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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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때 계속해서 ‘믿음’에 관하여 살펴보는 가운데,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과 비슷한 내용으로 국제가정교회사역원장 이수관 목사님(휴스턴서울교회 담임)께서 최근에 쓰신 글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그것을 정리하여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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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구원의 확신’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구원받은 사실에 대한 확신으로서, 온전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생명의 삶> 공부에서도 이 점에 대해 강조합니다.
하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위험한 것과 같이, 구원의 확신을 가진 것 역시도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자신해!’라고 하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교만이 되거나 위험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파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세리는 멀리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파 사람은 “하나님,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 불의한 자, 간음하는 자, 더구나 이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하며 확신의 정도를 넘어서 자신만만하게 기도합니다.
그러나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사람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였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즉, 구원의 확신이 없었던 세리는 구원받았고, 구원의 확신이 분명하고 믿음에 있어서는 자기를 과신할 정도였던 바리새인은 그 반대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의 확신이란 정말 필요한 것입니까, 아니면 위험한 것입니까? 이에 대한 답은 구원의 확신이 무엇을 위해 작용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구원의 확신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며, 또 기도 응답을 경험하면서 더욱 감사하는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진다면, 그 확신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의 확신이 자기와 하나님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든다면, 그것은 위험하고 잘못된 확신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서 지금 나의 신앙 상태가 어떤지 걱정되지도 않고, 더 이상 하나님께 열심을 낼 필요도 느껴지지 않고, 내가 하나님의 기준에 못 미칠지도 모른다는 염려도 전혀 생기지 않고, 그래서 구원의 확신 때문에 오히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으며 하나님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면, 그런 구원의 확신은 틀린 것입니다. 그런 것은 절대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이 사랑으로 내 손을 꽉 붙들어주고 계시기에 이 구원은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이 그렇게 나를 천국까지 데리고 가실 거라는 확신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나의 부족함에서 오는 아픔과 두려움도 항상 느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턱없이 부족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늘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그저 구원받았다는 자신감으로만 가득하다면, 우리는 어쩌면 위험한 바리새인이고 구원에서 멀어진 사람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