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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22일 수요예배

누가 나의 왕인가 7

요아스: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지 말라

(역대하 2414~27)

 

[들어가는 말]

 

아름다운 만남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하고, 배우자와의 만남이 중요하며, 또 인생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만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이 사람과의 만남은 정말 감사하고 아름답고 좋다.’라고 하는 만남이 있으십니까? 있다면 얼마나 있습니까? 그런 만남은 인생에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이민 생활에서는 교회와의 만남도 아주 중요합니다.

 

이전 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길 때 한 여자 장로님의 말씀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우리 이민 생활에는 삼발이가 필요한데, 하나는 가정이고 하나는 일터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특히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삶이 무너집니다.” 교회에 문제가 생기고 분쟁이 일어나면 불행해지고 삶이 무너집니다.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특히 아름다운 만남의 축복을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여기 있든지 다른 데를 가든지, 새로운 만남을 할 때 아름다운 만남이 필요합니다. 기껏 갔는데 이상한 친구와의 만남으로 해가 되면 안 되고, 아름다운 만남이 있어야겠습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유다 왕 요아스에게도 그런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만남이 끝난 뒤 요아스는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1.   위기의 순간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요아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칠 세라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요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대하 24:1)

 

요아스가 유다의 왕이 된 것은 불과 일곱 살 때였습니다. 일곱 살짜리가 뭘 알겠습니까?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이 있었습니다. 예후가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 집안 남자들을 죽이면서 남유다 왕 아하시야까지 죽인 것입니다.

 

요아스는 이 아하시야의 막내아들입니다. 아하시야 왕이 북이스라엘 요람 왕을 방문하러 갔을 때 예후의 칼에 죽임을 당하자 유다 땅에는 예기치 않은 칼바람이 불었습니다. 아하시야의 어머니이자 아합과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가 아들을 대신해 자기가 왕위에 오르려고 자기 손자들 즉 아하시야의 아들들을 모두 죽여 버린 겁니다.

 

그때 한 살짜리 아기였던 요아스는 아하시야의 이복누이이자 여호야다 제사장의 아내였던 여호세바(여호사브앗)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되어 성전에서 6년 동안 숨겨서 길러졌습니다. 어리기는 했지만 그 6년의 세월 동안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렇게 6년이 흐르고 요아스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제사장 여호야다가 레위인들과 함께 마음을 모으고 군대 지휘관들과 연합하여 반정을 일으켜서 불법적으로 여왕이 된 아달랴를 죽이고 요아스를 왕위에 앉힙니다.

 

요아스는 왕위에 오른 뒤 자신이 자란 성전을 보수하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 아달랴가 통치하던 6년 동안 성전의 성물은 우상을 만드는 데 사용되느라 파괴되었고, 성전은 예배도 드리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성전 보수로 돈을 모으게 했지만, 모은 돈은 제사장들의 주머니로 들어간 채 왕의 명령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4 얼마 뒤에 요아스는 주님의 성전을 새롭게 단장할 마음이 생겨서, 5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불러 다음과 같이 지시하였다. ‘유다의 여러 성읍으로 두루 다니면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해마다 돈을 거두어, 하나님의 성전을 보수하도록 하시오. 지체하지 말고, 곧 실시하시오.’ 그러나 레위 사람들이 곧바로 움직이지 아니하자, 6 왕이 여호야다 대제사장을 불러 추궁하였다. ‘대제사장은 왜 레위 사람들에게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세금을 거두어들이라고 요구하지 않았소? 그 세금은 주님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회중이 증거의 장막을 위하여 백성에게 부과한 것이 아니오?’” (대하 24:4-6, 새번역)

 

여호야다는 어린 요아스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입니다.

 

공사를 마친 후에 그 남은 돈을 왕과 여호야다 앞으로 가져왔으므로 그것으로 여호와의 전에 쓸 그릇을 만들었으니 곧 섬겨 제사 드리는 그릇이며 또 숟가락과 금은 그릇들이라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여호와의 전에 항상 번제를 드렸더라” (14)

 

이것을 보면, 여호야다는 성전을 보수하고 성물을 마련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선 것으로 보입니다. 성전을 보수했을 뿐 아니라 성전에서 늘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아달랴가 다스리는 동안 성전이 버려진 채 황폐했는데, 여호야다가 성전을 회복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기간을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은 성전이 회복되었으나 그가 죽은 뒤에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서 가드를 쳐서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하므로” (왕하 12:17)

 

여호야다가 세상을 떠난 뒤 요아스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아람 왕 하사엘이 블레셋의 가드를 점령하더니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오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요아스에게 닥친 위기는 그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생긴 위기였습니다.

