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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6k1-GJsan7s?t=1718

 

 

2021131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43

벧엘에서의 영적 회복과 언약 재확인

(창세기 356~15)

 

[들어가는 말]

 

요즘은 한국의 대학 입시 과정이 많이 바뀐 것 같은데, 이전에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문과와 이과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사실 사람이 두 가지로 정해지는 게 아닌데, 둘로만 정했다는 게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전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사실 학생들 중에는 자기 적성이 문과인지 이과인지 잘 아는 학생들도 있지만 그것을 모르는 학생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게다가 문과로 가야 더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이과로 갈 때 더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것은 고등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은 조금 더 자유롭긴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서 원래 선택한 전공이 자기와 맞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전공을 바꾸어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늦게 졸업하게 되는 경우도 요즘 많습니다. 또 학교 졸업 후에 남들이 괜찮다고 하는 직장을 잡았는데, 다니면서 자기 적성이나 소질에 맞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겁니다. 그러나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장생활을 계속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결국 안 되겠다고 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쪽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종종 봅니다. 가끔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아주 잘 나가고 남들이 선망하는 직종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그것을 그만두고 다른 것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가끔 뉴스에 나오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니,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장을 잡고서 일을 잘 하다가 왜 관두나?’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해도 그 사람에게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맞는 일이 뭔지를 모르는 사람 또는 안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항상 마음속에 갈등이 있고 만족이 없습니다. 별로 좋지 않지만 지금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아니면 관두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지, 다른 일을 시작하면 과연 그쪽에서는 실패하지 않고 잘할 수 있을지, 이런 고민들로 늘 가득하기 때문에 늘 골치가 아픕니다.

 

야곱의 경우에는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 가장 야곱다운 일이 뭔가를 일찍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벧엘에서 만났던 하나님을 항상 자기 중심에 모시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확실한 길을 진작 보여주셨습니다.

 

사실 벧엘이라는 곳은 야곱의 인생에서 아주 밑바닥을 의미합니다. 그는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가진 것 하나 없이 홀로 도망치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빈들에 쓰러져 잠들었고 바로 그곳이 벧엘이었습니다. 바로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야곱에게 벧엘은 단순한 하나의 장소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벧엘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비참하고 무력하며 낮은 위치를 의미하는 곳이었고, 놀랍게도 하나님은 바로 거기서 야곱을 만나시고 놀라운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엄청난 약속을 받은 겁니다. 그래서 그는 가장 낮은 그 자리에서 가장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밤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런 체험을 주신 것은 앞으로 여러 가지 경험도 하고 여러 가지 직업도 가질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그에게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잘 어울리는 일이 바로 벧엘과 같은 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하는 것을 미리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벧엘로 돌아가기를 싫어하고 꺼려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벧엘 하면 생각나는 것이 옛날 고생했던 시절, 힘들었던 순간, 자기가 가장 낮았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비참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벧엘로 가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세겜에서 사랑하는 딸 디나가 성폭행 당하는 비극을 경험했고, 그에 격분한 아들들이 아예 세겜 남자들을 다 죽이고 도시를 초토화시키는 더 큰 비극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벧엘로 올라가라. 거기서 단을 쌓으라.”라고 하셨고, 야곱은 마침내 벧엘로 가게 됩니다.

 

 

1.   벧엘로 올라간 야곱

 

