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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vWHsKYValG8?t=154

 

 

202273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21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

(사무엘하 51~10)

 

[들어가는 말]

 

조각가들은 중요한 작품을 만들기 전에 그것을 먼저 작은 모형으로 만들어 표현해 봅니다. 처음부터 크게 만들면 고칠 수도 없고, 만약 실패할 경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화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먼저 자기가 받은 영감을 스케치로 표현해봅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늘려가며 마침내 완성하게 됩니다.

 

그와 비슷하게 하나님은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시기 전에 철저히 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그를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며 기다렸고, 하나님이 알아서 상황을 정리해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마음이 급해서 뭐든지 빨리 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지금 당장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기도해도 그것이 당장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심지어 오래 참음’(인내)을 배우기 원할 때도 기도하면서 하나님, 인내를 주십시오. 지금 당장 주십시오.’ 하며 인내하지 못하고 기다리지를 못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정리해주셨습니다.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다윗을 대적하여 열한 지파와 함께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때 다윗이 무력으로 맞서 싸워서 응징하고 통일한 게 아니라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들끼리 무너집니다.

 

요압 같은 악인을 통해 먼저 아브넬이 제거됩니다. 아브넬이 화친하러 오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이스보셋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허수아비 왕으로 세운 이스보셋과 갈등이 생기니까 실권자인 아브넬이 그렇다면 내가 아예 다윗에게 나라를 넘겨서 높은 자리를 하나 차지하리라.’ 하는 악한 계획으로 다윗에게 왔는데, 그렇게 하기로 화친하고 돌아가는 길에 요압이 다시 불러와 그를 암살했습니다. 가만히 있었더니 해결이 됩니다.

 

또 레갑과 바아나 같은 악인들을 통해 헛된 꿈을 꾸며 왕위에 있던 이스보셋도 제거됩니다. 다윗이 직접 한 게 없습니다. 다윗은 그들이 죽었을 때 슬퍼하면서 조가를 부르며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며 하나님을 바라보니까 하나님이 다 처리해 주셨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악인들의 악한 계획을 통해서도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악을 조장하고 악을 일으키시는 것은 아니지만, 악한 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되었다고 기분 좋아할 때 그런 악한 계획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보셋 죽음 후에도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스라엘 열한 지파 지도자들이 또 알아서 찾아옵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1.   이스라엘 왕의 보좌에 오르는 다윗 (1~5)

 

이스라엘 족속이 다윗에게 돌아온 때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한 직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사울을 섬겼고, 그가 죽은 뒤에는 다윗을 대적하여 그의 아들 이스보셋을 76개월(5)이나 더 섬겼습니다. 이것은 군사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아브넬과 이스보셋을 대항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보다는 불의한 정권이라도 그 밑에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1)

 

드디어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는 더 이상 나뉘지 않고 한마음으로 또한 자발적인 마음으로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라는 말은 인구 전체가 다 나왔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과장법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싸울 능력이 있는 남자들, 그중에도 특히 지도자급이 되는 군인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일에 참여했고, 그 숫자는 35만 명 정도였습니다(대상 12:23-40). 전국에서 많은 수의 군대가 동원된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한 골육이라는 말은 살과 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같은 살과 뼈입니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셔서 하와를 만들어주셨을 때 아담이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2:23)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혈연관계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 말이 요즘 유명하고 흔히 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남이가?’

 

아니, 한 골육 즉 같은 핏줄이라고 말하며 이렇게 올 거였으면 왜 그렇게 싸웠습니까? 왜 사울 죽음 이후에 진작 다윗을 섬기지, 그러지 않고 아브넬과 이스보셋 밑에 들어가서 나라를 세우고 지금은 한 골육이라고 하게 된 다윗을 대적하여 7년 반 동안이나 싸웠습니까? 말로만 싸운 게 아닙니다. 무기를 들고 전쟁을 했습니다. 그래서 피를 흘리며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는 왕과 한 골육입니다.”라고 합니다. 실컷 죽고 죽이고 한 다음에 우리가 남이가?’라고 하니까 얼마나 뻔뻔하고 얄밉습니까? 치고 받고 싸운 다음 우리는 하나다.’라고 하니 참 이상한 상황입니다.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2)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더 얄밉습니다. 그들은 사울 왕 때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면서 승리를 거둔 것이 다윗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겁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네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며, 네가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도 다윗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아니, 이것을 다 알면서도 그동안 다윗을 대적하며 싸웠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반역 중의 반역이 아닙니까? 다윗만 대적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대적했으니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스스로 자인한 꼴이 되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무엇을 느꼈을까? ‘, 그럼 너희가 나를 이렇게 인정하면서도 나를 대적해서 그동안 그렇게 싸웠어?’ 하며 뭐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인데, 다윗은 이때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바로 깨달았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평소에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순간 그는 분명히 느낀 겁니다.

