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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26일 수요예배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약속 - 십계명 2

조금만 더 가지면 만족하겠는가?

(출애굽기 2017)

 

[들어가는 말]

 

지난주 말씀드린 대로, 십계명을 살펴보면서 거꾸로 뒤에서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열 번째 계명부터 다루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고백하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2)

 

만약 내가 엄청난 부자이고, 나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소중한 자녀가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언젠가 때가 되면 내가 가진 것 전부를 자녀에게 물려줄 것이지만 지금은 아직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자녀가 왜 부모님이 지금 당장 나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가?’ 하며 전전긍긍하고 불만을 터뜨리겠습니까? 오히려 내 부모님은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하는 믿음이 그 자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자녀의 권세를 가졌다는 것은 부모의 모든 유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권세를 받아서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지금 가진 것은 우리가 앞으로 받을 전체 유산의 지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권세를 받은 자녀답게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현재 소유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자족함과 너그러움과 감사함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가 있으면서도 그것을 잊어버리게 되면, 우리 삶에서 감사와 만족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며, 바로 거기서 탐욕이 시작됩니다. 이 탐욕은 단지 남의 것을 빼앗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누어 주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어진 모든 환경 가운데서 얼마나 많은 감사를 하고 있으며, 주어진 복을 얼마나 누리며 나누고 있습니까?

 

 

1.   아무리 채워도 만족이 없는 인생은 지옥이다

 

미국 최고의 부자였던 록펠러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얼마나 더 가지면 만족하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조금만 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가지면 정말로 우리의 마음이 채워지고 만족할까요?

 

탐심이 무서운 이유는 삶을 지옥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지옥을 뜻하는 표현 중에 무저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닥이 없는 영원한 구렁텅이라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떨어지고 떨어져도 바닥이 없으니까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런데 이 탐심이 바로 그런 무저갱 같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채워도 만족이 없는 인생은 지옥과 같은 인생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17)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은 다른 계명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행위가 아니라 마음에 대해 다룬다는 것입니다. ‘탐내다라는 말에는 어떤 대상을 바라고 희망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말 자체는 그렇게 나쁜 뜻이 아닌데, 자기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바라고 희망하게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소유욕이 생기고, 그 욕망으로 인해 발생하는 행동의 결과가 악해져서 불행하고 비극적인 일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인류 최초로 지은 죄도 탐욕으로 인한 불순종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주시면서 전부 다 먹어도 좋지만 단 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그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뱀이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을 것이고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한 순간, 그 나무를 볼 때 먹음직스럽기도 하고 보암직스러웠습니다.

 

그 순간 자기가 가진 많은 것에 대한 감사와 만족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그 한 가지에 대한 탐욕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완벽한 환경과 지혜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탐욕 때문에 불순종의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죄는 탐욕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이후 40년 광야 생활 끝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때 첫 번째 전쟁인 여리고 성과의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그 전쟁을 치르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신 명령이 있습니다. 전리품을 하나도 취하지 말고 모두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18 너희는, 전멸시켜서 바치는 희생제물에 손을 댔다가 스스로 파멸당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여라. 너희가 전멸시켜서 바치는 그 제물을 가지면, 이스라엘 진은 너희 때문에 전멸할 것이다. 19 모든 은이나 금, 놋이나 철로 만든 그릇은, 다 주님께 바칠 것이므로 거룩하게 구별하여, 주님의 금고에 넣도록 하여라.” (6:18-19, 새번역)

 

그러나 그때 아간이 물건을 탐하여 숨기게 되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그 큰 여리고 성에 비하면 아주 작은 아이 성과의 전투에서 어이없게 패하고 맙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너희 중에 내 말에 순종하지 않고 내 것을 숨긴 자가 있다라고 알려주시고, 결국 아간은 가족들과 함께 잡혀서 아골 골짜기에서 처형당합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까지 하셨습니까? 여리고 성의 그 많은 물건 중에 얼마 되지도 않는 것을 훔쳤다고 해서 그토록 무서운 심판을 내리실 필요가 있었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전쟁을 통해 순종을 가르치려 하신 것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전쟁을 통하여 얻은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도록 하심으로서, 앞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누리게 될 복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분명히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2.   문제는 물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

 

우리는 지금 자기가 가지고 누리는 것에 만족합니까? 하나님이 내게 좋은 것을 주셨다는 믿음이 있습니까? 사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조금만 더를 외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본래 인간의 탐욕에는 끝이 없고, 바로 이것이 모든 사회의 불의와 부정부패의 근원입니다. 특히 없어서 일으키는 범죄가 아니라 많이 가진 자나 권력이 있는 자의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 범죄를 일으키는 지는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탐욕에 대하여 아주 무섭게 질책합니다.

