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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WpNimuIoOlk?t=2125

 

 

2022116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2

이길 수 없는 전투에서 승리한 비결

(사무엘상 1731~54)

 

[들어가는 말]

 

10여 년 전인 지난 2010년 말에서 2011년 소위 아랍의 봄이라고 불리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당시 리비아에서 오랜 기간 동안 독재자로 군림하며 무시무시한 권력을 휘두르던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Gaddafi)가 시민군에 의해 사살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장기 집권을 하면서 나라를 경제적으로 일으킨 공도 있지만, 인권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테러를 일삼았으며 핵실험을 하는 등, 여러 면에서 악한 일들을 저질렀습니다.

 

가다피는 무려 42년 동안 리비아를 다스렸는데, 42년이면 굉장히 긴 시간입니다. 40년도 넘게 독재자로 떵떵거리며 살았지만, 그의 마지막 순간은 아주 초라했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시민군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제발 총을 쏘지 말아달라고 목숨을 구걸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는데, 정말 비참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독재자의 모습인가 할 정도로 초라했습니다.

 

역사를 보면 악한 자들의 마지막이 좋았던 예가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악한 자들은 배신해서 권력을 잡고 또 배신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주변 나라들을 침략하는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나치 군이 무고한 유대인들을 6백만 명 이상 가스실에 보내서 죽게 하는 악을 저질렀습니다. 당시 워낙 독일군의 무기가 뛰어나고 전략이 대단해서 연합군이 독일을 이기는 것이 결코 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독일군의 패배와 연합군의 승리였고, 히틀러는 결국 자살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악한 자가 아무리 강해 보여도 결국 그 끝은 비참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들이 지배하는 시간 동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왜 이런 악을 그냥 두고만 보고 계시는가?’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결코 그냥 두고만 보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일시적으로는 악한 자들이 온 세상을 정복하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의로운 자들이 이깁니다.

 

우리가 오늘 성경에서 보는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가 바로 이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다윗이 골리앗을 절대로 이길 수 없이 보였습니다. 엄청난 골리앗 앞에서 상당히 왜소해 보이는 다윗이 지는 것은 당연해 보였습니다.

 

이 세상의 싸움은 힘의 대결입니다. 힘이 센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실력이 더 뛰어난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가진 힘이나 실력이 아니라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을 어떻게 자기에게로 끌어올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보다 강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오기만 하면 이 세상 어떤 사람보다 강해지기 때문에, 그것이 관건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그 능력을 끌어올 수만 있다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승리의 법칙을 잘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의 다윗입니다.

 

 

1.   다윗의 용기 (31-35)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골리앗과 싸울 의사가 있다고 여기저기 말을 흘리던 다윗의 말이 사울 왕의 귀에까지 들리게 됩니다. 17장 앞부분을 보면, 다윗은 형들이 전쟁에 나가 있을 때 도시락을 가져다주러 왔다가 보니까, 저쪽에서는 골리앗이 나와 있고 이쪽에서는 벌벌 떠는 상황에서 아무도 나가 싸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저 사람을 이기면 어떻게 되느냐?’ 하고 말하는 것이 왕의 귀에까지 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마침내 다윗은 사울 앞에 불려갑니다. 그때 다윗은 놀랍게도 사울 왕 앞에서 담대히 선포합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이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전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 (31-32)

 

지금 골리앗 때문에 낙담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지금 문제의 핵심이 마음의 낙심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객관적인 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약하고 저 사람은 강하다. 우리는 이길 수 없다.’라고 해석하여 벌벌 떨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낙담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어떤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걱정하고 염려하고 낙심하는 게 문제입니다. 실제 일어난 일보다 우리 마음이 낙담하는 게 더 문제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낙심하든 기뻐하든 상황은 똑같습니다.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우리가 낙심하는 게 문제입니다.

 

골리앗을 보고 위축되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울에 비해 다윗은 엄청난 용기를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그를 말립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3)

 

17장 앞부분에는 골리앗을 가리켜 싸움을 돋우는 자’(17:4)라고 표현하는데, 이 말이 영어 성경에는 champion으로 되어 있습니다.

