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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IA1FqN4KCxU?t=209

 

 

2022828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29

나단의 책망과 다윗의 회개

(사무엘하 121~14)

 

[들어가는 말]

 

이전에 한국 뉴스를 볼 때마다 의아하게 느꼈던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명한 사람들이 검찰 조사를 위해 검찰청 입구에 들어설 때 수많은 기자들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 사람이 오면 카메라 셔터를 엄청나게 눌러대고 몇 명은 옆에 찰싹 붙어서 여러 매체들의 마이크들을 다 들고 인터뷰를 시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은 사건에 관계된 사람을 검찰에서 부를 때 조사받으러 나오는 시간과 장소를 미리 언론에 공개해서 포토라인에 서도록 하는 공개소환제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공개소환 제도가 3년 전인 201910월에 폐지되어서, 더 이상 검찰에 조사받으러 나오는 사람들을 포토라인에 세우는 경우가 없어졌습니다. 특정인을 정치적으로 공개 망신을 주는 데에 악용된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는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검찰에 불려가면서 바로 그 포토라인에 서야 한다는 것 때문에 검찰에 불려 가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했습니다. 검찰청 입구에 들어서는데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면서 얼마 후 뉴스에 자기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동시에 자기가 숨어서 했던 일들이 다 보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개소환이 폐지되어서 더 이상 포토라인에 서지 않게 되었다고 해서 자기가 범한 잘못이 없어지는 것입니까? 사람들이 모른다고 자기가 저지른 범죄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조사에서도 비행이 드러나서 처벌받을 때가 많은데,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숨긴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그렇게 포토라인에 세우거나 스크린에 우리 죄를 비추면서 창피를 주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기다려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를 짓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불순종하는데도 아무 일이 없다면, 괜히 뜨끔하고 찜찜했지만 죄를 지어도 별일이 없다면, 그것은 결코 괜찮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면서 기다려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게 되는 경우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면 우리를 더욱 불쌍히 여기시며 회복시켜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숨기려 하며 괜찮은 줄 알고 가만히 있으면, 뜻밖의 계기로 죄가 드러나게 되어 세상에서도 명예를 잃고 수치를 당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항상 그러시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드러내는 것이 사랑입니다. 암이 생겼을 때 나쁜 세포네하며 덮어두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 그것을 드러내고 수술하여 잘라내 버리는 것이 치유를 위한 방법인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죄가 드러나게 하셔서 수술하시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창피하게 하고 부끄럽게 하고 수치를 주고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드러내실 때는 우리에게 창피를 주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회복시키시는 것이 목적입니다.

 

다윗은 간음하고 살인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죄를 은폐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아를 죽이는 데까지 이르렀는데, 오늘 본문에서 나단 선지자가 온 때는 밧세바가 아기를 낳은 후니까(11:27) 최소한 10개월 이상, 1년 정도는 지난 때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1년 가까이 전혀 회개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것을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다윗이 이제는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시기 위하여 나단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1.   나단의 비유 (1~6)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1)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가 동시에 나타나는데, 먼저 은혜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기 이전에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다윗을 일깨우시기 위해 나단을 보내십니다. 나단은 축복의 선지자입니다. 이전부터 다윗을 위하던 사람인데, 이제는 그를 깨우시기 위해서 나단을 사용하십니다.

 

