)

 

길이 300 규빗, 너비 50 규빗, 높이 30규빗이라고 했는데, 이것을 환산하면 길이가 약 450 feet, 너비는 75 feet, 높이는 45 feet 정도(각각 135미터, 23미터, 14미터) 됩니다. 3층으로 된 구조는 최대한 많은 생물과 물건들을 싣기 위함이며,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배의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칸막이는 배가 흔들릴 때 짐승들이 한 곳으로 쏠리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큰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치수까지 자세히 말씀해주셨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노아는 그 당시 사람들이 가진 배와 똑같이 만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배로는 1년 동안의 홍수에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세상에서 전혀 본 일이 없는 이상한 배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을 통독하려고 결심해서 읽다 보면 창세기는 잘 나갑니다. 출애굽기도 20장까지는 잘 나가는데, 그때부터 십계명이 나오고 여러 율법이 나옵니다. 특히 레위기를 보면 너무 자세히 제사법에 대해 나와 있습니다. 어떻게 그 옛날 이렇게 자세히 적어놓았을까 하고 감탄이 나올 정도로 너무 자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뭡니까? 여러 수치와 모양과 색깔이 다 중요하지만, 그 말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이 알려주신 방식으로 지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사역을 할 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하는데 어떨 때는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들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있을 때, A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B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니까 서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둘이 하나님의 방식대로 합시다.’라고 하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가정이나 일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게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결국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교회에서도,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이 내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식의 가장 핵심이 무엇입니까? 결국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이것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는 것인가? 이것을 통해 정말 이웃에게 덕을 세우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가?’라는 기준으로 하면 틀림없습니다. 문제가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이 방주의 특이한 점은 키도 없고 나침반도 없고 조종실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노아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물이 흘러가는 대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노아의 방주입니다.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하나님을 믿고 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그 폭풍과 비와 물결을 볼 때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그러다 혹시라도 낭떠러지에 떨어지면 그대로 배가 박살나고 다 죽는 게 아닙니까? 배 안에서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가는 우리 인생은 마치 이 방주 안에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방주 안에서 우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하나님을 신뢰하며 따라가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아무리 인생의 폭풍과 비바람이 몰아쳐도 평안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비가 오고 폭풍이 불고 물결이 치는 것을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습니까? 안 됩니다. 우리가 만들어낼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배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인도해주십니다. 그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혹시 병들거나 사업이 어려워지거나 가정에 문제가 생겨서 두려운 마음이 있으십니까? 그럴 때 우리가 할 일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동력이 되시고 방향이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며 보호해주십니다. 내 인생이라는 배를 조종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배 안에 타고 아무리 배가 이리로 가야 한다고 애를 쓰며 노력한다고 그리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도해주셔야 합니다. 물결이 쳐서 저쪽으로 흘러가니까 잘못된 게 아닌가 해도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냥 믿고 가는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이 직접 인도해주십니다.

 

이 배는 하나님이 조종하시기 때문에 엔진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조종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굳이 밖을 내다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창문이 꼭대기에 작게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방주 밖에 있던 모든 사람들과 생물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방주 안에 있었던 노아와 가족들 여덟 명과 모든 동물들은 1년이 지난 후 다 살아서 방주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방주 안이 안전합니다.

 

사실 노아는 홍수로부터 구원받았지만 그 다음에 어떻게 할지 아무 대책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무서운 홍수에서 구해주신 하나님께서 그 다음에는 알아서 아무렇게나 살라고 그를 내팽개치시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그 다음에 내 삶이 어떻게 될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인생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나아가는 것은 필요하지만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미래가 내 눈앞에 당장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될지 불안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 영원한 죽음에서, 저 영원한 멸망에서, 저 무서운 지옥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이, 그럼 이제는 구원했으니까 아무렇게나 살라고 하시며 우리를 내팽개치시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필요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에 보면, 하나님은 이 땅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알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모르시거나 무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너는 그것 필요 없고 무조건 나만 따라와라고 하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모든 것은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 하나님을 온전히 붙드는 삶입니다. 바로 그런 삶이 축복입니다.

