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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7일 수요예배

치유기도 17

심령을 강건하게 해주는 부르짖는 기도

(시편 31~8)

 

미국의 유명한 찬양 그룹 중에 셀라(Selah)’라는 그룹이 있습니다. 시편에 보면 셀라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읽지 않아도 됩니다. ‘아멘과 비슷한 뜻도 있고, 시편은 원래 노래였기 때문에 중간에 쉬어가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읽을 때는 안 읽어도 되겠습니다.

 

 

1.   부르짖는 기도로 인한 인생 역전

 

이 시편 3편은 다윗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을 치기 위해 진군할 때 도피생활을 하는 중에 지은 시입니다.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많은 대적들로 인하여 죽음의 위기 앞에 있음을 주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아들에 의해서 언제 죽임을 당할지 알지 못하는 위기 속에 도망가며 시를 지어 하나님께 기도한 그 다윗의 마음을 헤아려보면서 이 시를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1-2)

 

우리도 사람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 이 시편을 읽으면 좋습니다. 특히 기도문이기 때문에 이것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내용이 됩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쫓기고 죽임을 당할 위기에 있다면 아주 비참한 상황인데, 자기 아들이 지금 자기를 죽이려고 하니 이것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입니까? 이렇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기 속에서 다윗은 밤새 부르짖으며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3-4)

 

여기 보면 다윗이 굉장히 부르짖는 기도를 드린 후에 마침내 자기 마음속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있다는 것을 4절 끝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소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위기상황에서 계속 괴롭고 슬프다고만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응답하고 계시다는 놀라운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믿음의 고백을 선포합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5-6)

 

얼마나 놀랍습니까? 완전히 소망을 가지고서 정말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주신다. 나는 두렵지 않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어려운 상황인데 소망을 가지고 담대히 하나님 앞에서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간구로 이 시편을 마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7-8)

 

다윗이 전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 두려움을 극복하게 되었고,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놀라운 영적 파워가 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을 채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선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쉽게 잊어버리게 되고, 사소한 일에도 근심하게 되며,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작은 문제가 굉장히 크게 보이는 겁니다. 그러나 부르짖어 기도할 때 우리의 영혼은 깨어나게 되며, 두려움과 죄와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윗이 그렇습니다. 상황은 변한 게 없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부르짖어 기도하며 나아가니까 이렇게 담대히 믿음을 선포하며 담대한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대부분 소리를 높여 열정적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성경에서 부르짖다또는 소리 내어 기도하다라는 뜻의 단어들이 나오는 구절 뒤에는 대부분 응답하겠다라는 놀라운 약속의 말씀이 마치 세트처럼 따라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히브리어로 부르짖다쯔아흐인데 으악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살려달라고 하는 부르짖음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들어주겠다고 하시는 샤마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3:7-9)

 

바로 이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죄를 지으니까 하나님이 어떤 민족을 보내셔서 징계하십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고(‘쯔아흐’)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셔서(‘샤마’) 사사를 보내어 구해주십니다. 그런데 또 죄를 짓고, 그래서 하나님이 또 다른 민족을 보내어 징계하시고, 그때 다시 이스라엘이 부르짖으니까, 하나님이 또 들으시고 구해주십니다. 사사기에서 그런 과정이 7번 반복됩니다. 아무리 형편없이 살다가도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쯔아흐하면 하나님은 샤마해주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33:3)

 

이 말씀도 똑같습니다. ‘쯔아흐하면 샤마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50:15)

 

똑같은 말씀인데 여기에는 목적도 나와 있습니다. 왜 부르짖으면 들어주십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런 구절들을 보면 하나같이 부르짖는 순간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어 하나님께서 반전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문제와 마음의 짐을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은 문제와 어려운 상황이 가져다주는 근심과 염려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세상 모든 사람들은 두려워하더라도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상황이 바뀐 게 아닙니다. 상황은 똑같은데 똑같은 상황에서 믿지 않는 세상 사람은 두려워합니다. 괴로워하며 근심합니다. 그런데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은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불평하고 원망하며 자신의 문제와 힘든 상황 속에 갇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2.   소리에 담겨 있는 영적 의미