 

요즘 풋볼 선수들도 체격이 좋지만, 프로레슬링을 보면 선수들 체격이 엄청납니다. 처음 이민 와서 굉장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왜냐하면 영어가 잘 들리는 겁니다. “I will kill you!”라는 하는데 잘 들렸습니다. 영어가 잘 안 될 때 그들의 영어는 너무 잘 들려서 그것으로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봤는데, 이제는 안 봅니다. 그들을 보면 체격이 우락부락하고 키도 엄청나게 큽니다. 그 중에도 챔피언인 사람을 보십시오. 얼마나 잘합니까? 물론 쇼적인 요소가 상당히 많지만 그래도 기술을 연마해서 경기를 합니다.

 

그런 엄청난 용사들 중에도 챔피언인 골리앗과는 싸울 수가 없다고 사울이 말합니다. 다윗의 용기는 훌륭하지만, 다윗은 어린 소년인 반면 상대방은 거인이고 그는 어렸을 때부터 전쟁터에서 자란 전문적인 싸움꾼이기 때문에 다윗이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소년이라고 했지만 젊은 청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에서 청년으로 들어가는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골리앗 같은 사람은 전쟁터에서 자란 전문 싸움꾼이며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용사이기 때문에 다윗이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울은 다윗의 겉모습을 보며 실망했습니다. 사울의 생각에는 적어도 골리앗과 싸우려면 체격이 골리앗과 비슷한 정도가 되어야 하고 싸워본 경험도 많은 용사라야 할 텐데, 다윗은 그런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사울을 설득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4-35)

 

다윗은 아버지 이새의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하나라도 물어 가면 따라가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양을 건져 내었다고 하면서, 그것이 일어나 자기를 해치려고 하면 그것을 쳐 죽였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이것은 어린 소년이 한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나약하거나 호리호리한 꽃미남 스타일이 아니라, 구릿빛의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재빠르고 키도 어느 정도 되는 청년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자와 곰은 가장 사납고 무서운 맹수인데 어떻게 그것들을 쳐 죽였다는 말입니까?

 

그런 맹수를 제압할 정도로 청년 다윗은 용맹함과 싸움 실력을 갖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가 그렇게 맹수를 물리치고 양들을 지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육체적 강함보다도 그의 책임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양 떼를 맡았으니까 그들을 지키고자 하는 책임감이 그를 용맹한 목자로 만든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 중에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왜 그렇습니까? 자녀가 위기에 처할 때 어머니는 누구보다 용감하게 행동하며 자녀를 보호합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책임감이 어머니를 강하게 만듭니다.

 

아버지의 양 떼에 대한 책임감이 없었다면, 아버지와 가족을 정말 사랑하지 않았다면, 다윗은 맹수가 나타났을 때 그냥 도망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보통 양치기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맹수가 나타나면 도망가지, 누가 사자나 곰과 싸우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가족을 사랑했고 거기서 나오는 책임감으로 맹수를 쫓아가 때려눕히고 양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배우는 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정말 잘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거기서 책임감이 나옵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삶 공부도 하시라고 권해드리지만 억지로 끌어다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억지로 하면 오래 못 가기 때문입니다.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는 수 없니 체면 때문에, 아니면 직분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맡아서 하면 별로 열매가 없습니다. 사랑과 책임감이 있을 때 됩니다.

 

교회 일뿐 아니라 직장이나 사업도 마찬가지이고 가정도 그렇습니다. 사랑이 없고 책임감이 없으면 조금 하다가 그만둘 수밖에 없습니다. 다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뭔가를 하다가 그만둔 것이 있습니까? 그러면 다른 데에서 원인을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그때 그 대상을 위해 정말 사랑이 있었는가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사랑하면 책임감이 나옵니다. 사랑이 있었는가, 책임감이 있었는가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교회에서 함께 사역할 때 가장 힘이 되는 분들이 바로 이런 분들입니다. 가장 좋은 사역자는 무슨 재주가 많고 능력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과 책임감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과 책임감이 없으면 주님의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은 사랑할 때 책임감이 생깁니다.

 

그래서 지난번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도 베드로를 회복시켜주실 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 질문하시고 라고 대답했을 때 내 양을 먹여라. 내 양을 쳐라.”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랑을 해야 책임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랑부터 점검하셨습니다. ‘네가 내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냐? 준비가 되었냐? 훈련했냐?’가 아니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했을 때 그럼 내 양을 먹여라.” 하셨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사랑의 마음과 책임감으로 감당해야 할 수 있습니다.

