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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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설교: https://www.youtube.com/live/QQN5ZmupBZs?si=l8uBjZfiofDrkfOO&t=257
2025년 1월 19일 주일예배
✦ 믿음 8 ✦
말씀 x (믿음+순종) = ?
(여호수아 23장 1~16절)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등산을 해보셨습니까? 여기는 산이 별로 없고, 북쪽의 모히칸(Mohican)이나 남쪽의 하킹힐즈(Hocking Hills)나 가야 조금 언덕이 있습니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고 언덕 정도인데, 한국에는 서울만 해도 근처에 산이 많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는 등산을 조금 했었습니다.
등산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산을 오를 때는 정신없이 앞만 보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오른 다음에는 잠시 등산을 멈추고 자기가 올라온 길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그 남은 길을 가늠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동네 뒷산은 안 해도 되지만, 설악산이나 오대산처럼 높은 산에 가면 그렇게 하는 게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저 높은 산을 어떻게 올라가나 하고 막막하게 생각되지만, 길을 따라 꾸준히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상당히 높은 곳까지 올라온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앞으로 여기서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지도를 보며 확인해 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자기의 인생을 돌아보아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가 언제인가 하면 바로 우리가 어느 정도 삶의 안정을 누리게 된 때입니다. 삶이 안정되고 편안하게 살 바로 그때입니다.
우리는 각자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데, 와서 살게 된 계기는 다 다를 것입니다. 저처럼 처음부터 미국에 이민 온 경우가 있고,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와 있는 경우가 있고, 유학이나 방문으로 왔다가 미국에 남은 경우가 있고, 또 주재원으로 온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나의 삶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유학은 한국에 집이 있기 때문에 다르지만, 이민을 온 경우에는 처음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어떻습니까? 그래도 처음보다 나아지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가진 게 부족하다고, 살기가 힘들다고 할지 몰라도, 사실 처음 왔을 때보다는 이곳 생활과 문화에 잘 적응해서 살고 있고 상당히 안정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사나 했는데 다 운전하고 다니지 않습니까? 또 우리 중에는 이 미국에서 꽤 성공하여 사회에서 잘나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기에는 삶에서 성공하기만 하면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고 하나님과 이웃도 더 잘 섬길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람은 대개 힘들 때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말씀을 붙잡으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지만, 성공하게 되면 이상하게 엉뚱한 짓을 하거나 욕심을 부리며 오히려 멸망의 길로 들어섭니다. 일을 그르칠 때 보면, 대부분 욕심을 부려서 그런 것입니다. 직장, 사업, 학업 모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기의 위치를 확인하며 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잘못된 길로 빠지려고 하면 그때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어느 정도 일이 잘 풀린다고 느낄 때, 안정되어 간다고 생각될 때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1. 목표를 이루었을 때 더욱 조심하라
오늘 본문 말씀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와서 싸워 어느 정도 그 땅을 정복했을 때, 그들의 리더인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한 내용입니다. 이 말씀이 중요한 것은, 이때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들이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 민족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자기들이 원하던 것을 이룬 때라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그토록 원하던 것,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그 가나안 땅, 옛날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살던 바로 그 땅, “내가 이 땅을 너희에게 주겠다.”라고 하셨던 바로 그 땅을 이제 들어와서 차지한 때입니다. 목표를 이룬 때라는 것입니다.
이때까지 이스라엘은 오로지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에 삶의 목표를 두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살기 위해서 이때까지 광야의 고통을 견뎠고 전쟁을 견뎠으며 굉장히 힘든 삶을 견뎠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드디어 그 가나안 땅을 차지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의 목표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1절)
그런데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때가 바로 이럴 때입니다. 가난하거나 힘들 때는 성공을 목표로 잡아서 인내하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러나 목표를 이루고 성공하거나 출세한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내가 그동안 바라던 목표가 이루어졌으니까 목표가 없어진 겁니다. 더 이상 추구할 목표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상하게 그때부터 방황하면서 자꾸 엉뚱한 곳으로 가고 엉뚱한 짓을 하며 자꾸 죄를 지을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잘 풀리고 목표를 이루었으면 잘 살 것 같은데 대부분 타락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그럴 때였습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언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왜냐하면 이때야말로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때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성공이라는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그래도 미국에 와서 어느 정도 이루신 분들은 그냥 된 게 아닐 겁니다. 다 열심히 했으니까 지금 이렇게 어느 정도 이루고 잘사는 것이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동안 열심히 살아오셨죠? 누군가가 옆에서 다른 데 눈을 돌리도록 유혹해도 쳐다보지 않고 열심히 나아갑니다.
