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86일 주일예배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산다 13

비방하지 말라, 자랑하지 말라

(야고보서 411~17)

 

[들어가는 말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일이 뭔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이라는 것이 많이 나왔습니다. 2016년의 Top 10이 이랬습니다. 10위 정비공, 9위 용접공, 8위 수색 구조대, 7위 청소부, 6위 지뢰 제거, 5위 개인 운전, 4위 광부, 3위 소형 비행기 조종사, 2위 원양어선 어부, 1위 벌목꾼.

 

그런데 올해 3월에 중국 최대 소셜 미디어인 웨이보에서 중국 네티즌들이 색다른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은 바로 한국 대통령이라는 것입니다. 이전 대통령들이 줄줄이 구속되었고, 아들들의 비리로 아들들이 구속되었고, 자살한 분도 있고, 또 탄핵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소위 3D 직종이라고 하는 ‘Dirty, Difficult, Dangerous’라는 것이 가장 위험합니까? 육체노동이 가장 위험합니까? 아니면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에 파병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가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첫 인류인 아담과 하와가 바로 거기서 넘어갔습니다. ‘이것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라고 하는 뱀의 꼬임에 넘어가서 내가 하나님처럼 되어 보겠다라고 나아가다가 범죄하고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들 이후 인류는 끊임없이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고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주변에 보십시오. 자기가 하나님 노릇을 하니까 서로 다투고 싸웁니다. 그것 때문에 나라간에 전쟁도 일어납니다.

 

하나님 노릇을 한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입니다그런데 그것이 왜 위험한 일입니까? 자기가 하나님 같은 능력이 없는데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 같은 능력이 없는데 하나님이 되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인생은 분명히 망합니다.

 

내가 어떻게 나를 의지하고 믿을 수 있습니까? 흔히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우리는 방에 있다가 거실로 나왔는데 내가 왜 나왔지?’라고 하는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라 수도 없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믿고 내 삶을 내어줍니까?

 

부부라면 가서 물어보십시오. ‘여보, 내가 당신의 주인이 되어줄게.’ 그러면 절대로 반대할 겁니다. 그런데 수많은 가정의 문제는 바로 그렇게 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내가 네 주인이다.’라고 나오니까 가정에 부모와 자녀간에 문제가 많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순종하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우리를 옭아매거나 괴롭히려고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하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지 않으면 뭔가 다른 것이 주인이 됩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든지, 돈이 주인이 되든지, 다른 것이 주인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인생이 망가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 인생이 망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제대로 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네가 나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Savior)로 영접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원래는 구원을 못 얻고 천국에 못 가는데,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구원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로, 그렇게 믿었으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사람은 예수님을 주인(Lord)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주인으로도 믿어야 합니다. 구주로는 믿는데 주인으로는 안 믿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이 바로 누가 주인이냐?’의 싸움입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책이 로마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사람은 어떻게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가를 강조하는 책이 야고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은 항상 이 싸움입니다. 누가 주인이냐?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것은 다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면 하고 원하지 않으면 안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연히 예배를 원하시는데, 내가 좋으면 하고 내가 하기 싫으면 안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옵션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그런데 내가 기분이 좋으면 이웃을 사랑하고 기분이 나쁘면 안 사랑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잘해주고,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게는 안 합니다.

 

이게 자기 맘대로 사는 것, 이게 하나님 노릇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가 알아서 판단하고, 모든 것을 자기가 알아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을 얻었더라도, 계속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아가니까 인생이 복잡하고 관계가 꼬이며 힘들어집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되어 살면 누가 손해입니까? 하나님이 손해가 되겠습니까? 내 손해입니다. 내가 망하는 길입니다. 혹시 이 세상에서 성공하더라도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면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결국 이 세상을 떠나는 날 하나님 없이 살았으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저 영원한 멸망으로 가게 됩니다. 인생을 하나님이 지옥으로 보내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 없이 살다가 하나님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노릇을 하는 죄를 범하는 케이스는 너무 많지만, 오늘 본문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비방할 때 하나님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고, 둘째는 허탄한 자랑을 할 때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행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강력하게 비방하지 말라, 자랑하지 말라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비방하지 말고, 왜 자랑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오늘 성경은 무조건 그것은 나쁘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1.   비방하지 말라 (11-12)

 

비방이나 판단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1)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판단하게 되면, 그것은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편지를 야고보가 누구에게 썼는지를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 야고보는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은 크리스천들에게 썼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서로 비방하는 것과 형제자매를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주 안에서 형제자매가 되어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다른 지체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율법은 구약의 십계명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125절에서 언급한 자유하게 하는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인 사랑의 법을 의미합니다.

