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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6일 수요예배

인생의 목적이신 하나님 6

교회의 지체로 자라가기

(에베소서 413~15)

 

오늘은 지난주 본문 중에서 세 구절을 더 깊이 살펴보는 가운데, 교회의 지체로 자라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

 

교회에 나오는 사람의 숫자가 많아지고 성장할 때 보통 부흥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성경이 말씀하는 진정한 부흥은 성장이 아니라 확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점점 더 확장되어 나가야 하는 동시에 점점 더 성숙해져야 합니다.

 

교회의 확장은 단순히 외형적으로 모이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고 건물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남과 회심을 경험한 참된 신자의 수가 늘어가는 것입니다. 동시에 교회는 성숙되어야 하는데, 신자들의 내적 성숙 곧 건강한 영적 성장을 말합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교회에 속하게 된 것으로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시작일 뿐입니다.

 

임신해서 9개월 이상 엄마가 뱃속에 아기를 품고 있다가 낳으면 그때로서 다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입니다. 그 아이가 잘 자라도록 돌봐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때부터가 시작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로서 잘 자라야 하며, 어그러진 성품을 고치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받아 한 몸을 이룬 성도들은 예수님의 형상을 온전히 닮아가는 내적 성숙과 진정한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이러한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어린아이는 판단과 이해에 있어서 미숙하고 의지도 약하기 때문에 굳게 서 있지 못하고 흔들립니다. 그처럼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은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이 세상에서 소외될까 봐 혹은 무엇이 옳고 옳지 않은지 분별이 되지 않아서 세상의 풍조에 휩쓸리고 맙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주일예배에 와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을 때는 뭔가 쌓이는 것 같지만, 파도가 밀려오면 모두 무너지고 씻겨 내려가서 아무것도 없어집니다. 그것이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의 목표는 자기가 믿고 배우고 확신하는 바를 따라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 3:13-14a)

 

디모데는 새 신자가 아니라 목회자였지만, 바울이 보기에 믿음이 좋은 디모데도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배우고 확신한 바에 거하라고 강력히 권면했습니다. 그렇다면 디모데보다 훨씬 더 연약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며 영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참된 영적 성장이 무엇인지에 대해 두 가지 측면을 가르쳐줍니다.

 

1)  지성적인 성숙

 

어린아이는 지식이 충분하지 않고 판단력이 흐리기 때문에 언제나 지식과 판단에 있어서 부족합니다. 그것이 영적으로 미숙한 어린 신자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후에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힘쓰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것이 갓 믿은 분들에게 확신의 삶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3)

 

영적 성장을 위해서 우리에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먼저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성경 말씀을 잘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식의 기초가 놓이고 확신의 기초가 생깁니다. 그래서 말씀묵상과 성경통독을 열심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그 위에 구체적으로 성경의 내용과 기독교 교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야 크리스천으로서 성경적 관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깁니다. 이전까지 가지고 살았던 가치관을 버리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새로운 세계관과 인생관을 가지게 될 때 반드시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이전에 비해 교회 다니는 것 외에 달라진 게 별로 없습니다. 정말 교회를 다니기만 하지 성경적 세계관과 인생관을 배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니기는 다니는데 말씀을 배우려 하지 않으니까 성장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등지고 살던 영혼이 내적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세계와 인생에 대해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13절에서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라는 것은 자신이 믿는 내용과 아는 내용이 같은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다양한 수준의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많이 알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적게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온 교회가 당신을 아는 지식에서 성장하여 온전한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교회는 성숙한 지식과 판단력을 갖게 됩니다.

 

 

2)  인격적인 성숙

 

이렇게 믿는 것과 아는 것에서 자라가는 사람은 인격적인 성숙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가득 찬 사람은 자신의 지식과 인격이 따로 떨어지지 않고 결합된 사람, 말씀을 배운 대로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지식을 단지 머리에만 넣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배운 대로 사는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인격적 성숙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성경공부를 삶 공부라고 부르고(말씀이 삶으로 연결되도록), 목장으로 모이는 것도 말씀의 핵심인 사랑을 실천하기를 연습하고 훈련해보자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성숙하지 못한 채 서로 상처를 주며 다투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이 배운 성경 지식대로 살지 않음으로 인격적 성숙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아픔이 되고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을 향해서도 예수님이 머리이심을 보여주는 교회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는 말씀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배웠으면 배운 말씀을 실천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인격적인 성숙을 이루며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성경을 공부하면 신앙이 성장한 것 같이 느껴지지만실제로 성장한 것은 아닙니다. 신앙 성장은 배운 말씀을 실천할 때 일어납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

 

결국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안 보이십니다. 그런데 성자 하나님인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의 신성은 우리 눈에 안 보이지만, 그분의 인성은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잠을 자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인간의 모든 희로애락을 느끼신 예수님을 보며, 우리는 그분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우리 눈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사람과 관계를 맺으신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성품을 지닌 분이신지 알게 됩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보게 되고, 외로운 자들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될 때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며 닮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을 닮아간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인간의 성품 안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존재가 됩니다.

 

이러한 과정은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의 육체를 만드시고,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심으로써 영혼을 창조하여 그를 살아 있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2:7). 그리고 사람에게 의도하신 삶이 있어서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그 사람의 영혼 안에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1:26).