 

그런데 부르짖는 기도에도 수준과 차원이 있습니다. 간혹 새벽기도회나 특별기도회에서 기도할 때 아주 거칠고 요란하여 거부감을 주는 기도 소리가 날 때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섬뜩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예배당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열심히 크게 기도하는 것은 괜찮은데,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 안에 있는 어두운 기운이 흘러나와서 듣기가 거북하고 이상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기도의 훈련이 되어 있고 내면이 정결한 사람이 부르짖는 기도 소리는 아무리 큰 소리라고 할지라도 듣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은혜를 끼치게 됩니다. 똑같이 크게 기도하는데 어떤 사람은 거북함과 불편함을 주고, 어떤 사람은 똑같이 크게 기도해도 굉장히 은혜를 끼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기도 가운데 하늘의 영광이 임하며 능력과 생명력이 충만하게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겁니다. 안에 있는 게 굉장히 어두운 것들인데 나오게 되면 불편함과 거북함을 주고, 안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인데 나오게 되면 은혜를 끼치게 됩니다.

 

사실 누구나 처음부터 온전한 기도를 드리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비록 옆에서 거북한 기도소리가 들려온다면 너무 싫어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그 사람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반면 내 목소리가 거칠고 요란하게 나와서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방해하는 것 같다면 절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럴 때는 침묵기도(숨기도)나 작은 소리로 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부르짖는 기도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음소리도 다 들으시는데 왜 굳이 큰 소리로 기도해야 합니까?” 당연히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를 다 들으십니다. 침묵기도도 들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귀가 어두우셔서 우리에게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르짖는 기도가 우리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영적으로 막힌 담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영혼을 강건하게 하며 하늘 문을 열어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과 복을 부어주기 때문입니다.

 

소리는 우리 영혼에 영적인 역사를 일으키는 매개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고 정결한 사람의 목소리는 아주 청아하고 윤택하며, 영적 파워가 있는 사람은 목소리가 힘차고 무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더불어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이런 사람들이 설교하거나 찬양을 인도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생명력이 전달됩니다.

 

그래서 설교자인 저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고 정결한 사람이 되기 위해 평소에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해야 하고, 우리 찬양 팀과 또 성가대도 평소에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나 사역을 이끄는 리더도 역시 평소에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여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고 정결하게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역은 몰라도 성가대 사역과 교사 사역은 반드시 활동교인이 된 다음에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활동교인이 되는 게 무슨 엄청나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그 사람의 믿음을 확인한 다음에 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가대도 별달리 할 게 없으니까 한다는 식이 아니라, 성가대원으로서 평소에 하나님의 사랑과 정결함으로 가득 차도록 평소에 기도와 말씀의 생활을 해야 하고, 그런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찬양이 정말 은혜롭고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찬양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찬양 팀도 마찬가지고, 설교자도 마찬가지고, 교사도 마찬가지고, 목자 목녀나 위원장이나 당회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더일수록 하나님의 사랑과 정결함으로 충만하도록 더욱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의학적 연구에 따르면, 소리를 내거나 특히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 자율신경이 활성화되는 세로토닌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세로토닌은 뇌의 신경 전달 호르몬인데, 집중력과 기억력을 향상시켜주기 때문에 소위 공부 호르몬이라고도 불리기도 하고,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세로토인은 비만과 우울증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감사하며 살 때 우리 뇌 속에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충동을 조절하고 스트레스를 약화시키며 두뇌 활동이 활발해져서, 위급한 상황이 와도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사하며 사는 것이 우리 건강에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감사하는 것이 그저 영적 차원이 아니라 육체적인 건강에도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 세로토닌이 절대 부족합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급한 상황이 벌어질 때 감정 조절을 못하고 참지 못하며, 충동적으로 또는 거칠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방송활동과 저서로 유명해진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교수 역시 신경증적 성향은 세로토닌 결핍과 관련이 있으며, 세로토닌 결핍 시 공격성이 증가한다.”라고 말합니다.

