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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1일 성탄주일 연합예배
✦ 성탄절 메시지 ✦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누가복음 2장 8~14절)
[들어가는 말]
사극을 보면, 조선시대 때 왕자가 태어나던 날 궁궐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입니다. 왕비인 중전마마가 아기를 출산할 때가 되면, 궁전 안의 사람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바른 자세로 다녀야 했습니다. 궁 내부에서는 아기 낳을 준비를 합니다.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고, 좋은 음식을 먹게 하고, 좋은 음악을 듣게 하고, 또 유모와 보모도 선정합니다.
내의원에서는 중전을 비롯하여 왕자나 공주가 태어날 때의 건강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 약재를 준비합니다. 산모인 중전은 나쁜 것을 멀리해야 하니까, 낮에는 약사들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밤에는 궁녀들이 들려주는 좋은 글귀들을 들으면서,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는 가운데 아기를 낳을 준비를 합니다.
그런 준비 끝에 드디어 공주가 태어나도 기쁨이지만, 특히 왕자가 태어나면 궁에는 성대한 잔치가 벌어집니다. 막 태어난 왕자의 스승으로 누구를 삼을지 벌써부터 고민하고, 백성들과 그 기쁨을 나누고자 가벼운 죄를 지은 자들은 풀어 주고, 또 백성들의 세금도 줄여 줍니다. 그리고 태어난 왕자가 백성을 살피고 나라를 키우는 좋은 왕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렇게 앞으로 왕이 될 한 사람이 태어날 때 얼마나 많은 준비와 정성이 거기에 들어갑니까? 또 얼마나 그것이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러한 영광스러운 모습과는 아주 대조가 되는 왕이 태어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1. 베들레헴 마구간에 태어나신 왕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1절)
예수님이 태어나실 당시 세상의 왕은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였습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옥타비아누스(Octavianus)로서,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에 의하여 후계자로 지명받았지만, 유명한 장군인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와 대결을 벌여야 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승리하고 로마 최초의 황제가 됩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토록 로마 황제가 되고 싶어 했지만 되지 못했고, 그가 후계자로 지명했던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최초의 황제가 되어 가이사 아구스도, 즉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됩니다. 그는 주전(BC) 27년부터 주후(AD) 14년까지 로마 황제로 통치했으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로마의 통치자로 꼽히는 사람입니다.
역사의 기록을 보면, 이 가이사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로마 제국 내의 내란을 마무리하고 로마 제국을 확장하여 전 지중해를 포함한 ‘로마의 평화(Pax Romana)’의 기초를 세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왕일 뿐 아니라 심지어 구세주라고까지 불렸고, 로마 사람들에 의하여 마치 신처럼 추앙받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가져온 평화(팍스 로마나)는 전쟁을 통해 무력으로 가져온 평화였습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세상의 왕이 가져오는 평화는 더 많은 세금과 힘을 통해서 가져오는 평화였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장 앞부분을 보면, 이 아구스도는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이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자기 고향에 가서 호적을 등록하도록 칙령을 내렸습니다. 즉, 인구 조사를 하게 한 것입니다. 인구에 따라 세금을 걷어야 했기에 그랬습니다. 여기에서 예외가 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3~5절)
당시 이스라엘 땅은 로마 황제 아구스도의 통치 아래 있었고, 요셉도 고향으로 호적을 등록하러 가야 했습니다. 황제가 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각자 자신의 출생지로 가서 인구 조사에 응해야 했는데, 로마가 여자들에게는 세금을 걷지 않았고 남자들에게만 걷었기 때문에 마리아가 굳이 같이 갈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만삭이었던 마리아는 정혼한 사이였기에 함께 길을 떠납니다.
