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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811 수요예배

성막에서 배우는 예배 9/최종

번제단과 물두멍: 삶으로 이어지는 예배의 회복

(출애굽기 381~8)

 

[들어가는 말]

 

이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성막은 결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위해 베푸신 은혜이며 복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의 백성답게 살 수 있도록 주신 지침인 동시에,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것이 성막이고, 그것이 예배입니다.

 

오늘은 성막 시리즈 중 마지막 시간으로, 지난주 내용에 이어서 뜰에 대해 살펴보게 됩니다. 성막의 이야기는 가장 깊은 지성소부터 시작해서 성소 그리고 뜰로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사장의 입장에서는 성막에 들어갈 때 뜰에서부터 시작하여 성소와 지성소의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참된 예배의 이야기는 그 방향이 거꾸로입니다.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참된 예배가 아니라는 겁니다. 많은 분들이 잘못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소위 신령한 은사를 받았거나 입신의 경지에 올랐거나 신비한 체험을 하고 끝나면 그것이 최고의 경지의 예배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최고의 예배는, 그렇게 하나님을 체험했다면 그 은혜와 감격을 가지고 삶의 자리로 돌아와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최고의 예배입니다.

 

가장 깊은 곳, 거룩한 곳까지 간 후 거기서 예배가 끝난다면, 성막은 하나님을 위한 곳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참된 예배는 그렇게 지성소의 깊은 곳까지 가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제사장으로 거기까지 가야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거기서 주신 은혜로 온전한 복을 경험하여 삶의 자리까지 다시 나오는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밖에서부터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깊은 곳에서 밖으로 나와 삶의 자리로 돌아가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예배자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일관적으로 가르쳐줍니다.

 

예배자가 받은 은혜를 가지고 자기 삶의 자리로 나아가 삶이 변화되어야 진짜 예배라는 것입니다. 어떤 엄청난 체험을 했더라도, 삶이 전혀 변하지 않고 계속 쌀쌀맞고 냉랭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거나 섬기는 것이 없다면, 그런 체험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막을 말하면서 지성소부터 시작해서 뜰로 전개하는 것입니다.

 

지난주 말씀에서 우리는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라는 시편 654절의 말씀이 어떻게 복이 되는지를 말하면서 세 가지를 나누었습니다. 그 중 세 번째는, 그곳에서 예배자인 우리에게 정말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나기에 복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역사가 무엇인지는 바로 그 뜰에 있는 두 개의 기구인 번제단과 물두멍가운데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뜰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눈길 가운데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에서는 정말 하트가 뿅뿅 나오고 꿀이 뚝뚝 떨어집니다. 바로 그것이 뜰 가운데서 일어나는 번제단의 역사이고, 물두멍 가운데 담긴 비밀입니다. 오늘 그것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원합니다.

 

 

1.   번제단: 삶을 올려드리는 자리

 

먼저, 뜰에는 번제단이 있습니다.

 

그가 또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었으니 길이는 다섯 규빗이요 너비도 다섯 규빗이라 네모가 반듯하고 높이는 세 규빗이며, 그 네 모퉁이 위에 그 뿔을 만들되 그 뿔을 제단과 연결하게 하고 제단을 놋으로 쌌으며” (1-2)

 

번제단의 크기는 5규빗×5규빗(2.5미터×2.5미터)이고, 높이는 3규빗(1.5미터)입니다.

번제단은 놋으로 만들었으며, 네 모퉁이에는 뿔이 있습니다.

 

제단에 쓸 그물을 놋쇠로 만들고, 제단 가장자리 밑에 달아서, 제단의 중간에까지 이르게 하였다. 놋그물의 네 모퉁이에, 채를 끼우는 데 쓸 고리 네 개를 부어 만들었다. 아카시아 나무로 채를 만들고, 거기에 놋쇠를 입혔다. 이 채들을 번제단 양 옆의 고리에 끼워서, 그것을 운반할 수 있게 하고, 번제단은 널빤지로 속이 비게 만들었다.” (4-7, 새번역)

 

번제단의 바닥에는 놋으로 만든 그물이 있어 불을 피우게 되어 있고, 또한 번제단 옆에는 그것을 메어서 운반할 수 있도록 채가 달려 있습니다.

 

번제단은 말 그대로 번제를 드리기 위한 단입니다. 하나님은 왜 번제를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까?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드렸던 그 번제를 왜 지금 우리는 드리지 않는 것입니까? 번제라는 것은 무엇이며, 거기에 담긴 영적 비밀은 무엇입니까?