앞에서 보면 여호와께서 다윗을 보내시니라고 되어 있는데 보내다라는 단어가 이전에 다윗에게도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다윗은 사람들을 계속 보냈습니다. 그런데 반복적으로 자기 죄를 위해 신하들을 보냈고, 나중에 우리야를 보내면서 자기의 살인 명령서를 우리야 손에 들려서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자기의 죄를 가리는 악한 목적을 위해 계속 사람을 보냈습니다. ‘저 여인이 누구인가 알아보라.’ 하며 사람을 보냈습니다. 또 그녀를 데려오도록 사람을 보냈고, 우리야를 보내라고 전쟁터에 사람을 보냈고, 또 우리야를 보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이 보냈습니다. 모든 것은 자기의 죄를 가리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도 나단을 보내시는데, 나단을 통해 영적 각성의 말씀을 보내십니다’. 그런데 사실 나단 입장에서 다윗에게 가는 것이 쉬웠겠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다윗이 나단의 메시지를 거부하고 왕의 권위로 네가 감히 왕에게 덤벼?’라고 하며 단칼에 그의 목을 베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위험을 아시고도 다윗에게 나단을 보내셨고, 나단은 놀랍게도 거기에 순종하며 목숨을 걸고 다윗 왕에게로 갑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또 다른 사울로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은 어땠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결국 악의 길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전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그런 사울처럼 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았기 때문에 나단은 목숨을 걸고 간 것입니다.

 

이전에 사무엘상 16장에서 하나님이 사울을 폐하시고 차기 왕으로 이새의 아들 가운데 하나를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라고 사무엘을 보내셨습니다. 그때 사무엘 같이 위대한 사람, 엄청난 하나님의 사람도 사울 왕을 두려워하며 주저했습니다. 자기가 괜히 갔다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간 것으로 오해를 받아 해를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두려워했습니다.

 

사무엘도 그랬다면 나단은 얼마나 더 그랬겠습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나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여러 날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합니까? 다윗 왕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십시오.’라고 했을 것이고, 드디어 다윗을 만나기로 한 날 아침 떠나기 전 아내와 자녀들을 모아놓고 미리 장례예배를 드렸을지도 모릅니다.

 

때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한다는 것이 굉장한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단은 하나님의 보내심에 순종하여 다윗에게로 갑니다. 다윗에게 나단이 갔다는 것이 간단히 나와 있지만, 사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잠든 영혼을 깨우시기 위해 말씀을 보내십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한 시대를 일깨우시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시대를 깨우는 말씀을 선포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목회자들이 설교하는데, 인간이 준비해서 전하기는 하지만, 우리 장로교 전통이나 기독교 전체로도 그렇고, 설교를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람이 준비해서 전하는 것이지만, 그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메시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그 메시지가 뭔지를 잘 듣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에 빠지지 않고 말씀을 잘 들어야 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목장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선지자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다른 지체가 자기 나눔을 할 때 듣다가 마치 그것이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받아들여질 때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다른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잘 참석하는 것이 필요하고, 잘 들어야 합니다. 누구를 통하여 나에게 말씀을 주실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던 사사 시대에 사무엘을 보내셨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죄에서 일어나도록 그 악한 아합과 이세벨 시대에 엘리야를 보내셨습니다. 죽은 자 같던 남유다를 깨우시기 위해 이사야나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를 보내셨습니다. 또한 신구약 중간기인 침묵시대의 어둠을 깨뜨리시기 위해 세례 요한을 보내셨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아도, 중세의 암흑기를 밝히시기 위해서 루터와 칼뱅을 보내셨습니다.

 

시대가 어두울 때,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고 죄가 이 땅에 가득할 때,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말씀을 선포하는 한 사람을 보내십니다. 목회자나 선교사나 믿음이 좋은 어떤 특정한 사람만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바로 제가 될 수도 있고 여러분도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가 그것을 감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감당할 때는 이런 위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위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니까 사명을 들고 가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바로 우리 모두가 그런 한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2-4)

 

이때 말 한마디로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나단은 곧장 당신이 죄인이다.’라고 하지 않고 일단 비유로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입니다. 이렇게 비유로 말한 것은 그의 목적이 다윗의 죄를 지적하고 정죄하고 무너뜨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켜 나오고 회복하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유라는 것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어떤 영적 진리를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도 비유를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나단은 다윗의 죄를 직접 지적하며 당신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야도 죽였다.’라고 할 경우, 그가 회피하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변명할까 봐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으로 하여금 스스로 죄를 깨닫게 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적절한 비유를 먼저 사용하는데, 분명히 기도하면서 이 내용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한 것은 나단이 다윗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무너뜨리는 것이 나단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를 사랑했고 존경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나단은 다윗이 잘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했습니다.

