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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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설교: https://www.youtube.com/live/jpZrKE7H81U?si=yiLYdcaJqYpcJoiD&t=256

 

 

20241124일 주일예배

추수감사절 메시지

그리스도인은 감사하는 사람이다

(골로새서 315~17)

 

[들어가는 말]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복한 삶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한국을 아주 잠깐 며칠간 방문했을 때 짬을 내서 비는 시간에 교보문고에 들러봤는데, 정말 책들이 많고 그중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책들이 여전히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환경이 좋을 때 행복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행복에 관한 연구 결과들을 보면,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주어진 환경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겨우 1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직장에 들어갔을 때, 복권에 큰 액수로 당첨되었을 때, 작은 차를 타다가 큰 고급 차를 샀을 때, 오랜 소원이던 집을 샀을 때, 또 훨씬 좋고 크고 비싼 집으로 이사했을 때, 그런 데서 오는 기쁨은 기쁘긴 기쁘지만 한 순간밖에 머물지 않고 조금만 지나면 다시 자기가 원래 가지고 있던 행복 수준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원래 행복 수준이 50이었는데 그런 일이 있어서 100으로 확 뛰었다가 몇 주만 지나면 다시 50으로 내려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행복 지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환경과 상관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행복의 크기는 감사의 크기와 같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행복은 감사에서 나온다는 뜻입니다. 행복은 뭘 많이 가져서, 좋은 것을 많이 사서, 일이 잘 풀려서 오는 게 아닙니다. 행복은 감사에서 옵니다.

 

행복해지는 길은 몸의 체질이나 성향을 바꾸거나, 많은 재산, 뛰어난 외모, 높은 학벌, 좋은 차, 좋은 집처럼 환경을 바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감사에 그 비결이 있습니다. 만약 환경에서 행복이 온다면, 좋은 환경에 살 경우 다 행복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선진국으로 환경이 좋거나 소위 잘산다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불행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감사에 그 비결이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의 삶은 한순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훈련으로 얻어집니다. 수백, 수천 번 거듭되는 선택의 열매이고 행동 패턴이며 경건한 습관이 감사의 삶입니다. 감사하는 삶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목장에서 서로 나눌 때 감사 제목을 나누자고 하는 겁니다. 사실 그게 정말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사실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그것이 경건한 습관이고, 사실은 감사의 제목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영적 실력입니다.

 

우리가 소위 믿음이 좋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성경을 많이 읽고 또 지식이 있고, 기도를 많이 하고, 또 봉사나 헌금이나 여러 가지 사역을많이 하는 경우 믿음이 좋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서도 불행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은 감사할 줄 아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할 만한 환경에서 감사할 줄 아는 것이 정말로 영적 실력이고 믿음입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삶이 중요한데, 그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근거로 감사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1.   감사는 그리스도의 평강에서 시작된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5)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이 골로새라는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지역에 있는 도시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너희라고 할 때 그것이 직접적으로는 골로새 성도들을 말하지만, 이것은 우리에게도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라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하면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이 본문에서는 감사의 구체적인 이유나 어떤 특정한 상황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평강에 대해서 말하면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그리스도로 인한 평안, 혹은 그리스도가 주시는 평화(peace)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그리스도의 평강은 악한 일을 행하며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리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1:20-22).

 