 

 

2.   다윗의 무기 (36-40)

 

그런데 다윗이 단지 사랑과 책임감, 그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능가하는 다른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36-37)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윗이 이스라엘 군대를 가리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군대는 골리앗 한 사람 앞에서 벌벌 떨고 있습니다. 오합지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하나님의 군대라고 부르는 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그들이 믿음이 있거나 잘나서 하나님의 군대라고 하는 게 아니라, 지금 공포에 질려 떨고 있는 이스라엘 군대이지만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다윗이 본 것입니다. 아무도 못 보고 있을 때 다윗은 그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도 이들이 벌벌 떠는 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라 계신데도 떠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군대라고 했습니다.

 

또 다윗은 골리앗을 가리켜 챔피언이라고 하지 않고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지금까지 이 할례가 중요하다고 부각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할례야말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분하는 표시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남자들은 태어나서 8일째에 할례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다른 민족과 구분되는 표시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라고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명령하셨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아무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지 않은데, 어린 청년 다윗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라는 분명한 의식을 오직 그만이 갖고 있었다는 겁니다. 왕도 신하들도 백성들도 모두 벌벌 떨며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을 때, 다윗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조금 전에 부른 <오직 주만이> 찬양곡은 시편 62, 63편을 가지고 만든 노래입니다. 그 시편이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이런 노래를 불러왔다는 겁니다. 곰과 사자와 맞서면서 바로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윗은 정말 놀라운 사람입니다. 엄청나게 재능이 많은 사람입니다. 음악이면 음악, 시면 시, 게다가 건강하고 전투도 잘하는 용맹한 장수였습니다. 다윗은 백 년, 아니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믿음까지 엄청납니다. 이런 사람이 또 어디 있습니까?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스라엘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평소에 양 떼를 치며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오직 주 만이 나의 반석이십니다.”라는 고백은 그냥 시적, 문학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다윗은 베들레헴 언덕과 들판에서 양을 치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 또 얼마나 가까이 계신 분인지 깊이 체험하여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맹수들로부터 구해주신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사실 자기가 어떻게 매번 그렇게 맹수들과 붙어서 이기겠습니까? 그런데 항상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호해주시는 것임을 어릴 때부터 체험했습니다.

 

그가 들판에서 양을 칠 때 매일 아침과 저녁, 장엄하게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늘 보며 살았습니다. 거기서 시가 나오는 겁니다. 게다가 사울을 악한 영이 괴롭힐 때 다윗이 수금을 타면 악한 영이 물러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음악 실력도 엄청났던 데다 신령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게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양을 치면서 들판에서 자연과 함께 하며 맹수와 싸우면서 그런 것을 체득했습니다.

 

또 들판에서 가끔 거대한 폭풍이 불 때 피하기도 했겠지만, 거기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또 하늘의 밝은 태양, 뭉게구름, 파란 하늘을 보며 하나님의 숨결을 느꼈습니다. 더운 날 바람이 살짝 불어오면 하나님이 나를 시원하게 해주시는구나.’ 하며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생생히 체험하면서 지냈습니다. 무엇보다 맹수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시고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습니다.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 주신 주님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 (37, 새번역)

 

맹수를 자기가 이긴 게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그들로부터 살려주셨다는 것입니다. ,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자신의 승리의 원천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언급합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중 아무도 하나님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그가 여기서 처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사실은 자기가 양을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구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구해주신 것이라고, 하나님이 해주셨다고 선포합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용기와 힘의 원천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삶 공부 중에도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 있는데, 그 책의 내용을 읽어보면 정말 놀라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생생하게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이 시대에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많은데, 하나님을 정말 경험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정말로 경험하셨습니까?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 따로, 사회 따로, 삶이 다른 겁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예배를 드릴 때마다 또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경험하고 계십니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경험한다고 무조건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 하나님’, ‘오 주여’, ‘하나님이 해주셨습니다라고 말로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진짜 그러면 되겠지만 입에 발린 말로 그렇게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한탄할 때 많이 쓰는 말이 뭡니까? ‘Oh, my God’입니다. 또 자기 화난다고 심지어 ‘Jesus Christ’를 찾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건 진짜 믿는 게 아니라 말로만 하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해선 곤란합니다.

