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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12일 수요예배

신구약 중간사의 세계 19

로마 시대 유대 사회의 화폐 단위

(누가복음 211~6)

 

오늘은 지난번에 살펴본 산헤드린 공회와 연관되어 당시 유대 사회의 화폐 단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헬레니즘 시대와 금융

 

우리는 성경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어릴 때 성경을 외워서 퀴즈도 했는데, 그것이 나쁜 일은 아닙니다. 성경 지식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알아야 그 뜻을 깨닫고 말씀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수를 많이 하는 것은, 성경의 문맥과 상관없이 해석하는 게 많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욥기에 나오는 네가 시작은 미약하나 후에는 창대하리라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사업이 처음에는 작지만 나중에는 크게 될 거라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업장에 많이 붙어 있습니다. 이것은 세 친구가 욥에게 찾아와서 욥을 괴롭히는 내용 가운데 나오는 말씀입니다. ‘네가 지금 죄를 지어서 이러니까 빨리 회개해라. 그러면 나중에 잘될 거다.’라는 뜻으로 친구 중 하나가 한 말입니다.

 

또 신약 성경에서 대표적인 것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 말씀입니다. 주님이 능력을 주시니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이해하거나, 긍정적 사고방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 구절을 많이 인용합니다. 그게 아니라, 바울은 가난할 때도 있었고 부유할 때도 있었는데 자기가 어느 상황에서든 주님이 힘을 주시기 때문에 사명을 다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지금의 관점으로 윤리적인 교훈을 얻는 방식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을 탁 펴서 좋은 말씀이 있으면 받아들이고 마음에 와닿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곤 하는데, 성경 말씀이 쓰인 시대적 배경과 누구에게 쓰였는지, 처음 이 말씀을 받고 읽은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의 삶> 공부도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달란트 비유라든지 오늘 본문의 두 렙돈 이야기같은 내용의 진짜 의미를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신약 성경은 역사의 맥락 속에서 기록되었기에 그 시대의 관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당시에도 경제 제도, 화폐 단위, 금융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일방적으로 성경 본문을 윤리 문제와 연결하지 않고 우리가 함께 그 시대를 보기 위해서 그리스 시대의 한 에피소드를 살펴보려 합니다. 당시의 금융, 회계, 이자, 화폐 같은 내용들이 이해되면 유대 사회를 보는 해석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는 수메르 사람들이 만든 문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최초로 문자를 사용한 목적은 영수증이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놀라움 뒤에는 금융 시스템이 있었던 겁니다. 고조선 시대보다 더 오래전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에는 금융 시스템이 있었고, 고대 바빌론 함무라비 법전에는 금융 거래로 인해서 생기는 분쟁을 해결하는 것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헬라 제국 시대에도 제국의 경영을 위해서 거둬들이는 세금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관리들의 치밀하고 정확한 회계 시스템이 필수였습니다. 세금을 내지 못하는 경우 채무 관계가 이루어지게 되었으므로 정교한 금융도 필요했습니다. 그러니까 고대 그리스 시대에 금융은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생각의 체계라고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주전 4세기 그리스 정치가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라는 사람의 연설은 당시 사람들이 금융에 대해서 얼마나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는 유산을 되찾기 위해 10년간 잃었던 소득에 대하여 12%의 이자를 청구하는 연설을 했는데, 그 기록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옵니다. 주식 투자와 금리와 회계에 관심이 많은 요즘처럼 그 당시를 이해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특히 달란트(탈렌트), 므나, 드라크마(데나리온) 같은 당시의 화폐 단위를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배심원 여러분, 제 부친은 큰 사업을 하는 제작소 두 개를 남기셨습니다. 하나는 병기 제작소인데, 여기서 일하는 노예 서른두세 명은 각각 최소 3므나, 대부분은 5~6므나의 가치가 나갑니다. 부친은 이 제작소에서 매년 30므나를 순이익으로 얻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노예 스무 명이 일하는 소파 제작소인데, 40므나를 빌려주고, 담보로 받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온 순이익은 12므나였습니다. 돈으로 남긴 유산으로는 한 달에 이자 1드라크마가 나오는 대출 채권 1탈렌트가 있었는데, 이자를 모두 합하면 1년에 7므나가 넘었습니다. 이제 여기에 1드라크마짜리 이자 1년 치를 모두 더하면 원금과 이자를 전부 합쳐 8탈렌트에 4,000드라크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전 4세기 그리스 정치가가 이런 연설을 하는 것을 당시 사람들이 알아들었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금융에 관해 해박한 지식이 있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당시의 화폐 가치에 따르면 1달란트는 60므나, 혹은 6,000드라크마와 같았습니다. 데모스테네스의 연설처럼, 그리스 사람들은 금융에 대하여 일반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 그리스 문명을 흡수한 로마는 광대한 제국을 운영하기 위해서 더욱 정교하게 개정된 금융 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주전 3세기 로마가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하여 카르타고가 차지하고 있던 은광을 점령하면서 로마 제국 내에 달란트, 므나, 데나리온(드라크마) 같은 화폐들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때에는 여러 화폐가 통용되었는데, 주전 27년부터 주후 301년까지 이런 화폐 제도가 유지됩니다. 그 화폐의 가치를 보면 이렇습니다.