그러니까 원래 하나님을 모르고 죄 가운데 살던 사람, 하나님과 원수 관계로 담을 세우고 살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시작된 상태를 그리스도의 평강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그분으로 인하여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고, 하늘에 있는 소망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이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 속에 살아가기 시작한 사람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의 삶이 마지막이 아니라, 이 땅이 끝나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믿고 그 소망 가운데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5절에서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주장하다라는 동사는 다스리다, 통제하다, 지배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너희라는 말은 직접적으로는 골로새 교회를 가리키지만, 우리를 포함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명령은 단지 한 개인 크리스천으로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하나님과의 평화와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뿐 아니라, 교회 전체가 이런 평강(평화)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고 풍성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개인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각 개인도 이렇게 살아야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개인, 개인이 함께 모인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 되어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사실 예배는 우리가 얼마든지 집에서 혼자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요즘 유명한 설교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유튜브 같은 데만 봐도 얼마나 많습니까? 이제는 각 교회 웹사이트를 찾아 들어가서 볼 필요가 없습니다. 또 어떤 기독교 방송국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유튜브 같은 데서 어느 목사 또는 어떤 것에 관한 설교를 검색하면 영상이 다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런 설교 영상을 틀고 찬양도 틀어서 따라 하는 등 얼마든지 혼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에서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예배, 그리고 말씀, 교제, 사역, 전도, 선교, 그외의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인한 평강(평화)으로 하나가 되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로서 그것을 이루어주신 예수님의 그 평화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루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이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으니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러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라는 것은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서 함께 모든 것을 감당하는 곳이므로,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가끔 목장에서 우리 이제 감사 제목을 나눕시다.”라고 하면 나는 이번주에는 별로 감사할 게 없다.”라고 하거나, 아니면 매주 똑같다.”라고 얘기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똑같다는 의미가 항상 너무 은혜를 부어주셔서 감사하다는 것이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안 나니까 그냥 똑같다고 하거나 범사에 감사하다고 하면 진짜로 감사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지옥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나를 구해주셔서 지금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고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면 영원한 천국에 가게 해주셨다는 것, 이 구원받았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감사 제목은 넘칩니다. 정말 감사할 게 없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 한 가지만 생각해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2.   감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충만할 때 지속된다

 

감사는 그리스도의 평강에서 시작됩니다. ,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열리면서 감사가 시작하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이 충만할 때 지속된다는 것을 16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16)

 

성도의 감사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16절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곧 교회 안에 풍성히 임할 때 감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모든 성도는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나는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 그러니까 이제 알아서 그냥 살면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만 좋으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만 좋으면 되는 게 아니고, 이웃과의 관계도 좋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으면, 다른 사람과도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고, 특히 우리가 함께 예수님을 믿는 형제자매와 하나 된 교회에서 우리가 함께 부르심을 받고 함께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로 하면, 예수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Believing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니까 Believing만 있는 게 아니고 Belonging, 즉 속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BelievingBelonging이 같이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지, Believing만 있는 것은 반쪽짜리입니다.

 

또 믿지도 않으면서 거기 속하기만 한다는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믿고 속하는 것, 그래서 함께 감당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다른 지체들과 함께하는 것이 내 삶 속에 없다면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함께할 때 평강을 정말로 누릴 수 있고, 그 평강이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의 마음을 지배하도록 하라는 명령도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평강(평화), 즉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가 열린 것이 교회를 다스려야 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교회 안에 풍성히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뿔뿔이 각자 알아서 있고 하나 됨이 없다면, 같이 있긴 있지만 전혀 교류가 없이 그냥 따로따로 있다면, 그런 교회를 아름다운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그런 모습을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함께 하나 된 교회가 될 때 아름다운 교회가 되고,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할 때 그 결과로 성도가 행복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교회 안에 풍성히 거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이 풍성하게 거하고 말씀 중심의 교회가 된다는 뜻입니다. 각자 자기중심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하나 되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말씀, 곧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진리가 풍성히 거하게 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이것이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니까 이 본문의 문맥이 공적 예배를 염두에 둔 말씀이라고 하면, 예배에서 다른 것을 말하지 말고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분명하게 계속해서 선포될 때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 말씀을 전하지 않는 교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단이 아닌 정통 교회라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오래전에 정말 훌륭한 설교자가 미국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을 들었는데, 너무나 훌륭한 설교였습니다. 그래서 거기 있는 사람들이 다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크게 감동받고, 은혜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40분 정도 설교하는 동안 성경을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들과 감동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한 설교였는데, 정작 성경 말씀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놀랐습니다. 그러니까 요즘에는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은혜받았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감동받았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하나님 말씀이 없어도 우리는 얼마든지 감동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은혜받은 것과 감동받은 차이가 무엇입니까? 은혜를 받으면 삶이 변합니다. 그러나 감동에서 그치면 삶이 변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찬양하고 설교를 듣고 또 자기가 혼자 성경도 읽고 그러면서 은혜받았다고 하고 눈물도 흘리며 감격스러워합니다. 그런데 삶은 변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냥 자기 혼자 감정적으로만 감동받은 것이지, 진짜 은혜를 체험하고 나아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사로서 이렇게 설교하는데, 교회에서 어느 누가 30~40분씩 이야기하는 것을 이렇게 여러분처럼 가만히 앉아서 들어주겠습니까?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30~40분 동안 집중해서 들어주십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렇게 귀한 기회를 받았는데, 그저 자기 얘기나 하고 있고, 철학이나 문학이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 같은 말만 하고 있다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그것을 돕기 위한 도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그런 이야기가 중심이 되면 아무리 감동을 주고 막 눈물을 흘리고 해도 그것은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이 아닙니다. 강단에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목사도 설교자로서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성도님들도 할 일이 있으십니다. 매주 주보 사이에 끼어드리는 설교 노트가 있습니다. 여기에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이라고 되어 있는 곳에 오늘 내게 주신 말씀 한 가지만 기록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주신 말씀에 대한 나의 결단은?”이라고 되어 있는 곳에 내가 이 한 가지만큼은 이번 주에 실천해 보아야겠다.’ 하며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나가서 일주일 동안 그렇게 살기 위해서 애써 보는 겁니다.