 

이스라엘 지파들이 지금까지 자기를 대적한 것은 몰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다 알면서도 그동안 자기를 대적했는데, 지금 자기에게 와서 왕으로 추대하겠다고 하는 자체가 사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동안 치고 받고 죽고 죽이며 피 흘리면서 싸운 사람들이 와서 자기를 왕으로 세우겠다는 것이 놀라운 역사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스보셋이 죽었으니까 또 다른 인물을 내세울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다 흩어질 수도 있습니다. 끝까지 다윗에게 반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라도 다윗을 인정하고 왕으로 세우겠다고 헤브론까지 왔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이제 다윗을 왕으로 모시자.’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것을 조용히 수락합니다. 다윗이 뭐라고 했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3)

 

이스라엘은 지파별로 장로들이 지도자의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이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웁니다. 이제는 유다 지파뿐 아니라 열두 지파 모두 나와서 기름 부어 세운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다윗이 세 번째로 기름 부음을 받는 장면입니다.

 

첫 번째 기름 부음을 받았을 때 다윗이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때 그는 십대소년으로서, 아버지 집의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 중 한 사람을 왕으로 기름 부어 세워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왔을 때, 첫째부터 죽 지나갔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이게 다냐?”라고 물었을 때 말째가 있기는 합니다만 양을 치고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이 있는데도 막내 다윗은 부르지도 않고 계속 들에서 양을 치게 두었습니다. ‘얘가 왕이 될 리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집안의 천덕꾸러기요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야단만 맞는 막내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때 놀랍게도 사무엘이 그를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를 데려오지 않으면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데려오니까 하나님께서 바로 이 사람이다.”라고 하셨는데, 아름다운 소년이었습니다.

 

그때 그를 기름 부어 세운 것이 첫 번째 기름 부음 받은 때입니다.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때 다윗은 자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관두고 온 것도 아니고 다른 일을 한 것도 아니고, 평범하게 자기 일을 하고 있을 때 부름을 받아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25달란트 비유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적은 일에 충성했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겠다”(25:23)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적은 일에 충성하는 것을 보니까 더 많은 일을 맡겨도 할 수 있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적게 보이는 일,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에 최선을 다해 신실하게 일하는 사람을 들어 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의 평범해 보이는 일상생활 속에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감추고 있으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의 일상이 결코 아무것도 아닐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도 그렇고 역사를 보아도 그렇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들의 인생을 살펴보면 한순간에 그냥 쓰임 받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그 사람을 준비시키고 준비시키고 또 준비시키다가 때가 되었을 때 사용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존재이기에 앞일을 미리 내다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앞날을 알고 싶어 하며 사람들은 뭘 합니까? 가서 점도 쳐 보고, 사주팔자도 보고, 점성술도 해보고, 손금 읽기도 해봅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데 자꾸 헛된 것을 의지하려 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그저 막막하고 막연하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평범한 걸음걸음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목장에서 감사 제목을 나눕시다. 감사 제목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하면 똑같습니다. 별일 없습니다.’라고 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코로나 사태 동안에는 똑같다고 하는 것이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별일 없거나 똑같다거나 하루하루 지루하다고 생각을 많이 하는데, 사실은 자신이 매일 마주치는 똑같은 일들, 평범해 보이는 일들을 절대 시시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똑같아 보이지만 똑같은 게 아닙니다.