 

그렇지만 매순간 하나님을 정말 경험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특히 사자와 곰이 나타난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경험했고 그분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그것이 반복되고 쌓이면서 마침내 골리앗에게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승리를 거두고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보통 사자나 곰이 나타나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보통 사람이라면 내가 아버지의 양 떼를 이렇게 성실하게 치고 있는데 왜 저런 맹수가 나타나서 나를 힘들고 위험하게 만드나? 하나님은 왜 내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나?’ 하며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의 이런 점이 중요합니다. 다윗이 지금 사자를 죽이고 곰을 죽이고 맞서 싸우고 양 떼를 지키는 것을 누가 알아줍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원래 양을 치다가 몇 마리 맹수에게 잡혀 먹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한 마리라도 잃지 않기 위해 자기 생명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게으르거나 도망가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다윗이 괜히 다윗이 된 게 아닙니다. 사자나 곰 같은 맹수와 자주 접하면서 야생동물의 생리를 배웠습니다. 맹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며 동물적 감각을 정말 체험했습니다. 다윗은 맹수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움직이는지를 보면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전문적인 전투 경험을 갖춘 군인은 아니었지만, 싸움에 관한 한 엄청난 실력을 이미 갖춘 용사로 소년 시절부터 들판에서 훈련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군인들이 싸우는 정규 전투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맹수들의 싸움 방식을 배웠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전투 방식은 전쟁 교과서에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야생동물처럼 움직이며 싸웠던 겁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놀라운 전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움직이고 싸우고 승리하는, 그러한 창의적인 용사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 왜 이런 맹수들을 보내시는가?’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는 맹수들과 싸우게 해주신 그리고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시를 지어 노래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엄청난 용사가 되어 있었고, 또 엄청난 시인이자 음악가가 되어 있었고, 신령한 음악가로서 영적인 음악치료까지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되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을 이끌 리더로서의 준비가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깨달아야겠습니다. 특히 자녀를 가지신 부모님들은 이런 것을 배워야겠습니다. 지금의 교육 방식들이 다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식을 자녀들이 배울 수 있게 해야겠다는 겁니다. 이론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배우게 해야 합니다. 남들이 다 하는 방식이 아니라,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겠습니다.

 

오냐오냐 하며 곱게만 키울 것이 아니라, 이렇게 터프하고 강하면서도 감성적인 리더로 자라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특히 21세기는 감성을 가진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라고 교육전문가들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게임, 컴퓨터, 스마트폰 같은 것들이 감성을 죽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고생도 해보고, 특히 남들을 섬기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려움도 겪어보고 눈물도 흘려보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는 겁니다. 그래서 단기선교도 가야 하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어려워졌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될 때 이 세상에서도 놀라운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어릴 때부터 사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남을 섬겨봐야 세상에서도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남을 섬겨봐야 어려움을 압니다. 그리고 남을 섬겨봐야 사랑을 배우고 책임감을 배웁니다.

 

남들 하는 대로 공부하고 운동하고 음악하고 비디오 게임이나 하고, 그러면 그저 남들과 똑같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는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혼자만 하는 것으로는 자기 밖에 모르는 인간이 될 수가 있습니다. 남들과 같이 부대끼고 뒹굴면서 눈물도 흘리고 어려움도 해결하고 그러면서 성장합니다. 지금은 마스크를 쓰고라도 뭔가를 해보는 겁니다. 특히 서로 섬기는 것을 자꾸 하게 해야 하나님이 쓰시는 리더가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다윗의 확신에 찬 말을 들은 사울은 마침내 다윗을 전쟁터로 내보냅니다. 그런데 걱정이 되니까 사울은 다윗에게 자신의 갑옷을 입게 합니다.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38-40)

 

