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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_mC04_lVjxU?t=1395

 

 

202056일 수요예배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7

하나님마저 나를 외면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

(이사야 4027~31)

 

[들어가는 말]

 

몇 년 전에 한국의 어떤 목사님이 특이한 경험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날 밤 12시가 넘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울렸습니다. 그때는 오래 전이라 지금처럼 Caller ID로 전화번호가 뜨는 기능이 없었습니다. 잠이 든 시간에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리자 목사님은 깜짝 놀라며 혹시 외국에서 온 전화인가 싶어서 받아보았습니다. 그것은 어떤 여성 신도가 목사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였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제 살 소망이 없어서 죽으려고 합니다. 제 손에는 지금 수면제가 수십 알이 있습니다. 입에 막 털어 넣으려고 하다가, 그래도 목사님 생각이 나서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화를 돌렸습니다.” 그 목사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잠을 자다가 전화가 왔고, 그것도 보통 전화가 아니라 죽겠다는 사람의 전화를 받으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분이 죽고 사는 것이 지금 내가 하는 말에 달려 있구나.’ 하는 생각에 속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자기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남편을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남편은 전혀 변화가 없고 계속해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가출까지 해서 힘들게 했는데, 이번에 또 가출을 했으니, 이제는 돌아올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삶의 소망이 없으니 이럴 바엔 나도 죽어버리자.’라는 생각이 들어 수면제를 사서 이제 먹고 죽으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속으로 기도하면서 여러 가지 말로 권면했습니다. 그 여자 분을 설득하기 위해 굉장히 애를 썼습니다. 결국 그분은 죽지 않기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사실은 목사님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 가능성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죽지 않기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그 후에도 그 여성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조금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어디 그 여성 신도뿐이겠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이 얼마나 거칠고 힘듭니까? 사실 남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문화도 언어도 다른 곳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코로나 사태로 힘든데다가, 전에 뉴욕에서도 그랬는데 아까 뉴스를 보니까 캐나다 밴쿠버에서 가만히 있는 아시아계 여성을 갑자기 백인 남성이 와서 주먹으로 때리고 도망갔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요즘 묻지마식 폭력도 일어나고, 남의 나라에 산다는 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특히 요즘은 인종차별적 폭력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살지만, 우리에게 찾아오는 여러 가지 문제와 어려움으로 좌절하고 절망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 이제는 하나님마저 나를 외면하시는 것이 아닌가하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괴롭고 막막한 상황을 극복하고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1.   절망에 빠진 상황에서 불평하는 이스라엘

 

오늘 본문은 아주 유명한 본문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40장에서 찬양곡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7)

 

여기서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라는 말은, 당시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고통당하는 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이미 북이스라엘은 망했고 남유다는 앗시리아를 넘겼지만 바벨론에게 멸망당해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래서 유다라고 해도 되고 이스라엘이라고 해도 통칭이니까 괜찮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악한 바벨론에게 무너지고 포로로 사로잡혀가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돌아보지 않으신다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라는 말은, 바벨론에 의해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짓밟히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기들을 지켜주시지 않는다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펴지 않으시고 그 백성이 고통을 당하도록 그냥 놓아두셨다고 하는 사실, 바벨론 같이 불의한 대적에게 물어 뜯기게 하셨다는 사실에 심히 탄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거나 오히려 길이 다 막혀버리는 경우를 경험해 보셨습니까?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리고 온갖 어려운 문제가 내게 몰려와도, 하나님은 나의 고통을 아시고 인도해주신다는 것을 믿는 동안에는 결코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마저도 나의 고통을 외면하신다고 느껴지면 절망에 빠잴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극심한 고통 속에서 전혀 자기들을 돌아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향해 이스라엘은 불평과 불만을 터뜨렸던 것입니다. <새번역>으로 읽으면 그것이 더 와 닿습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하느냐?” (27, )

 

어디서 많이 듣던 말입니까? ‘하나님이 내 사정을 모르시나봐. 하나님이 내 권리를 지켜주시지 않네.’라고 우리도 말합니다. 우리 믿는 자의 삶에도 때로 고통과 절망과 좌절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우리도 바로 이러한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똑같습니다. 이런 마음이 듭니다. 인간이면 이런 마음이 안 들 수가 없는데, 그런 마음이 들 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2.   절망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 (28-29)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는 비결이 바로 그 다음에 나와 있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8)

 