 

그렇게 한 5일 정도 나가서 열심히 하면서 내가 우리 가정에서 이것을 해봐야겠다’, ‘내가 친구들에게 이것을 꼭 해 봐야겠다.’라고 하며 열심히 해보고 나서, 그다음에 목장에 가서 내가 지난주 동안 이렇게 이것을 해봤는데 잘되어서 너무 감사하다.’ 하며 감사의 제목을 나누고, 또 잘 안 되었으면 해봤는데 잘 안 되더라. 내가 너무 부족한 거 같다.’ 아니면 뭔가가 힘들어서 잘 안 됐다. 다음 주에 또 해보겠다.’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그러면 다른 지체들이 괜찮다. 계속 잘해라.’ 하고 격려해 주고, 서로 기도해 주는 겁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열심히 살고 나서 예배당에 들어오는 것인데, 우리 교회는 헌금 바구니를 돌려서 헌금을 걷지 않고 입구에 헌금함을 놓고서 들어올 때 헌금을 거기에 넣습니다. 미리 준비하고 와서 드리자는 의미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미리 헌금을 준비해서 오는데, 넣을 때 돈만 넣는 게 아닙니다. 헌금을 헌금함에 넣으면서 하나님, 제가 지난 일주일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이렇게 해보려고 애를 써 봤습니다. 애를 쓰며 살아서 그래도 나름대로 이렇게 열심히 해보고 왔습니다. 그 열매를 드립니다.’라고 하며 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쓱 봉투만 넣는 게 아니라, 거기에 내 마음을 넣어서 잠깐 짧게 기도하라는 겁니다. 몇 초 안 걸립니다. ‘하나님, 제가 지난주에 살았던 제 삶을 드립니다.’ 하며 넣는 겁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넣은 것을 다 모아서 봉헌할 때 그 마음과 헌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입니다. 이 예배는 그냥 대충 노래하면서 대충 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의 마음과 마음이 모아져서 하나님께 우리의 헌신을 함께 드리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일단 말씀을 잘 듣고 그다음 , 오늘 무슨 말씀을 나에게 하나님이 주시나?’ 그걸 잘 캐치해서 이번 주 동안 그럼 내가 이것 한 가지는 꼭 해봐야겠다.’라고 하며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많은 것도 아닙니다. 한 가지만 잡으면 됩니다. 열심히 말씀을 실천해 보고, 그렇게 한 것을 목장에서 나누고, 또 그것을 주일에 가지고 와서 헌금 때 드리는 일이 계속 일어난다면, 그 삶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행하겠습니까? 한번 그렇게 살아보십시오. 너무 행복합니다. 정말 행복합니다. 감사가 막 넘칩니다.

