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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5일 수요예배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5

이사야: 헌신의 기도 -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1~8)

 

1.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붙들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명(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사명도 받았습니다. 사명이 없는 인생은 허무하고 헛된 것에 불과합니다. 사명이 없이는 삶 가운데 의미가 있을 수 없고, 삶에 진정한 가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명이 없이는 삶 가운데 성취와 만족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명이 없는 삶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고, 아름다울 수 없고, 성공적일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사명이 정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명은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이 삶을 살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를 향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깨달아야 지금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모른다면 자기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기준이 없습니다. 요즘은 그저 나 좋은 대로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은데, 정말 문제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가정들이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정에 사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명이 있어야 힘들고 어려운 시간 속에서 견뎌 나가는 것이 의미 있는데, 사명이 없다 보니 힘든 시간을 참아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을 참으로 사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빌립보서를 쓸 때의 상황을 보십시오.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입니다. 감옥에서 삶의 마지막을 직면하며 쓴 서신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바울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미결수였고, 재판이 판정되면 사형될 수도 있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는 굉장히 힘 있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내용을 빌립보서에 담았습니다. 기쁨을 선포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이유는 하나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3:12-14)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지금을 참을 수 있는, 지금의 어려움을 감수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상이 그냥 상이 아니라 부름의 상이라는 것입니다. 그 상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많은 어려움과 고난도 결코 그것으로 인해 괴로워하거나 절망할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시간을 참고 견디는 것이 다 상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름의 상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명을 이룬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삶을 아름답게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명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특별히 이 사명을 반드시 깨닫고 그것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2.   기도 가운데 주어진 이사야의 소명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 소명과 사명과 그에 대한 헌신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셨는데 응답하지 않았다면, 그는 신앙인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소명 이야기 가운데 아주 유명한, 그러면서도 굉장히 강렬하고 독특한 이야기가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사야의 소명 사건입니다. 이사야는 구약의 선지자 중 대표적인 사람으로, 그가 기록한 이사야서는 총 66장으로 되어 있는데, 성경을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나누는 것처럼, 이사야서도 1-39(39)40-66(27)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각각 39장과 27장으로 나뉜 이사야서와 구약과 신약의 내용이 비슷하게 맞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이사야서는 그 예언의 주된 내용이 바로 메시아, 곧 그리스도였습니다. 이사야는 마치 그것을 보고 그리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이처럼 이사야서는 구약을 통해서 신약으로 건너가는 통로와도 같습니다.

 

선지자는 머리로 책을 쓰지 않습니다. 선지자는 또한 남의 이야기로 책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선지자는 자기가 곧 글이었습니다. 자신이 체험한 것을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의 주된 활동 중에 행동 메시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호세아가 그러한 굴곡진 삶을 살아야 했던 이유는 그의 삶이 곧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체험한 메시아의 은혜를 기록한 것이 이사야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의 소명 이야기는 이사야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응답하신 하나님, 구원하신 하나님, 치유하신 하나님, 회복하신 하나님, 아름답게 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복음의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소명 이야기에서 먼저 살펴봐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소명 이야기가 어떻게 일어났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그의 기도 가운데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1)

 

여기에 나오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라는 표현은 그때가 언제인지를 알리기 위해 쓴 것이 아닙니다. 그때 이사야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말해 주려고 쓴 것입니다. 웃시야는 이사야에게 굉장히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따르면, 웃시야 왕은 이사야의 사촌 형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두 사람은 가까웠으며, 웃시야 왕은 이사야에게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웃시야는 처음에는 아주 좋은 왕이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훌륭했고, 하나님 뜻대로 다스리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왕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어린 이사야에게 있어 웃시야는 따르고 싶은 롤모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았던 웃시야 왕이 너무나 잘나가자 교만해지면서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분향을 본인이 하겠다고 들어간 것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치셔서 온몸에 나병이 발병했습니다. 보통 사람이면 들로 쫓겨나야 하지만 왕이었기에 그럴 수 없어 그는 별궁에 갇히게 됩니다.

