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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K5sn336YxiU?t=1701

 

 

20221116일 수요예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22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

(베드로후서 11~11)

 

사람마다 아름다움을 싫어하는 경우는 없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자연을 보아도 참 아름답다라고 느끼고, 뉴욕이나 시카고나 서울 등의 시내에 가면 그 건물들을 보며 멋지다고 느낍니다. 유명한 장소에는 아름다운 뭔가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건축물이나 건물이나 자연이 있습니다. 사람을 볼 때도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색과 모양과 소리가 조화를 이루어 사람의 마음에 드는 상태입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내 마음에 든다는 겁니다. 마음에 안 드는데 아름답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여러 가지를 희생해가며 자녀를 키운 부모님의 얼굴에 남은 주름도 아름답습니다. 너무 열심히 일해서 지문이 닳은 손도 아름답습니다. 화재가 났을 때 위험한 곳에 들어가 사람들을 구출해나옴으로 그을음과 땀으로 범벅이 된 소방관의 얼굴도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이 달리기 경주를 하는데 한 친구가 넘어져서 그냥 달려가지 않고 넘어진 친구의 손을 잡고 일으켜 결승점에 함께 들어오는 아이들의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인간이 처음 한 말도 아름답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2:23).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사람의 첫 말은 아름다운 하와를 향한 사랑 고백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가장 아름다우신 분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한 가지 일을 구할 것이니, 내 평생 여호와의 집에 살며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하소서" (27:4)

 

그래서 하나님과 늘 가까이하는 사람은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가질 수는 있지만 진짜는 아닙니다. 아름다움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과 사람도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 범죄한 후에는 모든 것이 추해졌습니다(1:28-32).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깨지고, 사람끼리의 관계도 깨지고, 사람과 자연도 깨졌습니다.

 

그러나 흠과 점이 없이 아름다우신 예수님은 스스로 추한 모양이 되심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을 회복시키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또 세상을 완성하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예수님과 함께했던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 승천 후 성령을 받고 놀라운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로마에서 죽음을 앞두고, 소아시아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는 수신자들에게 네로 황제의 박해와 또 예수님의 재림을 부정하는 이단에 맞서라고 권면합니다.

 

우리 시대에도 반기독교 정서가 팽배한 가운데 사람들이 교회를 무시합니다. 그런 것도 있지만, 교회의 약한 모습을 틈타서 이단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 청년 인구의 3~4% 정도 밖에 크리스천이 없다고 하는데, 그래서 대학생 선교단체들이 잘되지 않습니다. 그런 와중에 잘되는 동아리들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단들이 만든 동아리들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을 통해 이런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요지: 우리는 힘써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

 

1.   힘써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 이유

 

왜 우리는 힘써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데 사탄을 닮으면 어떡하겠습니까? 로마에서 사역하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재림을 부정하는 이단이 소아시아 교회들을 미혹하던 상황을 염두에 두고 편지를 씁니다.

 

우선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들이 처한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서를 썼을 때는 박해가 아주 심하지 않았지만, 후서를 쓸 때는 박해가 심해졌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 2:11에 따르면 그들은 나그네나 행인과 같은 처지였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질 수 없었고 많은 차별을 받으며 서러움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자기 소유를 가질 수 없다 보니 생존을 위해 다른 시민권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민들은 나그네나 행인과 같은 이들을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의 비정규직보다 더 낮은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차별과 부정의 희생양이 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선한 행실을 함으로써 반응하기를 원했습니다. 베드로는 부당한 대우와 비방과 박해를 받으면서 절망의 늪에 빠진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주님의 재림과 영원한 본향을 소망하라고 격려합니다.

 

작년 초에 한국에서 세상과 교회를 섬기는 리서치연구소’(ARCC)라는 데서 20-30대 기독 청년 1,01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2021113~24)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약 30%의 청년들이 지금 다니는 교회를 옮기거나 아예 교회를 떠날 생각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로서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의 언행 불일치와 무례함, 청년부 안의 끼리끼리 문화로 인한 높은 진입 장벽, 또한 영적 갈급함이 채워지지 않아 느끼는 신앙의 회의감 등을 언급했습니다.

