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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G89L8BhmPS8?t=1878

 

 

20201118일 수요예배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4

여호사밧: 송축의 기도 - “두려움이 찬송으로 바뀌었나이다

(역대하 201~13)

 

1.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골짜기

 

성경에 나오는 골짜기라는 단어에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진짜 땅에 있는 골짜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시편 23편에서 표현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23:4)

 

사망의 음침한이라는 말은 골짜기의 습성을 잘 드러내주는 표현입니다. 모든 골짜기는 본질적으로 사망의 음침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예들 중 하나가 게헨나입니다(이 동네는 개해나 Gahanna’).

 

게헨나는 구약에서 힌놈의 골짜기혹은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표현되는 예루살렘 서남쪽에 위치한 골짜기를 말합니다. 그런데 헬라어로 쓰인 신약에서는 이 단어가 지옥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골짜기가 주는 이미지가 바로 지옥과 같다는 것입니다.

 

아골 골짜기도 그렇습니다. 찬송가 323<부름 받아 나선 이 몸>2절 가사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아주 힘든 곳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쓰였습니다. 아골 골짜기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당시 범죄한 아간을 돌로 쳐 죽인 골짜기입니다. ‘아골’(아코르)이라는 단어가 괴로움이라는 뜻이고, 그곳에는 시체도 있기 때문에, 결국 아골이라는 단어에 골짜기가 붙으면서 고통과 죽음이 있는 곳을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결코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다면 바로 골짜기입니다. 하지만 그곳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시편 234절에서 다윗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의지해서 살아간다고 말하면서도 삶 가운데 있는 골짜기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골짜기는 우리 삶에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골짜기들이 있습니까?

 

1)  상황의 골짜기

 

어떤 경우 우리는 상황의 골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좋지 않은 경제적 상황이나 질병 같은 건강의 문제 때문에 정말 힘든 상황의 골짜기를 건너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직장이나 사업에서 오는 상황의 골짜기를 건너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골짜기에 들어가다 보면 끝이 안 보이고, 헤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방법이 보이는 것은 사실 골짜기가 아닙니다. 끝이 안 보이고 나갈 길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골짜기인 겁니다.

 

2)  관계의 골짜기

 

아름다워야 될 관계인데 풀리지 않을 경우, 정말 중요한 관계인데 망가져서 회복이 안 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됩니다. 왜 이런 관계의 골짜기에 빠지게 됩니까? 어떻게 관계를 풀어나가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관계의 골짜기에 빠져 있습니다.

 

3)  감정의 골짜기

 

이것은 상황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관계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마음속에 극심한 우울함이나 엄청난 두려움이 생겨서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감, 조절되지 않는 분노, 섭섭한 마음, 떨쳐 버릴 수 없는 열등감 또는 죄책감 등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말 그대로 지옥입니다. 이런 감정의 골짜기에는 빠진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4)  신앙의 골짜기

 

어떤 경우에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인 골짜기를 통과할 때가 있습니다. 의심과 두려움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을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신앙이란 다 헛것이 아닌가 하는 불신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신앙보다 현실이 훨씬 더 커 보이고, 내 믿음보다 상황이 훨씬 확실해 보이는 무력감이 우리를 휘어잡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골짜기들은 모든 사람에게 다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런데 더욱 분명한 것은, 인생이 정말 아름답고 행복하려면 이런 골짜기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골짜기를 통과한다고 해서 소중한 것을 다 잃어버리고 만신창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통과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소중하고 귀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오히려 복을 경험하는 것이 진짜로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2.   은혜를 붙잡고 믿음으로 골짜기를 통과하라

 

참된 신앙은 이런 골짜기를 하나님의 은혜로 통과하고 벗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골짜기를 통과하는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이야기가 하박국의 노래입니다.