 

아주 거칠게 말하는 사람, 화를 잘내는 사람의 삶을 잘 보십시오. 분명히 감사함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평소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사납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감사하지 않으니까 의학적으로도 세로토닌이 나오지 않아서 공격적이 되는 것입니다.

 

세로토닌을 많이 나오게 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 바로 감사의 습관을 계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장 모임 때 감사의 제목을 나누는 것이 별 것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중요한 활동입니다. 그러므로 목장에 참여할 때 미리 무엇을 감사할지 생각을 좀 하고 와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감사할 게 너무 많습니다.

 

그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물, 나무, , 하늘, 바람, 공기, 자동차, 집 등, 매일 한 가지씩 주제를 정하고 그것을 통해 주님께 감사하며 사는 연습을 해보는 겁니다. ‘오늘은 나뭇잎을 가지고 하루 종일 감사해보겠다.’라고 하며 시도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떨어져 있는 낙엽을 봐도 감사하고, 달려 있는 나뭇잎을 봐도 감사하고, 지나가다 나무만 보아도 감사한 겁니다. 의식적으로 감사하는 연습을 해보면 이상하게 행복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큰 소리로 찬양하거나 부르짖는 기도를 할 때도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행복해집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어도 이지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말씀에 대한 통찰력과 묵상의 깊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영적인 면이 약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약하면 쉽게 공격받고 사역에서 능력을 발휘하기도 힘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성은 영성으로 전달되어야 듣는 사람의 영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지적이고 섬세하며 성품도 좋은 목회자들 가운데 자주 아픈 분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영적 상태가 안 좋은 사람들을 상담하고 돌보면서 과로에 지친 사역자의 마음속으로 안 좋은 기운들이 들어오게 되는데, 그것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채 계속 안으로 그것이 쌓이다 보면 결국 육신의 병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심령이 약하면 남들에게 휘둘리게 되지만, 심령이 강건하면 상대방의 어떤 악한 것이나 잘못된 것이든 제압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의 악한 기운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나오든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으로써 상대방의 악과 강퍅함은 결박이 되고, 상대방 안에 숨겨져 있던 선과 부드러움이 나타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에게 못되게 굴었다면 거기서 끝내거나 멀리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의 심령이 강하게 되면 그런 안 좋은 것들을 제압할 수 있고 그 사람 안에 숨겨져 있던 선하고 부드러운 것까지 끄집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사람은 자신이 영적으로 약해서 그런 것인데, 그것을 모른 채 그저 자기를 무시한다고 상대방만 원망하고 억울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그것은 영적 원리를 모르니까 그런 것입니다. 이제 집에서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과 싸우지 말고, 또 직장에서 동료들이나 사업체에서 손님들이나 일하는 사람들과 신경전도 그만하고, 교회에 나와 부르짖는 기도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내 안에 쌓여 있는 부정적인 모든 것을 쏟아내고 하나님의 권능을 내려 받아 강건해지면, 나로 인하여 가정의 평화를 이룰 수 있게 되고 일터에서 당당하게 일할 수 있게 됩니다.

 

요즘 한국과 미국에서 많은 사회적 문제와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심각한 상황까지 온 이유는 영적으로 볼 때 교회에서 기도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이 기도하지를 않아서 영적으로 약해지니까 사회에 악한 영들이 날뛰어서 사악함과 잔인함이 기승을 부려도 영적으로 제압할 힘이 없어서 사회와 나라가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여 강건해지면 가정 내의 악이 무너집니다. 교회(즉 우리)가 합심해서 기도하면 이 지역사회가 깨끗해집니다. 교회들이 연합하여 마음을 합쳐서 기도하면 나라가 거룩해지고 열방이 변화됩니다. 이것이 기도의 원리이며,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입니다.

