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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HyRwsKL1zEE?t=2091

 

 

20221019일 수요예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20

행함으로 드러나는 믿음

(야고보서 214~26)

 

많은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야고보서 2장은 행함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야고보서는 성도의 생활에서 중요한 점들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분리되거나 관계없는 행함을 강조하는 대신, 오히려 참 믿음이란 행함으로 드러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는 흩어진 열두 지파”(1:1) 즉 유대인 크리스천들을 대상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삶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너희가 믿는다고 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살 수가 있느냐?’라는 마음으로 쓴 겁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야고보는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지고 야고보서를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어디서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   야고보서 2장의 주제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1)

 

사실 이 번역은 오해를 일으키기 쉽습니다. 너희가 이미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이제부터는 행함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라고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야고보서 2장이 행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외모로 취함으로 가지지 말라.” 그러니까 겉으로만 보이게 믿지 않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믿음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외모로 취함으로써 가지지 말라.라고 하는데, 이 말은 차별함으로 가지지 말라또는 차별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1~13절은 ‘OO이 없는 믿음(faith without OO)’이라고 할 수 있고, 14~26절은 ‘OO이 있는 믿음(faith with OO)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야고보서 2장은 참 믿음은 무엇인가?’ 그리고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말합니다. 첫째, 그것은 외모로 취함이 없는 믿음, 곧 차별함이 없는 믿음입니다. 가난한 자라고 무시하거나 자기보다 못한 형편에 있다고 멸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둘째, 행함이 있는 믿음, 곧 행함으로써 드러나는 믿음이 참 믿음입니다.

 

 

2.   정말로 믿으면 행하게 되어 있다 (14~19)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4)

 

야고보서 2장의 말씀이 믿음행함을 대비하여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이 14절 말씀이 믿음과 행함을 대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같은 본문을 읽고도 믿음만 있으면 안 되고 행함이 있어야 한다고 여김으로써, ‘믿음 플러스 행함이 야고보가 말하는 주제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그렇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믿음에 행함도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이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행함을 강조하는데, 행함이 없으면 구원받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아무 유익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고말하고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믿음과 행위를 대비하는 게 아니라,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사이의 대비시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과 행위를 대비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라, 믿음이 있다고 말만 하는 것과 진짜 믿음으로 행하는 것을 대비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말하는 것은 거짓될 수 있고 사람을 속일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합니까? 말뿐인 믿음, 거짓된 믿음, 죽은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고 유익도 없습니다.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5-16)

 

여기서도 하며말하며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것 역시 말하는 것행하는 것사이를 대비하는 게 아닙니까? 믿음과 행함을 대비시키는 게 아니라, ‘말뿐인 믿음행함이 있는 믿음사이를 대비시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7)

 

여기서 그 자체가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보면 그 자체로’(in itself), ‘스스로’, ‘원래부터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죽은 것도 헬라어 원어에서는 형용사로 되어 있는데, 죽은 상태(dead)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살아 있었는데 나중에 죽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죽은 상태였고 지금도 계속 죽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믿어서 믿음이 있었는데 나중에 행함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행함이 더해지지 않아서 믿음이 있었다가 죽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죽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원래부터 믿음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진짜로 믿은 게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진짜 믿음이 아니라 거짓 믿음이자 헛된 믿음이며 말뿐인 믿음이었습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원래부터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정말 믿은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진짜 믿은 사람은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0)

 

요즘 청년들이 워낙 성경을 안 읽어서 아아라고 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인 줄 압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되겠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서 , 구원은 행함으로 받는구나. 아무리 믿어도 행하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는 것인가 보다.라고 생각한다면, 성경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진리는,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는다는 사실입니다.구원받기 위해서 믿음도 있어야 하고 행함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확실합니다. 믿음 하나만 있으면 구원받습니다. 예수님을 정말 믿으면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런 구절들이 많은데 그중 대표적으로 이 말씀을 보십시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2:8-9, 새번역)

 

야고보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구원받기 위하여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믿음에는 행동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예수님을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많은 사람이 야고보서는 행함을 강조한다고 대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로마서와 같은 말씀을 하는 것인데, 단지 같은 내용을 다른 방향에서 보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는, 아무리 선을 행해도 완벽하게 선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에, 누구든지 행위로 구원을 얻을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받을 수 있음을 선포합니다. 그러니까 로마서는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주로 말씀하다가, 뒷부분으로 가면 구원받은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설명합니다.