 

사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건 전쟁은 끊임이 없었습니다. 특히 근동 지방의 이스라엘은 늘 전쟁의 위험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니 요아스에게 닥친 전쟁의 위기는 따지고 보면 특별할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뒤 요아스에게 닥친 위기는 무시할 수 있는 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매일 매 순간 전쟁을 경험합니다. 몸으로 싸우지 않다 뿐이지, 매 순간 우리를 위협하는 위기 상황이 펼쳐집니다. 어제나 오늘 어떤 일이나 사람 때문에 화가 나지 않으셨습니까? 화가 나서 분노가 폭발했을 수도 있고, 욕망의 포로가 되어서 해서는 안 될 죄를 지었을 수도 있으며, 또 돈의 유혹에 넘어가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험은 언제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위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진짜 위기는 우리를 위협하고 유혹하는 것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다가옵니다.

 

요아스에게 닥친 위기는 일촉즉발의 전쟁 상황이 아니라, 사실은 그것에 대응하는 요아스의 태도에 있었습니다. 요아스는 위기 상황을 어떻게 처리합니까?

 

유다의 왕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 (왕하 12:18)

 

요아스는 성전과 왕궁의 금을 아람 왕 하사엘에게 바침으로써 전쟁을 피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께 구별해서 드린 성물을 아낌없이 이방 왕에게 바쳤다는 것입니다. 그는 왜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겁니까?

 

“17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18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17-18)

 

영적 멘토인 여호야다가 죽고 난 뒤 요아스는 이미 하나님을 떠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람 군대의 침공이라는 시험을 통해 요아스의 신앙 상태가 드러난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영적인 눈이 멀어 버린 요아스는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모릅니다.

 

하나님은 백성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셨는데 그들이 거부했습니다. 그 후 요아스에게 하나님은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을 당하면 반드시 피할 길도 주시는 분입니다. 요아스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해 스가랴를 사용하셨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20)

 

이때 요아스가 어떻게 합니까? 안타깝게도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오히려 더 악을 행합니다. 스가랴를 성전 뜰에서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21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 22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21-22)

 

스가랴가 누구입니까? 요아스의 생명의 은인이자 평생 멘토인 여호야다의 아들입니다. 요아스는 그런 그를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이유로 성전 뜰에서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이때 요아스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어두워지고 악해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1:2)

 

이 말씀은 정말로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잘나갈 때가 아니라 시험을 당할 때 자기 신앙이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 가고 있다면 멈춰서 다시 바른길을 찾을 수 있기에, 시험은 우리 인생에서 축복입니다. 또한 시험을 당할 때 우리는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당할 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요아스에게 닥친 위기는 요아스의 무너진 신앙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위기에 대응하는 모습을 통해 그가 영적으로 얼마나 어두웠는지가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요아스는 끝내 시험을 축복으로 돌려놓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소수의 아람 군대를 통해 유다의 대군이 패하게 하십니다.

 

“23 일주년 말에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려고 올라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러 백성 중에서 모든 방백들을 다 죽이고 노략한 물건을 다메섹 왕에게로 보내니라 24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들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 (23-24)

 

결국 요아스는 그 싸움에서 큰 부상을 입은 후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합니다.

 

“25 요아스가 크게 부상하매 적군이 그를 버리고 간 후에 그의 신하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말미암아 반역하여 그를 그의 침상에서 쳐 죽인지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왕들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 26 반역한 자들은 암몬 여인 시므앗의 아들 사밧과 모압 여인 시므릿의 아들 여호사밧이더라” (25-26)

 

요아스는 믿었던 자기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부상으로 죽어도 안타까운데, 사람의 손, 그것도 자기가 신뢰하던 신하들의 손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은 것입니다.

 

 

2.   말씀을 붙들라

 

요아스의 인생에서 여호야다는 은인이자 신앙의 멘토였습니다. 신앙생활은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키고 지켜 주는 지체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27:17)

 

여기서는 친구라고 되어 있지만, 인생의 멘토는 우리의 얼굴을 빛나게 해 줍니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십시오. 내 얼굴에 빛이 나게 해준 사람이 있는가? 또 나는 누군가의 얼굴을 빛나게 해 주었는가, 또는 해 주고 있는가?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멘토가 되어 주고 또 멘토링을 받아야 하며, 자녀들의 멘토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자라고 지켜질 수 있습니다.

