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때 계속해서 나누고 있는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제1차 전도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어느 도시를 방문하든지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차 때 갈라디아의 루스드라나 2차 때 마게도냐의 빌립보 등 예외적인 몇 군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도시에는 유대인 회당이 있었습니다. 그 말은 1세기 당시 유대인들이 로마제국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흩어져 살게 된 현상을 가리켜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부르는데 분산이라는 의미입니다. BC 6세기의 바벨론 포로기 이후 시작된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그리스 시대 때 가장 활발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헬라)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이 자기가 건설한 여러 신도시들에 유대인들을 비롯한 여러 민족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위해서 이주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그런 알렉산더의 정책을 통해 활발하게 일어난 유대인 디아스포라 현상 때문에 기독교 복음이 아시아와 유럽에 효과적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유대인들과 회당이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들이 모여 있는 회당에 들어가 그들이 잘 아는 구약성경을 인용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회당에는 유대인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도 있었습니다. 세계로 퍼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유대교로 개종했고, 공식적으로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유대교에 호감을 보이며 유대교의 관습을 따르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God-fearer)’들도 많았던 것입니다. 가이사랴에 주둔하던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사도행전 10)나 빌립보의 루디아(16) 같은 사람이 바로 그러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회당에 들어가 그들에게 친숙한 구약성경을 인용하며 복음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당시 바울이 사용한 성경은 유대인들의 히브리어 구약성경이 아니라 칠십인역(Septuagint)’ 성경이었습니다. 학문을 사랑한 이집트 통치자 프톨레미 2(BC 283~247)는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에게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해달라고 요청했고, 그에 따라 대제사장이 알렉산드리아로 파견한 70(혹은 72)의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 ‘70인역입니다.

 

원래는 프톨레미 2세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비치할 목적으로 번역을 요청했지만, 이미 반세기 이상 이집트 사회에 동화되어 살면서 히브리어를 잊어버린 유대인 2세들이 70인역 성경을 읽고 유대인으로서 정체성을 회복하는 효과도 가져왔습니다. 그뿐 아니라 70인역 성경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가정을 비롯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이교도 가정의 서재에도 빠지지 않고 비치되는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통해 로마제국 이곳저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파할 때, 청중들은 바울로부터 전혀 생소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70인역 성경을 통해 구약성경의 내용에 대해 친숙해져 있었고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처럼 바울을 비롯하여 모든 사도들이 로마제국 곳곳을 누비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바벨론 때부터 시작된 디아스포라 현상을 통해 어디를 가든 유대인들이 있었고 유대교 신앙이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언어의 통일로 어디에서든 헬라어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으며, 특히 구약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복음 전파를 위한 여건을 마련해놓으시고 그 일을 감당할 일꾼들을 부르십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