 

제가 오래전 한국에서 알던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물론 안 믿는 사람이고 친척입니다), 어느 날 교회를 가서 설교를 들으며 저 목사 설교 잘하네.” 하며 다닙니다. 그렇게 몇 달을 다니다가 싫증이 나면 설교를 잘한다는 다른 교회로 갑니다. 그러다 또 싫증이 나면 다시 다른 교회로 갑니다. 그런 식으로 설교에 따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걸 봤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물론 설교자는 사람이지만 이것이 단순히 목사가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설교자는 일단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고, 듣는 사람은 이것이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오늘 예배 때 설교를 통해 분명히 하나님이 나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실 것이다. 그것이 뭔가?’ 하며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대감을 갖고 와서, 예배당에 처음 왔을 때 먼저 그것을 기도하는 겁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저를 만나 주시고, 저에게 음성을 들려주십시오. 제가 그것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고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겁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고자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고, 그것을 실제 삶 속에서 행하고 살며, 또 목장 식구들이나 교회의 다른 지체들과 함께 그것을 나눌 수 있게 됩니다.

 

목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서로 나눔을 할 때 다른 사람의 말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릴 수가 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삶을 살 때 그리스도의 말씀이 교회 안에 풍성히 거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삶 공부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훈련을 계속해서 해나가는 것입니다.

 

6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7 여러분은 그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2:6-7, 새번역)

 

이 말씀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받아, 가르침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살아가는 것을 보면 말씀이 풍성히 거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뒤에 계속 나오는 것처럼,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사로잡히지 않는 삶이며,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따르지 않는 삶이 됩니다.

 

그런데 왜 복음의 진리가 풍성하게 교회 안에 거할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으로 인한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교회 안에 넘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이전에 부교역자로 있을 때 보니까, 낮 예배도 그렇지만 저녁 예배 때 말씀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굉장히 건조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보면 예배가 끝나고 나가는 성도들의 표정도 역시 건조합니다. 굉장히 무표정이고 그냥 시간을 때우고 간다는 얼굴 표정인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그날 굉장히 은혜가 될 때가 있습니다. 말씀이 도전되고 마음에 확 박히며 내 마음을 찌르는 그런 말씀을 듣고서 끝나고 나가는 성도들의 얼굴 표정을 보면 행복합니다. 환합니다. 정말 기쁨이 넘치는 걸 봅니다. 이처럼 우리가 정말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면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런 것을 자꾸 잊어버리거나 이런 은혜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영접했다면 구원받으며, 그 구원을 사탄은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만약에 빼앗아 갈 수 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얼마나 무기력한 것이 됩니까? 구원을 취소시킬 수는 없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었으면 그 구원이 취소될 수 없지만, 사탄이 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우리에게서 구원의 감격과 감사를 빼앗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자꾸 방해해서 감격과 감사를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약속하신 그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복음, 곧 그리스도의 말씀이 각자의 삶과 교회 안에 풍성히 선포되고 충만히 거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교회에 목사와 교사를 주신 것입니다.

 