이것은 수사학적인 기법입니다. 두 번에 걸쳐서 질문을 합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마치 악몽을 꾸며 신음하는 아들을 깨우는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하는 말씀은 절망의 악몽을 꾸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해결책입니다.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이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절망에서 나오는 비결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능력이고 해결책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세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1)  영원하신 하나님

 

유다가 이전에 자기 땅에서 살았을 때는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하시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서 괴로움을 당하게 되니까 하나님이 자기들을 외면하시고 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는 어느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전쟁에서 져서 끌려가면 이긴 민족의 신이 더 강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어떻게 하나님이 저쪽 신에게 졌냐?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드셨냐?’ 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구원하겠다고 약속해주신 언약의 하나님은 그것을 어기지 않으시고 영원히 약속을 지키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영원히 존재하신다는 의미도 있지만, 영원히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6-8)

 

이 말씀을 가지고 지은 찬양곡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로 약속한 이상,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수천 년이 흘러도,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변해도 여전히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절망과 의심의 성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바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이 주신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약속을 지켜주십니다. 그 약속의 열쇠를 가지고 그것을 사용함으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2)  땅 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

 

땅 끝까지 창조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구원의 약속을 이룰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본 6~8절에서 인생은 마르는 풀과 같고 시드는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영원하시기 때문에 이루시고 또 전능하시기 때문에 이루십니다. 내가 약속대로 할 마음은 있는데 지킬 능력이 없으면 얼마나 답답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실 마음도 있으시고 또 약속을 지키실 능력도 있으십니다. 그 능력이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무한한 능력입니다.

 

그에게는 뭇 나라가, 고작해야, 두레박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 물이나, 저울 위의 티끌과 같을 뿐이다. 섬들도 먼지를 들어 올리듯 가볍게 들어 올리신다. 레바논의 삼림이 제단의 장작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 곳의 짐승들도 번제물로 드리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 앞에서는 모든 민족이 아무것도 아니며, 그에게는 사람이란 전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15~17, )

 

지금 유다에게 닥친 상황을 보면 엄청난 대제국인 바벨론에게 통치와 압제를 당하는 상황입니다. 전쟁에서 패하여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다 파괴되어 포로로 끌려간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엄청난 바벨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벨론뿐 아니라 이집트라든지 그 당시의 모든 강대국들을 다 합쳐놓아도 물 한 방울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물 한 방울을 두려워하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리가 삶 속에서 경험하고 있는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판단하려고 합니다. 내 경험을 통해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라고 하며 내 경험에 하나님을 끼워 넣습니다. 하나님을 제한시킵니다. 그래서 판단이 틀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제대로 평가하고 이해하려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를 보면 됩니다. 창조하신 분이 더 크겠습니까, 창조물이 더 크겠습니까? 창조하신 분이 더 큽니다. 그런데 이 우주가 얼마나 광대합니까? 과학자들이 아무리 측정하려 해도 잘 안 됩니다. 우주의 사진을 보면 정말 신비롭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차원은 우리와는 비교될 수도 없습니다. 엄청난 능력으로 하나도 빠뜨림 없이 다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가끔 뉴스나 유튜브에 보면 신기한 동물들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동물들이 있습니다. 너무 신기하게 생겼는데, 그런 것들을 하나님이 다 만드셨습니다.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로 창조하신, 정말 창조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그런 동물들과 식물들을 하나씩 다 돌보시는데, 당신의 백성을 돌아보시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냥 돌보시는 것이 아니라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 모르신다는 말씀입니다.

 

 

3)  명철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과정에서 무한한 지혜를 가지고 그것을 이루십니다. 고통스러운 일을 당할 때 눈을 감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이 문제가 지나가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눈을 뜨면 문제가 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이 눈을 뜨는 동시에 지금의 문제가 사라지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눈을 떠보십시오. 문제가 해결됩니까? 그렇게 기도하고 눈을 떠도, 문제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당장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하며 기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한 뜻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가장 좋은 때를 기다리십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네 땅에서 살 때가 가장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 속에는 바벨론 포로의 생활이 오히려 변장된 축복인 것입니다. 저번에 살펴본 것처럼, 정말 고난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대부분 내 방식대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내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최고의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항상 최고의 것을 최상의 때에 최선의 방법으로 공급해주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하겠습니다.