 

여기서 부한 사람’(2) 또는 부자’(4)는 다윗을 가리키고, ‘양과 소’(2)는 다윗의 많은 아내와 후궁을 가리킵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은 우리아를 가리키고,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는 우리아의 유일한 아내인 밧세바를 말합니다. 밧세바와 우리야의 친밀감을 강조하기 위해 암양 새끼를 딸과 같다고 묘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은 부자는 십계명을 어겼습니다. 8계명인 도둑질하지 말라”, 그리고 제10계명인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를 어겼습니다(20:1-17). 이 비유를 들은 다윗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5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5-6)

 

당시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이렇게 비유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비유를 가지고 이야기하다가 거기서 정책도 나오고 여러 가지 좋은 방향을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단이 비유로 말하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단의 비유가 자기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하고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또 다윗은 그 사람이 그 죄에 대해서 네 배의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네 배나 갚아야 한다는 것은 출애굽기에서 모세를 통해 주어진 시내산 율법입니다. 율법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을 만난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후 자기가 남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를 갚겠다고 말한 겁니다.

 

아마도 다윗은 그 부자를 향해 아니, 어떻게 그런 자가 있는가? 사람의 탈을 쓴 짐승만도 못한 놈이다.’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죄를 은폐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불렀는데 실패하니까 그를 살해한 다윗은, 바로 이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보다 자기가 더 악한 짓을 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이야기에 몰입해서 들었지만 그것이 자기 문제로는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종교인입니다. 객관적으로 옳다, 그르다만 판단하는 겁니다. 나와는 관계가 없는 겁니다. 그건 종교인이지 신앙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중에 다윗은 내가 모태에서 태어날 때부터 죄악 중에 출생하였으며라고 시를 쓰면서 자신은 뼛속 깊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그때는 정말 주관화가 되어서 자기 이야기가 된 겁니다.

 

지금도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사회에서 많은 부정과 부조리를 목격합니다. 지금도 비리나 사기 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잡히면 어떻게 저런 악한 자들이 있나?’ 하며 날카로운 비난을 퍼붓고 욕을 합니다. 특히 요즘은 범죄도 끔찍한 범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게 되면 정의 구현을 위해서 그것을 지적하고 드러내려는 마음으로 충만하게 되는데, 우리가 반드시 주의해야 하는 점은 남의 잘못을 지적할 때 사랑이 없이는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범죄자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우리 주변에도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라고 할 때 반드시 사랑이 없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화가 나서 그냥 지적하면 반드시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화가 나서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라고 지적하면, 바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너는 뭐가 잘났는데?’ 하며 싸우지, 지적할 때 바로 숙이고 회개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죄를 그냥 두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아무 일이 없다고 괜찮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반드시 판단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누군가가 잘못했을 때 그의 죄를 드러내고 정죄하고 징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간절히 사랑으로 기도해주고, 죄를 깨닫게 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고 회개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우리와의 관계가 회복되게 돕는 것이다.

 

죄만 드러내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지 못한다면, 암이 있어서 칼로 죽 째고서 수술 부위만 드러내놓은 채 그냥 오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꿰매어 치료하지 않고 그냥 드러내놓고 오면 얼마나 치명적입니까? 그렇게 되면 지적을 받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아픔을 주게 되고, 또 상처가 회복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단과 같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도 인간관계 속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용기 있게 나아가서 이 점은 잘못되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으로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객관적인 진리를 가지고 잘 접근해야 합니다.

 

 

2.   심판의 선포 (7~12)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7-8)

 

다윗이 자기가 의도한 대로 반응을 나타내자 나단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선포합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 말을 들었을 때 다윗이 어땠을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굉장히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때는 이미 자기가 죄를 지은 때로부터 1년 정도 지난 때이니까 얼마나 충격이겠습니까? 지금도 아니고 1년 전 일을 지적할 때 얼마나 충격입니까? 그런데 그것이 다 사실인 겁니다.

