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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ekxCWPmQQ8A?t=3313

 

 

2022619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20

이스보셋의 죽음과 다윗의 대응

(사무엘하 41~12)

 

0.   지금까지 일어난 일 정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으로만 살기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며 당장 인생이 잘 풀릴 것으로 기대하기 쉽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며 순종하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잘 풀어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믿음으로 나아가더라도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반대에 부딪히며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의심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나가라고 하시고서는 왜 이런 강한 반대에 직면하여 실패하게 하시는가? 왜 이렇게 힘든 상태에서 오래 기다리게 하시는가?’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사람으로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길로 나아갔기 때문에 실패한다면, 믿음으로 순종했기 때문에 실패를 경험하는 그 시간이 오히려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굉장히 유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대로 아주 잘 풀리고 인생이 탄탄대로라면 그것은 두려워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때문에 손해 보고 실패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경험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실패 가운데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을 진짜로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실패를 경험하며 기다리는 가운데 자신 안에 있는 모든 불신앙을 치료받을 수 있고, 특히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거기서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성공하기만 하고 잘되기만 하면 얻을 수 없는 지혜를, 우리는 믿음으로 인한 실패를 통해 얻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을 보면 다윗보다 더 많은 고생을 하고 왕이 된 사람이 없습니다. 사울도 그랬고 솔로몬은 부귀영화만 누렸으며 뒤에 오는 모든 왕도 다윗처럼 고생하고 왕이 된 사람은 없습니다.

 

다윗은 오랫동안 사울 왕에게 쫓기는 처지였고 또 사울이 죽은 후에도 무려 7년 동안이나 이스보셋과 아브넬의 반대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한 채 유다 지파만의 왕으로 있었습니다. 사울만 죽으면 다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이것만 풀리면 내가 잘될 것이다.’라고 했는데 또 문제가 오고, ‘이것만 해결되면 될 것이다.’ 했는데 또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 믿음의 사람은 그런 데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거기에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며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상황을 허락하신 것에 대해 왜 그러시는지 헤아려보면서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그렇게 기다리는 가운데 위대한 다윗 왕이 만들어졌습니다. 다른 왕들은 그런 기간이 없었습니다. 특히 사울은 그런 기간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이 기간 동안 다윗이 배운 것은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죄를 짓지 않으며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해 나아가면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모든 반대 세력이 제거되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더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실패한 상태에서 오래 기다리는 것은 아주 중요한 체험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지금까지를 정리해보면, 다윗이 왕이 되지 못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이 아브넬과 이스보셋이었습니다. 사울만 죽으면 자기가 왕이 될 줄 알았는데, 사울이 죽고 나서도 7년 동안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다윗을 대적해서 나라를 세운 아브넬과 이스보셋만 없어지면 다윗이 쉽게 왕이 되지 않겠느냐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며 싫어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시기하고 싫어하는 자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놀랍게도 사람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만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사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너무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고 너무 성경적으로만 하면 불편해하고, 오히려 적당히 인간적인 방법을 섞어서 하기를 선호합니다.

 