 

영국 출신으로 아프리카 선교사였던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이 하루는 마차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길을 가던 중 어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리빙스턴은 그 사람이 불쌍해 보여서 마차에 태워주었습니다. 하지만 원래도 무거운 짐을 싣고 갔는데 사람과 짐을 더 태웠기에 얼마 가지 못해서 마차가 고장이 났습니다. 결국 그날 세웠던 모든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저기 가려고 했는데 고장이 나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 얼마나 화가 나는 일입니까? 그냥 가다가 그랬어도 화가 났을 텐데, 힘들어 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선행을 베풀었는데도 왜 하나님이 이런 나쁜 일이 생기게 하셨습니까? 정말 이해가 안 가고 화가 나는 일입니다. 충분히 하나님께 불평과 원망을 할 만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가 나중에 알고 보니까, 자기가 그때 가고 있었던 바로 그 마을에 강도들이 나타나서 주민 60명을 죽이고 모든 것을 약탈해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사고가 난 마차만을 보면서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만 보면서 화가 나고 좌절하고 낙심합니다. ‘내가 이렇게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했는데도 왜 하나님은 내게 해가 되는 일을 허락하시는가?’ 하고 분노하며 원망합니다. 내가 원하던 일이 안 되고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이 탁 막히면 실망하고 낙심합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도 묵상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교회생활도 잘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데, 왜 하나님은 내 길을 열어주지 않으시고 응답을 안 해주시는가?’ 하며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내 앞길을 미리 내다보시고 무한한 지혜로 이끌어주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무한한 명철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설명해주셔도 우리가 이해를 못 하니까 설명을 못하십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이 지금 내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지 이해하지 못해서 화가 나고 답답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다 한 번이나 자주가 아니라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이 완전하신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나의 인생 역시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23:9)

 

하나님이 분명히 일을 하시기는 하시는데 어디에서도 그분을 만날 수가 없고 뵐 수도 없다고 욥은 탄식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구절을 보면,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하며 그 고통의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23:10)

 

이것도 찬양곡으로 지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과 지혜로 당신의 백성을 위한 구원 계획을 완벽하게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으며 나아가기 원합니다.

 

 

3. 주 여호와를 앙망하라 (29-31)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끌어내실 계획을 이미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날이 올 때까지 어떻게 한다고 하십니까?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29)

 

이처럼 하나님은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공급해주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능력을 받아서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3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이 주님의 능력을 받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무나 주님의 능력을 받아서 체험하는 게 아니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오직 주님께만 소망을 두는 자가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앙망한다고 할 때 거기에는 세 가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뢰와 소망과 인내입니다.

 

아까 아주 오래 된 찬양곡 하나님의 음성을을 불렀습니다. 그 찬양곡만 생각하면 오래 전 기억이 떠오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펜실베이니아에 유학하던 교회 선배와 같이 코스타(KOSTA, 북미유학생수련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찬양인도자가 여자 분이었는데 그분이 이 노래를 인도했고, 그 다음 해에도 갔더니 그분이 또 이 노래를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유명한 뮤지컬인 <명성황후>에 나온 분이었습니다. 그 생각이 납니다.

 

“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4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40:1-4)

 

주님을 향한 신뢰와 소망을 품고 인내로 기다렸더니, 주님께서 내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져주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셔서 견고하게 딛고 일어서게 하셨으며, 또 내 입에 감격의 새 노래를 주셨다고 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얼마나 귀한 고백입니까?

 

성급한 사람은 초조해서 막 급하게 일을 처리하다가 자신을 무너뜨리고 일도 망칩니다.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소망 가운데 인내로 기다리는 사람은, 그냥 보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조용히 기다리면서 주님으로부터 새 힘을 얻는 사람입니다.

 

이런 면에서, 여호와를 앙망한다고 할 때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지,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닙니다. 간절히 주님을 향해 조용히 기다리면서, 신뢰와 소망과 인내 가운데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앙망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주님이 해주시겠지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닙니다. 농부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밖에 나가서 해야 할 일을 하나도 안 하고 쟁기질과 모내기를 전부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실 것이라고 있으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습니까. 캘리포니아에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발 제가 로토에 당첨되게 해주십시오. 로토가 되기만 하면 헌금도 하고 좋은 일도 하고 가난한 사람도 돕겠습니다. 로토에 당첨되게 해주십시오.”라고 하면서 40일 작정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드디어 하나님이 응답을 주셨습니다. “제발 로토 한 장만 사다오.” 로토를 사야 당첨이 되지 않겠습니까? 사지도 않고 무슨 로토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합니까?

