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특별예배

HOME > 설교와칼럼 > 수요예배/특별예배

https://youtu.be/DDgDR9IrI4Y


2020318일 수요예배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1

불안하고 두려울 때 하나님을 바라보라

(출애굽기 1522~27)

 

[들어가는 말]

 

오늘부터 당분간 수요예배도 라이브영상예배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말씀을 전할까 생각하다가,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 동안 하던 시리즈를 잠시 중단하고, 이전에 제가 했던 설교들 중에서 고통이나 어려움, 염려, 믿음 등에 관련된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마라가 있으면 엘림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22-23, 27)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압제에서 벗어나 홍해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홍해가 쫙 갈라져서 물이 벽처럼 쌓이고 이스라엘은 그 사이의 마른 길로 통과하게 됩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그런 기적을 체험하고 나자,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가나안 땅까지 가는 것은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기들의 앞에는 영광스런 승리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그들은 홍해를 건넌 후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자마자 수르 광야에서 물 없는 삼일 길을 여행하게 됩니다. ‘수르라는 말은 이라는 뜻으로,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을 나누는 경계였던 것 같습니다. 이 수르 광야는 사막이기 때문에 모래와 자갈들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이런 곳을 통과하려면 물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3일을 걸어가도 물이 없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2)

 

기후가 좋은 땅에서 3일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하는 것과, 사막 길에서 3일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하는 것은 상당히 다릅니다. 사막에서 가장 힘든 것이 갈증입니다. 중동에 여행을 가면 꼭 물을 담아서 다니라고 할 정도로 물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은 장정만 60만 명이었으니까,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합치면 200만 명 이상 될 정도로 엄청나게 큰 무리였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3일 동안 물이 없는 상황에서 행진해나가는 것을 상상해보십시오. 특히 어린아이들이 물 좀 달라고, 목말라 죽겠다고 소리쳤을 텐데, 그것을 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땠겠습니까?

 

아무리 구름기둥이 낮에 보호해주고 있었어도 3일 동안 물이 없이 가야 했기 때문에, 하늘에는 시체를 찾는 독수리들이 쫓아서 날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어린 자녀들의 입술은 까맣게 타서 갈라진 채로 서럽게 울었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말 막막할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3일 동안 물이 없이 고생하고 헤매다가 어떤 곳에 도착해 보니, 드디어 거기에 그들이 그토록 찾던 물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너무나 흥분되고 신이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기쁨은 곧 실망으로 바뀝니다.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3)

 

그곳 물이 너무 써서 한 모금도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마라라고 하는데, 히브리어로 쓰다라는 뜻입니다. 마실 물이 없는 것도 괴롭지만, 이제 물이 있다고 좋아했다가 마실 수 없는 물인 것을 발견했을 때 더 화가 나고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27)

 

우리는 3일 동안 물이 없는 상황이나, 드디어 물을 찾았지만 마라의 쓴 물 같이 도움이 안 되는 환경을 만나게 되면, 그런 상황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보면, 마라가 지나고 난 후에 엘림에 도착합니다. 사실 마라와 엘림은 불과 5마일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입니다. 그러니까 어른들의 걸음으로 두 시간 정도만 걸어가면 되는 가까운 거리입니다. 불과 5마일 거리, 그저 두 시간 거리에 엘림이 있는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전혀 모른 채, 그리고 전혀 기대도 못한 채, 좌절과 원망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좋은 때에는 기뻐하고, 어려운 때에는 생각하여라. 하나님은 좋은 때도 있게 하시고, 나쁜 때도 있게 하신다. 그러기에 사람은 제 앞일을 알지 못한다.” (7:14, 새번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쁜 때를 허락하실 때 그 어려운 때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느끼게 되면 좌절과 원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때를 주신 하나님은 좋은 때도 반드시 주십니다. 마라의 어려운 환경이 있으면 그 다음에 엘림도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진리를 기억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피곤하고 지친 삶에서 나오는 첫 번째 비결입니다.