 

반면, 야고보서는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아무 행동이 없는 점을 지적합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받는가가 아니라, 구원받았다면 행동하지 않을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구원받았는데 어떻게 사랑의 행동이 없을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니까 더 혼동될 수 있는데, 사랑과 비교해 보면 이해가 더 쉽습니다. 행함이 없는 사랑이 존재하는 게 가능합니까?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무 행동도 안 하면 그것이 사랑이겠습니까?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데 어린 자녀가 날카로운 데에 찔리려고 하는데 가만히 있는 게 사랑입니까? 화들짝 놀라며 부모가 빨리 가서 막아주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정말 사랑하면 그것이 행동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의무감으로 어쩔 수 없이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해주고 싶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행동합니다.

 

“15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것조차 없는데, 16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십시오하면서, 말만 하고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5-16, 새번역)

 

여기 보면 한 가지 예가 나옵니다. 굉장히 가난한 사람이 있는데, 입을 옷이 없고 그날 먹을 음식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드세요.라는 말만 하고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 그것이 과연 믿음이 있는 사람의 바른 태도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홈리스 사람들을 우리가 다 돌봐야 한다거나 어려운 사람을 다 도와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말로만 하느냐, 진짜 사랑으로 행동하느냐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모르는 사람이나 홈리스 사람들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형제자매 가운데 당장 어려운 지체가 있는데, 자기는 배터지게 먹으면서 굶고 있는 형제자매를 가만히 두면 그게 사랑이 있는 거냐는 말입니다.

 

진정한 믿음을 가졌다면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사랑이 없는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닙니다. 사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있고 행함이 있는 믿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행함이 없으면 그것은 아예 믿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많은 사람이 머리로 그렇다고 동의하는 것을 믿음인 줄 오해하기 때문에 믿음이 없으면서도 믿음이 있다고 착각합니다. 실제로는 안 믿는데 믿는다고 오해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교회를 오래 다니면 성경 말씀을 많이 듣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압니다. 그래서 성경도 알고 기도도 좀 하고 봉사도 좀 하고, 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또 부활하셨다는 것을 많이 들어서 압니다. 그러나 그것을 머리로 안다고 해도, 그것은 그냥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이지 참 믿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지금 미국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인데, 내가 바이든 대통령을 아는 것과 그 아내 바이든 여사나 자녀들이 아는 것은 다릅니다. 내가 백악관에 가서 나는 바이든 대통령을 압니다.하고 들어가려 하면 체포됩니다. 그러나 그의 자녀들이 아버지를 만나러 왔다고 하면 통과입니다. 그들은 바이든 대통령을 정말로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이든을 정말로 아는 사람들이고, 나는 그에 대해서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나를 모릅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음이란, 인격적인 관계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19)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그분은 한 분이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고 믿는 자체로는 참 믿음이 아니란 말입니다. 귀신들도 그것을 다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며 떱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하나님을 믿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 귀신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반대하는 일만 합니다.

 

그러니까 믿는다는 것은 우리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포함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그것은 정말 믿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믿으면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완벽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삶의 방향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가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에 전혀 관심이 없고,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든지 내가 알아서 내 맘대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은 상관없고 내 말대로 알아서 산다면, 그게 정말 하나님을 믿는 거냐는 말입니다.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3.   행함이 있는 믿음의 예 (20-26)

 

야고보는 행동하는 믿음의 인물로 아브라함을 예로 듭니다.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1-24)

 

여기서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라고 하니 참 당황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로마서나 갈라디아서 등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라고 굉장히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왜 바울과 야고보는 서로 다르게 말하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야고보서를 높이 평가하지 않고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야고보는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신칭의’(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음), 야고보는 이행칭의’(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음)를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바울과 야고보가 사용하는 단어는 같지만 용어의 개념이 다르며 그 의미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 ‘의롭다 함을 받다라는 용어의 개념이 서로 다릅니다. 바울은 이 용어를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이는 법적 개념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원래는 아니었는데 의롭다고 해주셨다는 겁니다. 반면 야고보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 곧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의 믿음이 하나님에 의해 분명히 드러나고 확실히 인정받는다는 의미를 강조합니다.