 

진짜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똑같은 일이라도 내가 할 때마다 감정이 다릅니다. 똑같은 일을 할 때 주변 환경도 같은 것 같지만 같지 않습니다. 운전하고 갈 때 풍경이 같아 보여도 어제의 나뭇잎 개수와 오늘의 나뭇잎 개수가 같지 않습니다. 날씨도 같지 않고, 온도도 다르고, 거기 지나가는 생물들도 다릅니다. 똑같은 게 아닙니다. 길의 상태도 같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매일 똑같다. 지겹다. 지루하다.’라고 할 게 아니라는 겁니다. 시시하게 여길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는 일에 대해서도 나는 맨 날 똑같은 일만 하고 있다.’라고 한다면, 혹시 단순노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별것 아닌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요즘 여름이라 쓰레기를 잘 치우자고 하는데, 혹시라도 마시다 만 커피가 들어 있는 컵을 보았을 때 무심코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데 이것을 그냥 두면 썩겠다.’ 하는 마음으로 화장실에 가서 쏟아 버리고 컵도 버립니다. 진짜 별것 아닙니다. 내가 그렇게 한 게 세계를 바꿉니까? 세계 평화를 가져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런 작은 섬김, 섬김이 쌓여서 그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런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가는 사람과 그것을 보고 집는 사람 중 하나님이 누구를 더 기뻐하시며 사용하시겠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그런 것이 쌓여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일꾼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행한 작은 섬김과 땀 흘림과 수고가 나중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떻게 쓰일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무심코 넘기는데, 그렇게 시시한 일, 작은 일, 평범해 보이는 일에 충성을 다하고 그것을 신실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주여, 주여하며 큰소리를 내는 것만 믿음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믿음이지만, 작아 보이지만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 사랑으로 하는 것, 그런 평범한 일을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정확한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4-5)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어 70세로 죽을 때까지 40년 동안 왕으로 있었습니다. 아주 긴 기간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그가 골리앗과의 싸움에 나가 이겼을 때가 10대 후반이었다고 보는데, 짧은 기간 동안 사울 왕의 신하(장군)로 있었다고 하면, 그 후 사울이 죽이려고 쫓아다니던 10여 년 동안 망명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20대 황금기를 사울에게 쫓겨 다니며 도망자로, 나중에는 망명자로 살았던 것입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되어 다스린 76개월이라는 이 기간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고, 이 시간은 오히려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저번에 보았듯이,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에게 기름 부음을 받았는데 그것이 바로 두 번째 기름 부음입니다. 유다 지파가 기름 부어 그를 유다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겨우 유다 지파 하나의 왕이 되어서야 되겠는가?’라고 하면서 헛된 꿈을 꾸거나 자꾸 나가서 싸우려 했다면 일을 그르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실망하지 않고, ‘내가 겨우 유다 한 지파의 왕이 되려고 이 고생을 했나?’라고 한탄하거나 비뚤어지지도 않고, 유다 지파의 왕으로서 7년 반 동안 열심히 섬겼습니다. 왕으로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덕분에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왕좌에 오르자마자 여러 가지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때가 되었을 때 바로 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다윗이 곧바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않고 유다 지파만의 왕이 된 것도 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소년 목동으로서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그때 바로 왕이 된 것이 아닙니다. 십여 년이 지나 드디어 왕이 되었는데 유다 지파 하나의 왕이 되었습니다. 실망할 수도 있었지만 성실하게 감당했을 때, 드디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모든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었고, 그 이후에 모든 왕들을 다윗과 비교할 정도로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특히 다윗의 후손들인 남 유다의 왕들은 항상 다윗과 비교됩니다. ‘다윗의 길을 가지 않았다’, ‘다윗의 길을 걸어갔다라고 계속 다윗과 비교됩니다. 심지어 메시아도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의 모든 왕 가운데 오직 다윗만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합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았습니다(13:22). 그래서 이스라엘의 다른 왕들은 다윗을 기준으로 그들의 신실함을 평가받았던 것입니다(왕하 22:2). 그리고 예수님마저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그가 이런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왕이 되기 전에 혹독한 훈련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지도자가 되는 것은 결코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소위 거저먹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되는 게 아닙니다. 이처럼 어려운 과정이 뒤따릅니다. 그러데 그 어려움은 그 사람을 훈련시키면서 변화시키고 성숙하게 만들어줍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은 훌륭한 가문과 외모 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악한 지도자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타락해 버립니다. 그의 자기중심적인 죄성은 그가 왕이 된 다음에 드러났는데, 그것이 미리 해결되지 못하고 그냥 왕이 되니까 그대로 타락을 해버린 것입니다.