 

이 두꺼운 성경 전체를 요약하면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소위 가장 큰 계명이고 수요예배에서 계속 다루고 있는 예수신경입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핵심입니다. 다시 말해,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율법은 사랑의 법이고 곧 성령의 법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문자로 되어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문자로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율법 밑에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알지만,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긴 아는데 살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율법은 무엇이 옳고 틀린지는 가르쳐주지만, 올바르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 신약(새로운 언약) 밑에 사는 우리는, 문자로 된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을 때 선물로 받은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삶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성령이 안에 계십니다. 내가 느끼든 못 느끼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순간 성령을 받습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직접 가르쳐주십니다. 또한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도 주시고,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도 주십니다(2:13).

 

그러니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를 인도해주시기 때문에, 그렇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가정과 일터나 교회에서, 특히 교회에서 믿는 성도들끼리 어떤 일로 의견의 차이가 생길 때, 대부분의 문제는 아주 근본적인 일이거나 정말 죽고 사는 문제인 경우가 아닙니다. 그렇게 생명이 걸린 일이 아니라면, 서로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과 동행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서로를 비방하지 말고 용납해야 하는지,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각자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데, 그러한 형제자매를 비방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을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비방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비방할 때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스타일이 다르다고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둘째로, 우리가 다른 지체를 비방하면 안 되는 이유는, 남을 비방할 때 우리가 그 율법의 준행자(지키는 사람)가 아니라 재판관(심판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11b).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심판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곧 내가 하나님이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말씀을 주셨습니까? 지키라고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말씀을 지키며 살면 재미가 없고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지키고 살면 오히려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행복하게 될지,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보다 그것을 더 잘 아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지키면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다른 사람이 그것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살피기 위함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잘 지키지 못하더라도, 내가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준행자가 아니라 자꾸 다른 사람이 잘 지키는지 못 지키는지를 살피는 재판관이 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말씀을 적용하지를 않고, 자꾸 남에게 적용시켜줍니다.

 

설교도 이 말씀을 들으면서 가만, 그 사람이 없잖아?’라고 할 게 아니라, ‘이 말씀은 정말 나를 위해 주시는 말씀이구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꾸 주변을 보면서 그 사람이 오늘 따라 왜 여행을 갔지?’ ‘내 남편이(아내가) 이걸 들어야 하는데.’라고 하면 재판관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나를 위해 주시는 말씀이구나.’라고 하며 나아가는 겁니다. 큐티도 그렇습니다. 설교에서 내용이 많지만 한 가지만 잡아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행하기로 결단하고 나아가 일주일 동안 그것을 실천하는 겁니다. 그러다 목장에 가서 그렇게 해보니까 좋았다거나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격려하고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면 안 되는 이유 세 번째 이유는, 남을 비방하고 판단한다는 것이 곧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는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12)

참 무서운 말씀입니다. 조금 더 쉬운 새번역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제정하신 분과 심판하시는 분은 한 분이십니다. 그는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그대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합니까?” (12, 새번역)

 

비방하고 판단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신데, 그분은 구원도 하시고 멸망도 하시는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럴 능력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십시오. 누가 재판관입니까?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내가 아닙니다. 그런데 다른 지체들을 비방하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곧 내가 하나님이 되려는 시도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는 율법의 준행자일 뿐이고,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심판하시는 재판관이시라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것을 멈추고 자꾸 비방과 판단 쪽으로 흐르면,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 숭배인데,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이 우상 숭배입니다. 왜 싫어하십니까? 우리가 그렇게 하면 망하기 때문에 싫어하십니다.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망하는 길로 가니까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아예 스스로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범죄이겠습니까?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시도하는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입니다. 인생이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하나님이 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 그런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난 며칠만 생각해보아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어디 다른 데 가 계시게 하고 내가 다 알아서 하는 삶을 살지 않습니까?

 

내가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나 스스로 하나님 노릇을 하겠다는, 내가 아예 하나님이 되겠다는 엄청난 죄라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다른 사람을 공정하게 판단한다고 하더라도 그 판단은 올바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애초에 어떤 일이든 객관적으로 볼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를 할 때쯤에 보면, 여러 매체에서 서로 토론을 벌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수나 진보나 중도나,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너무 말을 잘합니다. 모두 너무나 논리정연하게 자기주장을 펼칩니다. 다들 똑똑하고 지적이고 좋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한 사람이 이야기를 아주 잘했는데 그때 다른 사람이 그러나 이런 것도 있다.’라고 다른 면을 이야기하면 다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완벽한 논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다 허점이 있습니다.

