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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의심 많은 사도 (요 20:24-29) -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9 (9/09/20)

 

설교 동영상: https://youtu.be/Km7QuFEtK0g?t=1736

 

 

202099일 수요예배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9

도마: 의심 많은 사도

(요한복음 2024~29)

 

1.   도마의 이름과 배경

 

도마에게 붙여진 가장 대표적인 별명은 의심 많은 도마입니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의심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 ‘Doubting Thomas’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이 말은 조금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의미로 붙여진 것인데, 이것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의심이 많았던 제자가 아니라 사실은 질문이 많았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질문을 통해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실 질문을 잘하는 학생이 공부도 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마가 의심이 많은 제자였다고 부정적으로만 접근하기보다는, 질문을 통해 대답을 얻고 주님의 사역을 위해 자신을 드린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4)

 

우리는 이 사람이 두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21:2)

 

이러한 구절들을 통해, 그가 디두모라고 불리기도 했고 도마라고 불리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디두모라는 말은 헬라어이고, ‘도마라는 말은 아람어, 즉 시리아어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4개의 언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은 공식 문서에서 라틴어를 사용했는데, 라틴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극소수였기 때문에 국제적 상거래에 널리 사용되는 헬라어를 공용어로 사용했습니다.

 

신약성경이 헬라어로 기록된 것을 보더라도,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국제공용어였던 헬라어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유대인들, 특히 북부 갈릴리 지역 사람들은 그 전 시대 국제공용어인 아람어(시리아어)를 많이 섞어서 사용했고, 회당에서 구약성경을 읽을 때는 거룩한 언어라고 하는 히브리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언어들을 사용하던 당시 상황에 의해 그는 디두모혹은 도마라고 불렸습니다. 하지만 그 뜻은 같습니다. ‘쌍둥이라는 뜻입니다. 왜 이름이 쌍둥이였겠습니까? 당연히 그가 쌍둥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쌍둥이가 누구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해 말해주지 않습니다.

 

쌍둥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말을 들어보면 굉장히 힘들다고 합니다. 두 명이기 때문에 힘든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두 아이를 똑같이 대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는 것입니다. 두 아이에게 똑같이 해주지 않으면 한쪽이 시기하거나 질투하게 됩니다. 이러한 성장 배경에서 쌍둥이로 자랐기 때문에, 도마는 의심이 많고 질문도 많이 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   도마의 기질과 성격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을 보면 열두 제자의 명단이 나오는데, 그 명단에 당연히 도마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의 행적이나 말에 대해서는 일체의 기록이 없고 이름만 나옵니다. 반면, 유일하게 도마의 행적과 말을 기록한 복음서가 바로 요한복음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도마가 등장하는 세 개의 본문을 발견하는데, 이 세 곳을 읽어보면 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마는 기질상 아주 전형적이고 대표적인 우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기질 속에는 비관적인 측면이 있고, 동시에 꼼꼼하고 섬세한 측면도 있습니다. 또한 완벽함을 추구하는 경향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잘 확인해보고 철저히 행하려는, 우울질에 속하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그 세 본문을 살펴보며 도마의 기질과 성격을 좀 더 알아보기 원합니다.

 

1)  요한복음 11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11:16)

 

요한복음 11장은 나사로의 죽음과 살아나는 사건이 나옵니다. 어느 날 예수님에게 나사로의 누이들이 사람을 보내어 나사로의 병이 위중하다는 것을 전합니다(11:3). 그런데 그때 예수님은 이 소속을 들으시고 바로 달려가서 도와주지 않으시고, 아주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병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11:4, 새번역)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신 다음, 다시 유대 지방으로 가자고 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는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 (11:11, )

 

이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이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밝혀 말씀하셨다. ‘나사로는 죽었다. 내가 거기에 있지 않은 것이 너희를 위해서 도리어 잘 된 일이므로, 기쁘게 생각한다.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믿게 될 것이다. 그에게로 가자.’” (11:14-15, )

 

바로 이때 도마가 등장하는데, 그는 뜬금없이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합니다. 이 말을 그냥 들으면 굉장히 용기 있는 발언 같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나사로에게 가자고 하셨는데 왜 죽으러 가자는 말이 나옵니까? 예수님이 다시 유대 지방으로 가자고 하셨을 때 제자들이 보인 반응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선생님, 방금도 유대 사람들이 선생님을 돌로 치려고 하였는데, 다시 그리로 가려고 하십니까?” (11:8, )

