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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Qz772ps1Xjo?t=1926

 

 

2020729일 수요예배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3

안드레: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긴 사도

(요한복음 135~42)

 

1.   안드레의 배경과 회심

 

안드레가 어떤 사람인지를 한 마디로 정리해보면, 한 영혼에 대한 비전을 품고 소중히 여겼던 전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드레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동생)입니다. 그는 자기의 형님인 베드로와 함께 어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갈릴리 벳새다 출신으로, 태어난 고향은 벳새다지만 같은 갈릴리 지역 안에 있고 가까운 데 위치한 가버나움에서 성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1:29)

 

여기에 보면,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시몬과 안드레가 함께 언급됩니다. 네 사람은 모두 어부 출신이고, 시몬과 안드레는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 세베대가 운영하는 수산 회사에 속한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네 명이 주로 같이 다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회당에서 나오셨다고 되어 있는데, 이 회당은 가버나움 회당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가버나움 회당에서 나와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실제로 시몬과 안드레의 집은 회당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5년 전 안식월 기간에 이스라엘에 갔을 때 가버나움도 방문했는데, 도시 입구에 ‘Town of Jesus’(예수님의 마을)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버나움 회당 터 바로 옆에 시몬과 안드레의 집터가 고고학적으로 발굴되어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예배당을 지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부였던 안드레가 어떻게 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요한복음 1장에서 안드레의 회심 배경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난번 살펴본 것처럼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자나가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라고 외칩니다. 같은 메시지가 본문에서 반복됩니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5-36)

 

이때 세례 요한의 제자 두 사람이 함께 있었습니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7)

 

여기 보면 그 두 제자가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두 제자가 누구입니까?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0)

 

두 명 중 하나는 안드레라고 나옵니다. 그럼 다른 한 명은 누구입니까? 이름은 안 나오지만 학자들에 의하면 그 다른 제자는 바로 요한복음을 쓴 사도 요한입니다. 그는 자기를 가리켜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묘사했는데, 여기서도 자기 이름을 쓰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때 그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8)

 

예수님이 자신을 따르는 세례요한의 두 제자에게, “너희들은 왜 나를 따라오느냐? 너희가 원하는 게 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때 그들은 또 다시 질문하며 선생님은 어디에 사십니까?”라고 합니다. 왜 이와 같이 엉뚱한 반응이 나온 겁니까? 그것은, 그분이 계신 곳을 알아 두어 그분과 계속 교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때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39)

 

열 시는 우리 시간으로 오후 4시입니다. “와서 보라하시는 예수님의 초청에 두 명의 제자는 가서 계신 곳을 보고 그날 함께 거합니다. 아마 그 교제를 통해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확신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안드레는 그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확신했을 때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형 시몬을 찾아가 외칩니다.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1)

 

이것이 바로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후 그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의 제자가 되었던 회심의 배경입니다.

 

 

2.   안드레의 소명과 사역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나고 고백하는 것이 구원인데, 그렇다면 요한복음 1장에서 그의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자신을 헌신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안드레가 자기의 형제였던 베드로와 함께 소명을 받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16-17)

 

마가복음 114절은 요한이 잡힌 후라고 시작하는데, 그러니까 시간이 꽤 지난 때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설교하던 세례요한이 이제 시간이 지나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다시 만났을 때 베드로와 안드레는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너희는 고기만 낚을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낚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자 이 두 사람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안드레가 소명에 응답하는 순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결단을 베드로보다도 안드레가 주도적으로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나중에는 베드로가 더 중요한 리더가 되었지만, 이 단계에서는 안드레가 주도해서 함께 예수님을 따라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흥미롭게도, 안드레라는 이름의 뜻은 남자답다입니다.

 

순서로 보면, 안드레가 열두 제자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보다 예수님을 먼저 만났고,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먼저 부르심을 받고 가장 먼저 부르심에 응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형제였던 시몬 베드로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두 사람은 성격과 기질에 있어 리더십 스타일 또한 달랐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많은 사람을 거느릴 수 있는 집단적 지도자의 성격이 짙습니다. 아주 다혈질적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도자가 베드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삼천 명이나 회개시키는 놀라운 역사를 행하셨고, 오순절 부흥 운동의 주역으로 베드로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안드레를 전혀 다른 의미의 지도자로 쓰셨습니다. 안드레는 집단적 지도자라기보다는 개인적 지도자, 요즘으로 말하면 일대일 멘토링 스타일의 지도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다혈질이었는데, 안드레는 조용하고 속 깊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아주 따뜻한 남자였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매우 소중한 인물이지만, 그의 인생에 안드레가 없었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결코 쓰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안드레가 베드로를 인도할 때의 상황을 묘사한 내용 가운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2)