 

        1 데나리온(Denarius)

     = 4 세스테르티우스(Sestertius)

     = 16 아사리온(As)

     = 64 고드란트(Quadrans)

 

그리스-로마 사람들에게 화폐 단위와 금융은 상식이었습니다. 지금은 컴퓨터로 다 하지만 그때는 머리로 다했는데, 그들이 우리보다 머리가 더 좋았습니다. 조금 전 살펴본 데모스테네스의 연설을 윤리적 교훈으로 보면 그 참된 의미를 오해하게 됩니다. ‘저 정치가가 돈을 되게 밝히네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그 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도 이런 관점으로 해석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 화폐와 관련된 비유를 하신 것은 그들의 생각 체계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교훈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이 너무나 잘 알아듣는 이야기나,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돈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사람들은 돈에 민감합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셨으면 관심이 없었을 텐데, 돈 이야기를 하면 눈이 번쩍합니다. 예수님은 돈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2.   유대 사회의 화폐 단위

 

주전 57년 산헤드린 공회가 로마의 특권을 받은 후부터 유대 사회에서 핵심 역할을 감당한 것을 2주 전에 살펴보았습니다.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 제국은 달란트, 므나, 데나리온 같은 화폐 단위를 통일했고, 당시 사람들에게는 화폐와 금융이 상식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 신약 시대가 시작되었고, 성경에는 화폐와 관련된 많은 비유가 등장합니다.

 

국세와 종교세로 인하여 이중으로 어려움을 겪던 유대인들에게 금융은 무엇보다 피부에 와닿는 현실이었습니다. 유대 백성은 대부분이 소농(小農)이었고 농사짓는 땅은 천수답(天水畓)으로,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만일 한두 번이라도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경우, 특히 기근이 일어나면 소농은 농노로 전락하고 마는 그런 사회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밭에서 농사짓다가 기근이 들면 돈을 벌지 못하니까 땅을 팝니다. 그래도 또 돈이 없으니 남의 밑에 들어가 농사짓는 농노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빚을 갚을 수 없는 경우에는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농사를 중단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가서 농사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도시의 노동자(품꾼)로 전락하거나, 그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 강도 무리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백성의 그런 상황은 당시 유대 사회 최고의 영적 지도자들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가 만든 금융 체계가 큰 원인이었습니다. 참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이고 영적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백성의 등골이 휘게 만들고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짓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들은 그 시대의 상식으로 보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특히 많이 나오는 것이 데나리온입니다. 우리는 보통 한 데나리온이 한 명의 노동자가 받는 하루 품삯으로 이해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하루 품삯으로 1데나리온을 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지, 일반적으로 노동자 한 사람이 하루에 반드시 1데나리온씩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약속했어도 실제로 받은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겁니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보면, 공화정 후기에 로마 병사가 연봉으로 112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1년이 365일인데 연봉이 112데나리온이면 아주 적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에서 그것의 두 배인 225데나리온을 연봉으로 지급했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을 위한 일종의 인센티브나 보너스였을 것입니다.