 

 

2.  원망하면 오히려 망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24)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러한 진리를 믿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4)

 

3일 동안 전혀 물을 찾을 수 없다가 드디어 물을 발견했는데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쓴 물이어서 원망하게 된 것은 사실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이 풍부한 이집트 땅에서 살다가 이제 물이 없는 광야로 나왔기 때문에,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 익숙하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주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고전 10:10)

 

여기서 그들은 바로 이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원망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쓴 물이 쓴 마음으로, 쓴 뿌리로 변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15장은 1절부터 본문 바로 앞부분인 21절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들은 홍해를 육지와 같이 건너고 난 뒤, 온 민족이 함께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우렁찬 찬송을 올려드렸습니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1-2)

 

놀라운 찬송을 주님께 올려드린 것입니다. 얼마나 굉장한 장면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이 찬양을 드리는 동안 자기들이 완전히 믿음의 백성인 줄 알았습니다. 자기들에게는 불신앙이 전혀 없는 것처럼 느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하며 벅찬 마음으로 이 찬송을 올려드렸습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찬양과 경배를 드린 그때부터 3일 동안 물을 얻지 못하자, 그 좋던 신앙, 그 엄청난 찬송을 올려드리던 믿음을 다 까먹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을 찬양하던 것이 진짜 신앙이 아니라 가짜였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상황이 잘 돌아가고 엄청난 기적을 체험할 때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하고 외쳤지만, 약간의 어려움을 당하니까 아이고 죽겠네. 왜 우리를 여기로 데려와서 다 죽이냐?”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대들었습니다. 그래서 망했습니다. 결국 40년 광야생활을 통과한 사람은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1세대 가운데에는 단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 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왜 광야에서 다 망했습니까? 입술로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원망하는 소리를 듣고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확실히 망하는 법이 여기 있습니다. 원망하면 됩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면 아주 확실하게 망합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라와 같은 상황에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데, 그럴 때 원망하고 불평하면 속이 후련합니까?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후련하고 시원한 것이 아니라, 더 답답하고 더 화가 나다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대신 기도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왜 원망하고 싶지 않고 불평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도 뭔가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하며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원망할 줄 몰라서 원망을 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원망하면 결국 망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유는 모세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상황이 잘못되니까 대통령이 잘못해서 그렇고, 정치 지도자들이 잘못해서 그렇고, 어느 나라 때문이라고 합니까? 물론 사람들의 실수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하고 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특히 리더가 잘하지 못할 때, 내가 보기에 바른 길로 가지 못할 때,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내가 비난한다고 그 사람이 바뀌지 않습니다.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바꾸어주실 수 있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잘하든지 못하든지, 우리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원망과 불평입니다. 내가 원망하고 불평한다고 무엇이 바뀝니까? 대신 기도해주십시오. 당연히 사람이니까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고, 최고 수준으로 할 때도 있지만 실수하는 것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불평과 원망 대신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근처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볼 때 잘못하는 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욕하고 비난하거나 뒤에서 험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긍휼의 마음, 안타까워하는 마음, 아껴주는 마음, 잘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뒤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면 그것이 바로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금 이런 순간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위정자들이나 지도자들을 비난하거나 원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고 또 우리가 살 길입니다.

 

 

3.  마라가 엘림보다 낫다는 것을 기억하라 (25-26)

 

놀랍게도 하나님은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물을 변화시켜주십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 새” (25)

 

19세기 최고의 설교자라고 꼽히는 영국의 찰스 스펄젼(Charles Spurgeon) 목사가 여러 설교들을 했는데 그 중에 마라는 엘림보다 낫다라는 설교가 있습니다. 그 설교를 하기 직전에 스펄전 목사가 말에서 떨어져 몹시 아프고 괴로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잘 아는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이제 마라에 오셨군요.” “, 물맛이 참으로 씁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말합니다. “그러나 목사님, 마라가 엘림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엘림에는 물이 있고 열매들도 있지만, 물을 마시고 열매들을 먹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잖습니까? 그러나 마라에서는 하나님께서 법도와 율례를 주셨는데, 이 법도와 율례는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 말에 감동을 받은 스펄전 목사가 영감을 받아서 마라는 엘림보다 낫다라는 설교를 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본문을 보면, 실제로 마라에 대한 기록은 23절부터 26절까지 걸쳐 있는데 비해, 엘림에 대한 것은 27절 한 절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마라에서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말씀을 주셨습니다(25). 거기서 법도와 율례를 주셨고, 새로운 약속도 주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6)