 

믿음의 사람은 무조건 믿슙니다!’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은 마냥 믿습니다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정말 신뢰하는 가운데 신뢰하기 때문에 기도하고 믿으면서 그럼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으며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앙망한다고 해도 우리가 가진 힘이나 수단이 전혀 없을 때도 있습니다. 사방을 돌아보아도 속수무책이고 어떻게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께서 정말 놀라운 방법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호와를 앙망할 때 새 힘을 얻는 것은 어느 정도의 힘입니까? 30절을 다시 보면, 소년(젊은이)은 인생의 아침에 핀 싱싱한 꽃과도 같은 사람이고, 장정은 청년 중에도 힘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인생의 전성기에 활기와 힘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도 피곤하고 곤비하며 어려움이 올 때 넘어지고 쓰러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말씀을 하십니까? 바로 뒤에 나오는 말씀과 대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새번역>으로 다시 읽겠습니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30-31, )

 

 

[나가는 말]

 

20세기 교회성장학의 대가였던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 교수가 있습니다. Fuller 신학교에서 가르쳤던 맥가브란 교수는, 은퇴 후 80대가 되어서도 신학교들을 순회하며 강의했습니다. 하루는 어느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는데 학생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80대의 나이였지만 세계 교회의 상황을 마치 손바닥에 올려놓은 것처럼 정확히 꿰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 자리에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 한국 신학생들이 한국 교회에 대해서도 질문했는데, 맥가브란 교수는 통계까지 정확하게 대면서 답을 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60세부터 한 일이 그 이전에 한 일보다 더 많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모든 학생들은 더욱 놀랐다고 합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고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다는 말씀이 그대로 맥가브란 박사에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많은 폭풍우가 있고, 우리는 그 폭풍을 통과합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그러나 마침내 우리는 소망의 항구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오늘의 폭풍우의 삶을 희생자나 패배자로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자로서 직면하고 통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포기해도 그리스도인은 선한 일을 위해 그 자리에서 버티는 사람들입니다. 남들이 다 불평하고 원망할 때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송하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주님마저 나를 외면하신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것은 정말 느낌일 뿐입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지금도 사랑의 눈길로 우리를 지켜보시고 보호하고 계십니다. 오직 주님을 앙망함으로 새 힘을 얻어서,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능력으로 승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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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고난 받는 자녀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라 (습 3:14-17)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9 (5/20/20) kpccoh 2020.05.21 1462
250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 (히 11:5-7)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8 (5/13/20) kpccoh 2020.05.14 1938
» 하나님마저 나를 외면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 (사 40:27-31)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7 (5/06/20) kpccoh 2020.05.07 2573
248 문제로 인하여 앞길이 안 보일 때 기억할 것 (엡 1:15-23)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6 (4/29/20) admin_p 2020.04.30 657
247 고난은 위장된 축복이다 (시 119:65-75)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5 (4/22/20) admin_p 2020.04.23 4145
246 힘든 상황에도 낙심하지 않고 기뻐할 수 있는 비결 (고후 4:7-18)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4 (4/15/20) kpccoh 2020.04.16 3381
245 성경의 예언을 이룬 예수님의 죽음 (요 19:23-30) -성금요일예배 (4/10/20) kpccoh 2020.04.11 1407
244 힘든 상황에서도 풍성한 삶을 사는 비결 (신 11:8-17)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3 (4/1/20) admin_p 2020.04.02 1952
243 평안의 비결을 배우라 (빌 4:1-13)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2 (3/25/20) admin_p 2020.03.26 1468
242 불안하고 두려울 때 하나님을 바라보라 (출 15:22-27)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1 (3/18/20) admin_p 2020.03.24 1310
241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1-7)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13 (3/4/20) kpccoh 2020.03.05 1072
240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눅 7:24-30)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12 (2/26/20) kpccoh 2020.02.27 1557
239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왕상 18:20-40)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11 (2/19/20) kpccoh 2020.02.20 1380
238 "하나님, 거기 계신가요?" (창 8:1-6) (2/12/20) - 조준오 목사 kpccoh 2020.02.13 267
237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사 6:1-8)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10 (2/05/20) kpccoh 2020.02.06 1311
236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출 4:1-7)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9 (1/29/20) kpccoh 2020.01.30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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