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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4일 수요예배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13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사도행전 191~7)

 

1.   거룩한 영이 내 안에 계시느냐는 질문

 

어제 <새로운 삶> 공부가 있었는데, 마침 성령님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성령님은 살아 계셔서 지금도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능력이시고, 치유이시고, 회복이시고, 생명이시고, 우리의 길을 밝히 인도하는 인도자가 되십니다.

 

그런데 성령에 대해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령을 어떤 비인격적 물건이나 성령을 받으라고 하니까 기나 에너지처럼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인격체이시며, 무엇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창조의 영이십니다(1:2). 창조 시 수면 위에 하나님의 영즉 성령님이 운행하셨습니다. 흔히 성령을 생각하거나 성령 충만한 사람을 떠올리면, 아주 뜨겁고 뜨겁다 못해 다소 질서가 흐트러지고 규모가 없고 절제력을 잃어버린 잘못된 모습을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질서를 잡아 주시는 분입니다.

 

천지창조의 역사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얼마나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졌습니까? 뿐만 아니라 혼란스러운 인생 가운데 성령이 임하시면 기준을 잡아주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특별히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십니다. 성령님이 임하실 때 우리의 죄가 드러납니다. 어두운 데에 조명을 비추면 다 드러납니다. 어둡고 깜깜하면 지저분한 것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데, 조명만 들어오면 다 보입니다. 바로 그런 것이 성령의 조명입니다. 우리에게 빛을 조명해주시니까 죄가 드러납니다. 거룩하신 성령님이 임하시면 마치 어두움 가운데 빛이 임하면 어두움이 사라지듯 우리의 죄악 된 것들이 다 드러나면서 회개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정결하고 거룩하게 됩니다.

 

또한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 영이 나를 위하여 증언하실 것이다.” (15:26, )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일러주실 것이요,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6:13, )

 

지금 한국 코로나19 사태에서 대구 쪽에 굉장히 많이 퍼진 이유는 신천지 때문입니다. 신천지의 특징 중 하나가 교리 중에서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안 하고 모략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략이라는 단어를 써서, 필요하다면 모략을 사용하여 목적을 이루어도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어처구니없이 잘못 해석한 겁니다. 모략은 거짓말이라는 뜻이 아니라, 지혜로운 계획이나 조언을 이야기합니다. 그게 무슨 거짓말을 뜻합니까?

 

이 구절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거짓의 영이십니까? 진리의 영이십니다. 그런데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모신 사람이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교리입니다. 그러니까 신천지가 거짓입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신데, 놀랍게도 자신을 증거하시는 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분입니다. 같은 성경 말씀을 보아도 인간적인 눈으로 보는 사람이 있고, 성령님의 조명하심에 따라 진리를 깨달으면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나 자신도 어떤 때는 대충 읽으며 머리로만 파악할 때가 있지만, 어떤 때는 성령님이 조명을 비추어주셔서 아니, 여기에 이런 말씀이 있었나?’라고 놀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성령님의 조명이고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역사와 초자연적인 기적이 나타납니다. ‘초자연적이라고 하니까 뭐가 부러졌는데 만지면 붙는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럴 때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습니다. 초자연적이라는 말은 자연스럽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것을 초월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바로 그것이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5:22-23, )

 

성령의 열매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니까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서, 이전에 사랑하지 못하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전혀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뻐하게 되고, 마음이 불안한 상황에서 화평을 누리게 되고, 너무 급한 성격인데 인내하게 되고, 퉁명스러운 사람이 친절하게 되고, 선을 행하게 되고, 신실 즉 한 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게 되고, 또 온유하고, 절제하는 사람으로 변화가 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가 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2.   성령님은 언제 어떻게 임하셨는가?

 

성령님은 약 2천 년 전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 기도하고 있던 120여 명의 성도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어떻게 임하셨습니까? 홀연히 하늘로부터 임하셨습니다. 구약시대 때는 왔다 갔다 하셨습니다. 임하셨다가도 떠나시고 다시 오시고 그러셨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는 믿는 자들에게 오셔서 영원히 함께 해주십니다.