참 슬픈 현실인데,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모든 것을 이끌어 나가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게 해야 함에도 실제로 성경대로만 하면 답답해하고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면 모두 다 좋아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모든 것을 처리하면 독선적이며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를 옥죄고 자기가 거기에 얽매인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완전히 반대인데 그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면 거기에 자유가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생명의 삶> 공부 때도 이야기하는 내용인데, 탁구 칠 때 탁구를 잘 치는 사람, 정말 자유롭게 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있는 힘을 다해 휘두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힘 있는 대로 휘두르면 어떻게 됩니까? 네트에 걸리거나 밖으로 나가 버립니다. 정말 자유를 가진 사람은 자기가 공을 보내고 싶은 곳에 길게면 길게, 짧으면 짧게, 또 왼쪽 오른쪽 자유자재로 보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잘 치는 사람이고 자유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유는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훈련으로 이루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살면 인생이 망가집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서 중독되어 병원에 실려 가거나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 마음대로 살면 인간이 망가집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인간이 살아납니다. 하나님 말씀은 오히려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오해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불편해지고 답답해지니까 적당히 타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믿는 사람도 그렇게 말합니다. 다윗 때 바로 그런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아브넬과 이스보셋만 없어지면 자기가 곧바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으로 생각했을 텐데, 실제로는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사울의 인간적인 통치에 길들여 있었습니다. 오히려 다윗의 지나친 하나님 중심주의로 나아가며 하나님을 항상 찬양하고 경배하며 노래하는 것에 대해 오히려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반대하는 동안 다윗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기다리는 동안에 양쪽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이스보셋과 아브넬은 이스라엘 열한 지파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너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유다 지파 한 지파였지만, 그의 통치는 힘이 있었고 신선했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이 다윗 쪽으로 기울게 되는 겁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은 다윗의 걸림돌을 하나씩 제거하셨습니다. 다윗이 7년을 기다리지 않고 내 힘이 강하니까 나가 싸워서 정복하겠다.’라고 했으면 일을 그르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알아서 걸림돌을 치워주십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사람이 아브넬인데, 하나님의 때가 되니까 자기들끼리 분열이 일어나면서 이스보셋을 배신하여 나라를 넘기겠다고 스스로 찾아왔습니다.

 

사실 아브넬이 다윗 쪽으로 오더라도 그게 좋은 게 아닙니다. 좋을 것 같지만, 사실 아주 골치 아픈 문제 거리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사람이 와서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 나라를 내가 주었는데!’ 하며 얼마나 유세를 떨겠습니까? 다윗이 조금만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내가 준 나라를 이렇게 할 수 있느냐?’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 아브넬이 모두 다윗에게 가자고 다른 사람들을 실컷 설득해놓고는 허무하게 요압의 칼에 찔려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도 참 놀라운 역사입니다. 이때 다윗은 아주 지혜롭게 행동했습니다. ‘아브넬이 잘 죽었다.’라고 하지 않고, 요압을 저주하며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자기로부터 멀어질 수도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열한 지파 사람들의 마음을 아브넬 애도를 통해 안심시킨 겁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하면 다윗이 고난을 통해 지혜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냥 강하게 밀어붙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지혜를 배웠습니다. 바로 그런 데서 나온 지혜입니다. 다윗은 한편으로는 요압을 저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브넬을 애도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었습니다. 아브넬이 죽자 이스보셋 쪽의 사람들의 마음은 급격하게 허물어집니다.

 

 

1.   이스보셋의 절망 (1~3)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 함을 듣고 손의 맥이 풀렸고 온 이스라엘이 놀라니라” (1)

 

아브넬이 죽었다는 소식은 이스보셋에게는 한마디로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가 절망한 이유가 뭡니까? 그와 그의 정권이 하나님을 신뢰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여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보셋에게는 아브넬이 산성이요 방패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방패이십니다.’라고 시편에서 노래하지만, 이스보셋은 아브넬을 향해서 당신이 나의 산성이시며 방패입니다.’라고 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해도 자기가 힘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아브넬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하면서도 아브넬이 죽었다고 하니까 그대로 무너집니다.

 

사실 사람의 눈으로는 아브넬을 볼 때 굉장히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굉장한 장군이고, 힘도 있고, 노련하고, 정치적으로도 교묘한 술수를 많이 쓰는, 아주 믿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으로는 그렇게 보였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눈으로는 결코 신실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냥 악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보셋은 그런 사람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의지하던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죽었다는 소식에 마음이 녹아 내립니다. ‘손에 맥이 풀렸다고 개역개정에서 표현하고 있는데, 용기를 아예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스보셋 정권이 의지했던 것들은 혈연, 군사력, 백성들의 인기, 세상 영화 같은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잘 나가고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거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고 인간의 지혜와 수단을 의지하며 살아가면, 그런 것들이 없어질 때 엄청난 절망감을 느끼며 두려움을 갖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의지하던 게 없어지면 여기 표현처럼 손에 맥이 풀리며 그냥 주저앉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갑자기 두렵거나, 맥이 풀리거나, 힘이 없어지거나, 머리가 띵하면서 쓰러지거나, 굉장히 걱정이 되고 불안해지는 때가 언제입니까? 그렇게 두려워하고 불안해질 때 내가 왜 이런지 생각해 보십시오. 대부분 내가 의지하던 게 흔들리니까 나도 흔들리는 겁니다.

