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보아도 삶 공부로 인하여 가장 유익을 얻는 사람은 바로 인도자인 저 자신임을 깨닫게 됩니다. 같은 삶 공부라도 인도할 때마다 매번 새롭습니다. 각각의 삶 공부 과정마다 매번 같은 내용으로 인도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신기하게도 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합니다.

 

이번에도 <새로운 삶> 15기와 함께 공부하는 가운데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된 내용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는 진보든지 퇴보든지 둘 중 하나밖에 없으며, 현상유지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말씀을 행하라고 강조합니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야고보서 122, 새번역)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자기가 자기에게 속을 수 있겠습니까? 말씀을 많이 들으니까 너무 익숙해져서 마치 자기가 그 말씀대로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처럼 모태신앙인이고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그런 식으로 자기 자신에게 속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면서 수많은 말씀을 듣고 아는 것도 많기 때문에,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있으면서도 행하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배울 만큼 배웠으니까 이 정도로만 유지하며 살자하고 생각하며 안주하면, 바로 그것이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됩니다. 신앙생활에 완성이란 없으며, 현상 유지라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마치 강물이 흐르는 방향과 반대로 헤엄치며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끊임없이 헤엄쳐 나아가지 않으면 물살 때문에 뒤로 떠내려가고 맙니다. 현상유지가 아니라 퇴보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자전거를 타는 것과도 같아서, 목적지까지 지속적으로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만약 힘들다고 페달 밟기를 멈추게 되면, 잠시 동안은 움직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추면서 쓰러지게 됩니다. 현상유지가 아니라 퇴보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섬기다가 피곤해서 잠시 쉬겠다고 하며 말씀과 기도생활에 소홀해질 때, 예배에 종종 빠지게 될 때, 하던 사역을 중단할 때, 그것은 결코 쉼이 아니며 영적으로 현상유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쉬는 순간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곧바로 세상의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갑니다. 멈추는 순간 쓰러지고 퇴보하게 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정에는 결코 멈춤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달려갈 길을 달리는 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새로운 삶> 강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나의 진정한 영적 상태는 내가 하는 생각이나 말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이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내가 가진 성경 지식, 오래 된 신앙 경력, 왕년의 놀라운 영적 체험, 내 입에서 나오는 멋진 말 중 그 어느 것도 나의 진짜 신앙 상태가 아닙니다. 내가 지금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행동이야말로 나의 진짜 신앙 상태인 것입니다.

 

결국 나의 진짜 신앙 상태는 이웃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느냐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이지만 일부러 고생을 사서 해보는 도전, 이웃의 유익을 위해 열심히 움직이며 희생하는 도전이 필요합니다. 편안하게만 지내려고 하면 전진이 아니라 퇴보할 뿐입니다. 결국 영적으로 진보하느냐 퇴보하느냐는, 이웃을 향한 나의 사랑의 실천과 섬김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이 모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