요셉의 고향은 베들레헴입니다. 그의 조상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다윗 왕이고, 다윗의 고향이 바로 베들레헴입니다. 며칠 전에 <다윗(David)> 애니메이션 영화가 나왔던데, 그 다윗의 고향이 바로 베들레헴입니다. 지금은 베들레헴이 우리에게 유명하지만, 그 당시에는 사실 유대 땅의 시골이었습니다. 다윗이 거기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 당시 요셉이 살던 나사렛과 베들레헴은 약 75마일 정도 떨어진 거리입니다. 저도 10년 전에 가보았는데, 나사렛과 베들레헴은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남쪽 유대 땅에 있고, 나사렛은 북쪽 갈릴리 지역에 있습니다. 물론 갈릴리 지역에서는 나사렛이 가장 남쪽에 있지만, 그래도 75마일 정도 떨어진 거리는 가깝지 않은 거리입니다.
지금이야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려서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당시에는 나귀를 타거나 걸어갔기에 굉장히 먼 거리입니다. 게다가 출산을 앞둔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여행하기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고 먼 거리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로마 황제 아구스도의 칙령에 의해 호적을 하러 가야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사람들이 호적하러 가야 했고, 그래서 요셉도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이미 이때로부터 몇백 년 전에 구약의 미가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의 여러 족속 가운데서 작은 족속이지만,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다. 그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가 5:2, 새번역)
몇백 년 전에 벌써 이 말씀이 주어졌고, 황제가 다 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도구로 쓰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왕인 가이사 아구스도를 통해서 이 세상의 진정한 왕이시고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오래전부터 예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때 요셉은 만삭인 아내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에 이르렀고, 머물 곳을 찾았는데 그곳에 그들이 머물 곳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구할 수 있었던 곳은 오직 가축들을 키우는 마구간뿐이었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조금만 다녀도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최악의 상황입니다. 조금 전 어린이를 위한 퀴즈 때도 잠깐 언급했지만, 마굿간에서 아기를 낳아 구유 위에 올려두는 것이 로맨틱합니까? 절대 로맨틱한 게 아닙니다. 얼마나 냄새가 심하고 더러웠겠습니까? 그런 데에서 누가 아기를 낳고 싶겠습니까? 최악의 상황입니다.
출산을 도와줄 사람도 없어서 남편이 도왔을 것입니다. 결국 마리아는 아기를 낳고 강보에 싸서 구유에 누였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아들께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곳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한 구세주는 로마에 있는 황제의 호화로운 궁에서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아니면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의 화려한 왕궁에서 태어나신 것도 아닙니다. 시리아를 다스리고 있는 총독의 공관에서도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심지어 베들레헴 사람들조차 반기지 않는 이름 없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2.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신 예수 그리스도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8~9절)
이 세상의 진정한 구주가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왕궁과 베들레헴은 아주 조용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들에 있는 목자들에게 나타나 그들에게 구주의 탄생 소식을 알립니다.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0~11절)
천사는 목자들에게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말합니다. 로마 시대 당시 황제의 가정에서 누군가 출생할 때, 특히 훗날 황제가 되고 나서 그가 태어난 것을 가리켜 ‘좋은 소식’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또한 ‘구주’가 나셨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천사는 이 세상의 황제가 태어날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의 탄생을 말함으로써, 이 아이가 이 세상의 참 구주이며 왕이라고 선포합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2절)
이 세상을 구원하실 구세주가 태어나셨습니다. 그런데 구주께서는 로마에 있는 황제의 궁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유대 시골 베들레헴의 아무 이름도 없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이 세상을 구원하실 구세주라고 천사가 선포합니다.
이 세상의 진정한 구주가 탄생하셨음에도, 세상의 왕궁과 베들레헴은 너무나도 조용했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반기지 않던 탄생을 천사들이 축하하며 찬양합니다. 하늘나라의 왕궁에서는 천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왕의 탄생을 축하하며 노래한 것입니다.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3~14절)
로마 황제 아구스도가 가져온 로마의 평화(Pax Romana)는 전쟁과 힘에 의한 평화였습니다. 남들을 무력으로 짓밟아서 조용하게 만드는 평화였습니다. 그게 어떻게 진정한 평화가 될 수 있겠습니까?
