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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8일 수요예배
✦ 신구약 중간사의 세계 15 ✦
바리새파의 등장과 영향
(마태복음 22장 15~22절)
[들어가는 말]
복음서는 주후 1세기 유대 전쟁을 전후로 기록되었습니다. 마가복음은 유대 전쟁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고, 누가복음은 약간 애매하며, 마태복음은 전쟁과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요한복음은 가장 늦게 주후 90년대에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정경으로 채택된 것은 주후 397년 카르타고 종교회의 때였습니다. 원래는 1세기에 살던 저자와 독자들의 소통을 위해 쓰였던 서신이 복음서였습니다. 그래서 네 개의 복음서는 독자에 맞춰 ‘예수님의 모습’을 다르게 묘사합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을 생각해 보면, 마태복음은 유대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쓰였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마태(레위)가 동족 유대인들에게 써서 보낸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수백 년간 다른 민족들에 의해 압제당하면서 단절의 고통과 회복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참된 이스라엘 백성임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족보’였습니다(마 1장). 그래서 마태복음에는 족보부터 나오는 겁니다. 비록 현실은 유대 전쟁의 패배로 인해 절망적이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시고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라는 메시지는 마태복음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큰 소망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독자들과 다른 맥락으로 인하여 4복음서가 쓰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신약 성경을 볼 때, 21세기 관점으로 신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신구약 중간기로부터 이어져 온 신약의 맥락과 배경에서 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관복음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공통적으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 22:21, 막 12:17, 눅 20:25)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내용은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나누신 대화에 등장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그 시대로 옮겨 놓지 못한다면, 이 구절은 마치 세금도 잘 바치고, 교회에 헌금도 잘 바치라는 의미라고 잘못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당시의 눈을 가지고 읽어야 합니다.
1. 바리새파의 등장
신구약 중간사를 이중 카테고리로 바라보면 마카비 전쟁부터 유대 전쟁까지를 한 흐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전에 살펴보았듯, 주전 175년은 헬레니즘의 거친 파도가 밀려들기 시작했던 때였습니다. 하시딤이 등장했고, 마카비 전쟁이 일어났고, 대제사장의 공백기도 발생했고, 또한 세 개의 유대 종파도 이 시기에 형성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마카비 전쟁이 시작된 주전 167년부터 대제사장직이 공석이 되던 주전 159년 사이에 하시딤이 어떻게 분열이 되었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41 그날, 그들은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우리를 공격하는 자가 있으면 안식일이라도 맞서서 싸우자. 그래야만 피신처에서 죽어간 우리 형제들처럼 몰살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42 그러자 일부 하시딤 사람들이 모여와서 그들과 합세했다. 그들은 용감한 사람들이었고 모두 경건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마카베오상 2:41~42, 공동번역)
주전 167년 마카비 혁명이 일어나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을 때 ‘일부 하시딤 사람들’이 이 혁명에 동참했다고 나옵니다. 따라서 하시딤에도 여러 그룹들이 있었고, 바리새파는 율법에 대해 견해를 달리하던 하시딤의 한 그룹으로 볼 수 있습니다.
“12 그러나 율법학자단은 알키모스와 바키데스에게 가서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13 이스라엘 쪽에서 처음으로 화평을 제의한 사람들은 하시딤이라고 하는 경건파 사람들이었다.” (마카베오상 7:12~13, 공동번역)
앞에서도 살펴보았던 이 내용은 셀레우코스 왕조가 마카비 전쟁을 무마하기 위해서 아론 계열의 알키모스를 대제사장으로 내세우며 중재안을 제시했을 때 하시딤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장면입니다. 원문에는 하시딤에 정관사가 붙어 있기에 ‘그 하시딤’이라고 읽어야 하는데, 다른 하시딤 그룹들과 구별되는 바로 ‘그 하시딤’이 바리새인들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하시딤 중에서도 율법의 견해를 달리해서 중재안을 수용하고 화평을 제의했던 사람들이었다는 말입니다.
‘바리새’라는 명칭은 히브리어 파루쉼(분리)이라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부정으로부터의 분리를 뜻하고, 분리의 목적은 ‘정결’이었습니다. 제사를 통한 정결이 제사장의 역할이라면, 일상에서의 정결은 일반 백성들을 향해 바리새인들이 추구한 목표였습니다. 이렇게 바리새파 운동은 하시딤의 종교적 부흥을 대중에게로 확산시켰습니다.