 

둘째, ‘행함또는 행위의 개념도 다릅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으려는 인간의 노력과 공로라는 의미로서 행위를 사용합니다. 행위로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엔 부정적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반면 야고보는 믿음의 열매로 나타나는 행함이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이 행함은 믿음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으로서 믿음의 열매가 드러남을 뜻하기 때문에 긍정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자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가 다릅니다. 그런데 이런 의미의 차이를 무시하고 단어가 같다고 해서 의미도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집에서 아기가 마마!”라고 하면 엄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극을 보면 궁중에서 임금이나 중전이나 대비나 왕자들을 보고 마마라고 합니다. 왕족이나 궁의 높은 사람들을 높여 부르는 호칭입니다. 또 옛날에 의사가 어떤 사람을 보고 마마에 걸렸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천연두란 뜻입니다.

 

이처럼 같은 단어라도 뜻이 다른데, 이런 의미상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마마라고 하면 무조건 엄마라는 뜻이라고 주장한다면 엉뚱한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조선왕조실록을 보고서 조선시대에 대신들이 중전을 향해 마마라고 했으니까 엄마라고 부른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완전히 정신없는 소리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도 그런 식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야고보가 여기서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행함으로써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과 야고보가 사용한 용어 사이에 드러나는 의미상의 차이를 고려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주 위험하고 잘못된 주장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야고보는 또 다른 행동하는 믿음의 예로 기생 라합을 들고 있습니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5)

 

라합은 여리고 경찰들에게 거짓말을 해서 두 정탐꾼을 보호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가나안을 점령하게 되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살려줄 것을 부탁해서, 여리고 성이 멸망당할 때 라합의 집은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이 야고보가 지적하는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님 편을 택하는 일종의 모험이었습니다. 진짜 믿음이라면 라합처럼 우리를 모험의 길로 인도합니다. 모험이 없는 믿음은 없습니다. 안전한 일, 당연한 일에는 믿음이 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위험하고 불확실하고 앞이 안 보일 때 믿음이 필요합니다. 행동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으면 행하는 겁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그대로 행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26)

 

여기 나오는 죽은 것도 형용사로서, 처음부터 계속 죽은 상태에 있는 것을 뜻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처음부터 죽은 상태에 있었던 것처럼, 따라서 한 번도 살아 있는 적이 없었던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도 처음부터 죽은 믿음이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한 번도 산 적이 없는 것입니다. 아니, 아예 한 번도 믿음이었던 적이 없는 겁니다.

 

따라서 야고보서 2장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믿음에 행함을 더하라는 것이 아니라 참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 믿음은 행함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진짜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참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우리가 갑자기 영적 거장이 되기를 기대하시는 게 아닙니다. 매일 조금씩 변화되어 가면 충분합니다. 우리가 이전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많이 변화되었습니까? 섬기니까 믿음이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섬겼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에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이 확실한 구원의 증거다.’라고 합니다. 진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섬길 수가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고 영생을 얻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랑으로 형제자매를 섬기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몰라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다 보시고 아십니다. 하나님이 아시면 되는 게 아닙니까?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산 믿음, 진짜 믿음을 가진 분들이심을 믿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진짜 믿음을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 혼동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자신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산 믿음이니까 이제 되었다.’가 아니라 나는 정말 믿는대로 행하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말 믿는 대로 행하는 삶인가, 아니면 이론적으로만 동의하는 정도인가를 점검하라는 겁니다.

 

작은 것부터 실천에 옮기면서, 매일 믿음으로 작은 모험을 해가며, 그 믿음의 모험들이 쌓이고 또 쌓여서, 놀라운 믿음, 행함 있는 산 믿음의 거장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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