 

1절의 웃시야 왕이 죽던 해란 그가 별궁에 12년 동안 갇혀 있다가 죽던 해를 말합니다. 그의 죽음을 보면서 이사야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사야의 수많은 고민과 갈등이 웃시야 왕이 죽던 해라는 구절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이 고민을 혼자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고민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기도입니다. 본문 1절 뒷부분을 다시 보십시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이것은 이사야가 성전에 들어갔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가 고민하는 자리가 바로 하나님 앞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인 또 다른 확실한 증거가 본문 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5)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순간 이사야는 자신의 죄를 보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입술의 부정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이사야는 결국 하나님 앞에 자신의 고민을 가지고 나아가 모든 생각과 감정을 쏟아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 계십니까? 하나님, 살아 계신 것 맞나요? 정말 신앙이 답인가요? 기도하면 되는 건가요? 믿음이 정말 승리하는 거 맞습니까?’ 이런 절망과 한탄과 부정적인 말들을 막 쏟아 내는 그때, 하나님의 임재가 그 앞에 나타나자 그 순간 가장 먼저 보게 된 것이 바로 그런 말들을 했던 자신의 부정한 입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사야는 그때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의 결론이 바로 이사야의 소명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3.   하나님과의 교제로 나아가는 기도

 

우리의 기도가 정말 온전한 기도, 아름다운 기도라면 그 마지막 결론은 반드시 소명과 헌신으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에게 드리는 가장 값진 기도입니다. 내 요구 조건만 다 던져 놓고 내가 원하는 기한 안에 응답해 주실 것을 요구하는 것은 참된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도가 가지고 있는 차원은 정말 깊고 다양합니다. 가짜 기도부터 진짜 기도까지, 천박한 기도부터 심오한 기도까지, 잘못된 기도부터 바른 기도까지,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기도와 가짜 기도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기도가 거래인가, 아니면 교제인가입니다.

 

우리가 단지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고 하나님이 거기에 응답하셔서 필요를 채움 받았다면 그건 거래입니다. 쉽게 말하면 물건을 구매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받은 응답이 기적이라 할지라도,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요구만 가득하다면 그것은 거래라는 것입니다. 이는 가장 낮은 차원의 기도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기도의 가장 높은 차원은 교제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인격적인 교제를 하게 되면 나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만 계시면 다른 건 다 없어도 괜찮습니다. 수많은 기도의 용사들이 그렇게 응답받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걸 받았기 때문에 응답이 아닙니다. 그것만 응답이 아닙니다. 받았든 못 받았든, 기도하면서 더 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진짜 응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소명과 헌신으로 끝나는 기도는 가장 높은 차원의 기도입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과 교제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신의 삶을 드려 사명을 이루어드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의 자리까지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앞에 삶을 드리는 가장 깊은 곳까지 갑니다. 이사야를 보십시오. 그가 드린 기도의 결론을 통해 우리는 그가 하나님과 얼마나 깊은 관계 속에 들어가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8)

 

하나님은 마치 혼잣말을 하시듯, 한탄하시듯, 독백하시듯 당신의 속상한 마음을 풀어내시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정말 속상하셔서 그러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 순간 지금까지 들려오지 않았던 하나님의 음성이 이사야에게 들렸다는 뜻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듣지 못하는 하나님의 그 음성을, 세상 모든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하나님의 그 마음을 이사야는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간절함, 가까움, 친밀감, 깊은 관계를 말하기 위해서 그는 이런 파격적인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아무한테도 전달되지 않았던, 그리고 누구도 함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그 마음을 그 순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대답했습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이것은 매우 놀라운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이와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며,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우리가 못 할 게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우리 삶을 다 드려도 괜찮은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러한 관계 속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사실 자신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이사야는 그 뒤로 자신의 삶에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고민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분을 위해 전심으로 삶을 드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받는 것도 행복하지만, 사랑할 때 더 행복합니다.