 

반면 다윗은 극심한 어려움을 통해 자기 중심성과 죄악이 다루어졌습니다. 다윗이 죄인 아닌 게 아닙니다. 그가 태어날 때부터 의인입니까? 그도 똑같은 죄인입니다. 우리와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과 늘 동행했고, 특히 어려움을 거치면서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죄악이 만져지고 빚어지고 다루어졌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 된 다음에도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으로 또 백성 중심적인 왕이 됩니다.

 

지금도 다윗 같은 좋은 리더를 필요로 합니다. 사회도 교회도, 다윗과 같은 리더가 필요합니다. 다윗의 리더십을 연구한 책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중심적인 죄악을 깨뜨리는 훈련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좋은 리더냐 아니냐는 사람들이 좋아해주냐 아니냐가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모습이 해결되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당장은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이것이 해결된 사람은 나중에 반드시 인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당장은 혹평을 받고 비판과 비난에 시달렸던 정치 지도자가 훗날 아주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당장은 인기가 있고 좋았는데 나중에는 최악의 지도자였다고 평가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그 과정을 거쳤느냐 안 거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다윗은 20대의 혈기 왕성한 시절을 도망자로 광야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20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 황금 같은 시절에 내가 도망만 다녔다면 얼마나 아깝고 안타깝고 화가 납니까? 그런데 다윗은 그 황금기를 그렇게 보낸 것에 대해 결코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자기가 빚어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시련은 나중에 다윗이 메시아의 조상이 되고 왕의 모델이 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리더로 세워질 사람들에게 주어진 시련과 훈련은 훌륭한 리더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임을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2.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강해지는 다윗 (6~10)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그 땅에 남아있는 여부스인들을 정벌하는 것으로 공적인 일을 시작하는데, 여부스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은 예루살렘으로서 원래 사울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 영역에 속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부스 사람들은 베냐민 사람들보다 강하여 베냐민은 그들을 몰아내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 때가 이때로부터 약 500년 전인데, 500년 동안이나 몰아내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가나안 사람들을 다 몰아낸 것이 아닙니다. 특히 여부스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본거지로 삼고 계속 거주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이 여부스이고 별명이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워낙 탄탄한 요새 같은 곳이라 아무도 쳐들어오지 못해 평화를 누린다고 평화의 성인 예루살렘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6)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헤브론에 계속 있었으면 너무 남쪽이기 때문에 북쪽을 커버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북쪽으로 옮기면 남쪽이 비게 되니까, 중간쯤 있는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긴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전체로 볼 때 중심지가 될 수 있고 성 주변이 깊은 골짜기였기 때문에, 외부에서 오는 대적을 방어하기에 좋았습니다. 또 기드론 골짜기의 기혼 샘에서 성에 필요한 물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의 중부 이남으로는 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에 있었기 때문에, 다윗은 자신의 근거지를 완전히 떠나지 않고도 베냐민 지파와 화합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다윗의 공격 의도를 알게 된 여부스 사람들은 뭐라고 합니까?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하고 조롱하며 호언장담합니다. ‘여기는 아무도 칠 수 없는 요새다.’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이는 예루살렘이 천혜의 요새였고 다윗과 그 군사들을 능히 막아낼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그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7-8)

 

다윗은 그 성을 공격하여 탈취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그 성 이름을 다윗성이라고 붙입니다. 이것을 또 시온산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니까 시온산이 예루살렘이고 또 다윗성입니다.

 

그런데 여기 굉장히 해석이 어려운 말이 나옵니다.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아니 그러면 다윗이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 즉 장애인을 미워한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성경의 이러한 근거를 가지고 장애인을 미워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원래 영어 성경인데 한국어로 번역된 <메시지> 성경이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 베스트셀러입니다. 원래 원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원어를 영어로 번역했는데, 그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성경입니다.

 

그런데 원래 영어 성경 <The Message>가 굉장히 미국적인 표현을 사용한 영어 번역 성경입니다. 그래서 사실 미국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어울리는 성경인데, 그것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고 해서 의아했고 게다가 베스트셀러까지 되었다고 해서 더 의아합니다. 그만큼 번역이 쉽게 되어 있고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성경을 번역하신 분이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 목사님인데 몇 년 전 돌아가셨습니다. 미국장로교 목사이셨고 교수도 하셨고 굉장히 훌륭한 분이셨는데, 책을 많이 쓰셨습니다. 그분이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라는 책을 쓰셨는데, 거기에 이 부분에 대해 아주 기가 막힌 이야기를 해줍니다.