그런데 서기관은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인 겁니까? 분명 복음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병행해서 표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서기관의 영역은 굉장히 넓습니다. 서기관은 기록을 맡은 사람을 뜻하므로, 왕궁의 서기관부터 회당의 서기까지 특정한 부류를 지칭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서기관이라는 직책은 포로기 이전부터 존재했고 포로기 이후에는 율법을 기록하고 연구하고 보존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통칭처럼 자리를 잡습니다. 모든 서기관이 바리새인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바리새인은 서기관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율법을 연구하고 보존하며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함께 등장하면 ‘율법학자’를 가리킨다고 생각하면 맞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함께 등장하면 ‘산헤드린 공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면 맞습니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면 성경이 더 자세히 보이게 됩니다.
마카베오상 7장에서 보듯이 바리새파는 백성을 기반으로 정치에 영향을 주었고, 백성에게 율법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하스몬 왕조가 정치적으로 독립한 주전 142년 이후 요한 히르카누스가 사두개파를 들어 쓰면서 바리새파는 권력에서 밀려났지만, 그래도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확실했습니다.
2. 사두개파와의 역사적 갈등과 유대 전쟁 이후
이전에 다룬 것처럼, 요한 히르카누스 때 사두개파가 바리새파를 밀어내고 주요 정치권력을 장악했습니다. 바리새파가 밀려난 것은 사독 계열이 아닌 하스몬 가문이 대제사장직을 차지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요한 히르카누스는 바리새인들을 추방하는 정도로 그쳤던 반면, 알렉산더 얀네우스는 이 문제로 6천 명의 유대인(바리새인)들을 살해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루살렘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8백 명의 바리새인들을 잔인하게 십자가에서 처형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거치면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왕위에 오른 알렉산드라 여왕은 바리새파를 등용했고, 사두개파를 배척했습니다. 권력의 운명이 뒤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전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유대 사회의 권력은 귀족들에게 넘어갔고, 다시 사두개파가 권력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티투스 장군은 주후 70년에 유대 전쟁을 진압합니다. 그는 반란 지도자들을 로마로 잡아가서 개선식을 거행했습니다. 로마에 가면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인 콜로세움 옆에 이 ‘티투스 개선문’이 있는데, 그 내부에는 유대 전쟁의 장면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유대 전쟁이 유대인들의 역사에 남긴 흔적은 너무나 뚜렷합니다. 유대 반란이 시작된 주후 66년에 사두개인들은 유대 사회에서 탈출하여 사라졌습니다. 광야의 에세네파는 마사다 요새에서 항전하다가 결국 로마 군대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주후 74년 집단 자결로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동족인 유대인들을 ‘총알받이’처럼 앞세웠기 때문에 차마 동족을 공격하지 못하고 모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리새파는 어떻게 됐을까요?
주후 90년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Yohanan ben Zakkai)는 얌니아(Yavne)로 가서 바리새인들을 모아 종교회의를 개최했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얌니아 회의입니다. 이 바리새인들을 중심으로 소멸하기 직전의 유대교가 명맥을 이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구약의 정경을 확립하고, 유대교를 ‘랍비 유대교’로 재편했습니다. 기존 유대교는 성전과 율법을 중심으로 존속되었는데, 성전이 파괴되었으므로 다른 형태로 변화를 모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랍비 유대교는 파괴된 성전 대신 ‘회당’과 율법을 중심축으로 삼았습니다. 요하난 벤 자카이를 계승한 가말리엘 2세(Gamaliel of Yavne)는 사도 바울의 스승이었던 가말리엘의 손자였는데, 그가 ‘카디시 기도문’을 확립했습니다. 열여덟 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진 이 기도문은 유대인들이 2천 년간 회당에서 사용하는 표준 기도문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유대인들이 이 기도문을 암송했을 만큼 오랜 시간 유대인들의 삶을 이루는 아주 중요한 기도문이었습니다.
