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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29일 수요예배

치유기도 9

용서할 때 일어나는 회복의 역사

(마태복음 1823~35)

 

1.   풍성한 삶을 사는 비결은 용서

 

<노블(Noble)>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내 슬픔을 건넌 다리(Bridge Across My Sorrows)>라는 책을 쓴 크리스티나 노블(Christina Noble)이라는 여성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크리스티나 노블은 아일랜드 더블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알코올 중독자로 폭군에 가까운 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아서 크리스티나와 동생들이 어릴 때부터 일터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괜찮았는데, 어머니마저 크리스티나가 10살 때 돌아가시자 동생들과도 뿔뿔이 흩어져 수녀원에서 어렵게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적극적인 성격이었던 크리스티나는 17세 때 수녀원에서 도망을 나와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갑니다. 거기서 일을 시작하는데, 살 집이 없어 동네 학교에서 밤마다 몰래 잠을 자던 그녀는 동네 청년들에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을 겪으면서 충격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그 후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도 낳았지만, 모든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크리스티나에게 결혼도 안식처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신문과 TV를 통해서 월남 전쟁의 참상을 보게 된 크리스티나는, 이상하게 월남전에 대한 꿈을 그때 자꾸 꾸게 됩니다. 자신이 어릴 때 고아처럼 비참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월남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에 대해 특별한 마음을 품게 됩니다. 자신의 자녀들도 성장하고 중년의 나이가 된 그녀는 전쟁이 끝난 지 14년 후인 1989년에 베트남으로 갑니다. 거기서 버려진 아이들을 하나둘씩 돌보게 되면서 의료시설과 휴식처와 학교가 설립되고 마침내 크리스티나 노블 어린이재단이 탄생합니다. 그리고 베트남과 몽골에 있는 70만 명이나 되는 고아들을 돌보게 됩니다. 그 후 크리스티나 노블은 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성 20인에 선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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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 크리스티나 노블이 참으로 험한 인생을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주 힘든 삶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었고, 식당 종업원으로 일해서 모은 돈 5파운드까지 빼앗아가서 술을 마시는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자신을 강간한 불량배들, 또 결혼 후 자신을 이용하는 남편까지, 그녀의 주변에는 모두 다 나쁜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 속에서 그녀는 얼마든지 그들을 원망하고 자기 인생을 비관하면서 이게 다 저 사람들 탓이다.’ 하고 원망하며 살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티나는 기막힌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자신의 삶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동영상에는 안 나왔지만, 가톨릭 신자였던 그녀는 성당에 가서 예수님의 그림 앞으로 가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기도하면서 좋습니다. 그럼 저는 나가서 행동하며 일하고, 주님은 이 모든 것을 인도해주십시오.”라고 합니다.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고 비관할 수 있고 원망할 수 있는 삶이었는데, 오히려 어릴 때의 경험 때문에 자기와 같이 버려진 베트남의 고아들을 볼 때 마음이 끌렸습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게 아닌가하면서 상처를 사역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오히려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돌보는 사역으로 바꾼 놀라운 인생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고통은 잔인한 형벌이 아니라 오히려 은혜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풍성한 삶을 사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풍성한 삶을 사는 사람은 환경이 항상 좋기 때문이 아니라, 지옥 같은 환경이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선한 뜻이 분명히 있다고 믿고 그것을 찾아나가기 때문에 풍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그분이 나에게 선한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23:4)

 

이 말씀 그대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안 다니게 지켜주시는 것이 아니라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돌봐주시며, 내가 겪는 모든 고통을 통해서도 나를 인도하시며 성장시키는 분이심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목적에 합당한 사명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좋을 때뿐 아니라 지옥 같은 고통의 상황까지도 다 포함해서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크리스천 치유전문가인 데이비드 씨맨즈는 자신의 상담 경험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오래 전에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정서적 문제의 주요 원인이 다음 두 가지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의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훌륭한 은혜의 말씀을 듣고 또 읽지만, 그렇게 살지는 못합니다. 문제는, 은혜의 복음이 개인의 정서적 차원까지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 사는 영생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예수님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0:10)