 

그런 삶의 기초는 너무 허약합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과도 같습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지으니까 홍수가 나면 그냥 쓸려가고 없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반석 위에 기초를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움이 와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의 힘을 의지하면 처음에는 일이 잘 풀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뭔가 일이 터지면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나 하고 찾아가지 않습니까? 지혜와 힘을 빌리고 연줄을 찾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사람을 의지했을 때는 일이 꼬이고 힘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힘이 들더라도 아예 처음부터 결단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혹시 사람들이 배반하거나 사라진다 해도 모든 것이 다 끝나 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기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스보셋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도 놀랐다고 합니다. 이제 드디어 모든 백성도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지고 있구나 하고 느낀 겁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다윗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사울의 집에 붙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세우신 것을 다 알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일부러 복종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편에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5장에서 사람들이 다윗을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세우겠다고 올 때 보면, 이스라엘 장로들의 말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하시고 다윗은 이미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고 다윗이 자기들을 위해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윗을 대적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다윗을 반대하여 이스보셋을 내세워 나라를 세웠던 아브넬이 죽임을 당한 것을 본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고 여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브넬을 심판하신 하나님이 자기들까지 심판하실 것이라는 두려움을 품게 된 것입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군지휘관 두 사람이 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바아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레갑이라 베냐민 족속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들이더라 브에롯도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으니, 일찍이 브에롯 사람들이 깃다임으로 도망하여 오늘까지 거기에 우거함이더라” (2-3)

 

꼭 필요한 것 같지 않은 내용이 여기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아브넬의 죽음 소식을 들은 이스보셋에게 남은 희망이 있다면, 자신의 곁에 아직 남아있는 베냐민 지파 친척들이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군대 장관들이었습니다. 그중 두 군지휘관 바아나와 레갑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베냐민 족속 브에롯 사람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림몬의 아들들, 즉 형제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브에롯 족속 출신이었는데, 브에롯은 기브온 사람들의 중심 도시였습니다(삼하 21:2).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정복 전쟁을 펼칠 때, 기브온은 가나안 민족이면서도 이스라엘에게 항복합니다. 자기들이 멀리서 온 사람들인 것처럼 꾸미고 와서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어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비록 자기들을 속이고 언약을 맺었지만 언약은 언약이라고 인정하여 대신 이스라엘의 종으로 섬기도록 하고 받아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기브온 사람들이 원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닌데, 베냐민 지파에게 그쪽 땅을 주었기 때문에 베냐민 지파 안에 들어와서 베냐민 지파가 되어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나중에 21장에서 이것이 무슨 뜻인지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사울 왕이 자신의 지파인 베냐민에서 원래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지만 화친을 맺어 베냐민으로 들어온 기브온 사람들, 특히 그중에도 브에롯 사람들의 피를 없애버리려는 속셈으로 기브온을 공격하여 많은 사람을 살육하는 일을 벌였습니다. 성경에는 그 사건이 나오지 않는데, 나중에 보면 사울이 그런 일을 벌였다고 기브온 사람들이 다윗에게 와 호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따라서 이 두 사람(레갑, 바아나)은 사울 곁에서 그동안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해오다가 이제는 이스보셋 정권 아래서는 군지휘관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다 이제 아브넬도 죽고 나라가 기울게 되니까, 자기 원래 동족의 원수를 갚는 것과 동시에 다윗의 환심을 사서 한 자리 차지하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레갑과 바아나의 출신 성분은 원래 이스라엘이 아니었던 기브온 출신으로 베냐민으로 들어왔는데, 베냐민 출신 사울 왕 밑에 있었고 이제 또 그 아들 이스보셋이 왕이 되어 다윗을 대적할 때도 그 밑에 있었고, 군지휘관이라는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가 아브넬이 죽고 나니까 이제는 이스보셋을 암살하는 자들이 되었다는 겁니다.