 

교회 전승에 의하면,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은 이사야의 죽음에 대해 이사야는 므낫세 왕 시절에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톱으로 켬을 당해 죽임을 당했으니 얼마나 끔찍합니까? 하지만 그것은 비참한 이야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소명을 받은 그날부터 자신의 삶을 일관되게 끝까지 달려간 아름다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앞에 삶을 드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명이고 헌신입니다. 헌신 때문에 불가능한 일도 할 수 있고, 절망적인 상황도 이겨낼 수 있고, 어떤 무거운 것도 다 들어 올릴 수 있을 만큼 능력 있는 삶을 살았던 그는 정말 행복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4.   응답으로 이어지는 기도의 요소

 

이사야가 하나님 앞에 결단함으로 드린 고백의 순간, 그가 처음에 웃시야 왕이 죽었던 해에 가졌던 고민과 갈등과 어려움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진짜 응답입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주 앞에 나아갔든지, 우리가 마지막 기도의 결론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거기에 나의 사랑하는 분을 위해서 나의 삶을 드리는 이야기로 끝나면 이전에 가졌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문제가 무엇이든 마지막 기도의 결론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나의 헌신으로 흐른다면 모든 문제는 이미 응답받은 것인 줄 믿으십시오. 이것이 우리 기도의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아시며, 내가 하나님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가 바로 이런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기도는 낮은 차원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를 추구하는 높은 차원의 기도입니다. 이 아름다운 부르심과 그에 대한 응답이 있는 기도를 드리려면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1)  하나님 앞에 나의 마음을 온전히 올려 드리는 것

 

이사야처럼 하나님 앞에 나의 고민과 아픔과 갈등과 분노까지 물을 쏟아 붓듯, 가서 쏟아 부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왜 진짜 기도가 되지 못하고 적당한 선에서 끝납니까? 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2)

 

여기 보면 스랍들이 날기 시작했습니다. 스랍은 여섯 개의 날개 중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면서 찬양하는 천사인데, 이들이 날면서 주의 영광이 나타나 그 옷자락이 성전을 다 덮었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임재의 체험은 두 개의 역사를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자기 선포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통치의 선포입니다.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3)

 

이것이 하나님의 자기 선포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 역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기 선포가 시작되면 그 다음으로는 온 땅이 흔들립니다. 이것이 두 번째 역사입니다.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4)

 

이는 매우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냥 상징에만 머무는 말씀은 아닙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진동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어떤 진동입니까? 바로 내 존재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 판단과 계획, 나의 가치, 나의 정서, 나의 세계관, 나의 기준이 다 바뀌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뒤집어지지 않고는 절대로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모두 가지고 어떻게 응답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저절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의 신비로움입니다.

 

하나님은 바꾸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냥 임재하십니다. 그러면 그 순간 우리의 존재가 떨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뒤집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임재의 역사입니다. 기도에는 이런 임재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3)  죄를 회개하는 것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자신의 죄를 새삼스럽게 깨닫고 그 죄를 보면서 두려움과 죄송함으로 떨며 회개하는 그런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면 반드시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예배의 때마다, 기도의 때마다 왜 울게 됩니까? 지은 죄가 크고 흉악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섰을 때 회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4)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것

 

그러고 나면 넷째로, 치유와 회복이 임합니다.

 

그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6-7)

 

이것이 바로 치유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놀라운 감동을 받습니다. 이사야가 입술의 부정함을 고백했을 때 스랍 중의 하나가 제단에서 부젓가락으로 핀 숯을 하나 집어서 이사야의 입술에 댔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라고 선포합니다.

 

빨갛게 핀 숯이 입에 닿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끔찍합니다. 너무 뜨거워 입이 다 타 버리거나 화상을 입게 될 겁니다. 극심한 고통이 따를 겁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그럴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으실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귀신을 내쫓는 순간 귀신이 나가며 사람들이 바닥에 고꾸라지는데 다친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치유는 이렇게 일어납니다. 언뜻 생각할 때는 그것 때문에 많이 부끄러울 것 같고, 많이 힘들 것 같고, 많이 절망할 것 같지만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내게 자유가 오고, 기쁨이 오고, 찬양과 은혜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치유입니다. 기도 중에 이런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나의 온 존재를 회복시키시는 그 역사, 이것이 바로 진짜 기도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기도생활을 돌아보면서 진짜 기도의 사람이 되어 주님께 쓰임 받는 고귀한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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