 

제게도 영적 멘토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민을 와서 대학에 편입하여 힘들던 시절 그곳에 유학을 오신 목사님이신데, 제가 목사가 되겠다고 해서 그런지 저에게 많은 좋은 말씀을 해주시며 가르쳐주셨습니다. 지난 10월 한국에 나갔을 때 십여 년 만에 찾아뵐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요아스는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은 깨어 있었고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멘토라도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수는 없습니다. 요아스는 여호야다라는 훌륭한 멘토를 가졌으나 그가 죽자 하나님을 떠나 버렸습니다. 우리 인생에 멘토가 있다는 것은 큰 복이지만, 멘토도 사람이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멘토 삼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붙들어야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말씀 위에 기초하지 않았는데 어려움이 닥치면 그대로 무너집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19:105)

 

바울은 자기가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고전 4:17)이라고 부른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을 권면했습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6-17)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이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14:26, 새번역)

 

그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실 것이다.” (16:8, 새번역)

 

보혜사란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격이고 성령님이 인격이기 때문에 말씀이, 성령님이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변함이 없고 가장 좋은 멘토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물론 말씀이 살아 있는 인격체는 아니지만, 그만큼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의 성품으로는 성령의 열매를 맺기 힘듭니다. 성령님이 인도해 주지 않으면 도저히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면 됩니다. 성령님을 자신의 멘토로 모시고 살면 됩니다.

 

그런데 성령님을 우리의 멘토로 모신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인격이신 성령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것을 말합니다. 갑자기 뭔가가 머리에 떠오를 때, 특히 기도하다가 어떤 사람이 갑자기 생각날 때, 그것은 성령님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것임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3.   비겁한 변명을 버리라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요아스는 왕으로서 얼마나 고민이 되었겠습니까? 그에게는 더 이상 여호야다라는 멘토가 곁에 없었습니다. 요아스는 깊이 고민은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지 못해서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맙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지 못하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자기의 한계치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최선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게 됩니다. 그러면 진정한 최선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아스는 이미 하나님을 떠난 상태였기에, 그는 최선을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잘못된 선택은 잘못된 결과를 낳습니다. 요아스의 생각에 금과 은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사면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요아스는 사람의 마음을 사려고 하나님의 마음을 잃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하나님 성전에 있는 성물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이 소중하지 않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보물과 물건을 아무렇게나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요아스는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신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돈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게 되면, 그 결과 결국 돈으로 사람을 잃게 됩니다. 세상의 권력을 가지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권력으로 해결한 문제는 권력으로 망하게 됩니다. 요아스의 신복들이 왜 반역했겠습까? 돈으로, 권력으로 사람을 사는 요아스에게 돈과 권력이 사라진 이상 그를 따를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또 생명의 은인이자 영적 지도자였던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인 것을 응징한다는 명분도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의 결과는 이렇게 비참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그것은 과연 신뢰할 만한 것입니까? 진리에서 벗어난 선택의 결과는 비참하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위기가 닥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엇을 붙들지?’부터 생각합니다. 나에게 위기가 왔을 때 내가 붙드는 것이 무엇인지가 나의 신앙을 드러냅니다. 삶의 위기를 만났을 때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유일한 존재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요아스는 성전에 있던 성물들을 내어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바치면서 이것이 최선이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구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단지 비겁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아스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면, 나라와 백성을 지켜주는 것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다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면서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 모두는 아이들을 버려두고 홀로 배를 빠져나온 선장을 비난했고, 비난을 넘어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런데 그 선장은 어쩔 수 없었다.’라고 변명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변명일 뿐이지, 사실이 아닙니다. 할 수 있는 게 많았는데 그냥 도망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그 일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 나라를 보여 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말아야겠습니다. 이 믿음이 없다면 위기가 닥쳤을 때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바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되어, 요아스처럼 어쩔 수 없었다.’라고 비겁하게 변명만 하게 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재판정에 섰을 때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기도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에게 도망가라고 권했고, 아니면 차라리 이번에는 목숨을 구걸해서 넘어간 뒤 다음을 도모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루터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마침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인생의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께 묻지 않게 되면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더 이상 나타날 수 없습니다. 인생의 문제를 내가 해결하겠다고 나서면 그 무게를 내가 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그 짐을 져 주십니다.

 

이 믿음의 비밀을 굳게 간직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나아감으로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우리의 인생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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