 

예수님은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는 영원한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풍성한 삶(abundant life)을 살게 하시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풍성한 삶이라는 것이 물질적인 풍요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풍성한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신자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대체로 억압된 삶의 감옥 속에서 살며, 과거의 실수나 아픈 상처 때문에 발목이 잡혀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들이 영적 도약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자신이 당했던 억울한 일들과 그런 일들을 일으킨 가해자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에 있습니다.

 

 

2.   죄 사함의 은혜와 용서의 상관관계

 

오늘 마태복음 18장 본문은 용서할 줄 모르는 종에 대한 천국 비유입니다.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4-26)

 

이 종은 자기가 왕에게 진 빚을 다 갚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1만 달란트라는 것은 한 개인이 갚을 수 있는 액수가 아닙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니까 과장해서 말씀하신 것이기는 합니다.

 

달란트와 데나리온은 당시 로마시대 때 통용되던 화폐 단위로서, 1 달란트는 약 6000 데나리온이고, 1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그러니까 1 달란트를 계산해 보면, 노동자가 일주일에 안식일을 빼고 6일을 일한다고 볼 때 19년 이상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벌어서 모은 액수입니다. 그렇다면 1만 달란트라는 것은 노동자가 19만 년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액수입니다. 그러니까 갚을 수 있는 액수가 아닙니다. 100년도 살까 말까 하는 사람이 무슨 19만 년을 살면서 일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전혀 갚을 수 없는 액수입니다.

 

당시 노예 1명의 최고가가 2천 데나리온이었는데, 가장 높은 가격으로 해도 노예 3만 명을 넘겨야 하는 엄청난 액수입니다. 당시 로마가 유대 전역에서 거둔 세금 총액이 대략 1년에 800 달란트였습니다. 그렇다면 10,000 달란트라는 것은 유대 전역에서 거두어들인 세금의 10배가 훨씬 넘는 금액인데, 이것은 빚진 종이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물을 다 팔아”(25) 갚으려 해도 전혀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액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액수의 빚을 한 개인이 졌다는 것도 놀랍지만 갚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 놀랍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어떻게 합니까?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7)

 

이렇게 엄청난 빚을 졌으니 불쌍히 여기며 탕감해주었습니다. 그럼 이렇게 많은 액수를 탕감 받은 종이라면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자기에게 빚을 진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탕감해주리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합니까? 완전히 반대로 합니다.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28-30)

 

100데나리온이면 100, 그러니까 약 16-17주 정도 일하면 갚을 수 있는 액수입니다. 자기는 19만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벌어야 모을 수 있는 만 달란트를 탕감 받았으면서, 100(17주 정도) 정도 일하면 갚을 수 있는 100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용서하거나 기다려주지 못하고 감옥에 쳐 넣었으니까, 이게 있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까? 그래서 왕이 불러 호통을 칩니다.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2-34)

 

이 빚을 어떻게 갚을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감옥에 가두었다는 말인데, 영원히 옥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갚을 수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신 다음,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35)

 

이 말씀을 우리가 오해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형제자매를 용서해주지 않을 경우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절대로 용서해주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면 다 용서해주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갚아 주신 은혜와 도저히 갚을 길 없는 사랑을 받은 우리가, 영원한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엄청난 죄를 용서받은 내가 내 삶 속에서 내게 조금 잘못한 다른 형제자매들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죄 사함의 은혜를 맛볼 수 없게 되어 결국 자신의 영적 감옥에 갇혀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둔다는 것은, 용서하지 않는 한 감옥게 계속 갇혀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로 용서해주지 않으시는 게 아니라,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자유가 없고 고통을 당하며 은혜를 누리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 죄를 용서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요일 1:9, )