 

분명한 것은, 번제는 결코 완전한 예배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고기를 받고 싶어 하시거나 그 바비큐 냄새를 좋아하시기에 번제를 드리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비록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는 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그 고기의 타는 냄새를 좋아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그런 물리적인 것을 받을 필요가 없으십니다. 어떤 것도 그 자체로는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제를 드리라고 하신 것은, 그 속에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온전한 예배의 메시지를 담아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는 불완전하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예배를 드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보면, 번제를 드리는 행위가 아니라 그 마음과 영적인 태도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그토록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번제에 들어 있는 영적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생명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삶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번제는 소제물을 빼고는 짐승을 제물로 잡아서 드립니다.

 

그런데 사실 그 짐승은 번제를 드리는 자신입니다. 그 짐승에게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안수해서 드리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안수를 통해 나 자신을, 나의 생명 자체를 그 제물에 집어넣는다는 뜻입니다. 곡식 제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노동과 나의 삶을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 제물을 불로 태워 드리는 것은 바로 자신의 삶을, 생명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번제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올라인데, 그 뜻은 올라가다입니다. 한국말과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번제의 중요한 포인트는 불로 태우는 것이 아니라, 그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데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태워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그 생명이 태워지고 그 삶이 태워지면서 그렇게 올라가는 것이 번제입니다.

 

예배는 언제나 이렇게 올라감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현장에 있는 것이 복된 일입니다. 자신의 생명, 즉 자신의 삶과 생각과 느낌과 자신의 모든 것이 그렇게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예배든 예배의 현장에 있을수록 예배자의 삶이 올라갑니다. 그 삶의 가치와 의미를 비롯해서 삶의 모든 것이 올라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 올라가서 영적 수준이 올라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장소들은 많은 곳들이 내려감이기 때문입니다. 술집도, 도박장도, 아니면 직장과 일터조차도 그 자체로는 대부분 내려감입니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일터가 예배의 자리가 된다면 달라지지만, 그냥 일만 하는 곳이라면 지치게 되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허무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계속 그곳에 있으면, 결론적으로는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가치와 의미를 비롯해서 그 삶 전체의 수준이 밑으로 갑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렸으면서도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로 처지고 있다면, 그것은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라 일을 한 것입니다. 예배가 일처럼 되는 것이 우리가 쉽게 범할 수 있는 실수입니다. 억지로 예배를 드릴 때 그렇게 됩니다. 저 같은 목회자나 직분자 등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일수록 이러한 위험이 더욱 큽니다.

 

그럼 그렇게 올라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비밀을 번제단의 뿔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번제단의 뿔은 히브리어 원어로 케렌이라고 하는데, ‘영광또는 광채라는 뜻입니다. 예배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 곧 예배를 드린 사람의 삶은 올라가는 삶이 되고, 결론적으로 그의 삶은 영광과 광채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34:29)

 

여기서 나온 광채가 바로 케렌’, 즉 제단 과 같은 단어입니다. 왜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까? 그가 주님과 만나서 말했기 때문에, 곧 예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함께 있었을 때 얼굴에 나타난 바로 그 광채가 지금도 참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 예배의 현장에 있는 사람의 얼굴에도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의 현장인 주의 뜰에 있기만 해도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주의 뜰에 있는 사람, 즉 예배의 현장에 있는 사람에게 그런 광채가 나게 되는 겁니까? 그 답은 바로 그 광채’(케렌)이라는 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케렌이라는 말인데, 이것은 곧 권위와 능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광채가 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정말 아름다우려면 권위가 있어야 하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스데반을 보십시오. 그는 성령 충만했고, 충만은 능력으로 또 아름다움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로 그런 게 진짜입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예배자에게 주시는 그 영적 권위와 능력을 받을 때 그 사람에게서 광채가 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번제단의 뿔에 대한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범죄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바로 이 제단의 뿔을 잡으면 그에게 내려질 사형의 집행이 유예가 되는 제도입니다.

 

물론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인 자나 그런 정도의 죄악의 경우는 아무리 번제단의 뿔을 잡아도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군대 장관이었던 요압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도피성에 피한 것처럼 형 집행을 유예 받을 수 있는 바로 그런 제도였습니다.

 

이 번제단의 뿔을 잡았을 때 구제를 받는 것이 언제부터 시행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것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인데, 자기가 왕이 될 줄 알고 설치다가 솔로몬이 왕이 된 후 살기 위해 제단의 뿔을 잡았던 내용이 나옵니다.