제가 이전 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길 때 가끔 주일예배에서도 설교했는데, 영어 사역을 할 때도 목사님이 휴가를 가시면 주일 영어예배 설교도 하고 그것이 끝나면 또 한국어 예배 때 설교도 했습니다. 그렇게 설교를 했던 날 예배가 끝나고 문에 서서 나가시는 성도님들과 악수를 하는데, 몇몇 분들이 목사님, 오늘 설교에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하거나 오늘 말씀에 은혜 받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는 제가 목회 경험도 별로 없고 한국어 설교도 그렇게 많이 안 할 때였기 때문에 은혜를 많이 받았다니까 정말 궁금해서 오늘 무슨 내용에 은혜를 받으셨어요?” 하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급 당황하면서 , , 그게... 제가 지금 좀 바빠서... 죄송합니다.” 하고 빨리 가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런 질문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런데 그것을 제가 깜빡 잊어버리고 우리 교회에 와서도 초창기에 누가 말씀에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하셔서 무슨 말씀에 은혜를 받으셨어요?” 그랬더니 또 그분도 역시 당황하면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목사도 예배가 끝나고 나면 오늘 설교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헷갈립니다. 여러분도 당연히 그러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반복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한 번 했다고 다 아는 게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생명의 삶> 같은 경우를 포함해서, 한 번 하고 나서 3~4년 지나면 다시 들으라고 하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한 번 했을 때 다 아는 게 아닙니다. 한 번 하면 많아야 60~70% 정도 소화가 됩니다. 그래서 두 번, 세 번, 계속 몇 년에 한 번씩은 반복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여기 16절에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라는 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충만하기 위해서는 물론 목사(설교자)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성도들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서로를 가르치며 권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목사만 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서로 말씀 안에서 충만하여 늘 말씀을 가까이하고 살면서 말씀으로 서로를 권면해주고 또 가르치는 것입니다.

 

감사라고 하면 <감사>라는 책도 있고 <감사진법>도 있고 <평생 감사>도 있는데, 그중 임직자 교육 때 읽었던 <평생감사 실천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나온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어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김밥집을 운영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절대 돈을 벌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감사를 삶 속에서 하나하나 적용하며 사는 사장이 있습니다. 그 결과 처음엔 천 원짜리 김밥을 파는 가게로 시작했다가, 이 책이 쓰일 당시에는 김밥 및 커피 직영점 열다섯 군데를 운영하고 있고, 직원도 200명이 넘어 중소기업을 이룰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분은 해외여행이 어려웠던 시절 골목길에서 여섯 평짜리 김밥집을 할 때부터 종업원들이 열심히 일해주어서 감사하다며, 직원들을 부부 동반으로 해외여행을 보내주었습니다. 손님들을 대할 때도 손님은 눈이 뒤에 붙어 있어서 가식으로 대하면 금방 다 안다고 하면서,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사함으로 손님을 대했다는 겁니다. 그 결과 아무리 수학적으로 따져 보고 머리로 계산해 봐도 손바닥만 한 가게에서는 나올 수 없는 매출을 거두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장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뭐 특별한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들 아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남들은 알고도 안 했고 저는 아는 것을 한 것뿐입니다. 돈 버는 비결은 머리도 아니고, 성실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노하우도 아닙니다. 바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오지 않으면 절대 돈을 벌 수 없습니다. 저는 감사하는 마음을 현장에서 곧바로 실천했을 뿐입니다.”

 

그분이 계속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IMF 시절에는 특히 많았고 지금도 여전합니다만, 천 원짜리 김밥 한 줄을 먹고 가는 손님들이 있습니다. 사실 천 원짜리 김밥 한 줄을 팔면 얼마 남고 안 남고를 떠나서, 설거지 접시 일곱 가지가 나옵니다. 사람은 다 비슷비슷합니다. 설거지 접시 일곱 개에 생각의 초점을 맞추게 되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이 손님이 수많은 가게 중에 우리 가게에 들어왔다는 것이 대단한 사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감사가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습니다. 새벽에 김밥을 사러 오신 여자 손님이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가게에 들어왔습니다. 세수를 안 했는지 얼굴에 땟국물이 흘렀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으며, 옷차림도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나도 인간인지라 아무리 감사하려고 해도 감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 흐르듯이 가식 없는 감사의 마음을 보여야 하는데 불가능했습니다. 감사 거리를 찾기 위해 얼른 그 손님을 다시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귀가 잘생겨 보였습니다. 마음속으로 , 귀가 잘생긴 분이다.’라고 외쳤더니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감사한 마음으로 대했더니 소문이 나게 되었고, 결과는 매출로 연결되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가게에 일어난 매출이 200평짜리 레스토랑보다 많았습니다.”