 

그래서 마라가 엘림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난 때문에, 나는 주님의 율례를 배웠습니다.” (119:71, )

 

우리는 마라와 같은 환경을 만날 때 이 마라가 결코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다음에는 엘림이 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마라에 처해 있는 동안 마라가 엘림보다 더 낫다는 사실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마라는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복이 되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게 됩니다.

 

25절을 다시 볼 때,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역사해주십니다. 이것을 잘 보십시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하고 불평할 때 그들에게 나가서 당신들, 왜 이러냐?’ 하고 야단치며 반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외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즉시 응답해주셨습니다.

 

혹시 다른 사람이 나를 향해 원망이나 불평을 하는 것이 들린다면, 그때 내가 해야 할 일은 나가서 맞서 싸우거나, 그 말이 맞다 틀리다 하며 따지고 설명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억울할 수 있습니다. 억울하게 말도 안 되는 비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억울하다고 같이 붙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분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 사람에 대해 욕하고 분통을 터뜨린다고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억울하고 답답할수록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곳은 하나님 앞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 꿇고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주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받은 지혜로 나아가서 행할 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내가 혼자 처리하려 하면 일이 더 꼬일 수 있습니다. 주님께 맡기고 나아가야만 합니다. 지금처럼 상황이 어려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습니까? 조심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릎 꿇고 부르짖을 때 주님은 분명히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유명한 찬송가 작사가 중에 패니 크로스비(Fanny Crosby, 1820-1915) 여사가 있습니다. 신앙이 좋은 부모님과 할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자신이 태어난 지 6주 만에 시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늘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설교를 들었어도 아무 감동이 없었습니다. 죽음 이후에 천국에 갈 확신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나를 이렇게 만드셨는가?’

 

그러던 중 크로스비는 마침내 30이 되던 해에 교회 전도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거기서 주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주님을 영접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스스로 제 인생을 고쳐보려 노력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젠 주님이 제 삶을 맡아주시고 주관해주십시오.”

 

그 후에는 자기가 맹인인 것 때문에 어둡게 살거나 불평 불만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는 꽃들, 나무들, 풀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와 시냇물 소리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발견했고, 또 주님의 사랑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신앙의 고백을 시로 담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찬송시를 8천여 곡이나 지었습니다. 너무 놀랍습니다.

 

우리 찬송가에도 많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이런 곡들이 있습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288),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176),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540),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565), 인애하신 구세주여”(279), “나의 갈 길 다가도록”(384),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391),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435)... 너무 많습니다.

 

크로스비 여사는 가는 곳마다 찬송을 하다가, 94세에 평안하게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녀가 자기 인생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했을 때는 기쁨도 노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평불만과 원망을 거두고 감사의 눈으로 자기가 처한 환경을 바라보니까, 모든 것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었습니다.

 

마라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개입해주셨습니다. 한 나무를 지시하시고 그것을 물에 던져 넣으니까 물이 달게 변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실제로 플로리다(Florida)나 남미의 페루나 인도에는, 쓴 물에 던지면 물이 달게 되는 나무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동 지역 토착민인 베두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마라에는 그런 나무가 없었습니다. 쓴 물을 달게 하는 나무는 그곳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 계셨습니다. 쓴 물을 달게 한 것은 사실 나무가 아니라,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라의 쓴물을 단 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을 주셨습니다(25b-26). 법도와 율례를 주시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라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순종하면 치유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셔서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생의 쓴 물을 단 물로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가는 말]

