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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8일 수요예배

신구약 중간사의 세계 14

사두개파의 등장과 영향

(사도행전 236~8)

 

[들어가는 말]

 

지난 두 주 동안 우리는 광야의 의미와 거기서 주의 길을 예비했던 흔적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바로 광야의 무리였던 에세네파였습니다. 에세네파와 교회가 물리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에세네파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워질 교회의 모습을 완벽하게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광야의 무리 중 한 명이었던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예수님과 사도들은 광야를 통해서 경건함의 정통성을 교회에 물려주었습니다.

 

에세네파는 하나님을 향한 경건 이웃을 향한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율법을 경전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을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초대교회는 에세네파의 가르침과 무척 비슷한 것을 발견합니다.

 

그 후 2천 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사이 우리의 신앙은 초대교회와 종교 개혁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경건, 이웃을 향한 사랑,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을 여전히 이어받고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의 모습은 광야에서 경건을 추구했던 에세네파가 아니라 뜻밖의 다른 종파와 닮았다는 슬픈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사두개파입니다

 

우리는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를 위선자라고 생각하며 같은 부류로 여기는데, 신구약 중간사를 살펴보면 이 두 종파는 아주 달랐고 서로 앙숙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사두개파를 살펴보고, 다음에는 바리새파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두개파의 등장

 

신구약 중간사를 연구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는 사료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 그리고 요세푸스의 자료라는 퍼즐 조각으로 전체를 재구성해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연구자들은 신구약 중간사의 내용을 100% 정확하게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에세네파가 쿰란 공동체였는지도 100% 단정 지을 수 없고,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또한 왜 신약 성경에 에세네파가 언급되지 않는지도 추정할 뿐입니다.

 

사두개파의 시작 역시 100% 정확한 것이 아니라 정황을 보면서 접근하는 것입니다. ‘사두개라는 명칭이 사독계열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히브리어 차도크’(의롭다)로부터 파생되어 그리스어 사도카이오이라는 단어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다윗 때 사독과 아비아달이 제사장으로 섬겼는데, 아비아달은 반역자 아도니야 쪽에 붙었다가 솔로몬에 의하여 파면되었고, 그 후부터 대제사장은 사독 계열이 이어 나갔습니다(왕상 2:35). 훗날 포로기에서 돌아온 유대 공동체도 이 전통을 계승했습니다(7:1~5).

 

구약의 사독에 해당하는 단어는 70인역에서 사두개로 번역되었고, 이 명칭이 예수님 시대까지 이어집니다. 학자들은 이런 어원상의 근거를 사두개파의 유력한 기원으로 봅니다. 물론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것이 가장 타당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전 159~152년 대제사장 공백기에 정작 사독 계열 사람들은 의의 교사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광야로 나가서 에세네파를 형성했지, 사두개파는 아니었습니다. 사독 계열이 사두개파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7년의 대제사장 공석 기간에 에세네파가 등장했고, 그들 및 권력 주변으로 모였던 사람들로부터 구별(분리)된 사람들이 백성에게 율법의 영향을 주는 바리새파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두개파는 어떻게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한 것입니까? 사독 계열로부터인지 혹은 의롭다는 의미로부터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두개파가 대제사장 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제사장 직분이 계승되는 정치적 변화를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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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 주전 2~1세기의 대제사장들

 

앞에서도 다룬 내용이지만, 159년부터 7년 동안의 대제사장 공석 이후 사두개인들은 하스몬 가문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후에 그들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역사 자료가 등장하는데, 바로 하스몬 가문의 왕이었던 요한 히르카누스 때 발행된 동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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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 히르카누스 시대에 발행된 동전

 

요한 히르카누스는 사마리아를 점령한 후 강제로 할례를 행했던 인물입니다. 그가 동전을 발행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대사제 예호나난과 유대인들의 원로회”. ‘대사제(대제사장) 예호나난은 요한 히르카누스이고, ‘유대인들의 원로회를 구성하는 엘리트 계층이 사두개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기억하면서 다른 기록들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이때에 모딘에 마타티아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예루살렘 시민이요, 여호야립 계열의 대제사장이었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2.6.1.)