야곱은 이 어려운 상황에 하나님이 벧엘로 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제는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기로 결심합니다. 이제는 인간적인 계산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사실 벧엘로 가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벧엘은 사방이 뚫린 빈들이기 때문에, 가나안 사람들이 막 쫓아와서 공격해오면 전혀 방어할 길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서에게 도움을 청하든지, 아니면 잠시 가나안 땅을 떠나 있는 편이 더 안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더 이상 어느 것이 자기에게 유익한지를 따지는 인간적인 생각을 그만두고 벧엘로 가기로 결단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더욱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이번 기회에 자기 가정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순결하고 아름다운 집안으로 회복시키겠다고 결단하면서, 지난 번 살펴본 것처럼 가족들에게 이방 신상들을 다 버리고 옷도 다 갈아 입으라고 명령합니다. 믿음의 집안인데도 이방 신상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옷도 이상한 우상을 섬기는 것과 관련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다 버리고 바꿔 입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렇게 결단하고 나아가니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를 쫓아오지 못하게 막아주십니다. 이것은 상식을 벗어난 일입니다. 상식과 우리가 아는 지식과 경험으로 볼 때, 사람들이 격분해서 당연히 세겜 사람들을 초토화시킨 야곱 집안을 멸하겠다고 쫓아오는 것이 보통인데, 큰 두려움이 일어나게 하셔서 그들이 야곱의 집안을 쫓아오지 못하게 하나님이 막아주셨습니다.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6-7)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벧엘에 안전하게 도착한 야곱은, 거기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 바친 후에 그곳 이름을 엘 벧엘이라고 지어 부릅니다. 엘 벧엘이라는 말은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집이라는 벧엘이라는 그곳의 이름에 엘 벧엘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더한 것은, 오래 전 자신이 형 에서의 보복을 피해서 도망하던 때에 하나님이 거기 나타나셔서 그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신 것을 그가 기억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자신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다 알면서도 내일 하지. 다음에 하지.’ 하면서 미루며 청산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세겜에서 이런 엄청난 비극을 당하게 되니까 비로소 그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결단을 내리지 않고 여기서 계속 머뭇거리고 있다가는 다 죽는다는 깨달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은혜를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붙들고 있는 작은 욕심이나 좋지 못한 습관이나 취미 같은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우리 스스로 깨닫습니다. ‘, 나는 정말 죄인이구나.’ 그래서 이것을 빨리 그만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단을 자꾸 미루는데, 그럼 어떻게 됩니까? 야곱처럼 반드시 엄청난 비극을 겪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자꾸자꾸 멀어지게 됩니다.

 

야곱은 믿음의 조상인데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가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런 사건을 허락하심으로 그가 정신을 차리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일부러 이런 비극을 일으키신 게 아닙니다. 인간의 죄성 때문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의 죄가 얼마나 큽니까? 그런데 이런 사건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선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이런저런 핑계를 댈지는 몰라도, 지금 내 삶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만한 게 뭐가 있는지 사실 다 알지 않습니까? ‘이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게 아닌데하면서도 그만두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기질과 자기가 만나는 사람과 자기의 생활방식 중에 이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텐데.’ 하는 것을 자기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결단을 하지 않고 미루고 또 미루고 그러면 결국 이런 엄청난 비극이 터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별 일 없이 잘 지내는 것은 하나님이 크신 손으로 늘 붙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잘 지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참아주시다가 더 이상 참았다가는 잘못된다고 느끼실 때는 붙들고 있던 손을 거두어 가십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빨리 마음을 돌이켜 우리의 벧엘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거기서 우리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이런 야곱 같은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도 야곱처럼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을 때 나 자신다운 모습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나의 나다움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붙어 있을 때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고 있을 때입니다. 거기에서 진정한 만족을 느끼게 됩니다. 다른 데서는 우리 마음의 만족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다른 데서 만족을 채우고자 시도합니다. 이번에 우리가 <새로운 삶> 공부도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뭔가 늘 부족한 삶을 살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온전히 주인으로 모시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뭔가 자꾸 다른 것으로 만족을 채워보려고 애쓰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 <새로운 삶>입니다.

 