 

그런데 하나님께 죄를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잘 못 느끼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회개 기도를 해서 용서를 해주셨다고 믿지만, 마음은 자꾸 죄가 생각나고 아무래도 용서를 못 받은 것 같은 느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용서를 못 받아서가 아닙니다. 죄를 고백하여 용서를 받았고 머리로는 용서를 받은 줄 압니다. 그런데 감정이 자유롭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진정으로 죄 사함의 은혜를 맛보지 못하는 원인은 용서하지 못하는 것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죄 사함뿐 아니라 평소에 다른 은혜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사실 용서라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이 아닙니다. 용서는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죄성을 가진 우리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보복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성향입니다. 아니, 그런 계명을 주신 이유는 눈 하나를 다칠 경우 딱 눈 하나만 보복을 하고, 이 한 개를 다치면 다치게 만든 사람의 이를 한 개만 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를 당했으면 두 개를 갚아주고 싶은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상처를 주고 손해를 끼친 사람을 올바로 용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용서는 우리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니, 내 안에는 원래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계신 주님의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주시도록, 그리고 나에게 해를 끼치고 어려움을 준 사람들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용서라는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6:12)

 

주기도문의 이 말씀 역시, 다른 사람을 용서해주어야만 나를 용서해주신다는 조건이 아니라, 용서하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어떤 여자 집사 A가 있었는데, 그 남편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가족에게 너무 인색하고 사랑이 없었습니다. 특히 아내에게 그랬습니다. 그래서 A 집사는 분노했고 그것이 그녀의 외도로 이어졌습니다. 그것을 뉘우치며 회개한 A 집사는 특별집회에 참석했다가 거기에 강사로 온 목사에게 찾아가 질문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회개해도 죄 사함의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회개해야 하는 겁니까?”

 

   A 집사의 남편에 대한 깊은 원망과 극심한 고통이 담긴 눈물을 보면서 강사 목사는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집사님께서 죄를 회개하셨는데도 하나님의 용서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남편을 진정으로 용서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집사님이 지은 죄를 하나님이 용서하셨는데도 죄 사함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치유의 최대 장해가 되기 때문에 이것을 심각하게 다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회개하지 않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데도 과연 용서가 가능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먼저 우리는 용서와 화해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서가 뭔가 하면, 나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복수할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는 보복하지 않겠다.’라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회개 여부와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려면 피해자가 용서할 뿐 아니라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너희가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자매들에게만 인사를 하면서 지내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 사람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5:44-47, )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나에게 잘못했다고 하면서 나오는 가해자뿐 아니라, 전혀 뉘우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가해자(원수)도 용서하고, 더 나아가 사랑하라고까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원수를 용서할 뿐 아니라 사랑하라는 명령은 기독교에만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우리에게 무조건 용서하며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먼저 죄책감과 분노에 시달리게 되고, 그것이 계속되면 우리의 몸도 마음도 병이 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병이 생기면 몸까지 아프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가해자보다 더 큰 어두움 가운데 갇혀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목숨까지 내어주신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괴로움 속에 머무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우시겠습니까? 그런 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그 어두움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용서를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내가 자유하게 되려면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놀라운 치료약이며, 십자가는 우리의 어떤 죄악과 허물도 용서받았다는 약속의 증거입니다.

 

 

3.   용서의 축복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문제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관계입니다. 먼저는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사랑의 관계인데,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채우고 넘쳐 옆으로 흘러가는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임하여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을 취소시킬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사탄이 하나님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대신 우리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하고 이 땅에서 이미 주신 천국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이웃과의 관계를 깨면 됩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하나님의 사랑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로 하여금 천국의 풍성함이 아니라 지옥의 끔찍함을 맛보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관계를 깨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서로 용서하지 못하고 분열하고 미워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그것을 좋아하실 리가 없고, 당연히 마귀가 좋아합니다.