 

10장에 보면 예수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10:30)라고 하셨을 때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고 해서 피하여 온 것인데, 다시 그 위험한 유대로 가자고 하시니까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느끼면서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도마의 행적을 보면 그는 결국 인도까지 가서 용기 있는 순교자가 됩니다. 하지만 죽으러 가시는 게 아닌데 혼자 엉뚱하게 해석하며 이런 말을 한 걸 보면, 그는 특이하고 엉뚱한 면이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2)  요한복음 14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4:3-6)

 

141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라고 하시는데, 왜 이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13장 마지막 부분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이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말씀을 반복하십니다. 그때 제자들은 주님께서 어디론가 간다고 하시니 깊은 근심 가운데 잠겼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말씀이 다시 들려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러면서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나는 거처를 준비하기 위해 어디론가 간다라고 하시면서, “내가 가는 그 길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이 장면에서 도마가 다시 튀어 나옵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이 도마에게서 뭔가를 확인하고 싶고 분명하게 하고 싶은, 완벽주의 특유의 확인과 철저함을 요구하는 제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  요한복음 20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5)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저녁에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마침 도마는 부활 이후 예수님이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그 현장에 없었고, 나중에 다른 제자들을 통해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그가 보인 반응이 무엇입니까?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

 

바로 이 사건 때문에 도마에게 의심 많은 사도라는 별명이 붙여진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그는 부활의 현장을 정말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열망을 그의 말에서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도마를 위해 예수님은 다시 일주일 후 그가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다시 오십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6-27)

 

여기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도 같습니다. ‘너의 생각은 편협한 것이다. 왜 너의 수준에서만 생각하면서 부활을 믿지 못하느냐? 직접 네 손으로 만져보고라도 나는 네가 믿기를 원한다. 너를 가두고 있는 네 작은 생각의 틀을 깨뜨려라. 그리고 믿는 사람이 되어라.’ 그러자 도마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 그럼 제가 만져보겠습니다.’라고 합니까?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8)

 

도마가 정말로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봤는지 아닌지 성경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그 다음 말씀이 힌트를 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29)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라고 하시는 것을 볼 때, 도마는 예수님을 만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짜 만졌다면 너는 나를 만진 고로 믿느냐?’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마침내 진정한 해답을 얻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절망적인 회의론자가 아니라 구도적인 회의론자, 그러니까 답을 얻기 위해 정직하게 질문을 던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도마의 믿음의 단계

 

도마는 의심 끝에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시며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고, 그 주님께 자기 인생을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는 어떤 믿음의 단계를 거쳤습니까?

 

1)  질문의 단계

 

먼저, 질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음속에 의심이나 회의가 있다면 침묵하지 마십시오. 질문해야 합니다. 도마는 의심만 가졌던 것이 아니라, 질문을 했습니다. 이것이 그를 적극적인 구도자로 만들었습니다.

 

질문은 해답의 시작입니다. 인생의 어떤 고통과 갈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고통과 갈등을 품고만 있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고통과 갈등을 말하는 사람은 이미 해결을 시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목장의 나눔이 중요한데, 수박 겉핥기식의 나눔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다른 지체들에게 나는 지금 아픕니다. 나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결코 잘못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쉬쉬 하거나 자꾸 숨기는 사람은 오히려 나중에 문제가 곪아서 터지게 됩니다.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러니 질문을 품고만 있지 말고 나누십시오.

 

도마는 질문을 통해 대답을 얻었고, 우리도 도마의 질문으로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유명한 말씀들을 얻었습니다. 어디로 가시는지 알아야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는 도마의 질문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유명한 대답이 바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14:6)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도마가 질문했기 때문에 이 위대한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특히 자녀가 질문할 때 조그만 게 까불어라고 하지 마시고 그래, 그래하면서 격려하십시오! 질문을 해야 합니다. VIP 분들이나 금방 믿은 분들이 궁금한 게 있을 때 자꾸 질문하라고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2)  교제의 단계

 

둘째는, 질문의 단계를 넘어 교제의 단계가 있어야 합니다. 주변에 교제권이 있어야 합니다. 교제권이 있느냐 없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4)