 

 

2.   레갑과 바아나의 반역 (4~8)

 

그런데 오늘 본문은 레갑과 바아나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전혀 다르게 보이는 한 사건을 집어넣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절친이었던 요나단의 살아남은 아들 므비보셋에 대한 기록입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할 때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4)

 

다윗과 언약을 맺고 목숨까지 내어줄 정도로 서로 사랑했던 요나단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므비보셋입니다. ‘보셋이 같아서 헷갈릴 수 있는데, 사울의 아들로서 다윗을 대적하여 왕국을 세우고 왕이 된 사람은 이스보셋이고, 다윗과 생명을 나누는 친구였던 요나단(사울의 아들)의 아들이 므비보셋입니다. ‘보셋은 사실 수치라는 뜻입니다.

 

므비보셋이 사울과 요나단이 죽을 때 다섯 살이었다고 여기 되어 있습니다. 이제 7년 정도 지났으니까 그 나이가 열두 살 정도가 된 겁니다. 다섯 살 때 유모가 그를 안고 뛰다가 떨어뜨려서 다리가 잘못되어 장애가 생겨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왜 이 이야기가 아무 관련이 없는 것 같은데 여기에 끼어들어 있는 겁니까? 처음 사무엘하를 읽는 사람들과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겠습니까? 여기서 이스보셋이 암살당하는 장면이 곧 나오는데, 그렇다면 금방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스보셋이 죽으면 그다음 왕은 누가 될 것인가?’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제는 유일한 사울 계통 왕위 계승자 후보가 다름 아닌 다리를 저는 므비보셋이라고 밝힘으로써,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의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정말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다윗밖에 없다는 것을 여기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왕이 전쟁의 지도자이자 야전 사령관 역할을 겸하여 나가서 싸웠기 때문에, 다리를 쓰지 못하는 므비보셋은 이스라엘을 이끄는 적합한 왕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전에 다윗이 요나단과 함께 언약을 맺을 때 누가 살아남든지 친구의 후손들을 돌봐주자고 약속했기 때문에,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을 다윗이 책임지고 은혜를 베풀어주는 의미도 여기에 깔려 있습니다.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가 길을 떠나 볕이 쬘 때 즈음에 이스보셋의 집에 이르니 마침 그가 침상에서 낮잠을 자는지라.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가 밀을 가지러 온 체하고 집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의 배를 찌르고 도망하였더라” (5-6)

 

이스라엘은 낮에 무덥기 때문에 중동 지방 사람들은 낮에 잠을 잡니다. 여기 보면 볕이 쬘 때 즈음에라고 되어 있는데, 굉장히 뜨거울 때입니다. 즉 낮잠을 자는 시간이었습니다. 레갑과 바아나가 한낮에 이스보셋의 집에 들어간 것은 이스보셋이 낮잠 자는 시간을 일부러 노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레갑과 바아나는 군대에서 필요한 밀을 가지러 온 것처럼 꾸미면서 이스보셋의 집 가운데까지 들어갈 수 있었고, 그때 잠을 자던 이스보셋의 배를 찌른 다음 도망갑니다.