그런데 일단 목표를 이루고 나면 이상하게 방황하기 시작합니다. 왜 그런 겁니까?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그 목표를 잃어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나 많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이 그토록 원하던 꿈을 이루었습니다. 주변의 모든 대적들을 다 이김으로써 더 이상 정복할 곳이 별로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 정복은 거기 살면서 더 중요한 것을 이루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지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 싸워서 정복하여 차지하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표가 아니라, 그것은 그들의 진짜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그 땅에서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결과를 다 알지만, 이스라엘은 거기에 실패한 겁니다. 이제 거기를 차지했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이 세상에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전파하며 살아야 하는데, 거기에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가나안 땅의 많은 민족들을 물리치고 그곳을 정복하여 거기 뿌리를 내리게 하신 것은, 그들이 광야에서 체험한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이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부흥을 이루며 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하나님을 보여주는 삶, 하나님을 믿는 백성다운 삶이 최고의 삶이고 진짜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은 그들에게 삶의 진짜 목적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그것이 되어야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가 정말 시작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이스라엘이 전쟁하고 싸우면서 이기고 또 이기고 땅을 차지하고 들어가며 ‘자,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다. 그동안 내가 이렇게 고생하며 힘들게 싸우고, 우리 가족들을 위해서 힘들게 고생했는데, 이 가나안 땅만 차지하면 이제 다 될 것이다. 이것만 정복하면 우리는 인생이 폈다. 이제는 정말 다 됐다.’
과연 그럴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한 다음에 오히려 엄청나게 문제가 많이 생겼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뭔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나아가는 사람들은 그것을 이루고 나면 그다음이 없기에 방황하게 됩니다.
학생이 고등학교 때 ‘내가 좋은 대학에 가야지’ 하고 열심히 그 목표를 세우고 공부합니다. 그건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아이비리그에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라고 목표를 세우며 나갔는데, 정말로 탁 들어갑니다. 그러면 인생의 목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그다음부터 방황하는 겁니다. 들어간 것까진 좋았는데 그다음에 방황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또 대학을 마치고 좋은 대학원에 가거나, 아니면 직장을 잡겠다고 했는데, 직장을 잡고 나니까 또 목표가 사라지고 그러니까 또 방황하는 겁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인 사람은 돈을 많이 벌고 나면 그 후에 잘되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 타락하고 방황합니다.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합니다.
건강이 목표인 사람은 건강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다 건강해야 합니다. 그런데 건강이 삶의 목표가 되다 보니까, 열심히 운동하고 음식 조절하고 병원 다니면서 건강해지고 나니까 못된 짓을 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혹시 여러분, ‘이것만 되면 내 인생이 풀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게 있으십니까? ‘이것만 해결되면 소원이 없겠다. 이것만 되면 이제 다 된다.’라고 한다면, 과연 그럴까요? 그다음에 무수한 문제들이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내게 어떤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믿음의 식구들이 같이 기도합니다. 자기 기도 제목을 내고 기도해달라고 요청하여 같이 기도하고, 또 자기도 열심히 노력하면서 잘 해결됐습니다. 그럼 그 인생은 이제 다 이룬 겁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았는데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아니면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서 문제가 잘 해결되기도 합니다. 그럼 다 된 겁니까? 조금 있으면 또 비슷한 문제가 생깁니다. 똑같은 문제가 또 생깁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내가 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안 바뀌었는데 문제만 해결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조금만 지나고 어떤 상황이 생기면 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 내가 바뀌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고, 또 설사 문제가 계속 있다 할지라도 이제 문제가 안 됩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서 정말 믿음으로 변화되어 살면, 문제가 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고 또 뭔가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는 것들은 다 내 삶의 진짜 목적이 아니라 도구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 청년들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진짜로 중요한 것, 즉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고 수단이고 도구가 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도구이고 수단인 것들을 내 삶의 목표로 또 목적으로 삼아 버리니까, 그것을 이루고 나면 허무해지고 이상한 짓이나 엉뚱한 짓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전에 어떤 문제를 놓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탁 해결되니까 그다음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전에 아마 다 그런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막 원하던 것을 탁 해결 받았을 때, 더 헌신하고 더 열심히 하고 더 하나님께 나아가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소수입니다.