 

누가 누구를 데리고 왔습니까? 안드레가 시몬 베드로를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왔습니다. 전도란 무엇입니까? ‘한 영혼을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안드레는 이러한 개인적 인도의 사역, 개인적인 전도 사역에 주로 쓰임 받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12:21)

 

이 말씀에서 그들은 유대인이 아닌 헬라인(그리스 사람), 곧 이방인입니다. 헬라 사람 몇 명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빌립을 찾아가서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면회 신청을 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빌립을 먼저 만나게 되어 그에게 예수님을 만나러 왔다고 했는데, 그러면 빌립이 그들을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직접 가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12:22)

 

안드레는 예수님과 자연스럽고 편한 관계를 맺어, 사람들을 예수님과 만나게 해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전에 베드로를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안드레는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 마치 비서실장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3.   안드레의 사역 스타일

 

이제 안드레의 사역 스타일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안드레는 자신의 기질을 따라 사역을 했을 것입니다.

 

1)  개인적 관심의 사역

 

앞에서 말한 대로, 그는 개인적 관심을 통해 사역하는 개인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베드로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선포자나 설교자의 역할이 아니라 개인적인 관심을 통해 사역하는 스타일로 사역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들은 개인 전도를 할 때 안드레 전도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루에 3천 명을 회개시킨 베드로는 될 수 없어도 안드레는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 이상으로 중요한 사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해오는 교인이라면 무디(D. L. Moody)라는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드워드 킴벌(Edward Kimball)이라는 이름은 잘 모릅니다. 에드워드 킴벌은 바로 무디를 예수님 앞으로 인도한 사람입니다.

 

무디는 젊었을 때 원래 보스턴에서 구두를 고치는 수선공이었고, 킴벌은 보스턴에 있는 한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전도하기를 좋아했던 킴벌은 어느 날 구둣방에 있는 한 청년을 보게 됩니다. ‘, 저 청년의 얼굴을 보니 희망도 없고 절망스러워 보이네. 저 청년에게 복음을 전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 한창 구두를 고치는 중이니까 실례가 되지 않을까?’

 

킴벌은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결국 구둣방으로 들어가 가까스로 입을 엽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래야 형제도 소망을 갖고 구원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어요.” 놀랍게도 이 한마디가 무디의 가슴에 확 꽂혀서 그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결국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하며 미국과 유럽에 큰 부흥을 주도하고 수많은 영혼들을 바꾸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무디가 이렇게 되기까지 그에게는 에드워드 킴벌이라는 사람이 뒤에 있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무디나 베드로는 될 수 없을지 몰라도, 킴벌이나 안드레는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이 같은 개인적 관심을 통한 사역, 이것이 안드레의 사역 스타일이었습니다.

 

 

2)  작은 일에 관심을 갖는 사역

 

개인적 관심을 지불하려면 작은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이 항상 필요합니다. 안드레가 작은 일에 관심을 보이는 예리한 부분들을 성경은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6장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어른만 오천 명, 전체로는 일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먹이는 기적을 예수님이 행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장면에서 안드레의 출현을 보게 됩니다.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와 형제간인 안드레가 예수께 말하였다. ‘여기에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6:8-9, )

 

우리는 흔히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 앞에 갖다 바친 어린아이의 헌신을 소중하게 얘기합니다. 하지만 그 어린아이의 도시락을 발견한 사람은 안드레입니다. 그리고 와서 말합니다. “주님, 여기 아이에게서 얻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까짓 것 가지고 뭘 하겠습니까?”

 

안드레는 의심이 있었습니다. 가져오기는 했지만 이것으로 뭐가 되겠는지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위로가 됩니다. 우리도 뭔가를 하기는 하는데 이게 과연 될지 의심하기도 합니다. 안드레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주님께 나아오는 겁니다. 이런 작은 것에 대한 관심, 바로 이런 관심을 통해서 안드레의 사역이 펼쳐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의심도 있지만 그래도 주님 앞에 가져오는 안드레가 필요합니다.