 

이전에 다른 곳에 있을 때 교회가 막 다투며 분열이 되어 아주 힘들었습니다.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거기서 정의를 외치더라도, 분열되고 깨졌을 때는 결국 마귀가 좋아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뒤에서 다른 지체를 험담하고 비난하면 마귀가 좋아하는 일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상황을 진지하게 다루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 고통의 뿌리가 뭔지를 보여 주십니다. 고통의 뿌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우리 삶이 완전히 파괴될 수 있기 때문에, 삶의 문제와 고난을 통하여 우리 내면의 위험한 불순물을 걸러내 주시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5:22-23)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성품 가운데 성령의 열매(예수님의 성품)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안의 상한 감정으로 인하여 생긴 쓴 뿌리(bitterness) 때문입니다. 마음의 쓴 뿌리는 영적으로 쓰레기와도 같습니다.

 

보통 썩은 쓰레기가 있으면 파리가 들끓습니다. 또 바퀴벌레, 쥐 같은 더러운 것들이 들끓게 됩니다. 내면의 쓰레기를 가진 채로 아무리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말씀을 읽어도, 일시적으로는 파리나 벌레들을 쫓을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런 더러운 것들이 몰려오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몰려드는 파리, 바퀴벌레, 쥐들은 다름 아닌 악한 영들입니다. 그런 더러운 것들 때문에 주님과의 교제가 방해를 받고, 신앙생활을 해도 자유와 기쁨이 없으며, 따라서 인격도 변화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이 우리에게 와서 너는 다 옳은데 억울하게 당한 거야. 저 사람이 너를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어!’라고 우리 편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분노와 미움과 자책과 보복의 에너지를 공급하고 점점 더 우리 마음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결국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 우리 삶에 축복의 문이 닫히게 됩니다. 치유 사역의 많은 경우 아픈 상처의 기억과 감정의 치유가 필요하기 때문에 상담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상처를 통해 자신 안에 역사하는 영적 실체(악한 영)가 있으면 축사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상담을 받고 아무리 기도를 받고 아무리 축사를 해도 자기에게 용서할 마음이 없으면 치유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좋아질 수는 있지만 용서하지 않는 마음의 응어리가 남아 있으면 또 다시 더러운 영들이 또 와서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를 했다면, 상처와 쓴 뿌리를 통해 그 동안 내게 영향을 미치던 어두움의 세력(즉 미움, 분노, 불순종, 반항, 집착, 거절, 자기연민 등)이 사라지고 힘을 잃게 되면서, 기도할 때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쉽게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하였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그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는 셈이 될 것이다하였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12:19-21, )

 

우리 모두 이 말씀과 같이 용서로 자유를 누리며 선으로 악을 이기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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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할 때 일어나는 회복의 역사" (마 18:23-35) - 치유기도 9 (8/29/18) kpccoh 2018.08.30 741
163 "억압된 기억의 치유" (렘 31:31-34) - 치유기도 8 (8/22/18) kpccoh 2018.08.23 829
162 단기선교 간증 및 보고 (마 16:13-19) - 이금주 교우 (8/15/18) kpccoh 2018.08.16 165
161 "부모 치유와 자녀의 회복" (엡 6:1-4) - 치유기도 7 (8/8/18) kpccoh 2018.08.09 1129
160 "내면의 갈등을 치유하기" (롬 7:15-25) - 치유기도 6 (8/01/18) kpccoh 2018.08.02 1267
159 "성인자아와 내면아이의 갈등과 치유" (마 11:28-30) - 치유기도 5 (7/25/18) kpccoh 2018.07.26 1247
158 거절의 상처를 싸매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라 (눅 10:38-42) - 치유기도 4 (7/18/18) kpccoh 2018.07.19 1150
157 기질과 성격을 영적으로 이해하라 (창 26:12-22) - 치유기도 3 (7/11/18) kpccoh 2018.07.12 2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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