 

이전에 다른 곳에서 사역할 때 참으로 기가 막힌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딸이 완전히 서로 어긋나게 된 경우였습니다. 당시 두 자녀를 둔 40대 중후반의 주부가, 어떤 이유인지 이혼하고 가출하여 다른 여자와 같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아버지의 말은, ‘그 여자의 꼬임에 넘어가서 가정을 버리고 이혼하고 나아갔다. 제 정신이 아니며,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동성연애자다. 돈만 얻어 가려고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딸의 말을 들어보니까, 자기가 잘못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고, 친구를 통해 새로운 삶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가 금방 재혼을 해서 신뢰할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신뢰할 사람은 친구 뿐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소설이나 드라마에나 나올만한 이야기였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 그 딸처럼 이상한 사람이 없습니다. 빨리 정신을 차리고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 딸의 말을 들으면 아버지가 정말 이상합니다. 같은 일을 두고도 두 사람의 말이 전혀 다릅니다. 그러면 어느 한 쪽이 거짓말을 한 것입니까? 제가 보기에 그렇지 않습니다. 둘 다 진실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관점에서 본 진실입니다.

 

우리 인간은 세상일을 100%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여기서부터 인정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죄인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100%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남의 이야기입니까? 우리도 똑같습니다. 저도 똑같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서로 마음이 상하는 일이 벌어질 때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쪽 말을 들을 때 저쪽 사람이 완전히 몹쓸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쪽 이야기를 들으면 이쪽 사람이 완전히 나쁩니다. 그럼 어느 한 쪽이 거짓말을 한 것인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 둘 다 진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자기 관점에서. 주관적으로는 다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분이 와서 상황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 대해 험담을 하면, 저는 안타깝지만 100% 그대로 듣지 않습니다. 말해주는 분을 의심하거나 싫어해서가 아니라, 당연히 자기 입장에서만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00% 옳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럴 때 안타까운 마음에 속으로 기도하면서 들어드리고, 나중에 기도를 해드립니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아가 내 앞에서 다른 사람의 욕을 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 앞에 가서 내 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너무나 당연하고 다 아시는 말이겠지만, 내 앞에 와서 누가 다른 사람에 대해 험담하고 욕을 한다면, 반드시 다른 데 가서 내 욕도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의 속성이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이야기가 시작되어도 하다 보면 결국 그런 쪽으로 흐르게 됩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 자신도 못 믿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예배 전에 다른 사람과 대화를 했다면, 내가 그 사람과 대화한 내용을 토씨도 하나 틀리지 않고 100% 똑같이 되풀이해보십시오. 하실 수 있습니까? 못합니다. 제가 여기서 설교한 내용을 100% 정확하게 기억하고 되풀이해보십시오. 전달할 수 있으십니까? 설교를 한 저도 못합니다.

 

우리는 100% 정확하게 대화 내용을 다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능력이 안 됩니다. 많이 기억은 할 수 있겠지만 100%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때는 자기가 이해한 바탕 위에 고의든지 아니든지 적당히 더하거나 또 빼기도 하면서 말을 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족한 사람에게 어떻게 내 인생을 맡기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다른 사람을 믿지 마시고, 나 자신도 믿지 마시고, 하나님만 믿으십시오. 설교도 제 개인의 말로 듣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릴 때 받아들이십시오.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절대로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개역성경 본문에는 비방판단을 하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비방은 다른 지체에 대해 안 좋은 의도로 험담을 하는 것입니다. “판단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discern)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 그 사람에 대해 결론을 지어버리는 것(labeling), 심판하는 것을 말합니다. 더 쉬운 말로 하면 선입관이나 편견을 말합니다. 올바른 분별과 남을 정죄하는 판단(비방, 심판)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올바른 분별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동기부터가 다릅니다. 올바른 분별은 긍정적인 동기로 형제자매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주려는 것입니다. 돕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비방이나 심판은 상대방을 해롭게 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나옵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비방하고 험담하고 판단하는 것은 그 사람을 세워주기 위함이 아니라 깎아내리기 위함이 아닙니까? 예를 들어, A라는 사람 앞에서 B라는 사람에 대해서 설명할 때, 있는 사실에 근거해서 그대로 말해주는 것은 올바른 분별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객관적인 것처럼 들리더라도 그 사람을 깎아내리려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하는 말은 비방과 심판입니다.