 

청년들은 목회자의 언행일치를 보면서 하나님을 닮은 성품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목회자의 성품은 신학교에서 학점을 잘 받는다고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신학교에 가는 젊은이들이 줄었습니다. 우리 교단만 해도 요즘은 신학교에 가는 20, 30대 청년이 많지 않고, second career, third career로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심지어 65세로 은퇴하고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어 몇 년을 목회하고 다시 은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 한국은 신학대학교 신학과는 말할 것도 없고, 목사가 되는 과정인 신학대학원도 두세 군데 빼고는 미달 사태를 빚고 있습니다. 목사가 되겠다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의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자신의 성품과 설교가 일치하는지를 살피라고 권면했습니다(딤전 4:6). 이런 가르침에 따라 신행일치와 언행일치를 잘 훈련한다면 신뢰받는 사역자가 될 것입니다. 지도자일수록 언행일치가 중요합니다. 집에서도 부모로서 언행일치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럴 때 이 말을 하고 저럴 때 저 말을 하면 아이들이 혼동됩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4)

 

여기서 베드로는 교회를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모인 성품 공동체’(community of character)라고 말합니다. 성품이란 사람의 성질이나 됨됨이를 가리킵니다. 또한 성품은 사람이 어떤 태도를 취하여 행동하도록 만드는 내면의 능력이자 정신적, 윤리적, 종교적 특성을 뜻합니다. 선천적인 기질(성격)과 달리 성품은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힘써 하나님을 닮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1)

 

1절에서 베드로는 우리가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님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가지고 가셔서 없애셨으며, 주님의 의와 믿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지난 주일에 압살롬이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라는 신명기 말씀이 이루어진 것으로 사무엘하 저자가 그것을 기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나무에 달린 자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못합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받은 자인데 어떻게 그런 자가 메시야가 될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 때문에 나무에 달리신 게 아니고, 바로 그런 저주받은 자인 우리를 대신하여 나무레 달리셨다는 겁니다. 당연히 압살롬은 나무에 달림으로써 저주받은 자임을 보여주었지만, 예수님은 스스로 저주받은 자가 아니라 우리가 저주받은 자인데 우리 때문에 저주받은 자가 되셨다는 겁니다. 일부러 그렇게 하셔서 우리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주셨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3)

 

여기서 베드로는 하나님을 닮아가야 할 다른 이유를 소개하는데, 예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신적 능력을 통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생과 더불어 경건하게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경건하게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0)

 

이 구절은 우리가 주님을 닮아갈 마지막 이유를 소개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시고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2.   힘써 하나님을 닮을 수 있는 방법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힘써 하나님을 닮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신적 성품 여덟 가지를 삶의 열매로 드러내면 됩니다.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5-7)

 

여기 나오는 하나님의 성품 여덟 가지는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성품들은 나선의 형태로 발전되기도 하고, 뒤의 성품이 앞의 성품을 포괄하기도 합니다.

 

1)  믿음

5절에 따르면,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첫 단계는 믿음 혹은 신실함입니다. 신실하신 하니님과 생명의 복음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출발점이 됩니다. 따라서 비신자는 신적 성품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믿음으로써 갈릴리 호수 위를 잠시 걸었지만, 강한 바람을 보자마자 두려움을 느끼고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런 베드로를 건져주시면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고(14:31), 결국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을 향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하고 고백했습니다.

 

2)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참여할 두 번째 신적 성품은 덕입니다(5). 덕의 그리스어 어원 아리는 누군가를 기쁘게 한다는 뜻입니다. 덕은 남을 배려하는 탁월한 인품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자 하나님이신 외아들을 보내주심으로써 가장 덕스러운 분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제사장 나라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탁월한 덕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3)  지식

또한 우리는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5). 하나님을 경험으로 알아가다 보면 분별력이 쌓일 것입니다. 그러나 수신자를 미혹하던 거짓 선생은 이성 없는 짐승으로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결여된 사람이었습니다(벧후 2:12). 그래서 잘못되었습니다.