 

“6 레위 사람 느다넬의 아들 서기관 스마야가, 왕과 지도자들과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 가문의 지도자들이 지켜 보는 앞에서, 엘르아살과 이다말 가문 가운데서 한 집씩 제비를 뽑아,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7 첫째로 제비 뽑힌 사람은 여호야립이고, 둘째는 여다야이고” (대상 24:6~7, 새번역)

 

하스몬 가문인 마카비 형제들이 마카비 전쟁을 일으켰을 때 그들은 비사독 계열, 엄밀히 말해서 여호야립 계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스몬 가문은 왕과 대제사장을 겸직했고, 정치적 권력을 내세워 백성의 지지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특히 요한 히르카누스는 한발 더 나아가서,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지지를 등에 업고 사마리아를 점령하여 그리심 산의 사마리아 성전을 파괴하고,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강제로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이런 강압 정책은 열성적인 유대인들의 열광적 호응을 얻었습니다. 요즘도 정치인들이 강하게 나가면 보통 사람들은 별로 안 좋아해도 강성 지지층이 열광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나 바리새파는 하스몬 가문이 사독 계열이 아니므로 그들이 대제사장직을 겸직하는 것은 경건하지 못하다고 하며, 속히 대제사장 직분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요한 히르카누스는 사두개파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고, 자기를 반대하는 바리새파를 추방했습니다(<유대 고대사>, 13.10.5.).

 

이후 알렉산더 얀네우스(103-76) 때도 유대인들은 하스몬 가문인 그가 사독 계열이 아니므로 제사를 주관하기에는 결격 사유가 있다고 말하면서 대제사장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그러자 얀네우스는 자기를 반대하는 유대인들을 추방한 게 아니라 무려 6천 명이나 죽였으며(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3.14.2.), 그뿐 아니라 바리새인들에게도 모진 박해를 가했습니다.

 

알렉산더(얀네우스)는 첩들과 함께 잔치를 즐기면서 반대자(바리새인) 800명을 모든 예루살렘 주민이 보는 가운데 십자가에 매달라고 명령하였다. 게다가 그들이 아직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그들 앞에서 그들의 처자식의 혀를 자르라고 지시하였다. 이것은 그들(바리새인)이 알렉산더를 반대한 것에 대한 복수의 한 방편이었으나 그 처벌 방법은 너무나 비인간적이었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3.14.2.)

 

표의 맨 밑에 나오는 알렉산드라 여왕은 원래 아리스토불루스와 결혼했는데, 남편이 통치 1년 만인 주전 103년에 죽은 후, 당시 감옥에 갇혀 있던 남편의 형제 알렉산더 얀네우스를 석방하고 그와 결혼하여 통치자로 삼았습니다. 그 후 주전 76년에 얀네우스가 죽은 후 강한 성격의 둘째 아리스토불루스 2세가 아니라 마음이 약한 첫째 아들인 요한 히르카누스 2세를 대제사장으로 삼고 자기가 왕위에 올라 여왕으로서 통치했습니다.

 

그때 알렉산드라 여왕은 사두개파를 배척하고, 바리새파를 등용했습니다. 왜냐하면 여성이었기에 대제사장을 스스로 겸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전 63년 로마가 유대를 점령하면서 권력은 다시 사두개파에게로 넘어갔고, 바리새파는 민중들 속으로 들어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혔습니다. 이렇게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는 오랜 시간 대립해 온 종파였습니다.

 

 

2.   사두개파의 가르침

 

요세푸스는 요나단이 대제사장으로 있던 시기(주전 152~142)바로 이때라는 표현을 쓰며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를 언급합니다. 대제사장이 공석이던 주전 159~152년 즈음에 세 개의 종파가 분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이때, 인간의 행위에 관해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유대주의 세 종파가 있었다. 그 세 종파는 각기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였다바리새파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아니라 일부 행위만이 운명의 작용이며, 일부의 인간 행위는 인간의 능력 안에 있는 것으로서 운명 앞에 무력하기는 하나 결코 운명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한편 에세네파는 운명이 모든 것을 지배하며, 운명이 아닌 것은 인간사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하였다이와 달리 사두개파는 운명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사는 결코 운명에 달려 있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사두개파는 우리의 모든 행위는 우리의 능력 안에 있는 것으로 우리 자신이 선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우둔함으로 인해 악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3.5.9.)