보통 어떻게 생각합니까? ‘직장을 옮기면 더 만족한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더 넓은 집을 사서 옮기면 더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전공을 바꾸면 더 온전한 내 모습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사업을 다른 것으로 바꾸면 더 만족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그런 게 다 죄라고 하시지는 않지만 그런 것이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런 것은 둘째 문제다. 너는 먼저 벧엘로 올라가 거기서 단을 쌓아라.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 먼저 나에게 나오라. 자꾸 다른 데로 도망가지 말고, 자꾸 다른 것으로 채워보려고 하지 말고, 힘들고 상처받은 모습 그대로 나에게 나오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야곱처럼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 안에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상이 옛날처럼 만들어놓은 신상 같은 것만이 아니라, 내가 소중하게 붙들고 있는 것, 이것만큼은 포기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들입니다. 끝까지 고민하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이 마치 뭐가 되는 것처럼 붙들고 있는데, 사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자기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놓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놓고 나와 단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저는 이게 없으면 안 되겠습니다.’라고 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 제가 이것을 놓게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오라는 겁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놀랍게 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그런 것이 있습니까? ‘이게 없으면 안 된다. 이것만큼은 없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래서 심지어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고 붙드는 것조차 이것에게 밀리는 그런 것이 있습니까? 예배와 겹치면 당연히 예배가 아니라 이것을 따라가는 그런 것이 있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을 놓고 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자꾸 놓고 오라고 하십니까? 왜 나를 힘들게 하십니까? 힘들게 하시는 게 아닙니다. 끝까지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으면 그게 올무가 되어서 나에게 아주 안 좋기 때문입니다. 내 삶이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주신 것이 예배인데, 우리가 예배드릴 때 어떤 심정으로 나아갑니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얼굴을 만날 준비를 하며 나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11개월 가까이 온라인으로 예배하고 있는데,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처음에는 단정한 옷차림으로 미리 준비하고 나아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렵습니다. 교회당에 와서 예배드리려면 적어도 한 시간 전부터 준비하여 30분 전에 떠나는 등 준비가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온라인 예배는 1분 전에 일어나서 대충 세수하고 앞에 앉아도 누가 아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쉽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예배라는 것이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드리며 나아가는 제사가 아니라, 매주 있는 행사 정도나 비디오 보는 정도의 수준이 아닌가 하여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더 어려운 상황인데,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면 더 잘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히려 더 준비하고 더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며 나아가면 우리가 더욱더 놀라운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 그냥 무너지고 마는 상황인 것입니다.

 

혹시 내가 붙들고 있는 게 있다면 나중에 시간 내서 정리하겠다고 하지 마시고, 바로 지금 그 우상을 꺼내야합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 이것 없으면 안 된다고 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무엇이 나를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답답하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나를 안타깝게 생각하시게 만들었는지, 그 모든 더러운 습관과 취미를 꺼내서 파묻고 가장 낮은 모습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어서 우리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어려움들이 계속 있지만, 그런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놀랍게도 우리 눈이 변화되고 시각이 바뀌어서 그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닌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8)

 

야곱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벧엘에 온 뒤로 겪은 일이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드보라의 죽음(8)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언약을 재확인해주신 사건(9-13)입니다.

 

먼저, 8절은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를 따라 가나안 땅으로 왔던(24:59) 유모 드보라가 죽어서 벧엘 아래쪽에 있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혔다고 알려줍니다. 이것은 상당히 뜬금없습니다. 야곱이 지금 벧엘에서 단을 쌓고 엘 벧엘이라 부르고 하나님께 돌아와 회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갑자기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드보라가 리브가의 유모이니까, 야곱에게는 어머니 리브가의 유모이니까 어머니와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났다면 이모뻘이 되는 것이고, 나이가 많았다면 젊은 할머니뻘이 되는 것인데,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야곱과 함께 있었습니다. 이 말은 누가 더 나이가 많고 적고 상관없이 리브가는 이미 죽었다는 것입니다. 리브가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유모인 드보라는 리브가와 더 이상 함께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야곱과 함께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드보라가 묻힌 곳을 알론바굿’(알론 바쿠트)이라 불렀는데, 이 이름은 통곡의 상수리나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드보라가 죽었는데 사람들이 통곡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드보라가 평소에 얼마나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어떤 관계였고 왜 여기 있고 어떤 사람이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것을 통해 평소에 그녀가 얼마나 신실한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유모의 신분으로 성경에 그 이름이 언급된다거나 사람들이 그녀를 위해 통곡했다는 사실을 보면 바로 그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24장에서 리브가를 유모가 따라왔다고 되어 있지만 이름은 안 나왔는데, 여기서는 드보라라고 이름도 나오고 사람들이 드보라를 기억하고 통곡했다는 것을 보면 굉장히 훌륭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번에 저도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왔지만, 누군가 돌아가시면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면서 같이 예배를 드리고 기도도 합니다. 내가 죽은 다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는가 한 번 생각해보셨습니까?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는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묘비명을 이렇게 써달라고 부탁하고 죽기도 합니다.