 

당시 환율을 보면 1데나리온과 4세스테르티우스와 16아사리온이 같은데, 우리는 이것을 머리로 계산해야 하지만 그 시대 사람들은 그대로 피부에 와닿는 액수였습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10장에서 앗사리온을 언급하십니다.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10:29-31)

 

1데나리온이 16앗사리온이니까, 참새 2마리 가격이 1/16데나리온이었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 유대인들은 마음에 그대로 와닿는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산헤드린은 로마 시대의 이런 화폐 체계를 통해서 조세 제도와 채무 관계를 세웠습니다. 세금을 많이 내게 하고 못 내니까 빚지게 만든 것이 산헤드린에서 한 짓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생산세, 인두세와 더불어 종교세(성전세)에 대해서 너무나 무거운 부담을 느꼈습니다. 만일 빚을 갚지 못하는 경우 토지를 몰수당하거나 노예로 전락하는 제도적인 장치를 다름 아닌 산헤드린 공회에서 만들었다는 겁니다. 너무 악한 자들 아닙니까? 그것도 영적 지도자로서 제사장들이 거기 있고 백성의 선생인 바리새파도 있는데 그런 자들이 그렇게 악한 짓을 벌였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가혹함을 이기지 못하고 농지를 떠나서 도시 노동자나 품꾼으로 전락하는 비유들이 신약 성경에 등장합니다. 그 대표적인 비유가 바로 포도원 품꾼 비유입니다.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20:1-2)

 

주인이 아침 일찍 6~7시경 나가서 품꾼들에게 하루 일하면 1데나리온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 후 오전 9, 12, 오후 3, 또 끝나기 직전에도 나가서 데려와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그것을 듣던 사람들은 굉장히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였습니다. 실제로 품꾼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고, 일하고 싶어도 써주는 사람이 없어서 일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유에도 나옵니다. 주인이 왜 여기서 놀고 있느냐고 그러니까 자기들을 써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환전상들의 테이블을 엎으시며 그들을 쫓아내셨던 진짜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성전의 경건함을 해쳤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전은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세속적인 화폐 대신 거룩한 화폐 세겔을 사용하도록 자기들이 공회에서 제도적으로 만들어 놓고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데나리온과 성전에서 사용하는 세겔의 환율을 조작해서 엄청난 이득을 취하려고 했던 악함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환전상들이 돈을 바꿔주는데, 사회에서 쓰는 데나리온을 가져와 성전에서 사용하는 세겔로 바꿔줍니다. 예를 들어, 10데나리온을 가져오면 1세겔로 바꿔주는 것이라면, 100데나리온을 가져와야 1세겔을 준다는 식으로 엄청나게 떼어먹으니까, 거기에 예수님이 분노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거룩한 화폐라고 너희들이 만들어 놓고서 그것으로 백성을 그렇게 괴롭히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느냐?’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에 와서 속죄 제물을 구입할 때 사람마다 경제적인 여건이 똑같지 않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소를 잡고 어떤 사람들은 양을 잡아서 제물을 바치지만, 빈민들의 경우에는 레위기에서도 산비둘기를 사서 바치도록 배려해 줍니다.

 

“22 모세의 법대로 정결 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2:22-24)

 

이처럼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후 그 부모가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산비둘기를 바쳤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때 제물은 그 사람의 경제적인 상황을 보여 줍니다. 그 당시 유대 문헌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산비둘기 한 마리가 요즘 물가로 약 $60 정도에 거래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가족의 당시 재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고 현실은 굉장히 어려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21장에는 두 렙돈을 바친 한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1~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12:42)

 

2렙돈은 1고드란트에 해당하는 가치였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 사용되던 화폐 단위를 크기에 따라 순서대로 써 보면 이렇습니다.