바라던 문제가 해결된 후에 이상한 짓을 하고 엉뚱하게 나가는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렇게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는데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이루어졌는데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아무렇게나 나아갑니다. 우리는 이것을 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내가 바뀌어야 문제도 해결되는 것입니다.
2. 승리하려면 하나님의 길을 따르라
여호수아는 이제 가나안 정복이라는 목표를 이루고서 자만하여 느슨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나아가야 할 길은 이제부터임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싸웠는데 그게 진짜 목표가 아니고 이제부터가 진짜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길에서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3절)
대개 사람은 성공하고 나면 자기가 잘나고 똑똑하거나 열심히 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아유, 제가 부족하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잘됐습니다.”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내심 ‘그래도 내가 열심히 했으니까 이렇게 됐구나.’ 하며 뿌듯해합니다. 그 자체로 그렇게 나쁜 건 아닙니다. 그런데 거기서 스스로 자기 업적과 성취에 도취되어 버리고, 그러면서 잘못된 길로 들어섭니다.
사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따져 보면, 이 세상 모든 일에서 인간이 순수하게 자기의 힘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했다고 하지만, 특히 자수성가한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내가 성공하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 안 믿는 사람이든,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 중에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도 있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정하는 사람들은 솔직한 사람들이고, 인정하시 않는 사람들은 솔직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모든 삶은 하나님이 해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물론 내가 열심히 했습니다. 내가 나름대로 노력하고 알아보며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해주지 않으시면 그게 풀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삶은 내가 50% 정도 하고, 하나님이 50%를 해주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100%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그것이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일이 잘 풀렸다면, 왜 그때 그 사람이 거기 있었습니까? 왜 그때 전화가 걸려 왔습니까? 어떻게 거기가 나와 갑자기 연결되었습니까? 왜 그때 그 일이 사람도 많은데 내게 주어졌습니까? 왜 그때 그 사람을 만난 겁니까? 이 모든 것이 내 힘으로만 된 겁니까? 그렇게 주장한다면 얼마나 교만하고 무지한 것입니까? 나의 삶을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입니다. 물론 나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하나님이 해주셨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손가락 하나로만 톡 치시면 다 끝납니다. 물론 하나님은 영이시니까 손이 없으시지만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시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내가 아무리 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막 나가려고 해도 하나님이 손가락 하나로 붙들고 계시면 우리는 한 발짝도 못 나갑니다. 하나님이 풀어주시니까 풀린 것이지, 내 힘으로 된 게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들이 잘해서 된 것이 아니라 100% 하나님이 해주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원래 전투 경험이 거의 없었던 이스라엘이 어떻게 계속해서 연전연승을 거둘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적들을 물리쳐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혹시 자기들이 강해서 다 이긴 것이라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중간에 적들의 길을 막으시고 요소마다 이스라엘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하늘에서 우박을 내리셔서, 군대가 죽인 수보다 우박에 맞아 죽은 사람의 수가 더 많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이상하게도 전부 다 이겼습니다. 그래서 땅을 차지했습니다.