 

하박국은 영적인 회의와 신앙의 갈등이라는 골짜기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저 악한 바벨론을 보내셔서 유다를 치시는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의심과 불신과 분노와 절망의 골짜기에 빠져 있던 하박국은, 결국 그 모든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그 유명한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3:17-18)

 

하박국은 골짜기를 통과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나서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그것이 바로 다음 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3:19)

 

상황의 골짜기, 관계의 골짜기, 감정의 골짜기, 신앙의 골짜기를 헤매고 다니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힘과 능력이 되어 주심으로, 우리의 발을 사슴의 발과 같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높은 곳으로 뛰어올라 힘차게 달릴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신앙이고 바로 이런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다니게 하시리로다’, 다니게 하실 것이다.’라는 말은 미래형입니다. 그러니까 이 믿음의 고백을 할 때는 아직 골짜기에 그대로 있는 상태라는 말입니다. 골짜기와 같이 어렵고 힘든 상황이 모두 해결된 것이 아니라 그대로 있지만, 그곳을 벗어나 힘차게 나아갈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려운 것만 골라서 체험하는 것은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은 변한 게 없지만, 높은 곳으로 뛰어다니며 감사하고 찬양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능력입니다.

 

 

3.   두려움을 찬송으로 바꾸는 기도

 

신앙이란, 인생의 어려운 골짜기를 이기고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호사밧입니다. 여호사밧은 남 유다의 네 번째 왕이었습니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진 후, 북 이스라엘에는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된 왕이 하나도 없고 모두 악한 왕들뿐이었습니다. 반면 남 유다에는 그나마 괜찮은 왕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정직히 행했다는 평가를 들은 왕들이 8명인데, 아사, 여호사밧,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요담, 히스기야, 요시야입니다. 그 중에도 다윗의 길로 걸었다는 극찬을 받은 왕이 3명인데,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입니다.

 

세 명 모두 훌륭한 왕이라고는 하지만, 다들 조금씩 안타까운 점들이 있었습니다. 여호사밧도 신앙적으로, 정치적으로 훌륭했지만, 그는 교제권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북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과 친하게 지내다 사돈까지 맺었습니다.

 

아합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과 유다 역사에서 가장 악했다고 평가받는 왕입니다. 그러한 아합과 그의 아내인 악녀 이세벨의 나쁜 점만 골라 닮은 그들의 딸 아달랴를 자신의 아들 여호람과 결혼시키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아달랴가 대왕대비 섭정 비슷하게 유다를 다스리며 모든 다윗 왕가의 왕자들을 죽이는 일이 벌어지도록 틈을 주었습니다.

 

여호사밧은 그렇게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했고, 아합과 연합하여 싸우러 나간 전쟁에서 죽을 뻔한 위기도 겪었지만, 그럴 때마다 기도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려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여호사밧의 신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내용이 오늘 본문인 역대하 20장 내용입니다.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1)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하니” (1-2)

 

암몬과 모압과 마온 사람들, 곧 유다 동쪽에 있는 민족들이 연합해서 유다를 쳐들어옵니다. 한 나라가 쳐들어오는 것과 여러 민족들이 연합해서 쳐들어오는 상황은 매우 다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여호사밧을 두려움에 빠지게 합니다. 그때 그는 무엇을 합니까?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3)

 

여호사밧은 지금 모압과 암몬과 마온의 연합군이 쳐들어왔다는 생각만으로도 두려워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즉 감정의 골짜기에 빠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골짜기에 가만히 서 있지 않았습니다. 말씀에 나온 것처럼,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온 백성과 더불어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그 골짜기의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넷째 날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대하 20:26)

 

브라가 골짜기송축의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조금 전에 살펴본 대로, 골짜기 앞에는 대개 사망의 음침한이나 게헨나아골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붙었는데 여기서는 긍정적인 단어인 브라가가 붙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렇게 두려움으로 시작했던 이야기가 찬송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사밧 골짜기 이야기의 결말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어떤 힘든 골짜기가 닥칠 때 우리는 두려워하게 됩니다. 사실 연합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에게는 결코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로 믿는다면 우리의 골짜기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절망과 패배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마지막에는 반드시 브라가 골짜기로 바뀐다는 사실입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스럽고 기뻐서 사람들 앞에 간증하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내 마음을 다 드려서 주님께 송축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이야기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의 죽음의 골짜기를 송축의 골짜기로 바꿀 수 있었던 길은 기도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기도 외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송축의 골짜기로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앞에서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골짜기가 송축의 골짜기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반전은 기도로 일어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나아가는 기도가 두려움과 사망의 골짜기를 송축과 찬송의 골짜기로 바꾸는 것입니다.