 

“1 악한 궁리나 하는 자들, 잠자리에 누워서도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망한다! 그들은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날이 새자마자 음모대로 해치우고 마는 자들이다. 2 탐나는 밭을 빼앗고, 탐나는 집을 제 것으로 만든다. 집 임자를 속여서 집을 빼앗고, 주인에게 딸린 사람들과 유산으로 받은 밭을 제 것으로 만든다. 3 그러므로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계획하였으니, 이 재앙을 너희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너희가 거만하게 걸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처럼 견디기 어려운 재앙의 때가 될 것이다.” (2:1-3, 새번역)

 

탐욕과 탐심이 인간이 범하는 모든 죄의 시작이 되기에, 예수님도 특별히 이 부분에 대하여 경계하시면서(12:15)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2:15)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쌓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가진 것 중에 하나라도 진짜 내 것이 있습니까? 내가 노력해서 얻었다고 내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은행 구좌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것이 정말 내 것입니까? 세상을 떠나는 순간 그것이 누구의 것이 됩니까?

 

우리가 기억할 것은, 작은 물건 하나라도 내 것이라고 소유를 주장하게 될 때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물건을 훔치는 죄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열 번째 계명에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금하신 탐욕의 대상이 무엇입니까?

 

너희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너희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나 할 것 없이, 너희 이웃의 소유는 어떤 것도 탐내지 못한다.” (17, 새번역)

 

언뜻 보면 제10계명이 제7계명 간음하지 말라와 제8계명 도적질하지 말라와 중복되는 것 같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7계명과 제8계명은 남의 것을 빼앗고 훔치는 행동을 금지하는 것이고, 10계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마음속의 탐욕과 탐심 자체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물질적인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갖고자 하는 어떤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가질 수 없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물질의 소유에 관하여 우리가 어떠한 생각과 태도로 살아가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탐심은 곧 믿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믿음이란 나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소유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며, 물질을 모두 포기하고 다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도 아닙니다. 하지만 물질을 소유하는 것 보다는 주님을 따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주님의 길을 따르는 올바른 삶에 우선순위를 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10계명은 신앙에서 아주 본질적인 부분인 삶의 우선순위를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우선순위가 되실 때 삶의 방식이 바뀐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나의 만족이 우선순위가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나의 삶에서 우선순위가 되시면 우리는 세상 것을 놓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우선순위를 아는 사람들에게만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우선순위가 되시지 못하고 물질이 우선이 되면, 결코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우선하여 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만, 하나님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탐욕을 따라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3.   하나님은 욕망이 아니라 필요를 채우신다

 

우리는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과 예배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평소에 하는 기도 생활이 중요하지만, 기도 내용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정말로 나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지, 아니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원하는 것을 구하는지를 구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욕망이 아니라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임을 분명히 알아야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훈련받는 동안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바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신다라는 믿음입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 하나님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셨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만나와 메추라기입니다.

 

광야는 하루도 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많은 백성이 며칠, 몇 달, 몇 년도 아니고 무려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았다는 것은 정말 기적입니다.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이 전혀 없는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욕망을 가지고 필요를 넘어서는 것을 구할 때, 하나님은 그 축복이 한순간에 탐욕의 무덤이 되게 하시며, 욕망을 이루는 건 축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7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30:7-9)

 

이 말씀은 아굴의 잠언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는 자기가 너무 많이 가지면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돈이 너무 없어서 어려우면 하나님 앞에 범죄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너무 부하게도, 너무 가난하게도 하지 말아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 말씀의 초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물질의 많고 적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탐욕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인정하지 않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지게 만듭니다. 탐욕이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 불만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탐욕이란 하나님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끊임없이 다른 신을 만들어서 자기 욕망을 채우고 만족을 얻으려 하지만, 그렇게 할수록 더 목마르고 채워지지 않는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면 생수를 경험하는데, 육신의 욕망을 갈망하면 더 목마름을 느끼게 됩니다.

 

과거 노예 생활을 하던 흑인들은 그렇게 매를 맞으면서도 하나님을 노래했습니다. 뭐라고 노래했는가 하면, “God is good(하나님은 선하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들과 같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고백하는 사람만이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공평하다. 내 필요를 채워 주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믿음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며, 그 결과 참된 쉼을 잃어버리고 평안을 잃어버립니다.