“보라 내가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쪽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아 너희의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 (4절)
이스라엘에게 신기한 것은, 그들이 가나안 정복을 치밀하게 계획했던 것도 아니고 그럴 수 있는 전투 능력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입니다. 이집트 땅에서 400년 이상 지냈고 마지막 몇 십 년은 노예로 지내던 백성에게 무슨 전투 능력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의 승리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행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한 성을 이기고 또 그다음 성을 이기고, 마침내 다 이긴 것입니다. 처음에 강력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순종해서 이겼는데, 그때 물건을 슬쩍 가로친 사람이 있어서 정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주 약한 아이 성에게 패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는 계속 이겼습니다. 순종하니 다 이겼습니다.
오늘 제목을 보시고 이게 뭔가 하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말씀 x (믿음+순종) = ?>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말씀에 대하여 믿음으로 순종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를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하여 믿음으로 순종할 때 승리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삶에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거나 능력이 엄청나거나 모든 것을 다 알아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승리합니다. 내 삶에 미래가 보이지 않아 답답해할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답답하고 힘들고 염려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내가 이 미국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까? 앞으로 내가 몇 년이나 더 살까? 지금 내가 여기서 어떻게 될까, 아니면 다른 데 가서 어떻게 될까?’ 그런데 사실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축복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미래를 다 알지 못하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점쟁이에게 갑니다. 미래를 알아보려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점쟁이를 찾아가면 그건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미래를 다 알지 못하니까 누구에게 가야 합니까? 미래를 쥐고 계신 분한테 가야 합니다. 점쟁이가 쥐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미래를 쥐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미래를 알고 계시고 미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주관하시는 하나님에게 가야 합니다.
내가 미래를 모르니까 그분을 찾게 되고, 또 기도하게 되고, 그래서 그분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것을 붙들고 믿음으로 순종하려고 나아가는 삶이 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축복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때 놀랍게도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주시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게 됩니다.
지금 한 번 자신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이전에 참 힘들었던 때가 왜 없었겠습니까? 힘들다고, 어렵다고 했던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해 주셔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이전에 어려움이 없어서 지금 이렇게 우리가 여기서 편안하게 있는 것입니까? 이전에도 똑같이 어려움이 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도해 주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놓는 것이 문제이지,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놓고 계시지 않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놓을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계속 붙들어 주십니다.
나는 정확한 계획이 없더라도 하나님은 내 인생을 향한 계획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따라가면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실패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눈으로는 실패가 아닙니다.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나아가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고 그냥 내 생각, 내 상식, 내, 지식, 내 경험, 내 마음대로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의 주력부대를 다 물리쳤지만, 아직 가나안 민족들을 전부 다 그 땅에서 몰아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위해 결국 해주실 것이라고 담대히 선포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5절)
이때 이스라엘의 입장으로 보면 막막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이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또 실제로 그 땅을 차지했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가나안 족속들을 어떻게 몰아내야 할지 막막한 상황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두려운 것도 바로 이런 겁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는 잘 도와주셨는데 앞으로 남은 과제는 어떻게 되나, 앞으로도 인도해주실까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고 해결 방법은 막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에 대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이 성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주신 이유가 그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비롯해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시며 그들을 인도하신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남은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다고 확신합니다. 아직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확신하며 선포합니다. 그런데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내고 완전히 승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6절)
바로 이것이 여호수아가 지금까지 가나안을 정복해 온 비결입니다. 이 말씀은 처음 여호수아 1장에서 여호수아가 모세를 이어 막 이스라엘의 리더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여호수아가 전쟁에 능한 장수라 이긴 것이 아닙니다. 그가 무슨 기적을 행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주님의 말씀을 항상 읽고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대로만 믿고 따라가며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 모래알 같던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또 거친 가나안 민족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생겼던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은 인간의 머리로만 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인간적인 수준에서 노력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머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부분들은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될 수가 없는 일들입니다.