 

7년의 대제사장 공백기에는 이미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가 형성되어 이러한 믿음 체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사두개파에 대한 언급을 보면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의 기록이 떠오릅니다. 사도행전에서 언급된 사두개인들도 내세와 부활과 초자연적인 영역을 부정합니다. 오늘 본문인 23장은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왔을 때 누명을 쓰고 잡혀서 산헤드린 공회에 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6 바울이 그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7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6~8)

 

바울이 자기가 바리새인이라고 밝히자 바리새인들은 그를 옹호하고, 사두개파는 싫어하며 더 강하게 나갑니다. 그런데 요세푸스와 사도행전이 알려주는 사두개파의 모습이 일치합니다. 요세푸스는 이런 사두개파의 특징을 <유대 전쟁사>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사두개인들은 운명을 철저히 배척한다. 하나님은 세상과 멀리 떨어져 존재하며, 어떤 면에서는 악과의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거나, 또는 단지 방관하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선과 악은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어떤 선택을 하는가는 각자의 의지에 따라 정해진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영혼의 사후 불멸과 저세상에서의 상벌 사상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한다.”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2.8.14.)

 

 

3.   역사 속의 사두개파

 

1)  사두개파의 교리

 

사두개파가 등장한 배경에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셀레우코스 왕국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왕위에 오른 주전 175년부터 유대 사회에 헬레니즘 물결이 거세게 밀려들었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이라는 참람한 신성모독의 말을 했을 때, 사두개인들은 오히려 친 헬레니즘 정책을 취했습니다. 주전 63년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은 후에도 친로마 세력을 형성해서 신약 시대까지 대제사장이 사두개파에서 배출되도록 뇌물을 바치면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했던 겁니다.

 

이렇게 사두개인들은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해왔고, 이방인들이나 약자들에게는 가혹하게 대했으며, 강대국에 대해서는 사대주의를 취하면서, 자기 자녀들은 그런 한 줌 권력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 율법보다 헬레니즘 교육에 앞장서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요즘으로 하면 교회의 중직자 직분을 가지고 사회에서도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기 자녀에게는 교회에 다니지 말고 그 시간에 학원에 가며 공부하라고 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자녀는 못 믿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두개파는 유대의 엘리트 계층을 이루었고 사회의 요직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사두개파가 유대 백성들이 일반적으로 따르던 신앙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백성들에게는 바리새파가 훨씬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사두개파는 바리새파에게 비해서 백성들의 지지가 약했습니다.

 

크게 분류해볼 때, 사두개파는 권력 주변에 있고 사대주의자였던 반면, 바리새파는 백성들 가운데 있었고 민족주의자들이었습니다. 물론 두 종파 모두 백성들의 지지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같았습니다. 그래야 자기들의 세력이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세례 요한의 외침이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3:7)

 

역사 속에서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는 서로 원수였지만 두 파가 나란히 세례 요한에게 나아온 이유는 분명합니다. 둘 다 백성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16:6)

 

복음서를 읽다 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같이 기록할 때가 있고, 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라고 하거나 바리새인만 단독으로 표기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문맥에서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을 파악해서 본문으로 들어가면 그 상황을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2)  사두개파와 유대교

 

에세네파, 바리새파, 사두개파의 교리를 비교해 보면 차이가 나는 부분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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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3: () 유대 종파 비교

 

이 표를 보면 사두개파는 정치적으로 사대주의자였지만, 율법에 대해서는 대단히 보수적이었고 근본주의자여서, 모세오경 외에는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영혼의 불멸, 내세, 천사, 악마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을 믿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구약에 나오는 부활, 욥기의 사탄, 다니엘서의 천사들을 알면서도, 이것들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는 모세오경의 출애굽기에는 애굽에 내리신 열 가지 재앙도 나오고, 홍해가 말라서 건넌 기적도 나오는데, 그런 것들을 믿지 않는다고 하니 얼마나 이상합니까? 그런 자들이 어떻게 제사장을 했는지, 참 답답합니다.

 

그럼에도 사두개파를 유대 종파라고 인정하는 것은 율법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율법을 공통분모로 하면서도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인해 세 종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3)  사두개파가 주는 교훈

 