 

사실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봉사를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내는 것조차 자기만족과 자기 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많은 봉사를 하거나 많은 돈을 드리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우리의 필요를 알리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쉼을 얻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많은 것을 행하고 드리면서 제가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많은 것을 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분주한 삶 속에서 제대로 쉬지 않는 것도 하나의 탐욕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도 내가 해야 하고, 저것도 내가 해야 한다는 욕망인 겁니다. 그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선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아가기가 힘듭니다.

 

욕망을 채우려는 공허함은 우리에게서 을 빼앗아 갑니다. 하나님이 주신 삶의 여백이 감사와 기쁨이 아닌, 욕망의 도구가 될 때 점점 피폐해져 가는 삶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내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정말 하나님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탐욕 때문인지를 점검해 보아야겠습니다.

 

 

4.   우리를 부요하게 만드는 것은 믿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탐욕을 이길 수 있습니까? 무엇이 우리 삶을 만족하게 해줍니까? 부족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게 탐욕이기에, 그러한 탐욕을 이기는 길은 충분한 사랑과 만족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이 나의 필요를 완벽하게 채우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을 때 탐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어느 교회의 주일학교에 형제가 함께 등록하려고 와서, 선생님이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어보니까 키가 좀 더 큰 아이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둘 다 일곱 살인데요, 제 생일은 48일이고, 동생의 생일은 같은 해 420일이에요.”

 

이 말을 들은 선생님은 의아해하며 말했습니다. “? 그럴 수가 없지. 그건 불가능해.” “사실이에요. 우리 중 하나는 양자이거든요.” 선생님은 자기도 모르게 그러면, 누가 양자란 말이니?” 하고 물었습니다. 이 말에 두 소년은 서로 바라보고 씽긋 웃었습니다. “우리도 아빠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어요. 그런데 아빠는 우리 둘 다 너무 사랑하셔서 누가 양자인지 잊어버리셨대요.”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받는 사랑이 바로 이런 사랑 아니겠습니까?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든,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은 나를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사실 그럴 자격이 내게 없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세를 주셔서 우리가 부요한 겁니다. 이 사랑을 힘입어 살아가는 삶이 바로 은혜의 삶입니다. 이 은혜의 삶을 살아가면 우리는 영적 성숙을 경험합니다. ‘조금 더채워지면 만족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충분하다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셨다는 말씀은,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우리 삶을 다 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내 이름이 하나님 손바닥에 새겨져서 나를 잊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내가 지금 무엇을 가졌고 가지지 못했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그 믿음이 우리를 만족하게 해줍니다. 내가 지금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이끄셔서 지금 여기에 있게 하신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풍성함과 부요함입니다. 그것을 깨닫는다면 탐욕은 우리 삶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행복합니까? 만약 행복하다면 무엇 때문에 행복합니까? 좋은 직장에 다녀서 행복합니까? 높은 연봉을 받아서 행복합니까? 넓은 집에 살아서 행복합니까? 좋은 자동차를 끌고 다녀서 행복합니까? 자녀가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직장에 다녀서 행복합니까?

 

물론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뭔가를 가져서, 뭔가를 이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과 풍성함이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바로 그것이 영적 성숙의 가장 분명한 표시입니다. 탐욕을 버린 사람만이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10계명은 단순히 무엇이 죄냐 아니냐의 차원을 말씀하는 게 아닙니다. 십계명을 단순히 금지 명령으로만 생각한다면 오히려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복된 삶을 살지 못하게 됩니다. 탐욕을 제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소유할 때 일어나는 일들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면 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소극적으로 거짓 증거 하지 않고 훔치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탐욕 자체를 문제 삼으십니다. 탐욕 때문에 사랑도, 베풂도 실천하지 못했다면, 그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십계명은 뭔가를 안 하는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함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때만, 마음속에 주님을 모시고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또한 제10계명은 남의 것을 소중히 여기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왜 다른 사람의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내 소유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의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신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있는 모든 것의 진짜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많이 가졌다고 부러워하거나 시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은 사실 그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기신 것이며, 우리 모두는 청지기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남의 것을 탐내면 그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범하는 것이 됩니다. 탐심은 그렇게 큰 죄인 것입니다.

 

내 모든 소유의 진짜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알려주신 몇 가지 구체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십일조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 생활은 우리의 탐심을 물리치는 아주 중요한 신앙의 고백이며 힘이 됩니다. 내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아주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둘째, 베푸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자꾸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 때 풍성함과 만족함이 찾아올 것입니다.

 

셋째,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어찌 탐심을 부릴 수가 있습니까? 사랑하면서 살 때 탐심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을 통하여 풍성함과 만족함을 누리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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