 

우리가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드보라 같은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알론바굿이라고 부르며 나를 위해서 울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러니까 그 정도로 신실하고 사랑이 넘치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 우리도 그런 사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2.   벧엘에서 언약을 재확인해주시는 하나님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9-10)

 

야곱이 외삼촌의 집 밧단아람을 떠나 하나님이 명하신 벧엘에 온 뒤로 겪은 두 번째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그에게 나타나셔서 복을 재확인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복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복은 야곱의 바뀐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음을 다시 확인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지난 32장에서 봤듯이, 그가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가는 길에 브니엘에서 천사와 씨름하던 중에 얻은 이름입니다(32:28). 그런데 벧엘에서 하나님이 바뀐 그 이름을 다시 언급하시는 것은, 야곱이 앞으로 새로운 존재가 될 것이며 또 마땅히 그렇게 돼야 함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이름이 바뀌었다고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즉 남의 뒤꿈치를 잡는 사람, 비열한 사람, 속이는 사람, 사기꾼의 삶을 이제 살아서는 안 되고, ‘이스라엘즉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이긴 사람, 특히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사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함을 강조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1)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 아닙니까? “생육하며 번성하라는 것은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말씀이고, 또 노아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것을 야곱에게도 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벧엘에서 야곱에게 주신 두 번째 복은 자손의 약속입니다. 이 복을 언급하기 전에 하나님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라고 하십니다. ‘전능한 하나님이 바로 엘 샷다이입니다. 노래에는 엘 샤다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전능한 하나님입니다. 엘 샷다이라는 이름은 본래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더불어 맺으신 언약을 다시금 확증하시던 때에 사용하신 이름이었습니다(17:1-21). 언약을 확증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표를 주시면서, 사라가 이삭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야곱이 에서와의 관계가 불편해졌을 때 야곱을 하란으로 보낼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너를 돌보아주시기를 원한다.’라고 하면서 엘 샷다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축복한 적이 있습니다(28:3-4). 바로 그때 같은 엘 샷다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엘 샷다이즉 전능하신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복은 아브라함 때나 이삭 때나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야곱이 생육하고 번성할 것이며, 한 백성과 백성의 총회가 그에게서 나오고, 또 왕들이 그의 허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포함했습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12-13)

 

하나님이 벧엘에서 야곱에게 주신 세 번째 복은 땅의 약속입니다. 이름과 자손과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아브라함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처음 부르실 때 두 가지 약속을 주셨습니다(12:1-3). 땅의 약속과 자손의 약속입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은 이 두 가지 약속을 반복하십니다. 11절이 자손의 약속을 보여준다면, 12절은 땅의 약속을 보여줍니다. 자손도 많이 주시고 땅도 많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벧엘에서 제단을 쌓은 야곱에게 뭐라고 하십니까?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겠다.”라고 하십니다. 또 그것을 그의 후손에게도 주실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십니다(12). 하나님은 이처럼 자신의 약속을 재확인하시고 갱신하신 후에, 야곱에게 말씀하시던 그곳을 떠나 올라가십니다(13).

 