 

중세의 유대인 해석자들에 의하면, 6절과 8절에서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맹인이라는 것은 노년에 눈이 보이지 않아 자기 아내와 아들 야곱으로부터 사기를 당했던 이삭을 가리키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리 저는 자라는 것은 바로 그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권을 얻었다가 나중에 천사와 씨름하고 다리를 절게 된 야곱을 가리키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부스 사람들이 그러한 이삭과 야곱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만들어서 우상처럼 해놓고 여부스 성에 세워놓았다는 겁니다. ‘맹인과 다리 저는 자즉 이삭과 야곱을 상징하는 우상을 만들어서 조롱하려는 목적으로 두었다는 것입니다. 중세 랍비 게르소니데스(1288-1344)는 그것들이 수력으로 작동되며, 따라서 상수도를 파괴하면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무시무시한 전투용 기계 장치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조형물을 우상처럼 만들어놓고, 거기에 절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조상 이삭과 야곱의 상징으로서 저주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놓았는데, 실제 활용 방법은 놀라운 전투용 기계 장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물을 끌어와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윗이 다리 저는 자와 맹인을 미워한다는 것은 사무엘하 내용으로 볼 때 말이 안 됩니다. 다윗은 유아였을 때 사고로 다리를 절게 된 므비보셋, 즉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로서 이미 죽은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에게 특별한 배려와 애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9). 그러니까 다리 저는 자를 미워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이러한 여러 사항을 함께 고려해 볼 때 다리 저는 자와 맹인이라는 표현은 여부스 사람들이 저런 사람들이라도 다윗을 물리칠 수 있다.’라고 조롱한 것인 동시에, 자기들이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과 이삭을 조롱하여 만든 우상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라는 겁니다. 충분히 가능한 해석이라고 보입니다.

 

통치권을 확립할 새로운 장소가 필요했던 다윗은 예루살렘을 선택하여 그곳의 우상들을 다 청소했는데, 그렇게 큰 기계 장치를 만들어놓았을 뿐 아니라 그와 비슷한 모양을 작게 만들어서 우상처럼 가지고 평소에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한 우상을 다윗이 싹 청소합니다.

 

예루살렘 성은 땅속에 파놓은 물 긷는 데를 통해 기혼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공급받았습니다. 여기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라는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기혼 샘에서 흘러들어온 물은 예루살렘 성 남쪽의 지하 저수지에 모였습니다. 이곳에 모인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성안에 수직으로 통로를 파놓았습니다. 이 물 긷는 곳은 19세기 말에 그 존재가 확인되었는데, 1867년 고고학자 찰스 워렌(Charles Warren)이라는 사람이 발견해서 현재는 '워렌의 수직 통로'로 불립니다.

 

다윗은 이곳을 통해 성에 침투하는 자에게 상을 내리겠다고 약속하는데, 역대상 11장을 보면 다윗의 군대장관인 요압이 가장 먼저 이곳을 통해 성에 들어가서 다윗 군대의 우두머리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하게 됩니다(대상 11:6).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9)

 

밀로는 성을 방어하기 위해 돌과 흙으로 쌓아 올린 성채로, 여부스 사람들이 예루살렘 북쪽에 이것을 세웠습니다. 다윗은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쌓아 예루살렘 성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후대에 솔로몬 왕과 히스기야 왕도 밀로를 증축하고 무너진 성벽을 수축했습니다(왕상 11:27; 대하 32:5). 밀로는 공회당이나 공중 집회 장소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다윗이 그곳을 도읍으로 삼기 위해 여러 건물을 그 안에 건축했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10)

 