 

찬송가 370<주 안에 있는 나에게> 2절에 보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이것이 여호사밧 골짜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두려움이었습니다. 정말 한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기도를 통해서 노래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의 이야기입니다. 여호사밧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골짜기를 브라가 즉 송축의 골짜기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옛날 여호사밧에게만 그런 하나님이신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4.   결론을 바꾸는 기도의 방법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우리 골짜기의 결론이 송축의 골짜기가 될 수 있겠습니까? 기도할 때 중요한 두 가지 주제가 있는데,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양손에 붙들고 가야 합니다. 이 두 가지만 놓치지 않으면 그 골짜기는 반드시 송축의 골짜기가 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붙드는 기도

 

주 우리 조상의 하나님, 주님은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세계 만민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분이 아니십니까? 권세와 능력이 주님께 있으니, 아무도 주님께 맞설 사람이 없습니다.” (6, 새번역)

 

대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듭니다.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만 상황이 커 보입니다. 세상이 더 강하게 보입니다. 돈이 훨씬 더 힘 있어 보이고, 어떤 현실이 자꾸만 더 커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사람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전심을 다해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통치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은 마귀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이 사실을 끝까지 붙드는 사람이 바로 브라가 골짜기, 곧 송축의 골짜기가 주는 은혜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사밧이 드렸던 기도의 첫 번째 주제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붙드는 기도

 

우리 하나님, 주님께서는 전에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길이 주신 분이 아니십니까?” (7, )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기만 하면 들으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를 붙들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아무리 다른 말로 속삭여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막을 수도 없고 끊을 수도 없습니다. 그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황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의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누가 그것을 좋아하겠습니까? 그것은 사탄이 원하는 결론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상황이 다르게 진행되더라도,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사해서 그 사랑을 붙잡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눈물 흘리며 그 사랑을 붙잡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고통의 골짜기를 송축 골짜기로 바꾸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신앙입니다.

 

마귀가 아주 빠르게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는 마음이 살짝 드는 순간입니다. 마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에 대한 논리를 제공하면서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면 이러실 수는 없지.’라고 하며 우리를 속이려 듭니다.

 

그뿐 아니라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앞에 나아가려 할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들을 끝없이 생각나게 합니다. ‘너 또 죄를 지었잖아. 너 그런 식으로 못된 마음을 먹었잖아. 너 전에 나쁜 짓을 했잖아.’ 그러면서 그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지 않으셔. 그리고 너 같은 사람이 그 높으신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어? 너는 그럴 수 없는 존재야.’라고 계속해서 속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성경을 보십시오. 그러면 그 순간 우리에게 목이 터져라 외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네가 아무리 형편없더라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에 대한 증거가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사랑받을 만해서 하나님이 십자가에 당신의 외아들을 죽게 하신 게 아닙니다. 십자가에 아들을 못 박으셨다는 것은, 그 정도로 우리는 사랑할 수가 없는 형편없는 존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 가운데서 다시 붙잡아야 합니다. 그럴 때 골짜기를 통과할 수 있으며, 그래야 그 골짜기가 브라가 골짜기, 곧 송축의 골짜기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과 그분의 사랑을 붙들기 시작하면 이미 그 자체로 우리 인생의 골짜기는 변하기 시작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브라가 골짜기는 변화 이후에 얻게 된 이름이 아닙니다.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은 순간,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부여잡고 하나님의 사랑을 움켜잡은 순간 그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결론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이미 이긴 겁니다. 이미 축복이 된 겁니다. 그래서 정말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신앙이 된 겁니다. 바로 이것이 여호사밧 골짜기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여호사밧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어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 할지라도 그 골짜기가 브라가 골짜기로 변화되는 바로 이것이 우리의 결론이 되는 우리의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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