율법 해석을 보면, 에세네파는 사두개파처럼 모세오경만 인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에세네파와 사두개파가 비슷한 삶을 살았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먼저, 바리새파는 모세오경과 전통을 함께 중요시했습니다. 전통은 시대적인 영향 아래서 해석한 구전 율법을 말합니다. 보통 랍비들이 율법을 해석했는데, 예수님 시대 직전에 있었던 힐렐 학파와 샴마이 학파 간의 논쟁은 바리새인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대표적인 해석 논쟁입니다. 샴마이 학파는 보수적인 학파였고 힐렐 학파는 진보적, 개방적인 학파였는데, 힐렐 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의 스승이었던 가말리엘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가르친 것들을 장로들의 전통(유전)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바리새파와 달리, 에세네파와 사두개파는 모세오경만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두 종파는 같은 율법을 가지고도 그 삶의 모습이 전혀 달랐습니다. 에세네파는 율법을 시대에 맞게 해석하는 개혁적인 태도를 가졌던 반면, 사두개파는 문자에 갇힌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두개파는 영혼, 천사, 부활, 내세, 섭리 등 어떤 것도 믿지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보수적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도 믿지 않는 태도를 보면 문자주의자이자 근본주의자로 보입니다. 열심히 믿기는 믿는데 글자에 적힌 것만 믿었던 겁니다. 사두개파가 그랬던 것 같이 지금도 아주 독실하게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융통성 없이 문자에만 사로잡힌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동시에 사두개파는 외세를 의지하는 사대주의자들이었습니다. 자녀들을 회당이 아닌 김나지움에 보내고 그리스 언어와 문화를 가르쳤습니다. 그들이 권력과 부를 대물림하는 모습을 보면, 친일파가 생각납니다.

 

또한 그들을 보면 현대의 사상 중 이신론(理神論)이 떠오릅니다. 시계를 만든 사람이 시계가 저절로 가게 놓아두고는 멀리 가버린 것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알아서 돌아가게 하시고는 떠나셨다는 사상입니다.

 

그처럼 사두개파는 성경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삶 속에서는 어떠한 초자연적인 개입도 받아들이지 않고, 우연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들이 가진 신앙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요세푸스는 사두개파가 토라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나 다름없다고 말했습니다(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2.8.13.).

 

 

[나가는 말]

 

사두개파의 결말은 어땠을까요? 주후 70년에 벌어진 제1차 유대 전쟁 이후 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반란이 시작된 주후 66년부터 이들은 마치 침몰하는 배에서 빠져나가듯이 유대 땅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들은 분명 종교 지도자들이었고, 사회의 엘리트였으며, 오직 율법을 외치는 자들이었지만, 위기가 닥치자 조국을 등지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역사에서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반면, 에세네파는 광야에 머물다가 로마군의 진압으로 소멸했습니다. 마사다 요새는 주후 74년까지 에세네파가 최후의 항전을 벌이던 장소였는데, 거기서 전멸당함으로 에세네파는 없어졌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확산하고 있던 교회를 통해 그들의 영적 흐름이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파는 주후 70년 유대 전쟁이 벌어졌을 때 요하난 벤 자카이라는 지도자가 유대교를 랍비 유대교로 재건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신구약 중간기에 끊임없이 시대에 맞게 변화와 적용을 모색했고, 유대 전쟁 이후에는 <탈무드> 같은 책을 기록해서 율법이 시대에 맞게 스며들 수 있도록 고민해왔던 것입니다.

 

이처럼 변화에 대한 고민은 지금까지 2천 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이 되었습니다.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흑사병, 홀로코스트 같은 엄청난 사건들 속에서도 계속 고민하고 또 고민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며,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내용은 사실 광야의 공동체인 에세네파가 고백했던 내용과 같습니다.

 

우리는 에세네파가 가졌던 신앙을 우리도 가졌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모습은 사두개파와 닮아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겠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며 하나님의 섭리라고 외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섭리를 버리고 자기가 알아서 다 하면 된다는 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많습니까?

 

결국 진정한 믿음으로 사는 비결은 바로 매일 매순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새롭게 결단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사두개파와 같은 잘못된 신앙의 모습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이 내 삶의 이유가 되시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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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 로마 시대 유대 사회의 화폐 단위 (눅 21:1-6) - 신구약 중간사의 세계 19 (2/12/25) admin_p 2025.02.13 93
447 유대 사회와 산헤드린 공회 (요 2:13-16) - 신구약 중간사의 세계 18 (1/29/25) file admin_p 2025.01.30 166
446 악한 헤롯 가문에서 나온 귀한 보배 (롬 16:10) - 신구약 중간사의 세계 17 (1/22/25) file admin_p 2025.01.23 108
445 헤롯 가문 족보를 이해하기 (마 14:3-12) - 신구약 중간사의 세계 16 (1/15/25) file admin_p 2025.01.16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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