 

 

2.   노아에게 주신 언약

 

이제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세우십니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17-21)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노아와 언약을 세우셨다는 점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세우실 필요가 하나도 없으십니다. 그런데도 노아와 언약, 즉 계약(contract)을 맺으심으로써 하나님 자신을 스스로 제한하셨습니다. “이 방주 안에 들어가라. 그러면 내가 너희의 모든 삶을 책임지고 인도하겠다.” 이렇게 하나님이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에 반드시 노아와 그 배에 탄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주셔야만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 언약을 지키지 못하신다면 하나님은 능력이 없는 분이 되시고 맙니다.

 

구약성경에 하나님이 언약을 맺으시는 것이 몇 번 나오는데, 노아가 가장 첫 번째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으셨고, 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셨으며, 나중에 다윗과 맺으십니다. 그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노아는 배 안에서 굶어죽거나 배가 파선하여 죽을 걱정을 해야 합니까 안 해도 됩니까? 당연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동물들도 보존하시기 위해서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을 한 쌍씩 보내주셨습니다. 노아가 나가서 데려온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방주 안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할 일이 있었습니다. 먹을 양식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동물들이 오는 것은 노아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먹을 양식은 준비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언약을 받고 그것을 믿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고 그래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동물들을 데려오는 것 같은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혹시 망하는 게 아닌가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노아도 배에 들어갔는데 어느 날 배가 어딘가에 쾅 부딪치는 소리가 갑자기 들리기도 하고, 자꾸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러다 암초에 부딪쳐 다 산산히 깨어지고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노아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 하나님이 언약을 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고 살 것이라고 이미 언약을 주셨습니다.

 

가끔 보면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 중에 오래 믿었으면서도 오늘이라도 이 세상을 떠나면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습니까?” 하는 질문에 대해 , 모르겠어요.”라고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심지어 평생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 중에 돌아가시기 직전에 이제 천국에 들어가실 것을 확신하시죠?”라고 하면 , 무서워요.”라고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면 그 동안 도대체 무엇을 믿은 것입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을 주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고 구원을 받을 것이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하고 약속을 주셨습니다. 약속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붙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당장 이 세상을 떠나도 천국에 들어갈 것을 확신하게 되는 것은 주님이 주신 언약 때문입니다. 그 언약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성경을 가리켜 다른 말로 하나님의 계약서(contract)’라고 합니다. 여기 쓰여 있는 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이 방주 안에 들어 있는 이상 괜찮습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못 살겠다. 저기 어딘가에 땅이 있을 거다.’라고 하며 뛰쳐나가면 죽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 안에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 있는 이상 노아와 그 가족들, 그리고 모든 짐승들의 생명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이 온 우주에서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신 곳이 어디겠습니까? 바로 이 방주 안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언약(약속)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성경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예수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또 더 풍성히 누리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예수님을 믿고 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풍성히 살게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이 세사에 살면서 먹을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누구와 결혼해서 어떻게 살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하나님의 언약(약속)이 내 안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지도 않으면서 믿으면 곤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져 있음에도 두려워하고 벌벌 떨면 뭔가 이상한 게 아닙니까?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만 붙들면 하나님이 나의 모든 삶을 책임지시는 것을 정말로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의심하면서 어떻게 그러냐고, 말이 안 된다고 말하며 불안해합니다. 체험을 안 해봐서 그렇습니다. 정말 약속을 붙들고 나아가면 100%가 아니고 비는 부분들이 채워지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데도 무슨 특별한 목적도 없이 하나님이 나를 굶어죽게 하시고 비참하게 살게 하시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게 하신다면, 둘 중 하나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뜻이 있으셔서, 예수님 같이, 사도 바울 같이, 여러 사도들과 믿음의 선배들 같이, 고난을 통해 뜻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계약을 위반하시는 게 됩니다. 계약을 위반하면 이 땅에서는 벌금을 물어내거나 잘못하면 감옥에 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며 살았는데도 아주 비참하게 살다가 굶어 죽었다면 하나님 앞에 설 때 할 말이 있을 겁니다. ‘하나님, 계약을 위반하셨습니다.’ 그런데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 하나님이 급해지시는 겁니다. 그래서 천사들에게 빨리 가서 쟤를 도와줘라. 안 그러면 계약 위반이 된다.’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8:28)는 말씀은 하나님이 바쁘게 움직이셔서 모든 것을 선으로 만들어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위급 상황이 닥칠 때 하나님이 막 바쁘게 움직이셔서 계약을 이행해주십니다. 얼마나 멋진 삶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만 하면 하나님이 나의 살고 죽는 것, 풍성한 삶, 그 밖에 모든 것을 다 책임지시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은 내가 생각하는 어떤 최선의 삶보다 더 아름다운 것입니다. 나로서는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삶을 살도록 하나님이 책임져주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언약(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세우신 언약에 스스로를 제한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노아와 세우신 언약을 볼 때 노아의 언약은 몇 가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첫째로, 이 언약의 대상이 아주 제한적입니다. 노아와 구원받은 사람은 딱 여덟 명 뿐입니다. 생물들도 각각 한 쌍씩 밖에는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 구원받기를 싫어했기 때문에 결국 죽었습니다. 영화에도 보면 방주가 닫힌 다음에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다 죽었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너무나 제한된 사람들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한 방주는 제한된 공간이었기 때문에 모든 생물을 다 태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리스트에는 모든 생물의 대표로 각각 한 쌍씩만 들어오게 됩니다. 노아의 리스트에 포함된 인원은 최소 인원입니다.