 

올바른 분별을 하는 사람은 드러난 사실과 자료에 근거하여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비방하는 사람은 추측에 의해서 판단하고 자기 느낌을 곁들여 이야기합니다. 또한 올바른 분별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당사자를 찾아가서 사랑의 마음으로 그 잘못을 지적해주고 같이 기도해줍니다. 하지만 비방하는 사람은 누군가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당사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찾아가서 그 사람의 잘못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더 쉽게 말하면,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더라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는 내용을 말하는 것은 올바른 분별이지만, 그 사람이 들으면 곤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비방이고 험담이란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 사람이 내 앞에 있을 때에도 이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잘 말해줄 수 있다면 분별이고, 말하기 껄끄러워서 다른 데에서 다른 사람에게 그 말을 할 때 비방이고 판단이 됩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우리는 제대로 된 분별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로 남을 비방하고 심판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자기 자신을 잘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것을 굉장히 심각하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누군가에 대해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 앞에서 험담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했어도, 아무리 객관적이라고 해도, 반드시 잘못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면, 들은 사람은 자기가 들은 내용에서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하여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합니다. 그 사람은 그것에 충격을 받고 그 잘못했다는 사람에게 가서, 자기가 들은 내용을 전달해줍니다. 물론 자기 나름대로의 느낌과 해석을 더하고, 잊어버린 건 빼고서 그렇게 합니다. 그러면 그 당사자는 엄청난 상처를 받게 되고, 서로 원수가 되고 맙니다. 이것이 일종의 공식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남을 비방하고 심판하는 데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남을 비방하고 험담하는 것, 특히 믿는 형제자매를 비방하고 험담하는 것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살인, 동성애, 간음, 강도질만 큰 범죄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 험담하는 것도 큰 범죄입니다.

 

남에 대해 비방하고 심판하는 것은 내가 곧 하나님 노릇을 하겠다는 교만이기 때문에 심각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는 것이니까, 그것이 얼마나 큰 죄입니까? 이것이 굉장히 심각한 죄라는 것을 먼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깨달았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무엇을 회개합니까?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남을 비방하고 심판하는 것의 뿌리가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비방한 사실만 아니라 비방할 때 뒤에 숨어 있는 교만에 대해서도 회개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나에게 손해입니다. 그 사람이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망가지는 길이 됩니다. 마음의 평안을 잃고서 피곤하고 괴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건강도 해칩니다.

 

남을 비방하게 되면 하나님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 건강도 삶도 망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망가지지 않고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도록 도와주시기 위해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비방하지 말라!”

 

 

2.   자랑하지 말라 (13-17)

 

두 번째로 우리가 조심할 것은 자랑의 문제입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3)

 

여기 보면, 장사를 해서 이익을 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장사하는 것이 죄입니까? 당연히 죄가 아닙니다. 돈을 벌겠다는 것이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당연히 돈을 벌어야 우리가 먹고 삽니다. 그렇다면 미래에 대해 계획하는 것이 문제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진짜 문제가 무엇입니까?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4-15)

 

이들의 진짜 문제는 이것입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데도, 내일이(장래가) 마치 자기 손에 달린 것처럼 여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느 정도는 자신의 삶을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가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어느 정도 미래에 대해 예상하지 못하겠습니까? 당연히 어느 정도는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재채기 하는 것조차 내가 컨트롤 못합니다. 갑자기 나오지 않습니까?

 

우리는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몇 시간 후도 모릅니다. 내가 내 삶에 대한 컨트롤도 안 됩니다. 얼마나 연약한 존재입니까? 열심히 준비하고 계획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준비한 대로 될 것이라고 자신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죄입니까?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16-17)

 

자기가 내일을, 아니 조금 후의 일도 컨트롤할 수 없으면서, 마치 모든 것이 자기가 계획한 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허탄한 자랑이며 악한 일이란 말씀입니다. 내일이 자기 손에 달린 것처럼 생각하며 자랑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16). 17절의 이라는 것은, 가끔 착한 일을 하고 홈리스에게 동전을 조금 주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은 내일 일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준비도 하고 계획도 하지만, 모든 것은 내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인정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계획을 하고 계십니까?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데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맡기지 않고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까, 준비를 잘했으니까, 계획이 완벽하니까, 돈이 많으니까, 학벌이 쟁쟁하니까, 똑똑하니까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라고 하며 자랑하는 것이 허탄한 자랑이며 악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랑하지 말라는 것은 결국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왜 그런 자랑을 하고 교만하게 굴겠습니까? 역시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필요 없고, 내가 하는 대로 다 된다.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주인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이 무엇입니까? 자기가 그렇게 하나님 노릇을 하고, 하나님이 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필요 없고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다.’라고 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일입니다.

 

남을 비방하고 심판하는 일은 자기가 하나님 노릇을 하려는 교만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 대해 제3자 앞에서는 칭찬이 아니면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거기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면 칭찬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이상하게 나가지 않습니다. 또한 미래의 계획이 나에게 달린 것처럼 자랑하는 일이 바로 내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교만이며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꼭 기억해주십시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너무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꼭 기억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형제자매를 비방하는 순간 내가 하나님 노릇을 하는 무서운 죄를 범하는 것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또한 내가 내 계획대로 다 된다고 하며 허탄한 자랑을 하는 순간 내가 하나님 노릇을 하는 심각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그러한 비방과 교만을 벗어버리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행함으로,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주님 주시는 평안 가운데 승리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