 

지금 우리는 광야에서 물이 없어 다급해하고 불안해하는 이스라엘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마라와 같이 쓴 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금 많은 것들을 쌓아놓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하고 두려운 상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마라가 있으면 반드시 엘림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옵니다. 그리고 동시에 불평과 원망을 할 때 망한다는 사실도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비록 쓴 물이 있는 마라이지만 오히려 엘림보다 더 낫다는 사실, 그러니까 마라의 쓴 물을 통해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또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이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하여 우리가 교회에 모여서 예배드리지도 못하고고, 목장으로도 모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 서로 만나는 것이 꺼려지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번이 진정한 우리 믿음의 시험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이 일을 계기로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안 하니까 뒤에서 적당히 하다가 아예 멀어지느냐, 아니면 더 신실하게 하나님을 붙들고 신앙생활을 잘해나가느냐, 우리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보통 교회에 온다,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린다고 말하지만, 교회 건물에 오는 것은 맞지만, 교회에 온다기보다는 우리가 곧 교회입니다. 우리가 모였을 때는 모인 교회, 흩어져 있을 때는 흩어진 교회입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알려주는 바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로서 어디에 있든지 참된 예배자로서,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와 늘 함께해주시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고, 그래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참된 믿음의 백성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55 극심한 고통의 순간에 드러나는 참된 믿음 (욥 1:13-22)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13 (6/17/20) kpccoh 2020.06.18 1337
254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고후 12:7-10)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12 (6/10/20) kpccoh 2020.06.11 753
253 절망의 끝에서 소망이 시작된다 ( 룻 1:19-22)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11 (6/03/20) kpccoh 2020.06.04 2316
252 심지가 견고한 자에게 주시는 평강 (사 26:1-4)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9 (5/27/20) kpccoh 2020.05.28 2399
251 고난 받는 자녀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라 (습 3:14-17)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9 (5/20/20) kpccoh 2020.05.21 1464
250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 (히 11:5-7)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8 (5/13/20) kpccoh 2020.05.14 1940
249 하나님마저 나를 외면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 (사 40:27-31)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7 (5/06/20) kpccoh 2020.05.07 2577
248 문제로 인하여 앞길이 안 보일 때 기억할 것 (엡 1:15-23)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6 (4/29/20) admin_p 2020.04.30 657
247 고난은 위장된 축복이다 (시 119:65-75)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5 (4/22/20) admin_p 2020.04.23 4151
246 힘든 상황에도 낙심하지 않고 기뻐할 수 있는 비결 (고후 4:7-18)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4 (4/15/20) kpccoh 2020.04.16 3383
245 성경의 예언을 이룬 예수님의 죽음 (요 19:23-30) -성금요일예배 (4/10/20) kpccoh 2020.04.11 1407
244 힘든 상황에서도 풍성한 삶을 사는 비결 (신 11:8-17)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3 (4/1/20) admin_p 2020.04.02 1954
243 평안의 비결을 배우라 (빌 4:1-13)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2 (3/25/20) admin_p 2020.03.26 1472
» 불안하고 두려울 때 하나님을 바라보라 (출 15:22-27)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1 (3/18/20) admin_p 2020.03.24 1311
241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1-7)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13 (3/4/20) kpccoh 2020.03.05 1072
240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눅 7:24-30)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12 (2/26/20) kpccoh 2020.02.27 1557
239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왕상 18:20-40)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11 (2/19/20) kpccoh 2020.02.20 1385
238 "하나님, 거기 계신가요?" (창 8:1-6) (2/12/20) - 조준오 목사 kpccoh 2020.02.13 267
237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사 6:1-8)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10 (2/05/20) kpccoh 2020.02.06 1311
236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출 4:1-7)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9 (1/29/20) kpccoh 2020.01.30 1567


9480 S. Old State Rd, Lewis Center, OH 43035 / Tel: (614) 433-7155 / E-mail: kpcco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