 

 

3)  2인자의 자리를 기쁘게 수용하는 사역

 

안드레의 또 다른 사역 스타일은 이인자의 자리를 기쁘게 수용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같이 리더십과 비전이 있는 사람은 베드로의 자리에 서서 사역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드레의 은사를 받았다면 안드레의 자리에 성실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안드레를 기록할 때마다 제자들의 리스트에서 베드로 다음 순서로 언급합니다. 또 그에 대해 성경은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위치나 사역에 대해 반발한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는 기쁘게 자신의 자리를 수용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다들 대통령이 돼라’, ‘장군이 돼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봐도 꼭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으며라는 말씀만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꼬리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수많은 이인자, 삼인자, 사인자가 필요합니다.

 

 

4.   안드레의 영향과 최후

 

안드레가 끼친 영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는 직접적인 영향보다 자기가 인도한 사람들을 통해서 영향을 끼쳤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베드로입니다. 그의 형제였던 베드로를 통해 끼친 수많은 역사적 영향을 생각해 보십시오.

 

둘째, 성경이 아닌 교회 역사에서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안드레는 세 나라에 아주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러시아, 스코틀랜드, 그리스입니다. 기독교는 크게 셋으로 나누어집니다.

개신교 외에 가톨릭이 있고, 또 정교회(Orthodox Church)가 있습니다.

 

정교회는 크게 동방과 서방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는 과거에 콘스탄티노플이라고도 불렸던 지금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의 한 다리를 기준으로 나누어집니다. 이 다리를 기점으로 로마는 서쪽에 있어 가톨릭은 서방 교회에 속하고, 동쪽에 위치한 그리스, 러시아 등은 모두 동방 정교회에 속합니다. 대부분의 정교회 전통에 의하면 러시아, 스코틀랜드 그리고 그리스 정교회의 수호성인이 바로 안드레입니다.

 

사도행전 1장의 제자들 명단에 안드레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또한 안드레는 사도행전 2장에서 틀림없이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을 입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흩어졌습니다. 어디로 갔을까요? 안드레가 제일 먼저 간 곳은 아마도 소아시아, 즉 지금의 터키였고 그 중에서도 에베소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북쪽의 러시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러시아에서 복음을 전한 그가 그다음으로 간 곳은 남쪽의 그리스이며, 그곳에서 순교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와 그리스에서 복음을 전할 때 영향을 받았던 그의 제자들이 스코틀랜드까지 가서 그곳에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안드레는 그리스에서 최후를 맞이하는데, 그 스토리가 이렇습니다. 그리스 남부가 아카야 지방인데, 그곳 총독의 부인과 동생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믿지 않던 총독은 믿는 가족들에게 화가 났고, 자기 아내와 동생에게 믿지 말라고 회유했지만 그들은 끝내 거절했습니다. 특히 그의 아내가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버릴 수 없다고 말하자, 화가 난 총독은 안드레를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그 이후로 X자 형태의 십자가를 안드레의 십자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형틀에서 죽기 직전, 그는 총독의 부인과 총독을 향해 죄를 범치 말고 구원받으라는 메시지를 남긴 후 마지막으로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 그리스도 예수여. 나를 받아 주소서. 내가 보았던 그분, 내가 사랑했던 그분, 그분 안에서 나는 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시여! 당신의 영원한 나라의 평안 가운데 나의 영혼을 받아 주옵소서!” 그러고 나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é Esteban Murillo)라는 바로크 화가는 훗날 <성 안드레의 순교>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립니다.

 

Bartolomé_Esteban_Perez_Murillo_-_The_Martyrdom_of_St_Andrew_-_WGA16403.jpg

 

이 그림을 보면, 저렇게 안드레가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는 겁니다. 그 옆에 사람들이 슬퍼하는데 구석에 한 소년의 모습이 보입니다. 저 소년이 오병이어를 가져다 바쳤던 그 소년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 소년이 이때 진짜 와 있었다는 게 아니라, 그것이 화가의 의도였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이 안드레의 인생을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지금도 이탈리아 남부의 아말피(Amalfi)의 성당에 가면 안드레가 X자 십자가에 매달린 동상이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한 사람 비전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베드로나 바울처럼 몇 천 명, 몇 만 명을 전도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안드레처럼 한 영혼의 비전은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내 주변에 있는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지금 상황이 힘들어서 목장이나 교회에 초대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먼저 기도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만날 수 있다면 하나님이 만날 수 있도록 보여주시도록 기도하고, 거리를 두며 만나는 것 등을 먼저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주님, 저를 또 하나의 안드레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한 사람을 주님께 인도했을 때 이 한 사람이 또 그 다음에 어떤 일을 할지 기대감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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