 

그들이 집에 들어가니 이스보셋이 침실에서 침상 위에 누워 있는지라 그를 쳐 죽이고 목을 베어 그의 머리를 가지고 밤새도록 아라바 길로 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 왕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드리며 아뢰되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 하니” (7-8)

 

브에롯 사람 레갑과 바아나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기 동족의 원수를 갚으면서 동시에 다윗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의도로 이스보셋을 살해하고 그 머리를 베어서 다윗에게 갑니다. 다윗에게로 온 바아나와 레갑은 이스보셋의 머리를 그에게 바치면서, 다윗을 향한 자신들의 충성을 부각하기 위해 그 머리가 다윗의 원수 사울의 아들 것이며 자신들의 행위가 다윗에게 나라를 주기로 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른 것처럼 떠벌이고 있습니다. ‘여호와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자신들의 죽음을 재촉하는 원인이 되고 맙니다.

 

레갑과 바아나는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다윗에게 항복하기만 하면 되었는데, 다윗으로부터 상을 얻기 위해 잠을 자던 자기들의 왕 이스보셋을 찔러 죽이고 그 머리를 베어가지고 다윗에게로 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가 자기 무덤을 판 꼴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굳이 이스보셋을 죽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놓아두고 다윗에게 투항해도 나중에 다윗이 이스보셋 정권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레갑과 바아나가 이스보셋의 배를 찌르고 도망쳤다가 다시 왔다고 볼 수 있는데, 그들이 치밀한 암살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라 그냥 들어가서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찔렀다가 이스보셋이 칼에 찔려 소리를 지르니까 겁을 먹고 일단 피신했다가 다시 돌아와 목을 베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스보셋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고 정말 불행한 사람입니다. 자기도 권력을 잡아보겠다고 나름대로 애쓰면서 아브넬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더라도 자기가 왕으로 있겠다고 버티다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애초부터 다윗을 대적해서 나라를 세우는 데에 가담하지 않고 물러났으면 괜찮았을 텐데, 그도 권력욕이 있었던 겁니다. ‘내 말만 잘 들어. 그럼 왕 시켜줄게.’라고 왕을 시켜준다니까, 아브넬의 꼭두각시가 되더라도 왕이 되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자기 아버지 사울처럼 왕이 되 보려고 하다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런데 더 슬픈 것은, 그가 죽을 때 그의 곁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끝까지 충성한 부하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레갑과 바아나 같은 사람이 아브넬 죽음 이후에 자기를 보호해주어야 할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자기를 죽였습니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최대 비극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다 세상을 떠납니다. 인간의 사망률이 얼마입니까? 100%입니다. 우리는 다 죽습니다. 이중 영원히 이 땅에서 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다 떠납니다. 그러니까 떠나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차피 다 떠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떠날 때 내 곁에 누가 있는가입니다. 아무도 없다면 얼마나 실패한 인생이겠습니까? 아무리 떵떵거리고 돈이 많고 부귀영화를 누려도, 내가 죽을 때 내 곁에 아무도 없다면 이 얼마나 비극입니까?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나와 함께 해줄 사람이 있습니까?

 

장례식을 할 때 보면 정말 아름다운 장례예배가 있습니다. 누군가 돌아가시면 정말 많은 사람이 모여서 그분에 대해 회고하고 이렇게 훌륭한 분이셨다며 여러 가지 미담을 나눕니다. 제가 잘 아는 목사님이 캘리포니아에 사시는데, 얼마 전 그 목사님의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90대 장로님이셨는데, 남긴 것은 거의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 심지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까지 구름 떼 같이 장례예배에 와서 아버님을 기리고 회고하고 감사하며 너무나 아름다운 장례예배를 드렸다고 들었습니다.

 

반면, 너무나 쓸쓸한 장례식도 있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심지어 죽은 것도 모릅니다. 정말 안타까운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떨까?’ 결국 이 세상을 떠나는 그때가 문제가 아니라 그 전에 어떻게 살았느냐가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정말 잘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잘 살고, 사람들 보기에도 아름다운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은 잘될 수밖에 없습니다.