 

성령님은 이 땅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그때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서 그들이 있던 집을 가득 채웠고,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했습니다(2:2-4). 성령님이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신 것입니다. 귀에도 들리고 눈에도 보이게 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바리새인이면서 유대인의 관원 즉 공회원인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때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3:3).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질문합니다.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3:4, ) 자연스러운 질문이니다. 이에 예수님은 다시 대답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3:5, ).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한 것을, 너는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 (3:7-8, )

 

당시 사람들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가는 방향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바람이 존재하며 바람은 분명히 분다는 것입니다. 바람이 분 것은 다 느끼고 압니다. 그런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는 겁니다. 눈으로 바람을 볼 수는 없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나 물결을 보면서, 또 내 얼굴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면서, 바람이 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도 그와 같다는 겁니다. 분명히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 거듭난 사람, 구원받은 사람은 , 내가 구원받았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구나.’ 하는 것은 분명한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신비로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신비롭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어릴 때 모태신앙으로 믿는 부모님의 자녀로 태어났기 때문에 특별히 변화된 경험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도 돌아보면, ‘예수라는 분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오신 분인데 이게 보통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까? 그런데 믿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데, 그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비한 일입니다. 어떻게 이런 것을 믿을 수 있을까? 참 놀랍습니다.

 

내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분명한데 어떻게 그것을 믿고 있는지 참 신비로운 일입니다. 논리적인 일이 아니라 정말 신비로운 일입니다. 바람이 분 것은 확실한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참 신비로운 일입니다.

 

성령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바람같이, 어떤 사람에게는 불과 같이 임하십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는 비둘기같이 임하셨습니다(1:10).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아 찬양의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찬양이 줄줄 나옵니다.

 

오래 전 미국에 와서 대학교를 다닐 때 한국에서 유학 온 대학원생과 룸메이트를 했습니다. 그 형이 코스타(KOSTA)에 다녀오더니 얼굴이 확 밝아졌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했더니 자기가 코스타에 가서 예수님을 믿었다는 겁니다. 그 후부터는 샤워를 할 때마다 예수 사랑해요”, “목 마른 사람같은 찬양곡을 마구 부르는 겁니다. 그렇게 사람이 변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아서 용서의 사람이 됩니다.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아 기도의 사람이 되어서 기도가 깊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남들보다 깊이 연구하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다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나뉘고 시기하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함께 힘써야 합니다. 성령의 체험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3.   성령 충만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무엇보다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살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2:28, )

 

여기서 나의 영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면 세상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도행전에서 일어난 역사입니다. 바로 이 요엘서 말씀을 가지고 베드로가 이 말씀이 오늘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사도행전 2장에서 설교했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한 번 사는 인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전에 예수님을 다 배반하고 도망갔던 제자들이었는데, 성령을 받고 담대하게 변화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작은 여종이 와서 당신도 저 사람과 같이 있었죠?’라고 했을 때 아니라고 떨면서 부인했던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완전히 변화되어서 예수님을 잡아 죽인 사람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전도했고, 잡혀 갔을 때 그들 앞에서 우리가 당신들 말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다.’ 하고 선포하는 담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러니까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교회를 잔멸하던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다음 십여 년 후에 바나바가 그를 데리고 안디옥에 와서 같이 사역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을 보면, 안디옥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말씀을 따라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합니다(13:1-3).

 

성령님의 역사는 예루살렘이라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2천 년 전에 오순절 날 임한 성령의 역사가 마지막이 아닙니다. 지금은 은사가 1세기에 중지되고 지금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인류 역사 가운데, 지금도 끊임없이 역사하고 계십니다.