열두 번째 기도문에는 ‘이단(minim)’에 관한 언급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나사렛 종파’로 알려진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합니다. 이단들이 회당에 출입할 수 없도록 저주하는 내용이 이 기도문에 포함되면서, 유대교는 랍비 유대교로 역사 속에서 명맥을 이어 나가는 동시에 기독교와 완전히 분리되어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3. 바리새파의 특징
1) 율법과 전통
사두개파와 달리 바리새인들은 율법(토라)과 함께 전통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전통이란 쉽게 말해서 율법의 해석입니다.
예를 들어, 율법에서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라고 말씀하는데, 이 계명을 구체적으로 지키 위해서 율법에 대한 해설이 중간기 시대부터 나오기 시작했고, 예수님도 이것을 ‘장로의 유전 또는 전통’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전통이 주후 210년경에 문서화되었고, 이것을 ‘미쉬나’라고 부릅니다. 요세푸스는 이런 바리새파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바리새파는 모세의 율법에 기록되지 않은 조상 전래의 수많은 규칙들을 백성들에게 부과하여 지키도록 하였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사두개파는 이 규칙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두개파는 성문화된 모세 율법은 의무적으로 꼭 지켜야 하나 조상 전래와 유전은 꼭 그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사실상 이 유전들 사이에는 수많은 불일치와 논란의 소지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파는 대중들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던 반면에 사두개파는 부자들에게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3.10.6.)
이것을 보면, 복음서에 언급된 바리새파의 특징이 서서히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2) 운명과 자유의지
에세네파가 운명(섭리)을 철저히 믿고, 사두개파가 자유의지를 철저히 믿었던 것과 달리, 바리새파는 운명과 자유의지를 균형적으로 대했습니다. 에세네파와 사두개파의 중간 지점 어딘가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의지하는 동시에 스스로 선한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3) 영혼 불멸과 부활
바리새파는 죽음 뒤에도 다른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영혼에 불멸의 힘이 있어서 몸이 흙 속에 파묻혀도 이 세상에서 선하게 살았는지 악하게 살았는지에 따라 상벌을 받게 되는데, 선하게 산 사람은 소생하여 다시 살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되고, 악하게 산 사람은 영원한 감옥에 갇히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선한 영혼들이 다른 육체로 다시 태어난다는 주장은 헬레니즘을 거치면서 바리새인들 속에 형성된 전통이 되었습니다. 이런 민간 신앙은 사실 페르시아 종교의 윤회 사상에 영향을 받은 흔적입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들은 죽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3일 이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러한 사상이 ‘나사로 사건’에서 나타납니다.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요 11:17, 20-21)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예수님은 즉시 가신 것이 아니라 이틀을 더 머무신 후에 가셨습니다. 그러니까 일부러 나사로가 죽은지 4일째 되는 날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나사로가 살아난다면 3일 이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일부러 4일째에 나타나셨을 때 굉장히 실망하고 슬퍼하며 원망의 마음도 비춥니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요 11:23-24)
마르다는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4일이 되었기에 이제는 더 이상 살아날 희망이 없고, 그저 마지막 날 부활 때 다시 살아날 것만 믿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마르다는 안타까움을 넘어서서 예수님에게 원망을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마르다는 나사로가 죽은지 3일 내로 예수님이 오시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페르시아 종교의 영향을 받은 바리새인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백성이 가진 내세관의 흔적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만일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면 3일 내로 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윤회관이 성경에 어디 있습니까? 없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장로들의 전통입니다. 해석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이 3일 내로 오시기를 바랐고, 예수님은 일부러 4일이 되어서야 현장에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마리아도 마르다와 똑같은 말을 예수님께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르다와 마리아가 가진 민간 신앙, 잘못된 신앙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더 큰 진리를 발견하도록 예수님은 일부러 4일째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3일 만에 나사로를 살려 주시는 것과 그들의 지식과 상식의 한계를 벗어나는 4일째에 나타나서 살리시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3일 안에 오셔서 살려주셨으면 바리새파가 가르친 게 맞는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 오셔서 살리셨기 때문에 자기들의 생각을 완전히 뒤엎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한계까지 뛰어넘는 분이심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3일 내로 그곳에 가셔서 나사로를 살리셨다면, 마르다와 마리아와 또 나사로까지도 계속해서 잘못된 민간 신앙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이들의 좁은 생각의 한계 속에 갇혀 버리시고 맙니다. 자기들의 생각 안에서만 움직이는 분이 되시고 맙니다.