 

도마는 함께 있지 않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셨어도 뵙지 못했고, 한참 의심하며 회의하다가 나중에야 그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제 장면이 바뀝니다. 이것은 일주일 후의 사건입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6)

 

이번에는 도마가 제자들과 함께 있었고,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18:20, )

 

그래서 공적 예배가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가 함께 모여서 드리는 공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는 의미와 함께, 이웃 사랑의 의미가 똑같이 중요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든지 혼자 예배할 수 있습니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온라인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집에서도 다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예배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성령의 감동이 있습니다. 특히 공 예배는 함께함의 의미가 큽니다.

 

그래서 교회당에 나올 수 있으신 분들은 나와서 함께 예배드리시고, 나오지 못하시는 분들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분들 외에는 녹화를 보는 것보다 꼭 시간을 맞춰서 같은 시간에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마가 이번에는 함께 모인 교제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찾아오셨을 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통령일 때 백악관 앞에 있는 한 교회를 출석했는데, 어느 날 그 교회 사무원이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이번 주일 예배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참석하십니까?” 이때 사무원은 이렇게 답을 했다고 합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참석하실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확실히 참석하십니다.”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주님이 거기 함께 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 함께 모인 그곳, 진정한 교제의 자리, 예배의 자리에서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논리적인 설득으로 도마의 의심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지적으로 잘 설명해 준다 해도 인간의 의심은 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교제의 자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자, 의심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교제의 자리에 떠나지 않고 지킬 때, 영적 체험을 하게 됩니다. 혼자 기도원에 들어가거나 혼자 새벽기도 할 때만 영적 체험을 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영적 체험은 공동체 가운데 일어납니다. 아무리 힘든 사건이 있어도, 그리스도인은 교제의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살아 계신 임재와 믿음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마가 처음에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함께 하지 않았던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낙심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해도, 우리 역시 잠깐 낙심할 수는 있습니다. 마음에 낙심이 될 때 사람들은 대개 다른 사람들을 피하고 예배에도 나오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예배의 자리에 더 나오고, 교제를 더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기를 더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낙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3)  보이지 않는 것을 중시하며 사는 단계

 

우리는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마 도마도 그런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 그분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그 부활의 사실을 신뢰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는 본 고로 믿느냐?” 그러면서 예수님은 보여주셨습니다!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때로 주님이 보여 주십니다. 그러나 보여 주시면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히브리서 111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또 고린도후서 57절은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지만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서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의 본질임을 믿으십시오.

 

 

4.   도마의 사역과 최후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후 도마는 다른 여섯 명의 제자들과 다시 갈릴리 호수로 고기 잡으러 가기는 했어도, 항상 다른 제자들과 함께 하며 교제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혼자 어디로 가지 않고 다른 형제들과 함께 했습니다.

 

사도행전 113절에 나타난 제자들의 명단 속에도 도마가 들어가 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는 대열 속에도 도마가 있었습니다. 도마는 이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활 이후 교제의 자리에 굳게 서 있었습니다.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도마는 페르시아를 거쳐 마침내 인도로 갔습니다. 인도에서 그리스도인을 만나면 그들을 통해 듣게 되는 두 사람의 이름이 있는데, 한 사람은 도마이고, 또 한 사람은 현대 선교의 아버지인 윌리엄 캐리입니다. 선교의 문을 열고 인도를 찾아갔던 윌리엄 캐리와 함께, 사도 도마는 인도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진 인물입니다.

 

그는 인도에 도착해서 복음을 전했고 지금의 첸나이(구 마드라스) 근처에서 전도하다가 그곳 원주민이 던진 창에 찔려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찔림을 당하면서도 무릎 꿇고 기도하며 이 한마디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주를 예배하나이다!”

 

지금도 인도 첸나이에 가면 도마의 무덤과 그를 기념하는 도마 기념교회를 볼 수 있는데, 그 교회 정면에 이런 말이 쓰여 있습니다. ‘주를 예배하나이다!’ 바로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입니다.

 

그는 교제의 자리, 예배의 자리에서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난 후, 평생 그 주님을 예배하며 그 주님을 증거하다가 자신의 생애를 마무리했습니다. 사도 도마의 삶이 남긴 이 감동과 도전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감동과 도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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