 

에베소에서도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세 차례에 걸쳐서 전도여행을 했습니다. 3차 전도여행 때 갈라디아 지역, 브루기아 지역을 거쳐서 소아시아 지역의 주요 항구인 에베소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사도행전 강해 때 자세히 살펴본바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에베소의 오순절 사건이라고 불리는데, 그곳에 또 한 번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신 모습은 다 다릅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성령님이 임하시니까 성도들이 방언으로 다른 언어들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큰 역사를 선포했고, 그때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3천 명이 한꺼번에 예수님을 믿고 교회로 들어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에베소에서는 단 12명이 성령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니까 인원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임하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러자 그들이 도시를 변화시키고 주변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핵심이 되어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가운데, 3년 사이에 주변 도시에서 많이 와서 들었습니다. 그 중 골로새의 에바브라나 빌레몬 같은 사람도 와서 복음을 듣고 믿어서, 바울이 직접 가서 전하지 않은 도시에도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에베소는 항구 도시였기 때문에 교통과 무역이 발달했고,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 아주 부유한 도시였으며, 사람도 많이 살았습니다. 에베소는 당시 4대 도시였습니다.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 다음으로 인구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너무나 어두웠습니다. 아데미 신전이 있었고, 수많은 신상들을 세워 놓았으며, 미신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부적이라도 에베소 부적이 효험이 많다고 알아주었습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가 에베소의 아데미 신전인데, 당시 사람들은 풍요의 신인 아데미를 숭배하며 신상에 절을 했습니다. 그래서 은장색들이 아데미 신상을 작게 만들어서 각 집마다 갖다 놓게 했습니다. 신전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큰 대리석 기둥이 127개나 세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몇 배가 더 큰 신전이었습니다. 그 제단에는 5만 명 이상이 모일 수 있는 큰 장소가 있었고, 수천 명의 남녀 사제들이 그 신전에서 일했는데, 그들의 의식은 아주 음란한 의식이었습니다.

 

이처럼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땅 한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마술책을 가져다 불태우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역사가 일어났던 것은 아닙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1-2)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 어떤 제자들(12)을 만났는데, 그들의 영적 상태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기는 믿는 것 같은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보니까 이들이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믿는 것 같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질문합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2)

 

여기서 너희가 믿을 때에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은 아무나, 아무 때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을 받는 것이 약속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성령? 그게 뭐예요?”라고 합니다.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2)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은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3)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묻자 그들은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그들이 제대로 믿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풀어서 설명해줍니다.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4)

 

세례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내 뒤에 오시는 분을 믿어라.” 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30)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1:27) 하고 외쳤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셨습니다.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5-7)

 

바울이 에베소에서 만난 제자들은 사람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지인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사실을 듣고는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안수할 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는 약속이 이루어진 겁니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또 다른 성령의 역사를 낳습니다. 내가 성령을 받으면 가정에도 성령의 역사가 나타타고,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으면 어두운 이 땅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4.   성령의 은사보다 중요한 것은 성령을 따라 사는 것

 

6절에 보면, 성령님이 임하시니까 바울이 만난 그 열두 명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즉 은사가 나타난 겁니다. 이러한 모습은 성령님이 눈에 보이게 임하셨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은사라는 것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이 드러나 보이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물론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방언이나 예언이나 병 고침이나 그 외에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것들이 있지만, 그런 신비로운 것만 추구하다 보면 신앙이 잘못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능력을 받으면 이게 내 거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하라고 빌려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것인데 그게 자기 것이라고 하면 잘못 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적이나 신비로운 현상이 아니라 그런 것을 허락하시는 성령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물론 뜨거운 성령 체험도 중요하고, 신비로운 현상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성령님과 동행하며 그분께 순종하고 있는가를 가장 먼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어떤 능력을 행하는 사람도 성령 충만한 상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이라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상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엄청난 능력을 행하면서도 순종하지 않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한다는 것이 곧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하고 말할 수 없고, 또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고전 12:3, )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8:9, )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는데,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지 못합니다. 실제로 안 믿는 분들과 대화해보면,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고백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주님이시라고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다면,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성령님이 계셔서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가끔 보면 뭔가 좀 빠진 것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도 듣고, 기도도 하고, 찬양도 부르고, 신앙 경력도 쌓여 갑니다. 말할 때 보면 종교적 언어를 사용합니다. 은혜, 사랑, 성령 충만, 주님의 뜻, 인도하심, 역사하심 등을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사실, 즉 성령님이 자기 안에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이것은 마치 자기 구좌에 자기가 쓸 수 있는 엄청난 돈이 입금되어서 얼마든지 쓸 수 있게 되었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해서 사용하지 못하며 늘 자기는 돈이 없고 부족하다고 한탄하며 불평하는 사람과 비슷합니다.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드러나는 기적이나 은사나 신비한 현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깨닫고 그분께 내 삶의 주권을 내어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5.   성령님이 내 삶을 다스려주시기를 간구하라