제가 어린이 주일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바로 이것에 대해 잘못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쉽게 가르쳐주려고 다윗이 사울의 갑옷을 입었다가 어린 소년이라 너무 무거워서 벗었다고 가르쳐주셨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힘이 약해서 무겁기 때문에 갑옷을 벗은 게 아니라 익숙하지 못하므로벗었습니다. 나중에 보면 골리앗의 칼을 들어서 그의 목을 베는데, 그렇다면 그런 엄청난 칼을 들 정도로 힘이 센 사람입니다. 힘이 약해서 갑옷을 못 입은 것이 아닙니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그는 이런 갑옷을 입고 싸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울이 이렇게 다윗에게 갑옷을 입혀준 것은 좋은 의도로 한 것이 분명합니다. 갑옷을 입고 중무장을 하고 무기를 들고 나가는 것이 보통 세상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것을 거부합니다. 익숙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왕의 갑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영광입니까? 모든 사람이 영광으로 생각할 일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인정받고 영광을 받을 일을 하라고 자녀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상에서 잘될 수 있도록 이것저것을 많이 시킵니다. 운동이나 음악도 시키고, 컨퍼런스나 세미나에도 참여하게 하고, 보통 남들이 좋다는 것들을 따라하게 합니다. 그런 것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당시 누구나 전쟁에 나갈 때는 그렇게 나갑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갑옷을 입고 나가서 싸웁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것을 벗고 나갑니다. 사울의 갑옷을 벗고 시냇가로 가서 돌을 고릅니다. 이 장면을 상상해보면, 분명히 시냇가에서 무릎을 꿇고 가장 쓸 만한 돌 다섯 개를 고르는 겁니다.

 

남들이 다 하는 방식으로 싸움을 준비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돌을 고르는 다윗의 모습. 그가 어떻게 돌을 골랐겠습니까? ‘하나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제가 한 번에 때려눕힐 수 있는 돌을 고르게 해주십시오.’ 하고 분명히 그는 기도하며 돌을 골랐을 것입니다.

 

 

3.   다윗의 승리 (41-58)

 

이제 드디어 다윗과 골리앗의 숨 막히는 전투가 시작됩니다.

 

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41-42)

 

거구의 용사 골리앗은 어린 다윗이 나오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혀서 껄껄껄 웃었을 겁니다. 가만 보니까 저쪽에서 자기와 비슷한 용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꽃미남 같은 소년이 나오는 겁니다. 건강해 보이기는 해도, 갑옷도 안 입고 그냥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41절에서 골리앗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는 왜 방패 든 사람을 앞세워서 갑니까? 그것은 그의 눈이 잘 안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43-44)

 

베스트셀러 작가 중에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웃라이어(Outliers)>라는 책을 써서 그때부터 한국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 외에도 많은 책들을 썼습니다. 그 중 2013년에 쓴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약해 보이는 회사나 개인이 거대한 상대를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에 대해 쓴 책입니다. 거기서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에 대해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썼습니다.

 

43절에서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라고 하는데, 여기서 골리앗이 말하는 막대기는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막대기들입니다. 그런데 40절에 보면 다윗은 막대기한 개를 들고 왔습니다. 하지만 골리앗의 눈에는 막대기가 최소 두 개 이상으로 보이는 겁니다. 한 개인데 두 개, 세 개로 보이는 겁니다.

 

게다가 44절에서 골리앗은 다윗에게 내게로 오라라고 합니다. 왜 자기가 다윗에게 가면 되지 다윗에게 오라고 합니까? 군대의 대표가 나와 일대일로 붙어서 싸우는 고대 전투의 장면이기는 하지만, 자기에게 오는 다윗에게 빨리 반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보면서 많은 의학 전문가들이 분석하기를, 이 당시 골리앗의 건강 상태가 아주 안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는 겁니다. 특히 그의 병명은 말단비대증(Acromegaly)이었을 거라고 합니다. 소위 거인병이라는 것입니다. 요즘도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의 모습을 보면 보통 사람과 다른 거인의 모습입니다. 골리앗의 모습이나 말은 뇌하수체의 악성종양이 원인으로 홀몬에 이상이 있어 생기는 말단비대증을 앓는 사람과 비슷하다는 겁니다. 엄청난 몸집을 가진 것도 그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게다가 말단비대증의 흔한 합병증 중 하나가 바로 시력의 문제입니다. 한 개의 물체가 두 개, 세 개로 보이는 증상입니다.

