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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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우리 교회에 부임한 이듬해인 2006년 초 휴스턴서울교회에서 열린 목회자를 위한 가정교회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침례교회인 그 교회의 집사장이셨던 안수집사(장로교회에서는 장로에 해당)님이 일주일 휴가를 내고 오셔서 열심히 섬기시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사님이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그분의 아내이셨던 목녀님이 유치부 전도사가 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후 저는 2015년 안식월 때 연수를 위해 다시 휴스턴서울교회에 갔는데, 거기서 여러 목회자들과 만나 대화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분이 바로 위에 언급한, 목녀에서 목회자가 되신 백혜원 전도사님이셨습니다.

 

몇 주 전부터 휴스턴서울교회 담임목사이신 이수관 목사님이 안식월 중이시라 부교역자들이 돌아가며 목회자 코너를 쓰고 있는데, 백 전도사님이 쓰신 글에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남성 목회자들의 글만 보던 제게 여성 목회자이신 백 전도사님의 글이 신선하게 다가왔기에, 그 글을 정리하여 여기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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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9년 전, 제 남편은 갑작스러운 신장암 판정을 받고 주님 곁으로 떠났습니다. 교회 안수집사로서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청소년부를 지극히 사랑하던 남편을 떠나보낸 후, 저는 충격과 깊은 슬픔 속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뜻밖에 당시 담임목사이시던 최영기 목사님께서 전화를 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큰일을 겪으면 본인은 자기 자신을 위해 제대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대신 기도하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는 중에 하나님께서 아마도 자매님을 교회 사역으로 부르시는 것 같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당시 은퇴를 준비하시던 전도사님의 뒤를 이어 유치부 사역을 맡아보는 것에 대해 기도해 보라고 권면하시는 최 목사님의 말씀을 들은 저는 또 하나의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교회 안팎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제 사역이자 생업이었지만, 전도사로 부름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생각을 없애주시고, 결국 하던 일을 정리한 후 교회 사역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에 은퇴하였는데, 4년 만인 작년 여름 이수관 목사님께서 새로운 목회자가 올 때까지 임시로 초등부를 맡아 달라고 부탁하셔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다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부르심들을 통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특별히 유능하거나 쓸모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분의 더욱 깊은 사랑 안으로 불러 주시며, 그 자리에서 나와 같이 있자고 초청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이야기 속 큰아들을 떠올려 봅니다. 집을 떠나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동생이 돌아왔을 때 큰아들은 적잖이 화가 났습니다. 아버지 곁에 남아 열심히 일한 것은 자신인데, 왜 자신을 위해서는 염소 한 마리도 안 잡아 주더니 동생을 위해서는 큰 잔치를 베푸는가 하는 억울함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일했으니 사랑받아 마땅하고, 잘한 것 없는 동생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들들이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녀들이라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큰아들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저 역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봉사와 헌신을 다하면 좋은 하나님의 딸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역하면서 깨달은 것은, 하나님은 네가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하니 내 사랑하는 딸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네가 여기서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 너는 이미 내 사랑받는 딸이야라고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는 각오만 가득하면 성과가 없을 때 쉽게 낙심하고, 인정받지 못하면 기쁨을 잃는 것 같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처럼 보이게 되고, 결국 자기 힘으로 하다가 지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하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성과보다 기쁜 것은 하나님께서 그곳에 함께 계시며 일하고 계심을 보는 것,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때문에 놀라고 감동하는 것입니다. 또 함께하는 동역자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며, 곁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늘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곁에 계시니 제게 맡겨주신 삶의 부르심 속에서 날마다 그분의 마음을 더 깊이 알아가고 배우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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