 

나단은 다윗의 죄를 적나라하게 지적합니다. 왕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담대히 죄를 지적하는 나단의 용기는 하나님을 정말 경외하고 신뢰하며 충성한 결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을 사랑하니까 이렇게 할 수 있지,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나단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다윗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올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적으로 다윗에게 선포합니다. 여기 7-8절에서 하나님이 다윗에게 베푸신 은혜를 먼저 기억하게 합니다.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붓고, 사울의 추격에서 보호하시고, 평화롭게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에 오르게 하신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9)

 

여기서는 다윗이 저지른 죄의 본질을 지적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간음죄를 저지르고 살인죄를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죄의 본질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긴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이 우리 모두의 죄의 본질입니다. 다윗의 죄뿐 아니라, 우리가 죄를 지을 때도 그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하는 모든 죄의 본질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죄를 지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정말 경외하는데 무슨 죄를 짓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업신여기니까 죄를 짓는 것입니다.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0-12)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네가 나를 업신여겼다.”라고 말씀하십니다(10). 사실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근본 원인이 이겁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겼기 때문입니다(삼상 15:26).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이제 나단은 그러한 다윗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 계획을 알려줍니다. 앞으로 다윗의 집에 전쟁이 그치지 않을 것이고, 다윗의 아내들이 그와 가까운 자에게 겁탈을 당하되 그것도 공개적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실제로 압살롬의 반역 때 이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죄에 빠지는 것은 그 근본 원인이 바로 이겁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기 때문입니다. 업신여긴다는 것은 가볍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가볍게 여긴다는 것, 옵션(option)으로 여긴다는 말입니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으로 여긴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쁘다고 하는 건 아닙니다. 좋다고 합니다. 지켜야 한다는 것도 다 압니다. 그러나 지키지는 않습니다. 지키고 싶은 것은 지키고 내 마음에 안 들면 안 지키며, 옵션으로 합니다. 내가 원하면 하고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겁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순간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죄에 대해서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할 때 하나님은 당연히 용서해 주십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수없이 약속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범한 죄의 결과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 빠지지 않도록 늘 깨어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죄에 빠지는 것은 대개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질 때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자리를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고, 집에서도 혼자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나 자신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다 놓도록, 그 자리로 나를 데려가는 겁니다. 새벽기도나 주중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심할 때를 사탄은 놓치지 않고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3.   다윗의 회개 (13~14)

 

나단으로부터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의 메시지를 들은 다윗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그는 약간의 주저함이나 지체함, 또는 왕으로서의 체면을 생각하는 것이 전혀 없이, 놀랍게도 즉시 자신의 죄를 회개합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3)

 

사실 간음과 살인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인데도 하나님이 살려주신다는 말은, 다윗의 회개가 아주 진실했다는 겁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이 말을 토하듯이 쏟아놓는 다윗의 심정이 어떠한 것이었는지가 시편 51편을 통해 잘 나타납니다. 그 고백은 아무 가식이 없는 진실한 것이었습니다.

 

믿는 사람이 죄를 짓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이렇게 악한 일을 하는 것처럼 흉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의 이러한 진실한 회개만큼 아름답고 귀한 것도 없습니다. 다윗이 죄를 지은 순간 그의 모습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하기 힘들 만큼 악하고 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회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라는 회개 속에서 다윗이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참된 성도가 어떤 사람입니까? 죄를 하나도 안 짓는 사람이 아닙니다. 죄를 안 짓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다 죄를 짓습니다. 저 악한 범죄자들이 짓는 범죄(crime)를 안 짓는 것이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sin)를 다 짓습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은 안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합니다.

 

누가 자신은 죄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정직하고 깊이 고백하고 애통하는 사람입니다. 성도의 참되고 진실한 회개에 대해 하나님은 이렇게 자비를 베푸시고 용서해주십니다.