 

물론 우리가 영적으로 충만해서 합심하여 기도하고 있어도 악한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 다른 점은, 아무리 악한 일이 벌어져도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 있어, 부르짖는 기도는 영적 전쟁에 효과적입니다. 소리의 영적 원리와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6:16, 20)

 

소리에 의해서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는 것에는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여리고 성 전투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저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돌다가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나서 소리만 질렀을 뿐입니다. 이것은 부르짖는 기도소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속으로 생각하는 것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뭐 굳이 소리를 내서 기도할 필요가 있느냐? 그냥 속으로 기도하면 된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귀신들은 우리의 속을 모릅니다. 소리가 나야만 알게 됩니다. 그래서 부르짖는 기도가 영적 전쟁에서 중요합니다.

 

사탄은 전지전능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마치 자기가 하나님과 같은 능력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우리의 속마음을 다 아시고 마음의 중심을 다 보시지만, 사탄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축사를 하시는 분들도 그 앞에서 서로 메모로 주고받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대화할 때 귀신이 듣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우리의 속마음까지 다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르짖는 기도로 나아갈 때에 귀신을 대적하는 능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전쟁에서 부르짖는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침묵기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내적인 성찰을 하는 데 효과적인 반면, 부르짖는 기도처럼 소리를 내어 하는 발성기도는 영혼을 강건하게 하며 영적 전쟁에 효과적입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우리의 기도를 영적인 세계로 쏘아 올리는 로켓과도 같아서, 문제와 고난으로 근심과 염려 가운데 있을 때, 그리고 주님과의 교제와 기도가 막혀 있을 때, 이 막힌 것을 무너뜨리고 파괴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하나님의 보좌까지 확 도달하게 해줍니다.

 

 

3.   부르짖는 기도로 인한 치유

 

우리는 살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통해 상처와 고통을 겪습니다. 그럴 때 세상 사람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자신의 마음을 토해내고 노래방에서 큰 소리로 노래하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다고 근본적으로 다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습니까? 해소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스트레스와 두려움과 염려와 부정적인 감정들을 그대로 쌓아 둔 채 살아갑니다. 억울해도 말을 못하고, 싫어도 싫다고 말하지 못하면서 점점 속이 썩어가니, 그야말로 회칠한 무덤처럼 속에서 썩어가는 것입니다.

 

부르짖는 기도를 다른 말로 하면 토설기도입니다. 부르짖는 기도 가운데 스트레스와 상처와 고통과 근심과 염려를 통해서 들어온 나쁜 기운들을 토해냄으로써, 억눌려 있는 영혼과 병든 몸을 살리는 치유기도인 것입니다.

 

한국은 의 문화가 있습니다. 한의 사전적 의미는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이 풀어지지 않고 응어리짐인데,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기에 한을 품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 (18:21-22, )

 

개역성경에는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용서하라고 되어 있는데,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를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 때문입니다. 한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 복수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독을 조금씩 마시며 사는 것과도 같습니다. 적은 양의 독이라도 지속적으로 섭취하게 되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옛날에 왕들을 독살할 때 거의 표시가 안 나게 매일 조금씩 독을 넣어서 죽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한의 문화에서는 전통민요 <아리랑>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나를 버리고 가신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라고 하는데, 이것이 일종의 저주입니다. 이런 저주가 담긴 응어리진 마음을 풀지 않습니다. 한을 잘 풀지 않는 민족입니다. 개인의 기질과 성격에 따라 약간 차이는 있지만, 한과 같은 마음의 응어리와 부정적인 기운들이 마음속에 쌓일 때 주님의 빛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을 그것들이 방해합니다.