 

얼마나 굉장한 이야기입니까? 이분이 한 말 중에 특히 이 말이 남았습니다. “다들 아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남들은 알고도 안 했고, 저는 아는 것을 한 것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입니까? 감사하면 좋다는 것은 우리도 다 알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분은 실행했고 다른 사람들은 실행하지 않았다는 차이밖에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똑같습니다. 말씀을 들어서 정말 어려운 것 빼고 성경은 어느 정도 다 아는 내용입니다. 교회를 오래 몇십 년이나 평생 다니신 분들은 이렇게 설교한다고 특별할 게 뭐가 있습니까?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도 행하지 않는 반면, 하나를 배운 사람이 하나를 행하면 거기서 엄청난 차이가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성경을 잘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라도 말씀 한 가지를 들을 때 , 그렇구나. 나도 이번 주에 감사를 실천해야겠다.’ 하면서 살다 불평이 나올 만한 순간에 그 말씀을 생각하면서 아니지, 감사해야지. 이 정도인 게 얼마나 감사한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실천하는 사람과, 말씀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둘 사이에 엄청난 차이를 갖고 온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1도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각도가 1도 차이가 있더라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계속 가면 차이가 굉장히 크게 벌어집니다. 이렇게 처음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계속 나가다 보면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과도 같습니다.

 

 

3.   감사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더욱 커진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17)

 

말이든 일이든 무엇을 하든지 그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하고 말씀합니다. 성도가 감사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이나 일 등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 전에 읽었던 골로새서 26~7절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6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7 여러분은 그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2:6-7, 새번역)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사람, 즉 믿고 고백하는 사람은 주 안에서 행하며 주 안에 뿌리를 박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굳게 서서 주 예수를 힘입어 살 수 있고, 그 모든 삶의 결과로 인하여 넘치도록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예수를 주와 구세주로 고백하고 그 앞에 엎드리는 사람은 주 안에서 행할 수 있으며 또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다. 그 뒤에 계속 보면 그런 내용에 대한 설명이 2장 뒷부분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행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성도가 그 안에서 완전히 새롭게 되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 예수의 이름으로 행한다는 것은 완전히 새롭게 된 성도가 이전의 자기를 위한 삶을 버리고 주님을 위해 살아가며, 이전의 자신을 의지하던 삶을 버리고 주님만을 의지하여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온 우주 만물의 주님이 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능력 주시는 사람의 삶이 어떻겠습니까?

 

여기서 특히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주 예수의 이름으로하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말을 할 때 불평이나 불만도 그렇지만, 욕을 하십니까?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욕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욕하는 사람은 진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의심이 갑니다. 순간적으로 에이 씨라고 하는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욕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말씀하는데, 예수님을 정말 믿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쌍시옷 들어가는 욕을 막 하겠습니까? 영어로 ‘f’자 들어가는 욕을 막 하겠습니까? 그 사람을 저주하면서도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언어생활을 잘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생명 언어의 삶> 과정은 어렵지 않은 공부인데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죽음의 언어를 너무 많이 말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내 말속에 불평, 불만, 원망이 있고, 다른 사람을 향해 욕하고 저주하는 것으로 가득한 삶을 살면서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삶이 왜 잘 안 되는지 그것을 잘 모릅니다. 그런 언어를 쓰니까 잘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뇌가 아주 신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신기하게 만드셨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어디로 갑니까? 밖으로 이렇게 들리는데, 내가 말한 게 내 귀에도 들립니다. 그럼 그것이 또다시 내 뇌로 들어가는 겁니다. 내가 말한 것이 내 뇌로 들어가서 계속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좋은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뇌과학자들이 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과학자들뿐 아니라 그냥 일반 시중에 나와 있고 뇌에 관하여 알기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보십시오.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 다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언어를 잘 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욕을 막 하고, 또 세상을 저주하고 불평과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한 말만 하며 산다면, 어떻게 그런 것이 진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삶인지 한번 잘 돌아봐야 합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아직 옛사람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순간적으로 실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곧바로 알아채야 합니다. ‘아이고, 내가 또 잘못했구나. 하나님 용서해 주십시오. 올바른 말만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정상이지, 그렇게 막 저주하고 악한 말만 막 하면서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 정말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인가, 나는 정말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나 점검해야 합니다. 정말 예수 믿은 사람은 감사를 말합니다. 감사가 입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가는 말]