이것을 보면, 첫 번째 벧엘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셨을 때는 야곱이 꿈속에서 봤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하나님이 직접 이 벧엘에 내려오셨다는 말이 아닙니까? 어떤 모습으로 오셨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야곱이 제단을 쌓고 있던 바로 그곳에 하나님이 그의 앞에 나타나셔서 이런 약속을 재확인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는 정말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은 항상 새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약속을 받았다고 계속 묻어두는 게 아니라 언약을 항상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변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늘 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변덕스럽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자꾸만 멀어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물이 흐르는데 흐르는 강물 위에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가만히 있으면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게 아닙니다. 물에 떠내려갑니다. 우리가 계속 거꾸로 헤엄쳐 올라가지 않고 가만히 그 자리에서 현상유지를 하겠다고 하면 떠내려가는 겁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떠내려가는, 즉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성향을 가진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줄어들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지 않으셔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은혜를 받을 만한 상태에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 충만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힘이 넘치고 소망이 넘쳐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낙심한 사람이 있어도 우리가 예배하는 가운데 오면 힘이 넘치고 위로를 받는 것이 정상입니다. 우리가 목장으로 모일 때(지금은 직접 모이지 못하고 온라인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 방문을 왔을 때 여기는 뭔가 다르다. 뭔가 생명력이 느껴지고 뭔가 따뜻하다.’라고 하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뭔가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있어야 하는 관계가 멀어졌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하고 재확인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늘 주어져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특히 주일예배입니다. 다른 예배들도 많이 있지만, 특별히 일주일에 한 번 왜 예배하도록 하셨습니까? 우리를 귀찮게 하시려는 게 아닙니다. ‘귀찮은데 황금 같은 일요일 아침에 꼭 예배를 해야 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 우리는 안 하면 멀어집니다. 안 하면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언약을 재확인하고 갱신하도록 주신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특별히 주일예배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일에 혼자 예배하는 게 아니라 성도들과 같이 예배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나 혼자 언약 백성이 되지는 않습니다. 혼자는 백성이 아닙니다. 야곱도 혼자만 아니라 그 후손에게 계속 주겠다고 하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공동체로 함께 하나님 앞에 예배하도록 우리에게 사실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늘 가까이 하고 언약을 갱신하고 재확인 받는, 그런 기회를 우리에게 늘 주시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할 때나 어떤 말씀이 내 마음을 찌를 때 깨달아야 합니다. ‘, 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 너무 멀리 떠나왔구나.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너무 많구나. 지금 내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만한 모습이구나. 내가 정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모습으로 여기 있구나.’라고 빨리 깨닫고,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게 뭔지를 빨리 발견하여 청산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진짜 부흥입니다.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만이 부흥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처음 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눈물을 흘리고 감정이 폭발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버릴 것은 버리고, 청산할 것은 청산하고, 끊을 것은 끊고, 바른 관계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이며, 진정한 부흥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내 스케줄을 체크해보고 잘못된 것을 바꾸는 겁니다. 생활습관이 잘못된 것을 고치고, 버릴 것은 버리고, 바른 위치에 두어야 할 것은 바른 위치에 두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만나는 데 최우선순위를 두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그 밑으로 들어가면, 정말 삶이 조화를 이룹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엄청난 영광이 내 속에서 경험이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흥분되며 , 내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3.   예배하는 야곱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14-15)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다시 하나님 앞에 돌을 세우고 전제와 기름을 붓습니다. 야곱은 20년도 훨씬 전에 이미 자기가 베고 잤던 돌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기름을 부으면서 언약을 새롭게 합니다. 그때 이미 서원을 하지 않았습니까?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그 경험은 야곱에게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평소에 하나님과 동행하지만 아주 특별하게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냥 환경적으로 상황이 잘 풀리게 인도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나와 지금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벧엘에서 야곱의 경험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체험한 후에 거기 돌을 세우고 전제와 기름을 부었습니다. 전제라는 것은 포도주를 붓는 의식입니다. 이것은 제사 드리는 사람이 자기 생명을 드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부으면 어떻게 됩니까? 꺼져가던 불길이 확 다시 솟아오릅니다. 우리가 캠프파이어를 할 때 꺼져가는 불에 기름을 부으면 다시 불길이 솟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나의 모든 생명을 다해, 나의 남은 삶을 다해 벧엘의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 다시는 교만하지 않겠다. 나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내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겠다. 다시는 우리 집안에 우상을 허용하지 않겠다.’ 하는 결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결단을 하더라도 앞으로 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또 신앙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이 부족한 모습 그대로, 이 약한 믿음 그대로 하나님께 드리며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오늘 우리도 바라보고 사모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이 온전히 그 영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복음을 듣지 못해서 고통 가운데 살고 있습니까?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복음과 관계없이 힘들어 하며 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요즘에 교회가 병들어 있고 죽어 있고 사회로부터 업신여김을 받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 참으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기보다, 그냥 세상에서 돈 벌고 애들 키우고, 작은 취미와 욕심, 특히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붙들고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만한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그것을 버리지 못한 채 어떻게 계속 품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먼저 가슴 아파하고 결단을 내려야겠습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야곱의 아들들이 엄청난 살육을 저지른 것처럼 얼마든지 우리에게도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과 같은 모습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모든 우상들을 묻고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벧엘로 나아가 새로운 결단을 내리는 나의 모습을 사모하며 나아가야겠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매주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매일 하는 말씀묵상(큐티)이고 주중예배이고 새벽기도입니다.

 

그 영광의 순간이 우리에게 늘 주어져 있고 또 우리는 그 앞에 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는 욕심이 무엇입니까? 아직도 하나님 앞에 온전히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버리며 나아갈 때 오히려 가장 나다운 모습을 회복하고 엄청난 만족을 누리는 삶을 회복하게 됩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특별히 올라가기 전에 내가 가지고 있는 우상을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온몸을 정결케 하시기를 원합니다. 새 옷을 입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고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다음 언젠가가 아니라 바로 매주, 매일 그렇게 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를 만나실 때마다 언약을 재확인하시고 새롭게 하시며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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