 

나단은 다윗의 회개가 단순히 윤리 도덕적인 뉘우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가식 없는 참된 것이었음을 알고, 즉시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선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가 징계와 심판까지 거두어 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14)

 

나단은 다윗의 용서와 죽음의 심판을 면제해주는 것과는 별도로,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일차적인 징계로 우리야의 아내에게 잉태되어 태어난 아기가 죽을 것을 선언합니다. 그런데 왜 다윗이 벌을 받지 않고 아이가 벌을 받습니까?

 

그런데 사실 죽음이 꼭 벌은 아닙니다. 북이스라엘의 첫 왕이었던 여로보암의 아들도 죽었는데,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느냐 하면 그 아이만 제대로 장례를 치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죽는 것이 꼭 벌은 아닙니다. 이 경우에는 왜 아이가 죽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다윗에게 임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또 의학적으로 다른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위대한 점이 바로 어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 때문에 자기가 회개한 것을 취소하거나 후회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회개한 후에 나단이 아이가 죽을 거라고 했을 때, ‘? 아이가 죽어? 그럼 회개를 취소합니다.’라고 하고는 저 자를 당장 잡아 죽여라.’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왜 내가 회개했는데 하나님이 나쁜 결과를 주십니까? 하나님께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회개하면 분명히 용서해 주십니다. 그건 틀림없습니다. 성경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은 죄의 결과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몸을 마구 굴리며 살던 사람이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죄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했다.’라고 하면서, 남을 해코지하고 사기 치고 마약을 하던 사람이 회개하고 주님을 믿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이전에 몸을 마구 굴리며 마약을 했던 것 때문에 몸이 계속 약할 수 있고 아플 수 있고 또 수명이 짧을 수 있는 겁니다. 죄를 회개하면 용서해주시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겁니다.

 

또 예를 들어,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다가 끊었지만, 결국 이전에 그렇게 피우던 것 때문에 폐암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산모인데 담배를 피우다가 나중에 끊었지만 아기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겁니다. 자기가 한 일을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지만 그 결과는 남습니다. 못을 나무에 박았다가 못을 빼면, 못은 없어졌지만 거기에 자국이 남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 자체가 사실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나쁜 분이셔서 우리를 골탕 먹이기 위해 그러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은 죄의 결과이고 자신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의 회복

 

나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윗 앞에서 선포한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데(15), 나단이 무사히 왕궁을 떠나 집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보면 다윗은 진심으로 회개하고 자신을 주님의 권위에 복종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다윗이 사울처럼 회개하지 않고 변명만 했다면, 나단은 결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고 거기서 처형되어 순교자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가리켜 내 마음에 합한(맞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간음죄와 살인죄처럼 사형에 해당하는 무서운 죄를 저질렀고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잘못을 저질렀던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될 수가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오늘 본문의 이 사건 때문입니다.

 

모든 부하들과 신하들과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더러운 죄가 다 드러났습니다. 얼마나 창피합니까? 여러분, 여기서 지금 내가 지은 죄가 다 드러나면 기분 좋다고 하겠습니까? 얼마나 창피합니까? 얼마나 큰 수치이고 수모입니까?

 