결국 우리 삶의 승패는 바로 여기서 갈립니다. 유한한 내 능력으로 계속 나아가겠느냐, 다시 말해 방에서 거실로 나왔다가 ‘내가 여기 왜 나왔지?’라고 하는 사람을 믿고 살 것이냐, 아니면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내 삶으로 끌고 와서 승리하겠느냐? 당연히 후자입니다. 승리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읽고 묵상하며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새해맞이 감사예배 때 ‘올해의 말씀’을 하나씩 가져가시게 하는데, 이상할 정도로 무엇을 뽑아도 나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씀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확률적으로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인데, 2년 연속 똑같은 말씀을 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이전에 그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그냥 기분 좋으라고 받는 게 아니고,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 그대로 나아가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승리합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에게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라고 하는데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 당시 고대사회에서 이 말씀은 이스라엘 땅을 기준으로 할 때 좌, 즉 서쪽에 무엇이 있습니까? 이집트가 있습니다. 또 ‘우’ 즉 동쪽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메소포타미아입니다. 바벨론이라든지 그 후의 페르시아라든지, 열강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나라들을 의지하지 말라. 나만 의지하라.’라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우리 식으로 적용해 보면, ‘우’라는 것은 지나친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지도 않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긍정적 사고방식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말씀이 긍정적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인도하심으로 나는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좌’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빼버리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 말씀은 무시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취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았을 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치워놓고, 복을 준다는 말씀은 좋으니까 취하는 식으로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 있지만 그것을 외면하고 자기 방법대로 나아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그런 식으로 왜곡하게 되면 똑똑하게 보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거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부흥은 일어나지 않으며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읽고 묵상하십니까? 우리가 늘 어렵다고 힘들다면, 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정작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묵상하지 않기 때문은 아닙니까? 말씀을 읽어도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면 왜 그렇겠습니까? 혹시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서 자기 뜻대로 살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승리의 길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승리하는 사람이 있고 패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상황이 엄청나게 어려운데, 두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이 어려운 상황에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이면 둘 다 실패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거기서 잘되고, 어떤 사람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또 환경이 아주 좋은데, 거기서 무너지는 사람이 있고, 거기서 잘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왜 이런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까? 그 차이는 결국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약속과 경고를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가나안 땅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이제 너희는 거기서 편안하게 잘 먹고 잘살아라.’ 하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안정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철저한 영적 부흥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안정은 진정한 부흥을 일으키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상황으로 보면,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잘살려고 하거나 정치적으로 안정되려고 할 때, 거기 있는 가나안 민족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족속들과 연합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7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 중에 들어 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8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7~8절)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들과 교류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악하거나 이방 민족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잘 보십시오. 뭐라고 하십니까?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왜 그 민족들 중에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까?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뭡니까? 그들의 종교를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헛된 종교이기 때문에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짜가 아니고 다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에 진짜 신은 하나님밖에 안 계십니다. 그러니까 눈을 다른 데로 돌리게 되면 실패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들과 사귀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붙들라고 합니다. 하나님만 붙들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이는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까지 너희에게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9절)
이스라엘이 이때까지 오게 된 것은 자기들의 힘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싸웠던 적들 중에는 ‘강대한 나라들’, 즉 정말로 강한 군대가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이스라엘이 이길 수 있는 군사력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스라엘은 그렇게 강력한 적들을 모두 물리치고 승리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싸우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승리하는 비결은 바로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것’(8)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분의 백성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이렇게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이고, 서로 사랑하며 교제하는 것입니다. 목장에서 사랑을 나누며 서로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너무 하나님만 가까이하면 세상이 멀어지지 않을까, 세상에서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좀 적당히 믿어라. 거리를 두고 믿어라. 너무 열광적으로 믿지 말아라. 광신도가 되지 말아라.’라고 합니다. 당연히 광신도는 안 돼야 하지만, 너무 헌신하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바닥을 치더라도 다시 올라오게 되어서 세상이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그냥 딱 그 정도 되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다 예상하는 정도의 사람이 됩니다. 가끔 그러지 않습니까? “아유, 저 사람이 그럴 줄 알았어요.”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되지?”라고 할 정도로 예상을 벗어나고 초월합니다.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10절)
흔히 하는 말 중에 ‘일당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일당 천’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천 명의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그 삶이 얼마나 엄청나고 풍성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 명의 힘을 주실 것이고, 천 명의 인생을 사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해주신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하나님을 가까이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가장 조심할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고 다른 것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가 가까이하는 세상 사람들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멸절한다고 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마 6:33, 새번역)
이것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지 않고 자꾸 다른 데를 보고 다른 것을 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말씀대로 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살려 하면 잠시는 잘될 수도 있습니다. 똑똑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생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두려움과 염려와 불안에서 해방되지 못합니다. 바로 이 문제를 다루는 삶 공부 과정이 <새로운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기 생각과 방식대로 살게 되면, 평생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고 걱정하는 삶이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다른 것을 먼저 가까이하면 걱정이 떠나지 않는 삶이 됩니다.