 

4)  절제

네 번째 신적 성품은 절제입니다(6).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갖추고 있으면 잘못된 욕망을 절제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와 구주이신 예수님을 통해 은혜로 공급해주신 모든 것들을 알면 알수록 더 절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후서의 수신자들을 미혹하던 거짓 선생들은 음심(2:14), 비방(2:12), 호색(2:2, 14, 18)을 절제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5)  인내

다섯 번째 신적 성품은 인내입니다(6). 성도는 자신을 방종으로 빠뜨리려는 이단의 유혹에 맞서 절제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성도가 소망 중에 인내한다면 네로 황제가 가하던 박해와 같은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거짓 선생들이 부정한 주님의 재림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6)  경건

여섯 번째 신적 성품은 경건입니다(6). 믿음과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에 참여하면 당연히 경건하게 살게 됩니다. 베드로후서의 수신자들은 매일 이단과 박해를 직면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만 예배하며 경건하게 살아야 했고, 이처럼 일상의 경건을 통해 재림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7)  형제 우애

일곱 번째 신적 성품은 형제자매간의 우애입니다(7). 교회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형제자매들로 이루어진 가족입니다. 베드로후서의 수신자들이 거짓 선생들과 네로의 박해에 맞서기 위해서는 형제자매의 우애가 필요했습니다.

 

8)  사랑

마지막 여덟 번째 신적 성품은 사랑입니다(7).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사랑을 확인하셨습니다(21:15-17). 그런 후 예수님은 사랑을 고백한 베드로에게 그의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21:18-19). 그러므로 베드로는 목숨을 다해 예수님을 사랑해야만 했습니다. 보이는 형제자매와 우애한다면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요일 4:20-21). 사랑은 성경의 핵심이고, 나머지는 설명입니다.

 

 

3.   힘써 하나님을 닮을 때의 유익

 

힘써 하나님을 닮으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더 알게 됨으로써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어 이단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8)

 

여덟 가지 신적 성품을 흡족하게 갖춘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님을 더 알게 됨으로써 성품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을 닮아가면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더욱 더 힘써서,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은 것과 택하심을 받은 것을 굳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10, 새번역)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의 열매로서 소명과 사명이 확실해집니다. 신적 성품을 맺음으로써 부르심과 택하심을 견고히 하는 성도에게는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이 넉넉히 주어집니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11)

 

세상에서 나그네와 거류민으로 순례 중인 그리스도인의 최종 종착점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여덟 가지 성품에 참여하는 성도는 이단에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추구함으로써 주님을 더 알아간다면, 욕망에 사로잡혀 방탕하게 살라고 우리를 미혹하는 이단과 사이비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혹시 신적 성품의 열매가 부족하여 자신이 택함과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닌지 염려가 생기는 경우에는 첫 번째 성품인 믿음과 마지막 성품인 사랑을 확인하면 됩니다. , 예수님께 순종하고 사랑하면서 살려는 마음이 있는지 확인해보는 겁니다. 그런 순종과 사랑은 구주 예수님을 믿음에서 나옵니다. 순종과 믿음이 있다면 구원의 은혜를 받았음이 확실합니다.

 

신적 성품에 참여하지 않은 채로 어떤 프로그램이나 전도에만 열중하게 되면 오히려 비신자로부터 비난받게 됩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닮고자 노력하다 보면 삶에서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 각자가 삶 속에서 전도자가 될 때 세상에 하나님을 삶으로 증언하는 선교적 교회를 이루게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다시 부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님을 더 닮아가는 공동체로 성숙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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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하고 좋은 데 취업에 성공하고 사업이 크게 되고 돈을 많이 벌면, 성품이 나빠도 용서가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느 학교 출신인지, 학위가 있는지, 얼마나 좋은 직장에서 일했는지, 사업체가 얼마나 컸는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심지어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맡았는지, 교회가 큰지 작은지에 전혀 관심이 없으십니다. 대신 주님을 닮고자 하는 삶을 살았는지를 보십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맺은 신적 성품의 열매를 보여달라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기 위해 매일 실천할 일은 무엇입니까?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그것을 실천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늙어갈 수 없습니다. 단순히 노인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주님의 성품으로 무르익어가게 됩니다. 우리 모두 그러한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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