 

달란트 > 므나 > 데나리온 > 앗사리온 > 고드란트 > 렙돈

 

“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3~4)

 

이 가난한 과부가 과연 산비둘기 한 마리를 살 수 있었을까요? 사실 오늘 본문의 초점은 예수님이 과부가 헌금한 것을 칭찬하시는 게 아닙니다. 당시 유대 상황을 이렇게 만들고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백성을 더 큰 빈곤으로 몰아넣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반드시 심판이 뒤따름을 경고하시는 것이 초점입니다. 그래서 그다음에 오는 말씀까지 같이 읽어야 합니다.

 

“5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6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5~6)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임할 심판을 경고하시는데, 주후 70년 유대 전쟁에서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도 1세기 예수님 당시 상황을 생각하며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개는 두 종이 자기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일해서 이윤을 많이 남겼기에 주인에게 칭찬받았다고 알려진 비유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명의 해방 노예에게 달란트라는 당시로서는 개인이 만져볼 수도 없었던 어마어마한 액수의 개인 자산(페쿨리움)을 맡기는 설정을 사람들이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이 비유는 단순히 이윤을 남기고 칭찬을 듣는 이야기로 다가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로마 시대 화폐 단위를 요즘 돈 가치로 환산해 보면 대략 액수가 이렇게 됩니다. 

 

달란트($100) > 므나($16,000) > 데나리온($16) > 앗사리온($10) > 고드란트($2.50) > 렙돈 ($1.25)

 

로마 역사가 폴리비우스의 글에 의하면, 아무리 당시 로마의 고위 관리라고 하더라도 달란트 규모는 마음대로 집행할 수 없는 아주 큰 돈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부자의 기준을 보통 10억으로 잡는다고 하는데, 미국은 100만 달러라고 한다면, 달란트라는 화폐 단위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비유 중에 “1만 달란트와 100데나리온의 비유”(18:23-35)가 있습니다. 1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 왕에게 빚을 탕감받았는데,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감옥에 처넣었다는 비유입니다. 1만 달란트라는 것은, 한 사람이 평생 모아도 가질 수 없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상징하는 것이고, 100데나리온은 보통 사람들이 모을 수 있는 조금 큰돈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갈릴리 지역을 다스렸던 분봉왕은 헤롯 안디바였는데, 갈릴리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호수도 있었고 농사도 잘 진행되었으니까 비교적 풍족한 지역이었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갈릴리 지역에서 1년 동안 거두어들인 총수입이 200달란트였다고 하니까, 한 달란트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열등감이나 시기심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당시 화폐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듯 당시의 화폐 체계와 개념을 토대로 성경의 비유들을 살펴보면 종전과는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3.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종교 지도자들

 

“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19:45-46)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후 강도의 소굴’(19:46)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7:11을 인용하신 것이지만, 동시에 누가복음이 기록되던 시기인 유대 전쟁 전후의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유대 전쟁은 예수님 승천으로부터 불과 35~36년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후 66년부터 종교 지도자들이 로마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키고 성전을 거점으로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때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들을 강도라고 기록했습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종교 지도자들은 강도들이고, 그들이 백성을 파멸로 이끈다고 기록한 것입니다(유대 고대사, 20.8.8.).

 

이런 것을 보면서 그냥 옛날이야기가 아님을 생각합니다. 지금 교회는 참된 회복을 위해 경건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교회의 사명보다 다른 것에 더 집중하게 된다면 교회는 언제 강도의 소굴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산헤드린 공회의 지도자들처럼 탐욕을 부리거나 남들의 피를 뽑아 먹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도 욕심이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우리도 언제 변질이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을 통해 우리는 늘 자신을 돌아보며,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삶, 다른 사람들을 정말로 사랑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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