 

오늘은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물론 평소에도 감사하며 살아야겠지만, 이번 주는 특히 주님께 감사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삶이 힘들고 여러 사정 때문에 감사함이 없다고 하시겠습니까? 평소에도 봉투에 준비해서 헌금하지만, 오늘 무슨 추수감사헌금을 또 따로 하라고 하느냐고 불만을 나타내시겠습니까?

 

또한 감사의 제목을 나누자고 하면 항상 똑같고 감사할 것이 없다고 하시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감사의 제목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볼 줄을 모르는 겁니다. 우리 삶에 감사할 제목들이 얼마나 많은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너무 많아서 놀라게 됩니다. 조금 전에 불렀던 찬양곡의 가사를 보십시오. 감사할 게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내가 감사할 게 별로 없다고 생각되면, 정치적인 성향을 떠나서 탈북자들이 얘기하는 것을 한 번 들어보시고 영상을 한 번 보십시오. 인간 취급을 못 받고 살면서 엄청난 괴로움을 당하다 간신히 탈출해서 온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놀랍게도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감사하며 간증하는 것을 들었는데, 얼마나 도전이 되는지 모릅니다.

 

내가 정말 감사할 게 없다고 한다면, 그런 것이라도 찾아보라는 겁니다. 평소에 그런 것만 보라는 게 아니라, 감사할 제목이 없다고 생각되면, 나보다 훨씬 못한 환경에서도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좀 보라는 것입니다.

 

인문계 대학졸업장을 받은 최초의 시각 및 청각 중복장애인인 헬렌 켈러(Helen Keller)는 평생 시각과 청각의 중복장애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앤 설리번(Ann Sullivan) 선생님과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언어적 문제를 극복하기도 했습니다. 그 헬렌 켈러가 쓴 글 중에 만약 내가 사흘 동안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이라는 에세이가 있는데, 거기에는 간절한 소망의 내용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첫째 날, 눈을 뜨는 첫 순간,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신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손끝으로 만져 알고 있던 그분의 인자한 얼굴과 아리따운 몸매 등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분의 모습을 나의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겠습니다. 다음엔 친구들을 찾아가겠습니다. 그다음엔 들과 산으로 산책을 나가겠습니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들, 들에 피어 있는 예쁜 꽃과 풀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겠습니다.

 

둘째 날, 이른 새벽엔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을 보겠습니다. 아침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보겠습니다. 오후엔 미술관을 보겠습니다. 저녁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 새벽 일찍 큰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보겠습니다. 아침엔 오페라하우스에 가겠습니다. 오후엔 영화관에 가겠습니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건물이 숲을 이룬 다운타운으로 나가서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거리, 쇼윈도에 진열된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겠습니다. 집에 돌아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 나는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신 나의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영원한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습니다.”

 

그저 사흘만 보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던 헬렌 켈러가 아름다운 인생을 보낼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는지가 너무나 잘 드러나 있는 글입니다. 헬렌 켈러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나의 역경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 왜냐하면 나는 역경 때문에 나 자신, 나의 일, 그리고 나의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헬렌 켈러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야 마땅하고, 또 그렇게 감사하며 살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늘 감사하며 사셨습니다. 특히 어떤 기적을 일으키시기 전에 하늘을 향해 감사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아버지, 제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그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감사할 줄 모른다면 어떻게 진정한 의미로 그리스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감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조차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감으로, 풍성한 은혜와 하늘 복을 받아 누리며 또 그 복을 나누어 주는,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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