 

 

3.   반역자들의 최후 (9~12)

 

이제 다윗은 이스보셋을 죽이고 그 머리를 베어 가지고 온 레갑과 바아나를 결코 기뻐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전에 사람이 내게 알리기를 보라 사울이 죽었다 하며 그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로 생각하였어도 내가 그를 잡아 시글락에서 죽여서 그것을 그 소식을 전한 갚음으로 삼았거든,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악인의 피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9-11)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그 두 사람에게 의롭게 대우해 준 왕을 불의한 방식으로 죽인 그 행위가 명백히 하나님 앞에서 죄라고 밝힙니다. 다윗은 이전에도 사울의 죽음 소식을 전하며 칭찬과 명예를 얻으려다가 죽임을 당한 아말렉 소년의 예를 들면서, 레갑과 바아나 두 사람 역시 자신들의 피 값으로 죽임을 당해야 마땅하다고 선포합니다.

 

다윗을 기쁘게 하는 것은 이런 원수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그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주님의 마음 아닙니까? 우리 하나님은 죄인, 악인이 그냥 망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회개하고 믿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죄인이 죽어 가는 것을 그냥 놓아두거나 그들이 죽는 것을 기뻐한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미워하시며 진노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악인이 벌을 받아 죽었다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악인이 주님께 돌아오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누가 봐도 악한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이 죽으면 잘 죽었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빨리 마음을 돌이켜 주님께 돌아오도록 기도해야 하고, 만약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원수가 인생에서 괴로움을 당한다고 기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입니다.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청년들에게 명령하매 곧 그들을 죽이고 수족을 베어 헤브론 못 가에 매달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다가 헤브론에서 아브넬의 무덤에 매장하였더라” (12)

 

다윗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못 되고는 이스보셋이나 어떤 인간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린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레갑과 바아나를 처형하여 팔다리를 베고 헤브론 못 가에 달아 두었습니다.

 

사악한 죄를 지은 사람이 당할 저주를 온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한 것인데, 특히 수족을 벤 것은 그들의 손과 발이 이스보셋을 살인하는 도구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다윗은 이스보셋의 머리를 아브넬의 무덤과 함께 장사지내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이렇게 다윗처럼 원수를 사랑하고 끝까지 돌봐주며 선으로 대해주는 사람입니다.

 

 

[나가는 말]

 

레갑과 바아나는 아주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자기들의 왕인 이스보셋을 배신하고 그를 죽였을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큰 상급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자기쪽이 괜찮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기울어가니까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악한 자들의 악행으로 다윗은 이스보셋과 힘겨운 싸움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었고 온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데 악인들이 사용된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많은 악인들이 존재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자기가 악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많은 악인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기회만 있으면 사람들을 해치려 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교회에서도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약한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줍니다.

 

또 이들은 악한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며 하나님을 언급하기까지 합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언급한 것과 같습니다. 사울도 그랬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도 하나님의 백성과 관련한 일에서는 결국 하나님의 큰 계획 안에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악인들이 권세를 부리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당장은 아무리 악인이 잘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그런 악인들도 사용하셔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주변에서 악인이 잘되는 것을 보게 되면 괴로워하고 안타까워하며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반전이 곧 시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기다려보십시오. 분명히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다윗의 삶은 사울이라는 악인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 외 아브넬이나 이스보셋이나 레갑과 바아나 같은 사람들이 방해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사울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위대한 왕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런 악인들을 통해 다윗을 단련하셨습니다.

 

결국 다윗이 평생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된 것은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져 주셨다.’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그가 항상 생생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수많은 악인들의 위협 속에서 경험했습니다. 다윗이 시편에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고 노래한 것이 태평성대나 모든 것이 다 형통할 때 그런 게 아닙니다. 아주 극한 어려움 속에서, 악인들의 위협 속에서 그런 노래들을 불렀습니다.

 

다윗은 악인들에 의해서 오히려 왕위에 적합한 인물로 빚어졌고, 사울이나 아브넬이나 레갑이나 바아나 같은 자들의 악한 계획과 행동을 통해서도 오히려 좀 더 쉽게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악인들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자기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자기 욕심만 따라 사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아주 절묘한 손길로 그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믿음의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바로 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신뢰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생생히 체험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위해 아름답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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