 

노아를 통한 구원은 엄청난 죄의 흐름을 조금 주춤하게 만들고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사람이 존재할 수 있도록 보존해주시는 언약이지, 완전한 구원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완전하게 이루실 구원을 미리 보여주는 예표였습니다. 회복의 예표를 노아의 언약이 보여줍니다.

 

노아의 리스트에 들어간 생물들은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예수님의 리스트에는 땅 끝까지 이르러 수많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이 다 포함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흰 옷을 입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데, 모든 민족과 방언과 나라 가운데서 모여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리스트입니다.

 

그때는 구원받고 싶은데 구원을 못 받는 경우는 없습니다. 구원받기 싫다고 거부하는 사람들만 멸망을 당하지, 구원받기를 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다 예수님의 리스트에 들어가게 됩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믿겠다고 결단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지옥으로 보내시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서 하나님 없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이 안 계신 곳으로 가는 것뿐입니다.

 

 

[나가는 말]

 

우리가 노아의 홍수를 통해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은, 죄도 무섭지만 그 무서운 죄에 대해 무감각해진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정말 무서운 것은 내 삶에 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죄성을 갖고 살기 때문에 순간순간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죄를 범할 때 바로 하나님께 돌아오고 회개하는 것은 참 귀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죄를 짓고도 감각이 없고, 죄를 지어도 별 일 없으니까 괜찮은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무감각해지는 것처럼 무서운 게 없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정말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심판을 대비하는 데 자기의 삶을 다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죄에 무감각해져서 죄를 알면서도 계속 죄만 짓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진노의 심판을 정말 믿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처럼 폭력에 빠지거나 무절제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사망률은 100%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다 세상을 떠납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이 몸을 가지고 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언젠가는 다 떠납니다. 만약 안 죽었을 때 예수님이 오시면 그때가 종말이고, 죽게 되면 그때가 종말입니다. 어쨌든 우리의 종말은 반드시 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이 있긴 있겠지만 나와는 상관없다거나 없다고 하며 하루하루 무절제하고 아주 일상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다면 굉장히 위험한 삶입니다. 노아처럼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진노를 지금 현실로 끌어와서 미리 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마지막 때, 즉 나의 종말이든지 세상의 종말이든지 어떻게 준비하고 계십니까? 그 종말을 준비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노아는 정말 심판이 있을 것을 믿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바꿨습니다. 배를 짓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남들이 조롱해도 계속 지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마지막 때를 대비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내 삶에 죄가 있을 때 그냥 그런가 보다. 또 죄를 지었나 보다.’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두려운 일입니다. 빨리 깨닫고 주님 앞에 돌아와야만 합니다. 일상적인 일들, 즉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거기에 푹 빠져서 다른 것을 잊고 사는 삶,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삶은 굉장히 위험한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으로서, 혹시 내 삶이 지금 좀 어렵고 힘들어지고 불안정해진다 해도, 결코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의 조종사가 되어 주십니다. 나의 삶에 엔진이 없어도 하나님의 배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가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인가? 나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인가? 바로 그런 축복이 우리 삶에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