 

그것들을 방치하면 마음의 쓴 뿌리를 만들어 그것을 통해 우울증, 치매, 공황장애, , 심장 계통의 질병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것을 통해 사탄의 견고한 진이 내 안에 형성되면 영적으로도 계속 괴롭힘을 당하며, 믿는다고 하면서도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이런 부정적이고 어두운 기운들을 토설해서 내보내고 용서를 습관화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마음의 쓴 뿌리와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4.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

 

소리를 내서 기도할 때도 배에 힘을 주고 목소리를 낮추면 자연스럽게 배에서 나는 기도소리가 되고, 애절한 마음을 담아서 가슴에 힘을 주어 위를 향해 기도하면 목소리가 가늘고 높아지게 됩니다. 이것은 성악의 원리와도 비슷한데, 배를 사용해서 기도하면 영혼의 강건함과 담대함이 생겨 영적 전쟁에 효과적이게 해줍니다. 뭔가 파워가 필요하다면 묵직하게 배를 사용하여 밑으로 기도해보십시오. 그런데 가슴을 사용하여 기도하면 영이 맑아지고 섬세하고 부드러워져서 내적인 정화작용을 일으킵니다.

 

특히 마음이 유약하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이 낮은 소리로 부르짖는 기도를 하게 되면 정서가 강건해져서 두려움이 사라지며, 심각하고 강퍅하던 성격이 여유롭고 낙관적인 성품으로 변화되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성격이 강한 사람들, 다혈질이나 담즙질의 사람들이 부르짖는 기도를 너무 많이 하다 보면 오히려 더 강퍅해지고 주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위쪽을 향해 가슴으로 소리를 내며 기도하면 좋습니다.

 

악한 영들은 경건한 소리를 싫어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우렁찬 찬양소리와 부르짖는 기도와 선포의 외침을 악한 영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바로 그런 찬양과 기도를 통해 악한 영들을 무너뜨리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큰 소리로 기도할 때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떠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양을 크게 불러야 하고 기도를 소리 내어 해야 합니다.

 

찬양 시간에 찬양하지 않고 기도 시간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영적으로 강건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찬양할 때 가만히 있는 사람, 기도할 때 가만히 입을 닫고 있는 사람은 영적 전쟁에서 그만큼 취약해지며 악한 영의 공격에 무방비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길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길 능력은 주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찬양하고 기도해야 하는 시간에 큰소리로 찬양하지 않는 사람, 소리 내어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영적으로 약해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당연히 침묵기도를 할 때도 있습니다. 주님과 사랑의 속삭임을 할 때는 조용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영적전쟁을 할 때는 부르짖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을 주도했던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새벽기도회와 통성기도는 한국교회의 위대한 유산이며 한국교회에 부흥과 축복을 가져다준 일등공신입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한국교회의 통성기도나 새벽기도의 열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하는 데도 많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실 조용한 교회들은 유럽에 가면 많습니다. 기도 소리가 사라지니까 교회의 영향력도 줄어들었고, 지금 유명한 교회 건물들이 관광 명소가 되어 있습니다. 많은 경우 유지가 안 되니까 팔아서 호텔이 되기도 하고, 겉은 교회 같이 생겼는데 속은 클럽인 곳도 있습니다. 심지어 이교도의 예배당으로 팔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영이 임하시면 마음이 뜨거워져서 조용히 있기가 어렵습니다. 성령 강림의 역사가 일어난 초대교회의 가장 큰 외적 특징은 소리였습니다. 120명의 성도들이 예수님의 승천 후에 모여서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고 있을 때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그곳은 더 이상 조용할 수 없었습니다.

 

성령께서도 휙휙 하며 바람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소리와 불로 보이게 임하셨고, 그곳의 성도들도 큰소리로 방언하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때는 물론 언어방언이었습니다. 소리를 내어 언어방언을 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온 헬라파 유대인들이 그것을 듣고 깜짝 놀란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가 있는 곳은 찬양과 기도와 기적과 전도의 역사들이 일어나게 되어 조금 시끄럽기는 해도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곳이 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2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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