 

아도니야도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가서 제단 뿔을 잡으니, 어떤 사람이 솔로몬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솔로몬 왕을 두려워하여 지금 제단 뿔을 잡고 말하기를 솔로몬 왕이 오늘 칼로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기를 원한다 하나이다” (왕상 1:50-51)

 

이렇게 번제단의 뿔을 잡는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지 않고, 또한 어떤 이유로 형 집행이 미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번제단 뿔에 제물의 피를 바르기 때문에 그것이 속죄와 연관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케렌’, 즉 하나님이 주시는 그 능력과 권위인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 제단 뿔을 잡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에 접붙임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비록 세상의 법에 대해 실수하여 죄인이 되었고, 그래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 제단 뿔을 잡는 순간 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속하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갖게 되므로 세상이 그를 판단하거나 처벌할 수 없는, 그야말로 세상 가운데 있으나 속하지 않은 것과도 같습니다. 도피성과도 아주 비슷합니다.

 

바로 이것이 번제단의 영적인 역사를 아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예배하는 순간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올려드리면서 우리의 전 존재를 가지고 전심으로 예배하는 순간,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시고 우리는 하나님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시선과 통치 가운데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세상이 손댈 수 없도록 하나님이 구별하시는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자는 세상이 함부로 판단할 수 없고 함부로 무시하거나 공격할 수 없습니다. 예배드리는 순간 거룩함의 경지로 올라가 다른 차원의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번제단의 역사는 거룩의 역사입니다. 거룩은 세상 것과 구분해서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뜰에서 일어나는 아름다운 역사, 그것은 바로 거룩의 역사인 것입니다.

 

 

2.   물두멍: 거룩과 성결이 임하는 자리

 

그리고 뜰에 또 하나 있는 것이 물두멍입니다. 이 물두멍은 그 모양이나 크기가 어떤지를 알 수 없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에 있는 물두멍은 열두 마리의 소가 받치고 있는 놋 바다였습니다. 하지만 성막에 있던 것은 그것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아주 작은 것이었음에 분명합니다.

 

비록 물두멍의 크기나 모양은 모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씻는 물을 담아 둔 곳입니다. , 씻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곧 성결의 역사를 말합니다.

 

예배의 현장은 바로 씻는 곳입니다. 예배의 현장에 있는 사람은 씻김을 받습니다. 예배의 현장에 있기만 하면 자신도 모르게 계속 씻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결해집니다. 자기도 모르게 생각이 깨끗해지고, 영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현장, 곧 주의 뜰에 있는 것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 물두멍에는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8)

 

물두멍은 다른 것이 아니라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습니다. 놋 거울의 재질이 아주 고급스러우니까 그것으로 물두멍을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굳이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을 드러내며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론 감동적인 헌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놋 거울과 물두멍의 이미지는 정말 기가 막히게 서로 연결됩니다.

 

놋 거울은 여인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사용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그것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얼굴만을 비추어보던 그 놋 거울을 재료로 하여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물두멍이 만들어졌고, 거기에 물이 담기고 놓였을 때 거기에는 파란 하늘이 비치게 된 것입니다.

 

예배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닌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꿈과 기대와 나를 바라보시는 변함없는 시선과 그 사랑이 나를 씻깁니다. 결국 나는 예배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기는 것입니다. 실패하고 추하고 더러운 모습으로 나아오더라도, 예배하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 쏟아지는 그 눈물로 내가 씻기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내 눈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씻기시는 것입니다.

 

물두멍에 담긴 물은 하늘이 비친 물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를 씻기는 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꿈으로 씻깁니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 깨끗해진 줄 알지만,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씻김을 받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예배의 현장은 있기만 해도 영적으로 깨끗해지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현장을 사모해야 합니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더라도 녹화된 것을 나중에 보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에 함께 예배의 현장에 나와야 합니다. 주의 성도들과 함께 하며 예배드리는 그 주의 뜰에서 일어나는 역사가 바로 성결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바로 이 두 가지의 역사, 거룩과 성결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역사는 바로 십자가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현장, 즉 주의 뜰은 십자가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모든 예배의 자리는 바로 갈보리 언덕인 것입니다. 주의 십자가가 서 있는 현장인 갈보리는, 그곳에 와서 예배하는 사람의 삶이 하나님께 올려드려지면서 거룩해지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씻김을 받아 성결하게 되는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주의 뜰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 때마다 이 거룩과 성결의 역사를 누려야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 삶이 아름답고 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늘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여 나와서 자신의 삶을 드리며 예배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뿐 아니라 거룩과 성결의 역사를 체험하고 변화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된 예배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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