 

하지만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깨져 버렸습니다. 그 후 인류는 계속적으로 번성했지만, 하나님의 참 형상이 인간에게 있을 때 어떤 인격을 가진 존재가 되고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형상을 알려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6-7)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참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배웁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사람으로 오셔서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우리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참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또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하나님의 형상 곧 그리스도를 최대한 많이 닮아가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신자들이 이 세상을 최고로 잘 섬길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있는 것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세상의 관심을 끄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없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3.   영적 성장의 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위해 오늘 본문은 두 가지를 알려줍니다.

 

1)  참된 생활을 함으로써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5)

 

첫째로, 참된 생활을 함으로써 예수님을 닮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참된 것을 하여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진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참된 것을 하여진리의 생활을 하여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진리의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되다라는 것은 진리를 따라 사는 상태를 말합니다. 정직하게, 진리를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간혹 가다가 나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 나보다 하나님과 더 가까이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분들은 자신이 아는 진리를 따라 참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고, 나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배울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진리를 굳게 붙들고 그 진리에 영향을 받으며 그대로 살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이 됩니다.

 

요즘 우리가 주일에 살펴보는 다윗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지만, 사실 큰 죄를 지었습니다.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야의 아내와 간음을 했고, 그것을 거짓말로 덮으려 증거 인멸을 시도하다가 안 되니까 결국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곳에 나가 싸우게 하여 죽게 만든 간접 살인이었습니다. 요압이 공범으로 같이 도왔습니다.

 

그 후 다윗은 자기 안에서 양심이 소리쳤겠지만 겉으로는 별일 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단 선지자가 나아와 그를 책망합니다(삼하 12:1-14).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삼하 12:7-9)

 

그때 다윗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왕의 권력으로 나단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반역자의 누명을 씌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즉시 회개합니다. 그 내용이 시편 51편인데 이런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정을 통한 뒤에, 예언자 나단이 그를 찾아왔을 때에 뉘우치고 지은 시.”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51:1-3)

 

하나님은 그의 회개를 들으시고 용서해주셨습니다. 그에게 진실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맞는 정신과 마음의 상태가 곧 진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이 진리의 빛 없이는 진실해질 수 없습니다. 다윗이 비록 끔찍한 죄를 지었지만 그는 즉시 주님의 진리 앞에 나아옴으로 마음을 돌이켜 회개할 수 있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삶에 진리를 아는 지식이 있어도 진리를 따르는 삶이 없다면, 그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허위이고 거짓입니다. 몇 십 년 아니 평생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직분이 있더라도, 늘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며 진리를 따르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짜일 수밖에 없습니다.

 

복종하는 삶은 있는데 거기에 진리가 없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니라 맹목적 신앙입니다. 이단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의 복종하는 태도를 보십시오. 그들의 열심을 보십시오. 우리가 못 따라갑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거짓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옳지 않습니다.

 

진리를 바로 알지 않고는 참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진리를 배우는 동시에 진리를 따라 정직하게 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영적으로 성장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많이 닮은 사람이 됩니다.

 

 

2)  사랑 안에서 살아감으로써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15절 상)

 

지성적인 성숙이든, 인격적인 성숙이든, 모든 것은 사랑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기서 사랑은 헬라어로 아가페입니다. 아가페는 흔히 하나님의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도 아가페이고, 그 사랑을 우리에게 주신 것도 아가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 감격하는 사랑도 아가페이고, 우리가 그 사랑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도 아가페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성경은 아가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에서 자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 성장은 교회에 오래 출석하는 것이나, 직분이 올라가는 것이나, 맡은 일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랑 안에서 계속 성장하게 될 때 그 사람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럼으로써 교회는 점점 더 든든한 예수님의 몸으로 서 가게 됩니다.

 

우리는 똑같이 예수님을 믿고,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실제로 누가 행복한 삶을 사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주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주님을 거의 사랑하지 않아서 언제든지 주님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겠습니까? 아니면 주님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도 기꺼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겠습니까? 세상과 교회에 양다리를 걸치고 사는 사람이 행복하겠습니까, 아니면 전적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행복하겠습니까?

 

당연히 주님께 생명까지 드리는 사람, 전적으로 주님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다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은혜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흠뻑 부어지면 우리의 내면에서 강력한 사랑이 불타오르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평소에는 없었던 놀라운 의지력이 생기게 되는데, 그것은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사랑해야 힘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때 능력이 나오고 그것을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자의 이러한 영적인 성장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혼자 광야나 수도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갓 태어난 당신의 자녀를 교회로 부르십니다. 금방 영적으로 태어난 아기가 자라서 나중에는 교회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자라가게 하십니다.

 

그렇게 교회를 세우신 목적에 기여하면서 살아가는 동안, 그 영적 갓난아기였던 사람은 위로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고, 옆으로는 모든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면서, 자기를 이 세상에 사람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그 목적을 실천하면서 살아갑니다.

 

그 안에서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으로 하나님과의 평화를 노래하게 되고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과 계획, 그리고 십자가의 사랑을 전파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이 살아 있음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 어느 한 구석이 온전해지고, 불행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옴으로써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 얼마나 복된 생활입니까?

 

우리가 여기서 하는 것을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누가 알겠습니까? 세계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는 줄도 모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들자고 한다 해서 누가 알아줍니까?

 

그래서 나 하나가 잘해서 뭐가 되나?’라고 합니다. , 됩니다. 지금 나 혼자라도 거기서 신실하게 할 때 온 지구로 보면 보이지도 않는 한 구석이 나 때문에 변화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무엇보다 한 영혼이 구원받고 내 마음이 기뻐하게 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니 얼마나 복된 삶입니까?

 

이렇게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드리는 복된 성도로, 영적으로 성숙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기쁨 가운데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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