‘에이, 설마 그럴까?’라고 하신다면 한번 해보십시오. 아마 이미 다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왜 불안과 염려와 걱정이 내 삶에서 떠나지를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게 아니고,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먼저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자꾸 먼저 하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12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13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11~13절)
안타깝지만, 성경과 실제 역사를 보면 이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다가 여기 나온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사실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질투를 하시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그 사랑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인지를 잘 아시는데 우리가 자꾸 다른 데로 가니까 그것이 너무 답답하고 안타까우십니다. 그래서 ‘다른 데로 가지 말고 나에게 좀 먼저 와라. 다른 데를 다 해보다가 안 되면 나중에 올까 말까 하다가 간신히 오고 그러지 말고 좀 먼저 와라. 그러면 다 해결되는데 왜 다른 데로 가서 얻어맞고 터지고 넘어지고 난 다음에 오느냐?’라고 안타까워하십니다. 그런 마음을 질투라고 표현합니다.
[나가는 말]
혹시 여러분도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전에 수요예배 때 본 영상이 있습니다. <울지마 톤즈>라는 영상입니다. 아마 2009년경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처럼 재미있는 영상물이 넘쳐나는 시대에도 가끔 그게 생각납니다. 그래서 실제로 얼마 전에도 본 적이 있습니다.
오래전 한국에서 남수단으로 가서 사역하던 고 이태석 신부라는 분의 이야기를 다룬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 다른 영화나 티브이 프로그램에 비해 내용이 재미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엄청난 감동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 KBS 방송국에서 <감동 대상>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감동을 준 사람들에게 그 상을 주었는데, 그 상을 받았습니다. 눈물이 메마른 이 시대에 우리로 하여금 마음을 뭉클하게 해주는 것을 넘어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 마음을 정화해 줍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미국까지 와서 살고 있는데, 이민을 왔든지 유학을 왔든지 방문으로 왔다가 머물게 되었든지, 우리는 다 지금 앞을 바라보며 달려온 사람들입니다. 저 역시도 목사로서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어느덧 우리 교회에서 20년이 되어 오는데, 그동안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앞만 보며 달려오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다 이태석 신부님에 대한 영상을 보고 정말 큰 충격을 그때 받았고, 그래서 가끔 다시 찾아보게 됩니다. 특히 온갖 추하고 더럽고 답답하고 안타까운 개신교 소식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 청렴하고 아무 욕심도 없고 늘 웃는 천주교 신부님의 선교 이야기와 암에 걸려 돌아가신 소식은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영상을 보면서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아무리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가겠다고 노력하지만, 그렇게 낮은 자리로 기쁘게 내려가려는 마음이 없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낮아지면 높여주시고, 자기 생명을 버리면 찾게 된다는 주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 제목처럼 <말씀 x (믿음 + 순종)>, 즉 말씀에 대해 믿음의 순종으로 나아갈 때 승리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참된 성공입니다. 세상에서 뭐라고 하든, 하나님이 보실 때 그것이 참된 성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매 순간 믿음으로 순종하여 승리를 경험하고 참된 성공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