힘으로 누르면 당장은 조용한 것 같지만 밑으로는 어떻습니까? 복수의 칼을 갈고 있습니다. ‘두고 보자. 내가 힘을 키워 복수하리라.’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는 진정한 평화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 예수를 통해 세상에 임하게 된 구원과 평화는 로마의 불완전한 평화와는 완전히 다른 평화입니다. 이렇게 보복이 난무하던 세상에서 고난과 죽음을 어깨에 짊어지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이 피의 보복의 고리를 끊으셨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평화를 주시게 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을 로마 제국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정치적 메시아와 그가 가져올 평화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유대인들)은 ‘로마가 지금 힘으로 전 세계를 전 세계를 누르고 있어서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데, 우리도 그렇게 강력한 왕이 와서 로마를 물리치고 힘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는 나라가 되는 것’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실 평화는 그렇게 무력으로 가져오는 정치적인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힘으로 눌러서 가져오는 평화는 항상 보복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진정한 평화가 될 수 없습니다.
아구스도 황제처럼 권력과 힘으로 세상을 다스리며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친히 낮아지셔서 종이 되시고 사람들을 섬기시는 것을 통해, 심지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써 가져오는 참된 평화였습니다. 예수님이 가져오실 평화는 가장 낮은 곳에 가장 낮은 자로 오셔서 이 세상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가져오실 평화였습니다.
그랬기에 사람들이 실망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것입니다. 강력한 메시아, 강력한 왕을 원했는데, 너무나 초라하고 무기력하게 체포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며 외쳤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곳에 오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평화가 그 백성에게 임하게 되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방법으로 진정한 평화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3. 누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가?
천사들은 찬양의 마지막 부분에서 뭐라고 찬양합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그러니까 이 아기의 탄생은 모든 사람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에게만 좋은 소식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실 구원의 소식은 분명히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자동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백성에게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소식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에게만 좋은 소식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만 사랑하시고 어떤 사람들은 미워하신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 그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즉 자기 선택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한 사람들에게는 그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바로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목자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목자들은 당시 사회에서 멸시받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양을 치는 일 때문에 성전에도 갈 수 없고, 회당의 모임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정직하지 못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법정에서 증인으로 설 수도 없는 신분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비참한 자들, 절망 가운데서 소망 없이 살아가던 자들에게 예수님은 참 빛과 소망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하늘의 천사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태어나신 구주의 탄생을 왜 하필 이런 낮고 비천한 자들, 소망 없이 버려진 자들에게 알려주었겠습니까? 그것은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사람을 가려서 임하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권세 있고 의롭다고 생각하며 자기가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이나 떵떵거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절망적인 비참함과 영적 가난 속에서 울부짖는 자들에게 위대한 구원의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본문 뒤에 나오는 내용을 계속 읽어보면, 천사들로부터 이 놀라운 소식을 들은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가서 천사가 말한 내용을 확인하고자 합니다(15). 마침내 목자들은 천사의 말대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발견하고, 천사들이 자기들에게 말한 것을 그 아이의 부모에게 모두 다 전해줍니다(16-17).
천사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너희에게 표적”이라고 알려 주었는데, 왜 그게 표적입니까? 너무 평범한 것 아닙니까? 하지만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는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렇게 하는 가정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그런 아기가 있고 그것이 표적이며, 바로 그분이 구주시라는 겁니다.
이 세상의 참된 왕으로서, 이 세상의 구주로서 오신 예수님의 소식은 목자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에게도 천사가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탄생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까? 혹시 우리는 오늘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목자들과 같이, 구주이신 예수님을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만 예수님의 탄생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 세상의 것들로 마음이 가득 차 있는 사람들, 자기의 힘과 권력과 명예와 재물이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탄생이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저 휴일(holiday)로 그냥 기뻐하고 축하하고 선물을 교환하고 또 파티하는, 그러한 날에 불과할 것입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듣고 또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나는 내 삶에서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아고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나에게 큰 기쁨을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속적인 기쁨입니까, 아니면 순간적인 즐거움입니까? 그것을 잘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큰 기쁨은 순간적으로 기쁨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괴롭고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기쁨, 지속적인 기쁨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내 삶의 구주이시며 내 삶의 전부라고 정말로 고백하며 살아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계절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이 땅에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 각자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어, 아직 주님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에게 바로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