그런데 다윗은 그것을 감수하면서 나단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했습니다. 그대로 무릎 꿇고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인정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이건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당신 이거 잘못했잖아?’라고 하면 내가 뭘 잘못했어?’라고 하는 게 사람인데, 다윗은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그것도 1년 전 지은 죄에 대해 그랬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믿음의 사람인지 모릅니다. 이런 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김으로 죄에 빠졌던 자기 자신을,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회복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윗도 이랬는데, 우리는 얼마나 더 연약하고 또 얼마나 더 쉽게 죄에 빠집니까? 그런데 죄의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데서 옵니다. 솔직히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며 살아갑니까? 얼마나 자주 옵션으로 여기며 살아갑니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옵션으로 여깁니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여깁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내 스케줄에 따라 하나님을 예배할까 말까 결정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옵션이 됩니다. 업신여기는 겁니다. 분명히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 남을 죽인 적도 없고, 해친 적도 업속, 사기 친 적도 없어.’라고 스스로 만족하며 자기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나쁜 짓을 안 하는 것은 물론 잘하는 일이지만, 하라고 한 것을 안 하면 그것은 죄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소극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웃 사랑에 사실 얼마나 관심이 없습니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가장 중요한데, 특히 주일예배와 같은 공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하나님 사랑뿐 아니라 이웃 사랑도 됩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형제자매를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섬기는 것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인데, 다른 지체들과 멀리하며 교제하지 않고, 자기가 원할 때만 봉사하고 원하지 않으면 안 하고,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는 잘해주고 원하지 않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은 멀리하거나 미워할 때, 이런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순종을 하기는 하는데 선택적으로 순종하는 게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은 말씀을 업신여기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우리는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짓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나는 죄가 없다. 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잘 살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되면 사울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고 회개하면 다윗이 되고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부터가 죄를 지어 놓고서도 , 그러면 안 되겠다.’ 하는 정도이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회개하는 적이 별로 없음을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마무리 기도를 하며 결단할 때, 나단이 하나님 말씀을 선포한 후 다윗이 회개하며 지었던 시편 51편을 함께 읽으며 기도하는 것으로 대신하려 합니다.

 

시편 51편은 용서를 비는 기도라는 제목이 달려 있고, 부제로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정을 통한 뒤에, 예언자 나단이 그를 찾아왔을 때에 뉘우치고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시가 다윗보다 3천 년 정도 후에 사는 우리에게까지 알려져 있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공개적으로 회개했다는 말입니다. 혼자 조용히 한 게 아니라 공개적으로 다윗이 회개한 겁니다. 얼마나 창피한 일입니까? 그러나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회개한 것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부르게 했습니다.

 

이 시간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겼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그냥 안 하며 옵션처럼 여기며 업신여겼구나.’ 하는 것을 돌아보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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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내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의 크신 긍휼을 베푸시어 내 반역죄를 없애 주십시오.

2 내 죄악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내 죄를 깨끗이 없애 주십시오.

3 나의 반역을 내가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지은 죄가 언제나 나를 고발합니다.

4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의 눈 앞에서, 내가 악한 짓을 저질렀으니, 주님의 판결은 옳으시며 주님의 심판은 정당합니다.

5 실로, 나는 죄 중에 태어났고,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

6 마음 속의 진실을 기뻐하시는 주님, 제 마음 깊은 곳에 주님의 지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해주십시오. 내가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 나를 씻어 주십시오. 내가 눈보다 더 희게 될 것입니다.

8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를 들려주십시오. 주님께서 꺾으신 뼈들도, 기뻐하며 춤출 것입니다.

9 주님의 눈을 내 죄에서 돌리시고, 내 모든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

10 , 하나님,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11 주님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며, 주님의 성령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 주십시오.

12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내가 지탱할 수 있도록 내게 자발적인 마음을 주십시오.

13 반역하는 죄인들에게 내가 주님의 길을 가르치게 하여 주십시오. 죄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14 하나님,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내가 살인죄를 짓지 않게 지켜 주십시오. 내 혀가 주님의 의로우심을 소리 높여 외칠 것입니다.

15 주님, 내 입술을 열어 주십시오.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내 입술로 전파하렵니다.

16 주님은 제물을 반기지 않으시며, 내가 번제를 드리더라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17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찢겨진 심령입니다. , 하나님, 주님은 찢겨지고 짓밟힌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18 주님의 은혜로 시온을 잘 돌보아주시고, 예루살렘 성벽을 견고히 세워 주십시오.

19 그 때에 주님은 올바른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제물을 기쁨으로 받으실 것이니, 그 때에 사람들이 주님의 제단 위에 수송아지를 드릴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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