 

성령님이 임하시면 다양한 일들이 나타나는데, 그 중 가장 확실한 증거는 복음을 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805년 동부의 윌리엄스 대학을 다니던 사무엘 밀즈(Samuel J. Mills)를 비롯한 5명의 학생들이 건초더미(Haystack) 안에서 기도회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성령님이 임하면서 선교에 헌신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 학생해외선교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 SVM)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나온 사람이 조선에 들어온 언더우드입니다. 130여 년 전 조선에 들어간 언더우드 선교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선교사들이 바로 그 운동의 영향을 받아 선교에 자원하고 헌신했습니다. 이런 일은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였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8)

 

여기서 내 증인이 되리라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증인이 되어라가 아니라 되리라(될 것이다)’입니다. 명령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데, 그 권능은 복음을 전하는 능력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삶을 헌신하게 됩니다.

 

조선 땅에 성령님이 임하시니까 1903년에 원산에서 시작된 부흥의 물결이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성령님이 한 선교사의 회개를 통해서 역사하셨습니다. ‘한국의 소돔이라고 불렸던 평양이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성령님이 바람같이 불같이 임하셔서 우리 한민족을 덮으시고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그 역사는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남미와 세계 곳곳에서 지금 성령의 바람이 계속 불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도 똑같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날마다 성령 충만의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게 좋을 것 같아도, 나는 불완전한 인간인데 불완전한 인간이 인생을 이끌고 가면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완전하신 하나님이 이끌어 가실 때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향한 성령님의 계획,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려달라고 구해야겠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거부하게 되면 헛된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나의 인생을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임하시고 나를 사로잡으시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게 됩니다. 갇혀 있고, 절망하고, 자유가 없는 인생 가운데 성령님이 임하시면 자유를 얻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아름다운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뉴스를 생방송으로 볼 수 있어서 보는데, 중간 중간 광고가 나옵니다. 뉴스에서는 지금 심각하게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떻게 되고, 몇 명이 확진되고, 몇 명이 죽고, 한국, 중국, 일본, 이탈리아, 이란 상황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중간에 나오는 광고를 보니까 음악도 쿵짝쿵짝 하면서 이거 좋습니다. 이걸 하세요. 여행 가세요.’라고 합니다. 그런 걸 보면서 참 내용이 안 맞는다. 지금 이런 세월에 누가 저걸 하고 누가 저런 걸 먹고 누가 저런 걸 하며 즐기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는 아무 문제없이 즐기며 살던 것들이, 이런 사태가 벌어지니까 그런 쪽으로 관심이 없어진 겁니다. 누가 그런 데 관심을 쏟겠습니까? 지금 어떻게 하면 해결될지, 어떻게 하면 여기 안 걸릴까에 집중되지, 누가 여행 가고 즐겁게 살고 좋은 것 먹고 파티하는 데 관심이 있겠습니까?

 

마지막 날이 되면 즐겁게 지내고 좋은 것 먹고 좋은 데 찾아가는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오직 천국에만 모든 것이 집중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때가 딱 됐는데도 거기 들어갈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인생입니까?

 

우리는 평소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제 인생을 사용해주십시오. 살아 계셔서 어제도 역사하시고 오늘도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나의 삶을 다스려 주십시오. 그래서 오늘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려주십시오.” 이렇게 고백하면서 복음을 위해 아름답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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