 

그러니까 골리앗이 방패 든 병사를 데리고 계곡 아래로 내려간 것은 방패 든 군사가 골리앗의 눈의 역할, 가이드 역할을 한 것입니다. 또한 그가 아주 느리게 움직인 것은 주변이 흐릿하게 보였기 때문이고, “내게로 오라고 외친 것도 다윗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그가 어디 있는지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왔을 때 보고 소년인 것을 파악했지만, 와야 제대로 싸울 수 있으니까 오라고 하는 겁니다.

 

다윗이 골리앗의 그런 상태를 다 파악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멀리서 보았을 때는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용사이고 챔피언이었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까 뭔가 이상한 겁니다. 딱 봐도 이상한 골리앗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하나님이 정말 내게 승리를 주셨구나.’ 하고 확신합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합니까?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45-47)

 

골리앗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다윗의 무기는 칼과 창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눈앞에 있는 골리앗은 엄청난 거인이었고 그의 칼과 창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사울과 모든 이스라엘 군대가 그의 모습을 보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맹수들과도 싸워서 이긴 용사가 이제 사람과 싸우는데 뭐가 무섭겠습니까? 게다가 가까이서 본 골리앗의 모습은 엄청난 장수가 아니라 병자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골리앗이 큰소리를 내며 다가올 때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달려갑니다. 맹수들과 싸우며 살아왔으니 그가 얼마나 빨랐겠습니까? 맹수를 쫓아가서 잡을 정도면 정말 빠른 사람입니다. 또 어디로 갈지를 다 파악하고 갔습니다. 다윗은 정말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무서워 떨며 감히 다가가지 못했던 골리앗을 향해서 뛰어 다가갑니다. 그리고 골리앗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승리를 주신 것에 더욱 확신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물맷돌을 던져 그를 쓰러뜨립니다.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48-50)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전쟁역사를 보아도, 이런 물맷돌을 던지는 투석병들이 고대에 많았고 전쟁에서 엄청난 역할을 했습니다. 다윗은 수년 간 맹수들을 상대로 얼마나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겠습니까? 또 평소에도 물맷돌의 정확도를 기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겠습니까?

 

이때 갑자기 누가 쿵 하고 쓰러지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다윗이 아니라 골리앗인 겁니다. 이때 이 상황을 제대로 본 사람은 다윗 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결과만 보았습니다. 다윗은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고 체험했습니다.

 

사실 다윗은 자기가 던져서 실력이 있으니까 맞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될 것을 100% 확신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대로 맞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 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 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였고,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51-54)

 

지금 다윗이 이기고 나니까 그렇게 강했고 특히 거만하게 웃으며 여유를 부리던 블레셋 군대는 전부 도망가고, 무서워 벌벌 떨던 이스라엘 군대는 갑자기 용맹한 군대로 바뀝니다. 그래서 블레셋 군대를 쫓아가 쳐서 이깁니다. 믿음의 사람인 다윗 한 사람 때문에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인 다윗이 전쟁터의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것입니다.

 

 

[나가는 말]

 

이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수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누구나 아는 이 이야기는 결국 믿음의 사람이 진정한 왕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죽음의 위기가 눈앞에 닥쳐도 하나님만 신뢰하는 사람이 진정한 왕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이 기적이 아니라, 어린 청년이 하나님만 믿고 골리앗과 싸우러 나간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사실 그 앞에 나가는 게 어려웠지, 나가서 봤을 때부터는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사울 왕이나 이스라엘 군대가 골리앗의 명성이나 겉모습만 보고 벌벌 떨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말단비대증을 앓고 눈도 잘 안 보이는 병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선입견과 경험만으로 벌벌 떨었으니까 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이스라엘 군대는 하나님의 군대로 갖추어야 할 겉모습은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안에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행동도 없었습니다.

 

우리도 문제와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일어난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해석이 문제입니다. 자꾸 부정적으로 해석해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 그 자체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만나도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이니까 하나님이 책임을 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골리앗을 만나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됩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골리앗이 그렇게 엄청난 상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ᅟᅳᆫ데 믿음 없이 사는 사람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늘 불안하고 초조하게 살아갑니다. 지금 코로나 상황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하고 풍성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분명히 믿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바로 그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에게 어려움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극한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모두가 두려워 떨 때 단 한 사람, 다윗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니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바로 이런 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 다윗과 같은 믿음으로 살아갈 때 바로 이러한 놀라운 믿음의 역사가 우리 삶에도 풍성하게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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