다윗은 이 사건을 계기로 더욱 강성하여 갑니다. 이러한 성공과 승리는 물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 사사 시대와 사울 시대에 고통을 당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과 함께하는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은 다윗에게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다윗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로 다시 새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된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강성해질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상 하나님은 우리와 언제나 함께하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느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항상 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편이십니다. 항상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 주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뿌리치고 내가 알아서 한다.’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나는 정말 하나님 편인가? 나는 하나님과 언제나 동행하고 있는가?’ 이것을 꼭 점검해보아야겠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불편하니까 그렇습니다. 항상 나를 보시는 것 같고, 죄지으려고 하면 감시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저쪽에 가 계시고 내가 필요해서 부를 때 오세요.’라는 식으로 하나님을 믿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만약에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셔서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하나님, 저리 좀 가 계세요.’라고 할 게 아니라 그것을 정리해야 합니다. 오늘 제가 목회편지에도 썼지만, 바로 그런 부분이 나의 깨진 유리창인 겁니다. 그것을 별것 아니라고 방치해두면 점점 무너집니다. 빨리 수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강해질 수가 있고 성공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성공은 껍데기뿐이지, 진짜가 아닙니다.

 

여기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라는 말은 다윗의 성숙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다윗 이야기는 단순한 이 사건이 일어나고 저 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되는 대로 일어나는 사건들이 아무렇게나 쌓인 것을 성경이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다윗 이야기는 성장의 이야기이고 또 성숙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의 인생에서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절표하게 그 사건들이 이어지고 연결됩니다. 별개인 것 같은데 이어집니다. 그리고 다윗은 전보다 더 강해지고 아름다워집니다. 이것이 다윗이 한 것이겠습니까? 다윗이 한 것은 그렇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간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렇게 연결, 연결을 시켜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큼직하게 걸어갔는데, 특히 예루살렘 점령 같은 큰일을 이루어냈습니다. 하지만 사실 예루살렘(여부스)은 남들이 다 기피하던 지역이었습니다. 심지어 그 땅을 받은 베냐민 지파도 어쩔 수 없어서 그냥 500년 동안 놓아둔 땅입니다. 그 누구도 감히 이 기괴한 귀신 같이 보이는 소굴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보기만 해도 벌써 음침하고 이상한 모양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다윗처럼 전략적인 요충지라고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예루살렘 하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 눈으로 볼 때 예루살렘은 절대 접근하면 안 되는 땅이었습니다. 그곳을 수도로 삼으려고 하는 다윗의 생각은 놀랍고 혁명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곳이 정말 정리되어야 할 땅이었던 것은, 여부스 사람들이 너무나 악해서 다리 저는 자와 맹인으로 대표되는 장애인들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조롱하는 악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의 땅, 거룩한 땅에 있어서는 안 될 더러운 땅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에 분개했고,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해 나아갔으며, 그들의 조상 야곱과 이삭을 조롱하며 본떠 만들어놓은 것을 산산이 부수어 버린 것입니다. 가증스러운 것들을 다 파괴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다윗은 사람들을 포용해 나갔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을 자신의 통치와 사랑 속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어려웠던 시절에 자신을 도왔던 동료들뿐만 아니라, 누구도 가리지 않고 함께 포용하며 한데 모았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 된 통일왕국을 이루고 그토록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나가는 말]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한 지 수백 년이 지났지만, 그때까지도 예루살렘 성에 거주하는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들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의 근거지가 되는 시온성, 다윗성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수백 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그는 왕이 되자마자 단번에 해결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만군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또 다윗이 삼면이 골짜기로 이루어진 견고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물 긷는 데를 발견하고, 그곳을 통해 성을 점령하는 지혜를 발휘하게 된 것도 자신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였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여부스 사람이 점령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과 같이 견고한 진을 만나게 될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다가 연약해지고 위기 가운데 있을 때 여지없이 나타나 우리를 공격하는 세력들이 숨어 있는 곳입니다. 특히 내 삶 가운데 그런 음침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적의 세력들은 무너지고 적의 진지까지도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이 임하는 곳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시온성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수들이 장난을 칠 수 있는 나의 견고한 성이 내 안에 무엇인가를 빨라 찾아야겠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 중에 그것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되찾아 개인과 공동체가 하나님의 온전하신 다스림을 받도록 힘쓰며 나아가야 합니다. 바로 그것을 내일 하는 게 아니라 오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안에서 진정으로 강하고 담대하고 겸손하고 순종하며 정결한 사람이 되어서,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 이 순간부터 그러한 사람이 되어서, 순간순간이 쌓여 결국 하나님이 쓰시기에 너무나 기뻐하시는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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