그런 경우 마르다의 잘못된 미신은 더 확고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가 믿음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도와주시기 위해서 일부러 3일이 지나 오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무덤 앞에서 우셨던 겁니까? 영어 성경에서 가장 짧은 구절입니다. “Jesus wept.”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과 함께 계심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한 그 시대 사람들의 불신 때문에 안타까워서 우셨던 것입니다. 아직도 잘못된 민간 신앙(사실은 미신)에만 갇혀 있고 잘못된 생각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 우셨습니다.
어쩌면 이런 미신으로 가득찬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관행과 전통으로 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믿음을 이루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 장로교는 전통을 중요시합니다. 전통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전통 안에 하나님을 가둬버리는 것은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의 한계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 아닌지 자신을 돌아봐야겠습니다.
이 사건은 바리새인들의 전형적인 가치관을 무너뜨린 사건이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날뛰었고, 심지어 나사로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한 흐름 안에서 결국 성전에서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대면이 이루어진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4.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지금까지 바리새파가 어떤 사람들인지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단순히 ‘바리새인들은 위선자’라는 공식에서 벗어나, 입체적이면서도 역사적인 맥락으로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하신 내용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됩니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17~19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꼬투리를 잡기 위해서 왔습니다. 만약 세금을 바치라고 하면 황제를 섬김다고 하며 민족주의를 부추기면 되고,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하면 로마의 반역자라고 할 심산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누구와 같이 갔습니까? 헤롯당원입니다(16). 바리새파는 민족주의자이고 헤롯당원들은 친로마파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면 이쪽에 걸리고, 저렇게 말하면 저쪽에 걸리게 하기 위해 그렇게 같이 온 것입니다.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한 질문을 받으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동전을 가져오라고 하셨는데, 이때 그들이 꺼낸 동전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가 발행한 동전입니다.
데나리온 동전 앞면에는 ‘TI-CAESAR AUGUSTUS’라고 새겨져 있는데,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즉 ‘신의 아들 티베리우스’라는 의미입니다. 동전 뒷면에는 ‘PONTIFEX MAXIMUS’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으며 그 의미는 ‘대제사장이 평화를 내리노라’입니다. 즉, 신의 아들로서 로마의 평화를 수여한다는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만나신 장소는 성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종교인들이 성전에서는 소위 ‘거룩한 돈’이라는 ‘세겔’만 사용했습니다. 세겔은 성전 안에서만 통용됩니다. 그래서 사회에서 사용하는 ‘세속적’인 데나리온은 반드시 성전에서 환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환전상이 성전에 있었던 것이고, 예수님이 그들의 상을 엎으시며 쫓아내셨습니다. 환전해 주면서 엄청난 이익을 보고 그 상당 액수를 제사장들에게 바치면서 타락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0~21절)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책잡으려고 했지만, 도리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그들의 더러운 마음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세겔만 사용해야 하는 성전에서 예수님이 돈을 가져오라고 하셨을 때 그들의 주머니에서 데나리온이 나왔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의 주머니는 지금 데나리온으로 꽉 차 있다는 겁니다. 성전에서는 세겔만 써야 하는데 사회에서 사용하는 데나리온으로 가득 찬 주머니를 가지고 성전에 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정말 누구를 의지하고 있었던 겁니까? 겉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온갖 율법을 다 지킨다고 하지만, 하나님과 돈 사이에서 그들의 더러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기서 그들의 더러운 마음을 폭로하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데나리온에는 단순한 화폐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갈릴리 유다가 반란을 일으킨 것을 비롯하여, 왜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호구조사에 반대했는지를 데나리온 동전이 알려줍니다. 데나리온 동전에는 로마 황제가 주(主)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하시는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도 같습니다.
‘너희 조상과 선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만이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지키기 위해서 헤롯 대왕 때 싸웠고, 아켈라오 때도 싸웠고, 갈릴리 유다 반란 때도 싸웠고, 또한 불과 몇 년 전 빌라도 부임 초기에도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지금 너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느냐? 너희의 주인은 하나님이냐, 아니면 로마 황제냐? 너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데 왜 너희 주머니는 로마 황제가 그려진 동전으로 가득하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그렇게 묻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이 질문을 하십니다. ‘너의 진짜 주는 누구냐?’ 이 예수님의 물음 앞에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주님이시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며 주님께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